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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이 원하는 건 '당 사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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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이 원하는 건 '당 사수'가 아니다"

[인터뷰]정동영 "남북정상회담 안 이뤄지는 게 비정상"

당청 갈등, 당내 갈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가운데에도 정동영 열린우리당 전 의장의 행보는 여전히 '정중동'이다. 정치 문제에 대해선 여전히 언급을 꺼리면서도 "이대로 (우리당이) 무너질 수는 없고, 이대로 앉아 있을 수도 없다는 생각이다. 어떻게 기사회생 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고 말해 조만간 본격적인 정치행보에 뛰어들 것임을 시사했다.

"노 대통령 '지역주의 회귀론'에 동의 못해"

8일 오전 <프레시안>과 만난 정 전 의장은 노무현 대통령과의 관계설정 문제에 대해 "국민들은 대통령의 당적이 있어야 하느냐의 여부로 우리당에 대한 지지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며 "기본적으로 노 대통령이 당에 대한 애정이 있기 때문에 이 문제는 대통령 스스로 판단할 문제라고 본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탈당 가능성도 여전히 열어 놓았지만, 신당파 일각의 결별불가피론에 비하면 수위가 한결 낮은 편이다.

정 전 의장은 특히 당 지도부가 "노 대통령이 정치에서 손을 떼라"고 주문한 것에 대해서도 "그 문제를 감정적으로 확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제동을 걸었다. 노 대통령과 당 지도부 사이에 형성된 갈등 기류를 비껴서는 한편, 김근태 의장과도 묘한 입장 차이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는 특히 노 대통령의 '서신 정치'에 대해서도 "우리당의 정책적 역사적 정체성을 유지하자는 말은 우리당의 진화론을 주장한 것 아니냐"면서 "나는 이 말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노 대통령이 우려한 '지역주의 회귀'에 대해선 "(우리당의) 새로운 길이 지역주의의 길이라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며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이대로 당을 사수하고 고수하자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친노계의 비상대책위원회 해체 요구에 대해선 "(내년 전당대회까지는) 비대위가 책임 있게 가야 한다. 해체하고 어쩌자는 것이냐"고 반대했다.

"북한은 핵 포기할 것"
▲ ⓒ프레시안

한편 북핵 해결의 '밀알'을 자처하며 최근 미국과 중국을 잇달아 방문했던 정 전 의장은 현지 인사들과 만나 살펴본 분위기를 토대로 "북한은 (핵을 폐기하지 않은 상태에선) 국제사회에서 돈도 빌리고 장사를 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며 "북한은 핵을 포기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그는 한국 정부의 역할 가운데 남북정상회담 추진을 강조하며 "참여정부 임기 5년 동안 한 번도 정상회담이 이뤄지지 않으면 그것 자체가 부자연스럽고 비정상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내년 3~4월 이전에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돼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고 이를 위해 "지금 특사 파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자신에게 특사 역할이 맡겨지는 것에 대해선 "나는 적임이 아니다. 그런 일이 맡겨진다면 부작용이 더 클 것이다. 정치화 된다"고 부정했다.

그는 "북한 핵실험 이후 중국과 미국의 주목도가 높아졌다"며 "워싱턴, 평양, 베이징을 오가는 고공 외교가 펼쳐지고 있는데 우리가 제 몫을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 외에 정 전 의장은 한미 FTA와 관련해선 "국익을 우선으로 최대 이익이 확보될 수 있다면 보다 적극적으로 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이미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실패로 규정한 바 있는 그는 토지임대부 분양이나 환매조건부 분양 방식에 원론적인 찬성 입장을 밝혔고, 특히 "'조만간 종부세 과세 대상에 해당하지 않을까'하는 잠재적 중산층의 두려움을 고려해 종부세를 목적세로 전환시키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6개월 침묵…이대로 앉아 있을 수는 없다"

프레시안 : 열린우리당이 여러 혼란을 겪고 있다. 창당주역으로서 심경이 편치 않을 것 같다.

정동영 : 지난 6월 1일 사퇴하고 난 뒤 깊은 책임감으로 침묵과 성찰의 시간을 보낸 6개월이 지나갔다.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또 이대로 앉아 있을 수도 없다는 생각이다. 어떻게 하면 기사회생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당이 이렇게 된 것도, 다시 살아나는 것도 모두 국민 마음에 달려 있는 것 아닌가. 국민들은 우리당을 여러 번 심판했다. 이는 지금 국민의 마음에 들지 않으니 변화하라는 요구이기도 하다. 그 방향이 무엇이냐에 대한 모색이 지금 주어진 과제인 것 같다. 쉽지 않다.

