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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너른 들판을 사시겠다고?"

'한반도평화주간' 릴레이 기고 <2> 대추리 김지태 이야기

"이장님이 나온다, 안나온다, 나온다, 안나온다, 나온다!"

2006년 6월 6일 햇볕이 따갑게 내리쬐던 날, 평택경찰서 앞.

"우리 이거 해보자!"

평택 대추리에 사는 10살 도희가 장미꽃 한 송이를 내게 쭉 내밀고는, 이장님이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 장미꽃잎에게 물어보기 시작했다. 우리는 경찰서 담벼락에 핀 장미꽃 송이를 따서 꽃잎을 하나하나 떼어내며 장미꽃 점을 쳐봤다. 그게 끝나면 또 한 송이를 따서 "우리가 계속 대추리에 산다, 안 산다, 산다, 안 산다, 산다...."도 했고, "경찰이 나쁘다, 안 나쁘다, 나쁘다, 안 나쁘다, 나쁘다..."도 했고, "군인들이 마을을 나간다, 안 나간다, 나간다, 안 나간다, 나간다..."도 했다.

빨간 꽃잎들이 바닥에 흩어져 경찰서 담 아래가 꽃길이 되어 버릴 만큼 오랫동안 장미꽃에게 주문을 걸었다. 이장님이 나오기를, 대추리에 계속 살 수 있기를, 군인들이 우리 마을에서 나가기를. 그때 그 장미꽃 송이들이 우리에게 이장님이 나온다고 했는지 아닌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그날부터 5개월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대추리 김지태 이장은 감옥에서 나오지 못했다.

도희는 평택 대추리 김영녀 할머니의 외증손녀다. 웃는 모습이 하회탈처럼 예쁘신 김영녀 할머니는 김지태 이장의 고모이기도 하다. 친인척들이 많이 모여 사는 대추리는 한 집 걸러 한 집이 가까운 친척으로 연결된다. 그래서인지 마을 일을 함께 겪는 사람들은 더 끈끈하게 그 일들을 공유하기도 하고, 등 돌리고 떠난 것에 대한 배신감과 아픔도 더 크다. 언젠가 김지태 이장을 면회하고 오신 할머니는 가슴을 치며 말씀하셨다.

"어제는 이장 보고 왔어. 멀쩡한 놈, 죄 없는 놈 가둬놓고. 아휴, 천불이 나. 열 나고. 걔 보고 온 날은 밤새도록 잠이 안 와. 걔만 떠올라서."

그렇게 속 터지고 화나는 것은 김영녀 할머니뿐 만이 아니라 대추리 주민 모두가 그렇다. 이장을 잡아두고 한국정부가 벌이는 이 엄청난 범죄의 대가를 대추리 주민들이 몸으로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것이다.

검찰의 의도적 재판연기
▲ 수감 전 김지태 이장의 모습 ⓒ연합뉴스

4월 29일자로 체포영장이 발부되어 가족들과도 떨어져 지내야 했던 김지태 이장은 6월 5일 평택경찰서에 자진출두해 조사를 받았다. 당시 대화를 하자고 떠들어대던 한국정부는 자진출두한 김지태 이장을 구속시켰다. 6월 4일 29회 대추리민의 날 행사에 함께 해 오랜만에 주민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그렇게 또 다시 긴 이별을 해야 했다.

그 이후 검찰은 어떻게든 김지태 이장을 더 오랫동안 잡아 두려고 안달하는 듯 보였다. 김지태 이장의 선고일이었던 9월 22일을 며칠 앞두고 검찰은 새로운 증거 자료가 나왔다며 변론 재개를 신청했다. 추석을 함께 보낼 거라는 기대가 깨진 주민들의 실망이 얼마나 컸는지, 또 얼마나 가슴을 쓸어내렸는지 말로 다 하지 못한다.

10월 13일 재판에서, 수원지검 최임열 검사가 제출한 '새로운' 자료는 2005년 7월 10일 평화대행진을 전후한 김 이장의 통화 기록과 자신이 다쳤다고 주장하는 전경들의 피해 진술이 전부였다. 그러한 증거가 김 이장 구속수사 4달 만에 '새로' 발견될 수 있는 것인지, 변호인단의 변론을 뒤엎을 만한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새로운 기소사유가 되지도 않는 증거를 제출해 김지태 이장의 구속을 연장하려 한 것이라는 비난을 면하지 못했던 그 날, 재판부는 11월 3일로 선고일을 연기했다.

징역 2년 실형선고

11월 3일 열린 1심 판결에서 김지태 이장은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수원지법 평택지원 성지용 판사는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등 7가지 혐의를 들어 실형을 선고하고, 판결문에서 "피고인이 죽봉과 쇠파이프가 난무하는 대규모 폭력사태를 초래한 점 등을 볼 때 죄질이 가볍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한 이날 재판부는 주민들의 법정소란을 이유로 들어 3가지 조치를 취했는데, "안정된 판결과 판사의 의견개진을 위해서" 방청권을 교부했고, 경찰에 시설보호요청을 하고, 법정에 CCTV를 설치하는 일이었다. 경찰의 방패에 가로막힌 주민들은 서둘러 끝낸 재판을 결국 보지 못했고 법원 앞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앉아 징역 2년 선고 소식을 들었다. 팔순을 바라보는 부모님조차 재판을 보지 못했고 법원 앞에서 오열해야 했다.

