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폐쇄적 민족주의' 벗어나 넓은 세계를 바로 보자는 거죠"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폐쇄적 민족주의' 벗어나 넓은 세계를 바로 보자는 거죠"

박인규의 집중인터뷰[09/08] <가로세로 세계사> 2권 펴낸 덕성여대 이원복 교수

안녕하십니까? 박인귭니다..

해외여행이 자유화되기 전인 1987년에 출간된 만화 <먼나라 이웃나라>는 국내 독자들에게 세계를 향한 창을 열어주었습니다.

만화를 통해 세계를 여행했고, 문화와 역사를 이해할 수 있었던 먼나라 이웃나라는 19년이 지난 지금 국내에서 천만 권 이상 팔렸고 지난해 12권으로 마무리 됐습니다.

먼나라 이웃나라의 저자인 덕성여대 이원복 교수가 올해부터 <가로 세로 세계사>라는 제목으로, 새로운 시각으로 세계의 역사와 문화기행을 시작했는데요 지난 봄에는 제1권 <발칸반도> 에 이어서 최근에는 제2권 <동남아시아>편이 출간됐습니다.

오늘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 덕성여대 시각디자인학과 이원복 교수를 초대해서 그가 만화를 통해서 세계 문화와 역사를 알리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이번에 출간하고 있는 가로 세로 세계사는 어떤 내용을 담았는지 얘기 나눠봅니다.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덕성여자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이원복 교수입니다.

이원복 교수는 1946년 대전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다니던 중 1975년에 독일 뮌스터 대학으로 유학해서 시각디자인으로 전공을 바꿨습니다. 84년 한국으로 돌아온 후 현재까지 덕성여자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며 98년부터 2000년까지 한국 만화 애니메이션 학회장을 역임했습니다. 그가 펴낸 만화책으로는 천만 권 이상 팔린 만화 베스트셀러 <먼나라 이웃나라>를 비롯해서, 「나란나란 세계사, 도란도란 한국사」, 「만화로 떠나는 21세기 미래여행」, 「신의 나라, 인간의 나라」등이 있으며, 1993년에는 우리나라 만화 문화 정착에 기여한 공로로 제9회 눈솔상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박인규 : 학기도 시작되고 워낙 바쁘셔서 저희가 덕성여대로 직접 왔습니다. 뒤에 보이는 산이 북한산이죠? 전망이 대단히 좋은데요...

이원복 : 그린벨트에 묶이는 곳이라 특히 경치가 좋습니다. 학교 자랑 좀 해야 되는데...

박인규 : 만화 그리시는 데 상상력에 도움되실 것 같아요.

이원복 : 그것보다도 캠퍼스에 있는 젊은 학생들이 더 많은 영감을 주죠.

박인규 : 가로 세로 세계사 2권이 최근에 나왔는데 방학 때 그거 그리시느라 시간도 별로 없으셨겠습니다.

이원복 : 만화라는 게 그리는 건 절대적인 시간에 의존하는 거고, 제일 많은 시간을 요하는 건 역시 자료수집과 콘티.. 대본을 쓰는 게 제일 어렵죠. 그 다음은 늘 해오던 물리적인 작업이죠.

박인규 : 그럼 만화를 쓴다는 표현이 더 맞나요?
▲ ⓒkbs 1라디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이원복 : 옛날엔 쓰고 그렸는데, 이젠 나이도 들고 좀 분업화 해서.. 컬러링 같은 것 못 하니까. 물론 그리는 건 하지만, 가장 기초적인 밑그림에서 기본적인 건 제가 하고 마무리는 제자들이 도와주고 있습니다.

박인규 : 가로세로 세계사 2권이 나왔는데, 가로세로라는 이름을 붙이신 데에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요..

이원복 : 가로로 보고 세로로 본다. 이 말 자체가 종사와 횡사. 세계사도 두 가지 의미가 있어요. 역사의 '사'자도 있고 세상사의 '사'자도 있고. 굳이 역사 뿐 아니라 이런저런 세상사를 다루는. 너무 통사식으로 나가면 재미가 없잖아요. 몇년도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그리고 너무 종사만 다뤄도 그러니까 역사영역과 세상이야기를 자유롭게 드나들기 위해서, 가로세로 마구 돌아다닌다는 얘깁니다.