프레시안 : 노무현 대통령과의 관계 문제로 얘기가 많다. 당에선 결국 갈라설 수밖에 없지않느냐는 의견이 많은데.

정동영 : 이 문제를 전면에 세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민심의 밑바닥에서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 열린우리당이 어떻게 해야 국민 가슴 속에 다시 살아날 수 있는가. 국민들이 대통령의 당적이 있어야 하느냐로 당에 대한 지지를 결정하지는 않는다고 본다. 기본적으로는 대통령이 당에 대한 애정이 있기 때문에 (당적 문제는) 대통령이 스스로 판단할 문제라고 본다.

프레시안 : 노무현 대통령의 서신을 접한 생각은 어땠나?

정동영 : 편지에 보면 "우리당의 정책적 역사적 정체성을 유지하고 변화 발전시켜서 국민 속에 뿌리 내리는 논의를 반대하지 않는다. 우리당 진로와 방향은 정책을 어떻게 변화발전 시킬 것인지를 중심으로 논의되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나는 이 말에 공감한다. 우리당의 진화론을 주장하는 것 아닌가.

우리당이 정당 민주주의의 종착점이 아니기에 유기체처럼 진화 발전해가야 한다. 국민들은 변화와 발전을 주문하고 있다. 정책적 역사적 정체성을 변화 발전시키도록 정책과 노선을 어떻게 창출할지 그 논의가 필요하다.

프레시안 : 노 대통령은 정치에서 손 떼라는 당의 요구와는 뉘앙스가 달라 보인다.

정동영 : 정부와 여당이 신뢰를 잃은 이유 중에는 어떤 사안 생겼을 때 냉철한 이성으로 대응하기보다는 감정적 대응이 많았던 이유도 있었던 것 같다. 대통령도, 당도 민생과 안보가 국정의 최대 과제 아닌가. 이에 집중하는 것이 맞다. 그 문제를 감정적으로 확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 ⓒ프레시안

프레시안 : 노 대통령의 인식에는 열린우리당의 새로운 진로 모색이 지역주의 회귀로 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

정동영 : '새로운 길'이 지역주의 길이라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이대로 사수하고 고수하자는 것이 아니지 않나. 국민들은 정치개혁을 넘어서서 그를 바탕으로 새로운 질서와 새로운 길을 원하고 있다. 그것을 진보적 중도의 길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이름이 무엇이든 그의 내용을 통해 국민들에게 정체성, 존재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있는 정당 중에 지역주의 극복을 창당 기치로 내건 정당이 우리당밖에 더 있나. 그 기치는 갖고 가는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모색을 지역주의 회귀로 보는 것은 동의하지 않는다.

프레시안 : 당 내 일각에서는 비대위를 해체하라는 주장이 나오는데, 이에 대한 견해는?

정동영 : 비대위가 책임 있게 가야 한다. 해체하고 어쩌자는 거냐. 비상한 시기에 책임을 맡은 지도부가 비대위인데. 비대위는 확실한 당의 중심을 세워서 가지고 가야 한다.

"내가 대북특사 맡으면 정치화 돼"

프레시안 : 미국, 중국을 차례로 다녀 왔는데, 북핵문제를 둘러싸고 양국의 기류에 차이를 느꼈나?

정동영 : 현재 북핵문제는 북미문제인 동시에 남북문제다. 북미문제로서의 핵문제는 북미 접촉도 있고 6자회담을 재개하려는 노력도 있다. 그러나 남북문제로서의 북핵문제는 한반도 비핵화가 깨졌다는 의미인데 이 문제를 복원하기 위한 노력이 가시화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북한 핵실험 이후 중국과 미국은 북핵 문제에 관한 주목도가 높아졌다. 우리나라에도 핵실험 이후에 핵공포에 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러하기에 나는 '시중(時中)', 지금 때를 놓치지 말고 집중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주목도와 긴장감이 높아졌을 때 이를 기회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우리 머리 위로는 워싱턴, 평양, 베이징을 오가는 고공 외교가 펼쳐지고 있는데 우리가 제 몫을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프레시안 : 그럼에도 미국 쪽에선 여전히 북한 문제는 후순위인 것 같다.