초범인 김지태 이장에게 이 같은 판결이 내려진 것은 대한민국 사법부가 여전히도 정부의 압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극명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김지태 이장에 대한 실형 선고는 미군기지 확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정치재판이며, 공정한 법집행을 해야 할 사법부가 법을 이용하여 사기행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김지태 이장을 볼모로 삼아 주민들을 더욱 지치게 하고 시간을 끌며 포기하게 하려 한다는 것을 주민들은 알고 있다. 한국정부, 특히 국방부는 지금 주민들에게 협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싸움을 포기하라, 그러면 김지태 이장을 풀어줄 것이다"라고.

실형 선고를 받은 김지태 이장은 지난 11월 13일 평택구치소에서 안양교도소로 이감되었다. 싸움이 시작된 처음부터, 차가운 감옥에 있는 그 시간 동안에도 그는 끝까지 싸우자고 말하고 있다. 주민들의 정당한 저항을 폭력으로 누르며 보상금으로 해결하려는 정부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 너른 들판을 사시겠다고? 그 금액은 너무 어마어마해서 나는 상상을 못할 지경이니깐. 힌트를 드리자면 대추리, 도두리 들판에서 지금껏 거두었던 벼의 낱알의 개수만 하다고나 할까. 그것을 일구기 위해 굽혔다 폈던 관절의 운동 횟수만 하다고 해도 될 것 같다. 한 가지 더. 그들의 시간, 한숨, 울음, 웃음 그것을 내려다보았을 별빛이나 시름을 달래주던 바람의 총량까지 합하면 대충은 나올 것 같다."

양심수가 된 아들, 애타는 부모님

"우리 아들 보고 왔어"

김지태 이장이 안양교도소로 이감 된 후 면회를 갔다오신 황필순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그 아들에 대해 한참 동안 이야기하고는 결국 눈물을 쏟아내셨다.

"뭘 시켜도 착실히 잘 하니께 맨날 걔만 시켰지. 새끼도 잘 꼬고 소 먹이는 것도 잘 하고 그랬어."

할머니는 요즘 메주를 쑤느라 바쁘시다. 10월에 털어 말린 노란 콩을 가마솥에 가득 넣고 아궁이에 불을 땠다. 연기가 가득 차오르는 아궁이 앞에 앉아 이른 아침부터 할머니는 나무를 잘라 넣는다. "8남매를 낳았는데, 4남매가 죽고 4남매 남은 겨. 못 먹여서 애들이 자꾸 죽고 그러니께 애들 하나하나 얼마나 소중하게 길렀나 몰러. 그렇게 기른 자식이여."

아궁이에 불을 지펴 연기가 가득 차 눈물이 찔끔 나올 만큼 눈이 아픈데도 할머니는 끄떡 없이 그 앞에 앉아 계신다. "할머니, 눈 아프지 않으세요?" "이걸 몇 십 년을 했는디, 아무렇지도 않어" 까만 연기를 내 뿜는 아궁이 앞에서도 너무나 잘 견디는 할머니지만 아들 생각만 하면 눈물을 멈추지 못하신다는 걸 안다. 이 땅에서 죽는 것이 소원이라는 동네 어른들 뜻에 따라 싸우다 감옥에 갇힌 아들, 양심에 따라 살고자 하는 시골 마을 이장인 아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소 밥 주러 나가던 아들을 생각하면 눈물을 멈추지 못하신다.

새벽 다섯 시에 소 밥 주러 나가는 일은 이제 김석경 할아버지의 일이 되었다. 김지태 이장은 감옥에서 "아버지가 힘드니 소를 팔았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소일거리라도 삼아 해야 산다며 할아버지는 반대하셨다. 언젠가 할아버지는 아들의 면회를 가면서 어디 가시냐고 묻는 내게 "소 이야기 하러" 가는 길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정말 "소 이야기"만 하고 오셔서는 오후 다섯 시가 되자 또 다시 소 밥 주러 가셨다.

할아버지가 자꾸 마르시는 것 같다고, 부쩍 늙으신 거 같다고 마을 사람들이 모두들 걱정이다. 예전 비닐하우스에서 촛불행사를 할 때, 언제나 두 분 할머니 할아버지가 맨 앞 자리에 앉아 촛불을 하늘 높이 치켜들며 함성을 지르셨다. 요즘은 가끔씩 촛불행사를 빠지기도 하시고 예전처럼 그렇게 힘있게 촛불을 들지도 못하신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싸우셨던 두 분이 양심에 따라 살고자 하는 아들을 감옥에 보내고 맞는 이 겨울이 부디 매섭지 않기를.

하루 빨리 김지태 이장이 석방되어야 한다. 더 이상은 안 된다. 더 이상 평화와 정의와 인권을 가둬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모든 권력이 뒤엉켜 벌이는 이 사기행각을 당장 멈추고 김지태 이장은 평화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의 곁으로 돌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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