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자 일간지 "北 최소 핵무기 5-6개 보유"
<연합뉴스>는 24일 밤 11시 14분에 "강석주 '北 최소 핵무기 5-6개 보유'"라는 제목의 스트레이트 기사로 지난 7월 18일부터 3~4일간 진행된 북한의 긴급 해외공관장 회의에서 강 부상이 했다는 연설 내용을 보도했다. 이는 미국의 북한 전문가인 로버트 칼린이 북한어 자료(수기)로 전달받아 영어로 번역한 후 미국 노틸러스연구소의 홈페이지에 '통제불능의 토끼(Wabbit in Free Fall)'라는 제목으로 21일 게재한 내용이라는 설명과 함께였다.
게재문에는, 강 부상이 "모든 발걸음 하나하나마다 (핵 개발을) 계속하길 바라는 이들이 우위를 점령하고 있다"며 북한 내 강경파들이 주도하고 있는 위기상황을 한탄하고 "조국은 이 고난을 이겨나갈 것이며 우리 투쟁의 역사는 곧 무고한 이들의 피로 물들지 모르지만 잊혀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전쟁 가능성을 시사하는 등 충격파가 강한 내용들이 담겨 있다.
특히 "만약 우리가 5개나 혹은 6개의 핵무기에서 그 과정을 멈출 수 있었다면 어쩌면 우리가 다시 내려올 길이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발언은, 지난해 2월 10일 북한의 핵보유 선언을 재확인하는 동시에 5~6개 핵무기 보유를 과거 시제로 언급함으로써 북한이 그 이상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음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
<연합뉴스>는 이와 함께 "'강석주 연설'의 의미..北 어디로", "北.美강경파 득세..北 '비둘기파' 날개 꺾이나" 등 해설·전망 기사와 함께 1만 자에 이르는 강 부상의 연설 전문까지 발 빠르게 후속 보도했다.
이에 25일자 <동아일보>와 <경향신문>은 각각 "강석주 '北 외교는 추락하는 토끼'", "北 강석주 '핵무기 5~6개 보유'"란 제하의 기사를 1면에 실었고 <동아일보>는 제3면을 털어 연설 전문을 싣기도 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등도 전문은 아니었지만 연설 내용을 압축해 비중 있게 보도했다.
"김정일이 돼 보기로 했다"…은연 중 '창작물'임을 시사
북한의 핵보유를 기정사실화하는 동시에 북한 내 강경파와 협상파 간의 갈등을 고스란히 드러낸 이 '민감한 연설문'이 칼린의 '소설'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25일자 신문이 각 가정으로 배달되기 시작하던 무렵이었다.
가장 먼저 이 보도를 타전한 <연합뉴스>는 25일 새벽 5시를 넘겨 이 보도를 전면 취소한다고 밝혔다. 이 모든 내용이 강 부상의 실제 발언이 아니라 칼린 씨의 머릿속에서 나온 '가상 연설'이었음을 뒤늦게 확인했기 때문이다.
칼린 씨는 논문 첫머리에서 "처음 이런 연설에 대한 구상을 하게 된 것은 리처드 부시가 윌리엄 새파이어(<뉴욕타임스> 칼럼리스트) 흉내를 내며 김정일과 교신을 해 보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했기 때문이다. 생각을 좀 해 본 나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새파이어가 아닌 김정일이 돼 보기로 했다. (When the idea for this conference first came up, Richard Bush suggested I emulate William Safire and channel Kim Jong Il for you. I gave this some thought but decided it showed a lot of chutzpah-I mean, doing Kim, not Safire.)"며 이 연설이 '창작물'임을 시사했다.
칼린 씨는 또 지난 14일 부루킹스 연구소와 스탠퍼드 대학교가 공동으로 주최한 북한 관련 세미나에서 가상의 내용임을 전제로 이 글을 발표한 바도 있지만 한국 언론들은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것이다.
이 같은 대형 오보 사태는 최근 북한의 움직임과 이에 대한 미국 측의 강경 대응과 같은 민감한 내용이 익명을 요구한 미국 전직 고위관계자 혹은 미 정부 관계의 입을 빌어 보도되는 최근의 경향과도 무관치 않다. 북한의 내부 움직임은 확인되기 어려운 사실이라 다양한 추측이 존재하기 마련인데 각 언론사가 이를 사실인 양 보도하는 데에 경쟁이 붙다보니 이번처럼 웃지 못 할 해프닝이 발생한 것이다.
북한 핵실험 가능성에 대한 한국 언론들의 자극적인 보도 태도에 한반도 문제 전문가인 폴 챔벌린 씨는 지난 23일 "북한의 핵실험 가능성에 대해 남한 언론이 너무 추측성 보도 경쟁을 하고 있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그같은 보도는 오히려 북한의 핵실험 감행을 부추길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한편, 가상의 연설임을 명확히 표지해 주는 안내가 부족해 이번 오보 사태가 커지자 노틸러스 연구소 측은 추후에 게재물 도입부에 "이 내용은 북한 외교관들과의 회의에서의 강 부상의 강연을 모방한 '가상 연설(hypothetical speech)'로서 실제 강연은 아니다(This was not a real speech by the DPRK official)"는 설명을 붙여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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