정동영 : 미국에서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핵실험 이후에 핵 이전, 확산에 대한 두려움이 보다 구체화됐다. 북한에 대한 위협이 보다 분명해진 것이다. 전문가들은 지금 핵확산에 대한 두려움의 순위를 파키스탄, 북한, 러시아, 카자흐스탄 순으로 나열하더라. 그만큼 전문가들 사이에서 북한 핵에 대한 우려가 높아진 것인데 부시 대통령을 비롯해 미국의 외교정책 결정라인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북핵 문제가 우리 생각보다 낮은 순위에 배치되어 있있다. 현재 미국 정책 결정 상 8, 9번째 순위에 있는 것을 끌어올려야 한다.

나는 늘 세가지 포인트를 강조해 왔다. 우선, 북핵문제의 '프라이어리티(우선순위)'를 올려야 한다. 이 문제는 미국에서도 다들 공감하고 있다. 국내에는 전달이 잘 안 됐으나 미국 내에는 그나마 전달이 된 편이다. 공영방송을 통해 한국사람 주장이 무엇인지, PSI에 왜 반대하는지 전할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이번에 미국 간 건 잘 됐다고 생각한다.

둘째, 북미 간의 직접 대화로 북의 체제변화와 핵실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특히 플루토늄 해결에 우선 집중해야 한다. 미국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작년만 해도 이런 이야기를 하면 미국에서 수용되는 분위기가 아니어서 나도 제기하기 껄끄러웠지만, 이제 거부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셋째, 체제 변화와 핵문제 해결을 선후로 나눠야 한다. 일단 핵심 이슈를 우선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작년 3월만 해도 라이스 국무장관은 동시 추구 전략만 내세울 뿐 별다른 반향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엔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이 칼럼을 통해 '선 핵문제 해결'을 내세워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미국의 부시 행정부 내부의 기류변화를 나타내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 ⓒ프레시안

프레시안 : 중국에는 어떤 메시지를 전달했고, 어떤 반응이 있었나?

정동영 : 중국은 확실히 전보다는 경계심과 위기감이 커져 있다. 북한이 핵보유로 가는 길을 말릴 수 없겠구나 하는 비관론이 한 쪽에 자리 잡고 있다. 반면 아직은 여지가 있다. 설득을 통한 핵포기의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조심스러운 신중론이 있다. 탕자쉬엔 국무위원 같은 경우는 어렵다고 본다. 그러면서도 한국과 중국이 힘을 합쳐서 이를 해결해야 한다는 의지를 강하게 내비치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중국에서 감지한 분위기는 북한이 핵보유의 길로 질주할 것인지, 협상을 통한 포기의 선택을 할 것인지 이 두 가지를 다 쥐고 가고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책임 있는 고위관계자라 특정하기 어렵지만 전반적인 중국의 분위기가 그렇다는 것이다.

한국과 중국 간에는 큰 이견이 없다. 목표는 분명하다. 핵보유를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협상을 통한 포기만이 길이라는 점도 공통의 의견이다. 결국 목표가 같고 방법론에 대한 견해가 같기 때문에 상당한 일치점이 있는 셈이다. 물론 미국에 대해서도 설득을 해야하는데, 설득하는 것은 결국 '주고받기'다. 탕자쉬엔도 그런 이야기를 했다. 체제보장과 핵포기가 교환돼야 한다. 결국 9.19 공동선언의 내용인 셈이다.

프레시안 : 문제는 해법이 아닐까. 미국은 리비아 모델을 여전히 선호하는 것 같은데.

정동영 : 한반도 핵의 특수성이 있다. 9.19식 모델이 있어야 한다. 9.19 합의 5번째 항목을 보면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 규정이 있지 않나. 문제는 미국과 북한 간의 근본적인 불신이다. 불신의 강에 어떻게 다리를 놓을 것이냐가 문제다.

