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 '전도사' 김종인 박사가 이한구 원내대표 등과의 대립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고 박근혜 후보도 힘껏 밀어주지 않는 상황일 때 저녁 자리에서 그 서간문 이야기를 했더니 "나보고 그만두란 이야기냐"고 한다. 그와 50년 가까운, 그러니까 반세기에 걸친 지기이기에 거리낌 없이 이야기를 한 것이다.
'민족 변호사'로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할아버지를 둔 명문이고, 대학교수에서 국회의원 4선, 보사부(보건사회부) 장관,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냈으니 더 욕심낼 게 무엇인가. 혹시 총리? 우리나라에서 김종필·이해찬 씨 말고는 거의 모두가 '대독(代讀) 총리'였었는데….
▲ 김종인 위원장과 박근혜 후보 ⓒ뉴시스 |
헌법의 경제민주화 조항 기초자인 그는 '제왕의 책사'가 되어 그 뜻을 실천에 옮겨보려고 세심한 준비를 했던 것 같다. 그는 구체적 실천요강이 어떠한 것인지는 아직 뚜렷이 밝히지 않고 있다. 순서가 있고, 타이밍을 맞추어야 한다는 작전·전략상의 고려에서 구체안의 공개 수순을 재고 있었던 것 같다.
그의 선구적인 노력이 있고, 다른 수많은 지식인·정치인들의 공헌과 민중의 지지·성원이 있고 하여 이제 헌법에 명문으로 있으나 사문화하다시피한 경제민주화는 시대의 대세가 되었다. 시대정신이란 표현까지도 가능하다. 실개울이 큰 강을 이루어나가듯 그렇게 세가 대단히 커진 것이다. 여야를 막론하고서의 공약이 되었다.
흔히 개혁의 추진체인 노동조합이 쇠퇴하고 개혁·진보정당이 부진하여 전망이 어둡다고 비관하기도 한다. 그러나 민중의 수준은 높아졌다. 언론에서, 학계에서, 시장터에서, 노동판에서 경제민주화·복지의 요구는 분출하고 있으며, 전파매체시대의 이점을 따라 광범한 지지층이 형성된 것이다. 눈에 보이는 추진체는 아니나 추진하는 힘의 아말감(Amalgam, 수은과 다른 금속과의 합금)이라 할 것이 형성되었다. 소프트·파워라고도 말한다. 이제 거기에 대한 거부는 어렵게 되었다.
그러나 기득권층은 만만치 않다. 만만치 않은 정도가 아니라 그들이 이제까지 이 사회의 주인이자 주도세력이 아니었던가. 바탕에서는 아직도 주류다. 요즘 언론에 보면 미국에서 월·스트리트의 골드만·삭스 등 재계의 정치 자금 흐름이 공화당의 롬니에 쏠리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러한 자금의 흐름이 매우 중요하고도 결정적인 것이다.
경제민주화에의 저항이 강력하고 끈질기다. 가장 두드러진 것이 재벌 중심의 재계와 새누리당의 보수파들인데 언론의 추종 현상, 학자군 가운데의 아첨 경쟁도 뚜렷하다. 그런 저항을 예견치 못했다면 둔감했다 할 것이다.
김종인 박사의 회의 불참 항의는 박 후보의 만류로 싱겁게 며칠 만에 끝났었다. 그때 박 후보가 경제민주화 법률 2개인가의 입법을 확약했다는 보도가 나왔었는데, 여하간 맺고 끝는 데 없이 끝난 것 같다.
그리고 그 사태를 바라보는 시선들도 곱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한겨레> 한 컷 시사만화가 재미있다. 장봉군 화백의 '한겨레 그림판'(10월 8일 자)인데, 경제민주화 불꽃놀이에서 김종인 박사가 "솔직히 경제민주화 할 생각 없죠?"하며 자리를 떠나가자 박근혜 후보가 "계속 안 쏘고 어딜 가?" 하는 유머러스한 장면이다.(☞바로 가기)
이때 아예 떠났거나, 더 오래 보이콧을 계속하여 아주 굳건한 약속을 받아 냈어야만 했다. 그런데 그렇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벽에 부닥친 것이다.
10월 13일의 신문을 보니 새누리당은 공약위원회를 옥상옥으로 신설해서 박 후보가 직접 위원장을 겸하고, 박 후보,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 진영 정책위의장의 3명이 (경제민주화) 공약을 협의·결정한다는 것이다. 분명 김 박사의 공약 발표를 위험시하고 통제하려는 것이 틀림없다. 헨리·키신저의 유명한 재담을 인용하여 "피카소에 그림을 부탁하여 놓고 간판장이들이 손질을 하겠다"는 것인가. 꼭 그대로이다.
김 박사도 이젠 글렀구나 하고 생각했을 것이지만, 나는 물 건너갔다고 여겼다. 그런 기제(機制)를 마련한 것이 벌써 수모를 당한 것이다. 일본 말에 '가이쓰브시(飼いつぶし)', '가이고로시(飼い殺し)'란 것이 있다. 호의로 받아들이고 감싸는 듯하다가 뭉개 버리거나, 무력화시켜버린다는 뜻이다. 그 일본 말이 떠오른다.
