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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린, '강석주'를 통해 미국과 북한에 경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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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린, '강석주'를 통해 미국과 북한에 경고하다

[집중점검] 강석주 오보, 그 이면의 진실을 밝힌다

북한이 5~6개 이상의 핵무기를 가졌다는 강석주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의 연설은 작문이었다. 북한 문제에 정통한 로버트 칼린이라는 미국의 분석가가 '내가 강석주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라는 상상력을 발휘해 쓴 '소설'이었다.

따라서 이 글의 진위를 확인해보지 않고 쓴 기사는 모두 오보가 됐다. 원문을 게재한 미국 노틸러스연구소가 한국의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방식으로 글을 소개했다손 치더라도, 기초적인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기사를 작성한 한국 언론들의 책임은 면할 수 없다.

조간신문들이 경황없이 받아 쓸 수밖에 없는 밤 시간에 관련 기사를 쏟아낸 <연합뉴스>가 오보 사태의 진원이었다. 그러나 <연합> 기사를 안 받고, 남들보다 하루 늦게 쓰더라도 정확히 써보자는 '강심장'이 우리 언론에게는 없었다. 북한에 대한 정보의 빈곤, 과열된 보도 경쟁, 그러고 최근의 정세가 맞물려 벌어진 씁쓸한 해프닝이었다.

북한 지도부 의중 꿰뚫는 칼린

그러나 '강석주 연설문은 가짜였고 한국 언론들은 오보를 냈다'며 그냥 덮어버리기에 칼린의 글이 주는 시사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대부분의 한국 언론들이 그 신빙성을 의심하기 힘들 정도의 진실이 칼린의 작문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오보를 따지는 것과는 별도로 칼린의 '강석주 역할극'이 그토록 주목되는 이유는 그가 북한의 사정에 그야말로 '정통한' 몇 안 되는 미국인이기 때문이다. 칼린은 미 중앙정보국(CIA)을 거쳐 국무부 정보조사국(INR)에서 북한 분석관으로 오랫동안 일해 오며 북한 내부의 흐름을 정확히 짚어내는 것으로 정평이 났던 인물이다. 그는 수십년간 이같은 역할을 한 뒤 클린턴 행정부를 끝으로 현직에서 물러났다. 북한 분석에 있어 그에 필적할 만한 미 국무부의 현직 관리는 국무부 내의 역사가인 존 메릴 정도라고 평가된다.

일례로 칼린은 1991년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하는 상황을 두고 "북한은 이제 '하나의 조선' 정책을 포기했고, 미국과의 평화 공존과 관계 개선을 모색하려 할 것"이라는 해석을 내놨다.

북한이 그토록 거부해 오던 유엔 별도 가입을 왜 갑자기 수용했는지에 대해 아무도 제대로 된 설명을 해내지 못하던 당시 칼린의 분석은 북한 지도부의 의중을 정확히 꿰뚫었던 것으로 그 이후 판명되며 '북한 분석은 역시 칼린'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강석주로 '분(粉)한' 칼린이 쓴 이번 연설문은 따라서 핵실험설이 나오고 있는 한반도 정세를 바라보는 북한 지도부의 의중을 사실과 가깝게 읽을 수 있게 하는 몇 안 되는 문서가 될 수도 있다. 아울러 이 글에는 미국 내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북한 전문가이면서도 네오콘이 득세한 미 국내정치의 지형 때문에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별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고 있는 한 전문가의 시각이 곳곳에 녹아 있기도 하다. 따라서 이 글은 현 부시행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비판의 글로도 읽을 수 있다.

'오보 논란'과는 별개의 관점에서 이번 연설의 중요한 포인트를 하나하나 살펴보는 것은 그래서 필요하고도 의미심장한 일이다.
▲ 강석주 북한 외무성 제1부상 ⓒ연합뉴스

'강경파가 지배하는 평양'

'가상의 강석주'(이하 '강석주')는 지난 7월 17 또는 18일 무렵 북한 공관장회의 연설에서 미국과의 대결로만 치닫는 강경파가 득세하는 북한 내부의 분위기에 대한 심각한 우려, 그에 따른 한반도의 전쟁 가능성, 5~6개 이상의 핵무기 보유 사실, 6자회담에 대한 짙은 회의를 드러냈다.

