인제대학교와 한반도평화포럼, 프레시안, 오마이뉴스가 공동 주최하는 제3기 한반도평화아카데미의 마지막 강의가 30일 서울 중구 인제대학교에서 열렸다. 이날 강의에서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은 북한의 변화가 이미 시작됐다고 지적했다.
임 전 장관은 제3기 한반도평화아카데미의 공통주제인 "김정은의 북한, 세계로 향하는가"라는 질문은 결국 북한이 변화할 것인가를 조망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북한 변화의 원인과 다양한 분야에서 변화하고 있는 북한의 모습을 설명했다.
북-중 관계 변화가 결정적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은 북한이 변화하게 된 계기로 2009년 시작된 북한과 중국 간의 관계 변화가 결정적이었다고 주장했다. 2009년 4월 5일 북한은 광명성 2호 발사를 강행했다. 이후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가 강화되면서 북한은 5월 25일 핵실험을 감행했다. 유엔은 이에 6월 12일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 1874호를 통과시켰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중국은 북한에 대한 정책을 재검토했다. 이때 중국이 결정한 내용은 한반도는 비핵화 지대로 남아있어야 한다는 것과 북핵 문제는 미국과 북한 간 적대 관계의 산물이었기 때문에 미국이 책임지고 해결해야 하고 동시에 중국은 미국의 해결 노력을 돕겠다는 점, 마지막으로 중국과 북한의 전통적 우호협력관계를 확대·발전시킴으로써 핵 문제를 비롯한 북한의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한다는 것이었다.
임 전 장관은 중국의 결정에 대해 중국이 자국의 경제 발전을 위해서도 주변의 평화와 안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또 중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서도 북한이 국제사회에 평화적으로 연착륙할 수 있도록 북한의 개혁개방을 지원하는 것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임 전 장관은 "중국은 북미대화를 지원하면서 한반도가 비핵화의 과정으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고 덧붙였다.
▲ 제3기 한반도평화아카데미의 마지막 강연이 30일 서울 중구 인제대학교에서 열렸다 ⓒ한반도 평화포럼 |
중국과 북한의 경협,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이끌 수 있다
중국은 북한과의 전통적 우호 협력관계를 확대시키고 있다. 특히 양국은 접경지대에서의 경제 협력관계를 강화 발전시키고 있다. 임 전 장관은 이러한 중국의 움직임에 대해 북한을 중국에 개방시키려는 의도가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이 중국에 대해 경제적으로 개방조치를 취해 중국의 시장경제 원리에 따르게 될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과 북한의 접경지대는 양국의 경협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임 전 장관은 "중국은 훈춘과 나진-선봉지역을 대상으로 도로, 항만, 구역을 일체화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며 "나선항(나진·선봉)항이 훈춘과 도문의 외항처럼 활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임 전 장관은 이 프로젝트가 중국이 동북 3성 진흥계획의 핵심으로 훈춘과 도문을 개발하고 있는데, 이들 내륙지역의 발전을 위해 바다로 진출할 수 있는 항구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중국이 차항출해(借港出海 : 항구를 빌려서 바다로 나간다)를 실현하기 위해 나선항의 부두를 확보한 것"이라며 "부두 3개를 투자하고 개발하고 있고 청진항에도 2개의 부두를 확보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이뿐만 아니라 중국은 단둥과 신의주 사이의 연계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황금평과 위화도 개발인데, 임 전 장관은 이것이 단둥에 있는 9개의 산업 공단과 연계시켜서 발전시키려는 계획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신의주와 단둥을 잇는 신(新)압록강대교, 만포 쪽에 건설되는 새로운 육교 등 접경지대의 여러 곳에서 철도 및 도로가 연결되고 물류 교역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임 전 장관은 중국의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중국이 북한에 속박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그는 "양국의 경협이 북한의 경제 개선에 기여하고 중국이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유도하는 긍정적인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이 북한 변화에 추동력이 되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 내부에서 감지된 변화의 움직임
▲ 강연중인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 ⓒ한반도 평화포럼 |
그는 "물론 김정은 정권이 선군정치를 폐기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존에 군이 앞섰던 지도체제를 변화시켜 당에 의해 군을 지배하려는 의도를 보인 것은 분명하다"고 덧붙였다.
임 전 장관은 이어 최근 평양에서 6년 동안 개발 원조 담당을 했던 스위스 인사의 말을 빌려 북한의 변화를 '5M' 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5M'이란 시장(Market), 돈(Money), 자동차(Motor), 휴대전화(Mobile), 의식변화(Mind Set)를 의미하는데, 북한의 시장 경제가 활성화됐고 이에 따라 사람들이 화폐의 중요함을 알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특히 북한에서는 달러, 유로, 위안화 등 외화가 인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평양 시내 자동차가 늘어났고, 휴대전화가 늘어나면서 정보교류가 많아진 점, 이로 인한 북한 사람들의 의식 변화를 북한 변화의 징조로 꼽았다.
변화하는 북한과 '사실상의 통일(De facto Unification)'을 이뤄야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은 북한의 변화와 더불어 사실상의 통일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임 전 장관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남북이 인식을 같이한 점진적 평화통일방안을 언급하며. 남북연합을 이루는 '사실상의 통일 (De facto Unification)' 단계를 거친 후 법적으로 완전한 통일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평화통일은 갑작스럽게 찾아올 수 없다고 덧붙였다.
임 전 장관은 "통일과 관련해 제일 어려운 문제가 어떻게 통일할 것인가에 대한 방법론적인 문제다. 그런데 공산통일이나 흡수통일을 주장하면 통일이 이루어질 수 있나"라고 반문하며 "이런 인식을 기반으로 6.15 때 합의한 것이 점전적 평화통일방안이다. 통일은 목표인 동시에 과정인 것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사실상의 통일은 분단으로 인한 민족의 불편과 고통을 최소화하고 통일된 것과 비슷한 상황을 실현하는 것을 지향한다. 임 전 장관은 이러한 통일을 이룬 사례로 독일과 중국을 꼽았다. 독일처럼 일관성 있는 포용정책을 통해 교류협력을 늘리고 남북관계를 개선하여 사실상의 통일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중국과 대만이 Chiwan(중국의 China와 대만의 Taiwan의 합성어)경제공동체를 조성하여 사실상의 통일을 구현한 것처럼 우리도 북한과 경제·사회·문화적 영역에서 사실상의 통일을 이뤄 완전통일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임 전 장관은 화해와 협력을 통한 신뢰 조성, 남북연합 구성 운영, 남북경협 활성화, 군비통제 협상 추진, 4자 평화회담 추진을 당면과제로 꼽았다. 특히 그는 남북경협의 활성화는 통일비용의 절약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 전 장관은 "통일비용을 통일 후에만 사용하는 비용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통일 이전에 지출하는 것도 통일 비용으로 간주해야 한다"며 "현재 우리가 북한 인프라 구축에 투자한다면, 통일 후의 비용이 훨씬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고 설명했다. 임 전 장관은 남북 경협은 통일 비용을 줄이는 것과 동시에 남한의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언급했다.
향후 남북관계에 대해 전망하면서 임 전 장관은 북한을 붕괴 임박론이 아니라 점진적 변화론의 시각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선 북핵해결, 후 남북관계' 전략이 아니라 핵 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개선을 병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 전 장관은 "핵 문제는 미-북 적대 관계의 산물이다. 따라서 양국의 관계가 정상화되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며 "'선 북핵해결, 후 남북관계' 는 북핵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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