사실 나도 김영삼 정권 때 노동부 장관을 하다가 그런 경우를 당했었다. ILO(국제노동기구)도 계속 권유하고 있고, 사리에도 맞는 복수노조 원칙을 우선 단위노조가 아닌, 상위노조부터라도 시행하여야 하겠기에 (그 말은 우선 그때는 전노협(전국노동조합협의회)이라 호칭했던 민주노총을 합법화한다는 뜻) YS에게 만날 기회 있을 때마다 건의했더니, 약 다섯 번쯤 건의를 받은 YS는 "경제기획원 장관 겸 부총리, 재무부 장관, 상공부 장관과 함께 협의하여 결정하라"고 한다. 나는 거기에, 청와대 경제수석이 좀 앞선 감각을 가졌을 것 같아 그도 추가하자고 말하여 결국 5인위원회가 되었다. 민주화 운동의 여세로 집권한 YS가 순리를 어기기가 거북하였던 것 같다.
5인위는 3개월쯤에 걸쳐 네 번인가 만났고 그동안 장관 일부가 바뀌어 멤버 교체가 있기도 하였다. 그러나 회의는 하나마나, 짐작할 수 있다시피 경제기획원, 재무부, 상공부는 재계와 친밀하지 노동계와 가깝지는 않다. 그리고 YS의 은밀한 지침이 부총리에게 내려졌을 것만 같다. 결국 복수노조에 반대하는 재계 주장에 눌렸다고 생각한다. 한국 정치의 실상이 그렇다. 영락없는 가이쓰브시, 가이고로시다. 나는 그 일을 지금도 아프게 기억하고 있다. 노동행정의 오랫동안의 답보가 아깝기만 하다. 사막의 타조가 모래 속에 머리를 박고 있는 것도 없다고 하듯, 당시 한국노총보다도 강력했고 대기업들 현장을 장악하고 있는 민주노총을 합법화시키지 않고 "없다"고 무시만 했으니 어떻게 노동부가 노사 간 조정을 잘할 수 있었겠는가.
내가 김종인 박사의 입장이라면 명분, 체면, 실리를 놓고 저울질하고 고민할 것이다.
명분. 본래 김 박사는 새누리당 사람이 아니다. 경제민주화 명분이 평가되어 금년에 영입된 인물이다. 나그네 같다. 주인이 경제 민주화 문제로 푸대접하면 나그네는 떠나야만 하는 것이다. 나그네에겐 요구할 어떤 지분이 있는 것도 아니다. 훨훨 털고 '떠나가는 김삿갓'처럼 처신하는 것이 남 보기에도 좋고 한국인의 정서에도 맞을 것 같다.
체면. 이왕에 구긴 체면이다. "늙고 병든 이 몸이…"처럼 평소에 구실을 준비해 놓지도 않았다. 더 머뭇머뭇 머물다 보면 정말 <한겨레> 시사만평처럼 완전 '불꽃 놀이패'란 희화적인 존재로 끝나고 말 것이다. 본인의 명예에도 관련된 것이고, 결과적으로 국민에게 사술을 쓴 것처럼도 될 것이다.
실리. 옛날 중국의 한신이 저잣거리에서 골목대장의 가랑이 밑을 기어갔다는 고사가 있다. 체면을 구겨도 꾹 참고 인내하며 줄기차게 노력하여 약간이나마 경제민주화의 실적을 올릴 수도 있다. 실리를 챙기는 길이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대단한 용기이고 기여라고 말할 수도 있다. 체면이 크게 손상되지만 조금이라도 국민을 위한 실리를 챙기기 위해 노력한다는 그 태도가 참 용기일 수 있다.
그러나 한편 그러는 것이 선거의 계절에 혼선만 가져온다고도 할 수 있겠다. 새누리당만 경제 민주화를 내걸고 야당이 반대하고 있다면 그런 논리가 성립될 수도 있다. 그러나 야당이 새누리당보다 더 강력하게 경제 민주화를 요구하고 있으니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럴 경우는 혼선만 갖고 온다. 국민이 착각을 갖게도 한다. 그런 역할을 '사쿠라'(일본 말. 소고기라고 파는 말고기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특히 다른 속셈을 가지고 어떤 집단에 속한 사람을 이른다)라고 지난날 우리 정치에서 자주 표현했었다.
야당에는 내가 훌륭하고 존경스럽다고 말해온 이정우 경북대 교수가 버티고 있다. 사실 김 박사는 최장집·이정우 교수와 함께 (나도 말석을 더럽혔지만) 모두 7명이 오랫동안에 걸쳐 열 번 이상의 국가 당면 정책에 관한 세미나를 계속한 사이가 아닌가.
이 기회에 김 박사가 구상하는 경제민주화의 전모를 국민들에게 모두 밝히고 지금 자리를 훌훌 떠나는 것이 보기에 후련할 것이다. 나머지는 국민이 선택할 몫이다.
한 가지 덧붙일 것이 있다. <국회보> 10월호에 보니 전성인 홍익대 교수가 경제민주화에 관한 글을 기고한 게 있는데 비교적 정리가 잘 되어 있다. 전 교수는 정운찬 전 총리의 수제자라고 언론에 보도된 바도 있는데 김 박사가 매우 아끼는 학문적 후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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