그 중에서 우선 눈에 띄는 대목은 북한 내 강경파들이 주도하고 있는 위기 상황에 대한 한탄과 전쟁 가능성에 대한 우려다.

'강석주'는 "계속해서 핵 억지력을 개발하라는 (강경파들의) 압력은 견디기 힘들 정도"라며 "핵 개발 프로그램에 더 많은 돈과 자원을 퍼부어야 한다는 논리는 그것이 아무리 말이 안 된다고 해도 이기기 어렵다"고 말했다.

'강석주'는 "현 상황에 국한해 말하자면 이제는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아마도 없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하고, "모든 발걸음 하나하나마다 (핵 개발을) 계속하길 바라는 이들이 우위를 점령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발언은 외교 해법을 중시하는 북한 외무성이 핵 개발을 우선시하는 강경파들을 보며 느끼는 무력감을 추정한 것으로, 많은 한반도 전문가들이 말하는 북한 내 강온파 간의 갈등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칼린의 시각을 보여준다. 이는 또 한반도 위기를 주도하는 북한쪽 '주범'은 통상 '군부'로 표현되는 강경파들이라는 칼린의 분석을 보여준다.

'강석주'는 평양의 강경 세력을 직접 지칭하는 대신 '(핵 개발을) 계속하길 바라는 이들'이라고 우회적으로 표현하거나 주어를 생략함으로써 군부 외의 다른 세력도 '강경파'에 포함됐을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강석주'는 또 "이제 우리가 서 있는 땅이 완전히 잘려나간 상태이고 정책집단 내에서 우리는 더 이상 입지가 없다"고 절망감을 표현하며 강경파를 제어할 기제가 작동하고 있지 않음을 시사했다.

'강석주'는 2003년 3월 북한 공군의 전투기 3대가 정찰 중이던 미군 정찰기를 위협한 뒤 성공의 기쁨으로 만취된 공군 장교들을 보면서 외교 노선이 끝났음을 깨달았다고 밝히며 강경파 위주의 북한 내 세력구도가 2차 북핵위기 직후인 2003년부터 두드러졌음을 시사했다.

'강석주'는 이어 "조국은 이 고난을 이겨나갈 것이며 우리 투쟁의 역사는 곧 무고한 이들의 피로 물들지 모르지만 잊혀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우리가 미국을 힘으로 대면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곧 우리의 도시들과, 우리의 산들과, 우리의 강들에서 다시 그들과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는 칼린이 이미 현직에서 물러나긴 했지만 자신의 경험과 식견에 비춰볼 때 현재의 긴장 상태와 북한 강경파들의 움직임은 한반도에서의 전쟁 발발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으로 보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 대목을 조금 더 정교하게 말하자면, 북한 강경파의 움직임이 곧바로 전쟁을 시사한다기보다 북한 강경파의 움직임을 보는 미국 일각(이것이 꼭 네오콘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의 시각이 그것을 전쟁 발발 가능성으로 해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는 얘기다.

핵실험에 대한 미국인들의 불안 심리도 내포

'강석주'의 연설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대목은 "만약 우리가 5개나 혹은 6개의 핵무기에서 그 과정을 멈출 수 있었다면 어쩌면 우리가 다시 내려올 길이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말한 부분이다.

'강석주'는 "우리는 핵 보유국이고 이제는 그것을 포기해야 할 이유도 없고 그럴 가능성도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는 지난해 2월 10일 북한의 핵보유 선언이 신빙성이 있으며, '5개나 혹은 6개의 핵무기에서 멈출 수 있었다면'이라고 시점을 과거로 언급함으로써 핵무기 숫자가 그 이상일 수 있다는 칼린의 분석을 보여준다.

2002년 10월 2차 북핵위기 직후의 미 중앙정보국(CIA) 발표, 한국 정부의 2004년 국방백서, 지난달 25일 윤광웅 국방부 장관의 국회 국방위원회 답변 등은 북한이 핵무기를 1~2개 정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1992년 5월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 이전에 추출한 플루토늄의 양이 10~14kg라고 추정됨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칼린은 북한이 2003년 이후 봉인을 뜯은 8000개의 폐연료봉에서 플루토늄을 추출해 핵무기를 추가로 만들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강석주'는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서도 "우리가 (핵) 시험을 할지 말지는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현재 평양의 상황은 우리가 단 한번도 원했던 것이 아니고, 우리는 결정에 영향을 미칠 아무런 입지도, 무게도, 신뢰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는 북한 외무성이 핵실험에 대해 관여할 수 없음을 말하는 동시에 강경파들의 태도로 볼 때 핵실험이 얼마든지 가능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편 칼린의 이같은 전망은 자신의 포함한 미국의 많은 관찰자들이 북한의 핵실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고도 해석될 수 있다.