나는 북한은 핵을 포기할 것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핵도 갖고 자신이 갖고자 하는 다른 것도 갖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갖고 싶은 게 많이 있다. 외부의 도움도 얻고 싶고 현 사회주의 체제와 시장경제를 접목하고자 하는 의욕도 있다. 국제사회로 나와 돈도 빌리고 장사도 하고 싶어 하는데 지금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또 중국은 북한에 대해 결정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는 제재 방안을 심각하게 고민했던 것 같다. 원유 등 일체의 지원을 중단하는 방안을 고민한 듯 하다. 중국이 북한에 제공하는 원유는 '우호가격'이라고 해서 시세보다 싼 가격에 보내진다. 북한은 1년에 사용하는 400만 배럴을 중국에 거의 의탁하고 있다. 이는 북한 군대나 북한 경제의 생명줄과 같은 것 아니겠나. 만약 북한이 핵보유의 길로 질주하면 이를 다 감수해야 하는 것이며 남북관계 파국도 감수해야 한다. 그러므로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다.

또 하나 지난해 김정일 위원장과의 면담에서 북한이 원하는 것은 미국과의 공존이라는 것을 느꼈다. 미국과 우방이 되고 싶다는 희망이 있다. 만약 체제를 보장받는다면 나는 북이 내년에 핵을 포기할 것이라고 판단한다. 그 과정을 빨리 앞당기기 위해, 단축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남북정상회담 추진 의지는 의문의 여지없다"

프레시안 : 북핵 문제와 관련해선 한국 정부의 능력과 의지가 있느냐도 판단해야 할 일인데, 특히 남북정상회담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에도 어려운 환경인 것 같다.

정동영 : 이미 노 대통령은 시간과 장소에 관계없이, 전제 조건 없이 만나자고 여러 차례 제안을 해 왔고 또 실제 적극적으로 추진되어 왔다. 이 정부에 의지가 있느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내가 정부에 있을 때도 원칙 합의가 됐던 것이다. 다만 시간만 정하지 못해서 계속 논의해 오다가 중단됐었다.

그래서 지금 김정일 위원장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평화와 비핵화라는 정상회담의 아젠다는 이미 나와 있다. 남북 정상이 마주 앉지 못할 이유가 뭐가 있나. 참여정부 임기 5년 동안 한번도 정상회담 이뤄지지 않는다면 그것 자체가 부자연스럽고 비정상적인 것이다. 북으로 봐서도 참여정부를 상대로 정상회담을 할 수 없다면 도대체 대화의 의지, 남북화해협력의 의지가 확실히 있는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북한이 미국에 적대 정책을 포기시키고 체제보장을 받고자 하는 의지에 진정성이 있다면 남북 정상회담의 결단을 내릴 수 있다고 본다. 남북 평화정상회담은 북한이 원하는 것을 얻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고 본다.
▲ ⓒ프레시안

프레시안 : 3. 4월이면 시간적으로 촉박하다.

정동영 : 3, 4월이 넘어서면 대선 국면이다. 사실상 불가능하고, 현실적으로 부작용도 클 것이다. 3, 4월은 시한이고, 그렇기에 지금 특사 파견이 필요하다. 대통령께서 적절한 선택을 할 것으로 믿는다.

프레시안 : 본인에게 특사 역할이 맡겨진다면 응할 텐가?

정동영 : 나는 적임이 아니다. 정부에 있을 때 내 역할 다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지금은 내게 그런 일이 맡겨진다면 부작용이 더 클 것이다. 정치화된다.

그러나 지금이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해야 하는 때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미국과 중국은 지금 기회의 시간을 맞고 있다. 중국은 2008년 8월 북경올림픽 이전에 이 문제를 안정적으로 풀어보려는 의지가 있다. 미국도 2008년 11월 대선 전까지 1년 반의 시간을 두고 있다.

답은 나와 있다. 이제 상황과 조건이 맞는 때가 도래했다. 그런 점에서 눈을 밖으로 돌릴 때다. 내부의 문제는 문제대로 고민하고 시름하면서도 외부에 시선을 둬야 한다. 미국과 중국이 그런 조건에 처해 있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해야 한다. 시중의 때다.

"한미 FTA, 보다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태도 취해야"

프레시안 : 미국의 변화로 치면 한미 FTA에서 더 많은 변화의 기류가 보이는 듯한데 이에 대한 견해는 어떤가?

정동영 : 협상의 환경이 어려워졌다. 우리는 우리대로 반대 목소리가 거세고 미국은 미국대로 관심이 시들해졌다. 민주당 쪽은 전통적으로도 보호무역을 선호해 왔고 한미 FTA가 행정부 주도로 되는 데 대해 견제하고자 하는 움직임도 있다. 양쪽 모두 어려운 조건이 발생한 것이다.

