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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기로의 북핵] 6자회담 전망 신중 또 신중

"비핵화를 위한 초기이행조치를 합의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확인했다."
"각론을 얘기하진 않았지만 간단치 않을 것 같다."

8일 6자회담(5차 3단계) 첫날을 보낸 한국 대표단이 회담 결과에 대해 낙관론과 비관론을 동시에 피력하며 신중의 신중을 기하고 있다.

핵폐기를 위한 북한의 초기이행조치와 그에 대한 상응조치가 합의돼야 한다는 총론에는 모든 참가국이 동의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간단찮은 고개를 넘어야 한다는 부담감의 표현이다. 정부 당국자는 "악마는 디테일(사소한 곳)에 있다(The devil is in the detail)"는 외국 속담으로 현 상황을 표현했다.

희망의 근거

북한이 영변 핵시설 동결(혹은 폐쇄)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이라는 초기조치를 수용할 의지를 밝혀왔다는 것 자체가 낙관론이 나오는 이유다.

6자회담 한국 측 수석대표인 천영우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이날 저녁 브리핑에서 "전체회의 기조발언을 통해 9.19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초치에 대한 합의가 이번 회담에서 이뤄져야 한다는데 공감대를 확인했다"며 "1월 베를린 북미협의가 합의를 위한 유익한 기초라고 모두 평가했다"고 말했다.

천 본부장은 특히 이날 밤이나 다음날 오전쯤에 중국이 합의문서 초안을 회람시킬 것이라고 밝혀 합의가 이뤄진다면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하게 했다.

중국이 회담 첫날부터 초안 회람을 시도하는 것은 베를린 접촉이나 이후 다각도의 양자·다자 접촉에서 이미 큰 틀의 합의가 되어 있는 만큼 명시적인 문서를 먼저 내놓고 '수정할 것만 말해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합의문서에는 △영변 5㎿ 원자로 등 핵 관련 시설의 가동중단이나 폐쇄 조치를 특정시한(2~3개월) 내에 이행하고 △이에 상응해 대체에너지 등을 같은 기간 내에 제공하는 '행동 대 행동' 원칙을 골자로 할 것으로 보인다.

악마는 어디에?

하지만 우리 정부 당국자는 "각론에 들어가면 아직도 어려운 협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며 "아직도 관련국간 여러 이견을 좁혀야할 부분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낙관할 상황은 아니다"라고도 덧붙였다.

이 당국자가 말하는 '이견'이란 초기조치에 대한 '값'을 비싸게 쳐 달라는 북한과 '핵실험을 한 마당에 그 정도 조치로는 비싼 대가를 줄 수 없다'는 미국의 줄다리기가 큰 줄기다. 작은 줄기에는 대북 에너지 지원을 주저하거나 적게 부담하려는 5개국들의 눈치보기, 초기조치의 수준 등이 있다.
▲ 중유 제공 문제로 이번 6자회담에서 관심의 초점으로 부상한 일본. 일본의 6자회담 수석대표인 사사에 겐이치로(佐佐江賢一郞)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이 8일 기자들의 질문 공세를 받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지난해 12월 6자회담에서 핵시설 가동중단과 IAEA 사찰에는 서면 안전보장만 해줄 수 있다고 선을 그은 미국은 1월 베를린 회담을 지나며 에너지·인도지원, 테러지원국 해제 등을 추가할 수도 있다는 얘기를 간간히 흘렸지만 선물보따리를 공개적으로 풀지 않았다.

이에 북한 측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이날 베이징 서우두공항에 도착하면서 "미국이 우리에 대한 적대시정책을 포기하고 평화적으로 나오려 하는가 안 하는가, 이것을 기본으로 판단하고 회담에 임하겠다"고 말했다.

초기조치의 값을 더 쳐달라는 압박인 동시에 여차하면 제재 문제도 다시 거론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신경전이 계속되면 이 당국자의 말대로 낙관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에너지 제공에 있어서도 6자회담에 납치문제를 포함시키지 않으면 에너지를 줄 수 없다는 일본, 부채 탕감으로 에너지 제공 부담을 대신하려는 러시아 등의 태도가 변수다.

핵시설에 대해 '가동중단'을 할 건지, '동결'을 할 건지, '폐쇄'를 할건지, 한다면 몇 개의 시설을 할 건지도 '악마를 숨긴 디테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는 이날 저녁 숙소 앞에서 "핵시설 동결에 관심없다. 우리가 관심있는 것은 플루토늄 생산 시스템이며, 궁극적인 목표는 핵폐기(abandon)다"라고 말해 쉽지 않은 협상을 예고했다.

분명한 것 몇 가지

그러나 "BDA(방코델타아시아은행) 문제는 들어본 적이 없다. 전혀 이슈가 될 것 같지 않다"는 천영우 본부장의 말대로 합의를 가로막는 구조적인 장애물이 없어졌다는 점에서 최소한의 합의가 가능하다는 전망은 엄연히 살아있다. 북한은 지난번 회담에서 '금융제재 해결이 선결조건'이라며 핵폐기 논의 자체를 거부했었다.

김계관 부상이 "초기단계 조치에 토의할 준비가 다 돼 있다"는 걸 베이징 도착 일성으로 택한 것처럼 북한의 태도 변화도 뚜렷하다. 천 본부장은 적대시정책을 기준으로 삼겠다는 김 부상의 말에 대해 "북한이 몇 년 전부터 늘 하던 얘기"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정부 당국자도 북한의 개막식 기조연설에 대해 "뭔가 합의를 끌어내야 한다는 강력한 의지와 희망을 피력했다"고 전해 전과 다른 북한의 모습을 감지케 했다.

에너지 제공에 대한 일본의 태도도 그리 우려할 게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천 본부장은 일본이 납치문제를 전제조건으로 걸었냐는 질문에 "납치문제가 해결되기 전에 상응조치를 못한다는 얘기를 들은 건 없다"고 전했다.

시오자키 야스히사 일본 관방장관은 7일 "(북한이) 비핵화를 향한 최초 단계를 취하기 바란다. 그런 다음 일- 대화가 이뤄질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는 상응조치의 책임에서 일본이 빠지려 할 경우 그나마 있던 회담 영향력을 고갈시킬지 모른다는 위기감의 반영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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