북한과 미국 모두 6자회담 좌초의 '주범'

칼린은 또 북핵 6자회담을 바라보는 북한의 시각이 회의적임을 내비친다.

'강석주'는 "6자회담은 단 한 번도 '실재'했던 적이 없었다. 처음부터 희망이 없었다"며 "미국은 단 한 번도 진지하게 외교력을 발휘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고 (6자회담은) 우리를 소몰이 하듯 우리에 가두려는 시도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것(9.19공동성명)은 바로 다음 날 힐 대사(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가 '경수로는 완전히 협상 테이블에서 치워졌다'고 말한 그 순간 파괴됐다"고 말했다.

이같은 발언들은 칼린이 6자회담 및 9.19공동성명을 파탄 낸 책임이 북한이 아닌 미국에 있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한 것으로도 읽힘직 하다. 물론 '강석주'의 발언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문면상 북한의 시각을 표현한 것이 분명하지만 '강석주'의 입을 통해 칼린의 시각을 얘기한 것으로 해석하지 못할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이어 칼린의 균형감각이 발휘된다. 칼린은 '강석주'로 하여금 "이 모든 것을 미국의 책임으로 돌리면 좋겠지만 우리도 우리만의 우를 범했다. 많은 실수를 했다"며 자신들의 실기(失機)를 인정케 함으로써 북한 역시 6자회담 좌초에 책임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강석주'는 다시 덧붙인다. "2000년 당시 우리는 워싱턴 고위급의 개입(engage)을 너무 오래, 아주 오래 기다렸다"며 "우리가 실패한 것은 우리가 달성했던 것의 뿌리가 그렇게 얕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혈맹' 중국에 대한 북한의 시각

칼린 '작문'의 백미는 북한이 '우방'인 러시아와 '혈맹'인 중국에 대한 강한 불신과 경계감을 갖고 있다고 보는 대목이다.

'강석주'는 "러시아와 중국이 우리의 주권과 독립에 가할 수 있는 위험에 대처하는 방법은 주한미군이 한반도 남쪽에 계속해서 주둔할 수 있도록 점진적으로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북한이 중국과 러시아, 특히 그 중에서도 중국을 잠재적 위협세력으로 보고 그간 불구대천의 원수로 여겼던 주한미군을 이용해 그 위협을 해소하겠다는 의지가 있다고 보는 것으로, 북한이 주한미군의 철수를 갈망하고 있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있다.

이같은 해석은 '파격적' 혹은 '비현실적'이라고 폄훼하기 힘든 진실을 담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주한미군의 주둔을 용인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던 적이 있다. 이는 미군이 동북아 평화유지군이 될 수 있다는 김 대통령의 논리를 받아들였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는데, 칼린은 그같은 인식의 전환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고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앞서 이찬복 상장 등 북한의 고위 장성들은 90년대부터 미 언론인 셀리그 해리슨 등에게 북한의 남침은 물론 남한의 북침을 억제하기 위해서라도 주한미군은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칼린은 또 '강석주'로 하여금 "더 나쁜 것은 6자회담이 우리를 중국의 품 안으로 쫒아버린 것"이라며 "우리가 생각하기에 이는 미국이 생각할 수 있는 우리의 처신 가운데 가장 나쁜 것"이라고도 말하게 하고 있다.

이 역시 칼린의 의중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결국 그는 6자회담을 통해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키우려는 중국의 의도와 부지불식 간에 그 의도에 따르는 미국 외교 당국의 행태에 대한 자신의 의구심을 미국의 조야에 전달하려 했던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현재 미국의 외교를 좌지우지 하는 네오콘 부류와는 전혀 달리 대북관계의 실무에서 잔뼈가 굵어 최고의 분석가로까지 꼽히던 칼린이 현재의 북한과 미국을 보는 시선에서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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