우리 쪽 반대 목소리가 협상력을 높이는 점은 있지만, 한미 FTA 자체는 선도 악도 아니다. 우리 국익을 위해서 맞는다면 해야 하는 것이고 국익을 심대하게 손상한다면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큰 틀에서는 우리가 진취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국익에 도움이 안 된다면 체결하지 않을 수 있다는 배짱과 각오로 해야 한다.

한미 FTA는 내용적으로 3차 개항이다. 1870년대의 1차 개항에서 한국은 선택에 실패했다. 2차 산업화 때에는 대외 의존도가 70%에 달했다. 이제 3차 개항의 내용에 해당하는 한미 FTA에서 보다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다.

세계 경제가 중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흐름은 가속화될 것이고 이러한 와중에 우리의 생존전략을 어떻게 모색할지 고민해야 한다. 이는 미래 전략구성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최대 이익을 확보할 수 있다면 한미 FTA 협상에 보다 적극적으로 임할 필요가 있다. 이 가운데 쌀, 공공교육, 공공의료는 타협할 수 없다는 원칙은 지켜야 한다. 다행히 이 부분은 한미 FTA로부터 영향을 최소화 할 수 있다. 그 밖에 20여 가지가 넘는 개별협상이 있는데 이는 국익 최우선에 의한 협상을 해야 한다고 본다.

프레시안 : 협상 자체가 난항이니 다음 정부로 미루자는 주장도 있다.

정동영 : 기술적인 내용에 있어 최선을 다했다고 보지만 미국의 양보는 신통치 않은 것 같다. 협상이 순탄치 않은 상황이니만큼 찬성이든 반대든 둘 다 좀 더 깊숙이 알 필요가 있다. 총론적인 찬성 반대는 옳지 않다고 본다.

"세금으로 부동산 못 잡는다는 것은 상식인데…"
▲ ⓒ프레시안

프레시안 :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실패한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나. 또 어떤 대책을 고민하고 있는지?

정동영 : 구체적인 정책으로 지금 '박현주 안'이라는 게 있다. 건설연구원이 내놓은 안인데 토지임대부 분양을 주장하고 있다. 물론 국공유지가 없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이와 관련해 파격적 발상도 필요하다고 본다. 북경에 1300만이 사는데 서울시와 경기도, 충청북도 합한 면적이다. 반면 우리는 1100만이 600평방 킬로미터에 살고 있지 않나. 보다 광역화해서 생각하면서 검토할 수 있다고 본다. 또 국공유지 대신 민간 택지 사서 임대하려면 재정 마련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 문제도 고민 중이다.

또한 지금 우리당이 만든 환매조건부분양 안과 함께 결합해서 추진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런 구체적인 대안들을 공론화 하는 게 필요하다.

크게 봐서는 역시 세금을 가지고 부동산 시장을 잡겠다는 접근법이 무리였던 듯하다. 어찌보면 상식이기도 했는데 너무 가볍게 여긴 문제가 있다. 언제나 종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부동자금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와 공급 확대를 어떻게 할 것인가, 세제를 현실적으로 어떻게 운용할 것인지, 그리고 서울, 강남지역의 대체 수요는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등이 한보따리의 종합선물세트 식으로 고려돼야 한다.

프레시안 : 정부정책에 대한 실패를 자주 거론했는데 11.15 부동산 종합대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정동영 : 11월 15일 종합대책은 잘 되어 있다. 그러나 정책에 대한 믿음이 약해서 문제다. 이를 초당적으로 뒷받침해줘야 할 필요가 있다.

특히 종부세 문제에 대해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종부세를 서민주거 안정세, 즉 목적세로 전환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 종부세를 내는 인구는 우리 대한민국 국민의 0.7% 정도다. 가구수로 하면 1% 정도다. 최상위 1% 소득계층이 최하위 10%의 주거안정을 위해 기여하는 목적세로 이를 바꾸면 종합부동산세에 대한 수용이 훨씬 쉬워질 것이라고 본다.

종부세를 내는 사람은 지금은 1%뿐인데 현재 방식으로는 앞으로는 빠른 속도로 넓어질 수 있다. 작년에 비해 올해 두 배 가까이 늘지 않았나. 과표가 점점 더 현실화 되어 올라가기 때문이다. 지금 편입된 최상위 소득계층 말고도 잠재적 중산층들이 곧 종부세 과세 대상에 해당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보고 급격히 늘지 않도록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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