박인규 : 시간과 공간을 종횡무진하겠다는 말씀이시군요. 1권이 발칸반도였고 2권이 동남아시아인데 6권으로 기획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원복 : 원래는 먼나라 이웃나라가 12권이라서 이것도 제 나이가 허용되면 12권 다 해보고 싶어요. 제 기본개념은, 좌청룡 우백호라면 너무 자화자찬 같지만 먼나라가 하나의 강대국 중심의 이야기라면 가로 세로 세계사는 거기서 벗어나서 우리가 선진국에 진입하기 위해서 반드시 알아야 될, 포용해야 될, 지금껏 관심두지 않았던 세계를 다루자는 거죠. 예를 들어서, 우리는 역사를 영국 프랑스 미국 중심으로 배워왔고, 세계를 바라보는 눈도 알게모르게 그 영향을 받아 왔습니다. 왜냐하면 1차대전 승전국들에 의해서 역사가 써졌고 그걸 일본이 받아들여서 또 우리에게 전해진 것이기 때문에. 우리 역사는 모르는 사이에 강대국 중심으로 돼 있습니다. 그렇지만 발칸이나 중앙유럽, 또는 동남아 지역, 우리와 가깝고 파트너가 될 나라들에 대해서는 안다고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요.

박인규 : 가로세로 세계사는 먼나라 이웃나라를 말하자면 보완하는...

이원복 : 상호보완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박인규 : 1차대전을 말씀하셨지만, 1권이 발칸반도였는데 사실은 그곳이 1차대전의 진원지 아닙니까.. 그것 때문에 발칸반도가 1권이 된 건가요?

이원복 : 그것도 그렇지만, 발칸반도를 제일 먼저 선택한 건, 20세기가 이념대립의 시대였고 공산주의가 20세기의 재앙이었다면 저는 21세기 재앙은 민족주의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민족주의라는 것이 참 모순되게도 글로벌화 세계에서 더 강해지거든요. 글로벌화라는 건 민족을 따지지 않고 모든 인간이 하나의 세계시민으로서 평화롭게 살자는 건데, 이상하게 점점 민족주의는 폐쇄적이고 이기적으로 돼가는 경향이 있거든요. 이념대립이 없는 가운데 인간은 항상 뭔가 갈등구조를 가져야 되는 상황에서 제가 보기에는 이런 폐쇄적인 민족주의 가 21세기의 재앙이 될 것이고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발칸이기 때문에 제일 먼서 서둘러 다뤘습니다.

박인규 : 발칸반도가 1차대전의 진원지기도 하지만 최근에 보스니아나 코소보 문제라든가 민족적인 갈등도 굉장히 컸던 곳이죠. 사실 한국사람들은 민족주의에 대해서 상당히 좋은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식민지 해방, 통일 같은 것 때문에 좋은 게 아니냐...

이원복 : 우리나라에서는 민족이란 단어와 민족주의가 굉장히 긍정적이고 우리의 피를 끓게 하는 단어인데 독일사람한테 당신은 민족주의자냐고 물으면 굉장히 모욕으로 느껴요. 옛날에 지은 죄가 있으니까.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민족주의라는 말이 잘못 번역돼 들어와서, 민족과 민족주의라는 말 자체가 19세기 말까지는 없었어요. 민족주의의 영향이 쭉 세계적으로 전파되면서 일본사람들이 이걸 어떻게 번역할까 하다가 적당한 말이 없으니까 민족주의, 민족이라는 말로.. 원래는 네이션이죠. 좀 더 정확히 얘기하면 국가라는 건데, 국가가 곧 민족이고 민족이 곧 국민이고 그렇기 때문에 전문가들도 마구 헷갈려요. 그런데 우리나라가 그걸 왜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냐 하면 우리나라 민족주의에는 혈족주의라는 게 묻어 들어왔어요. 배달민족. 다른 민족에는 없는, 다른 나라는 여러 민족이 섞여서 이뤄진 민족이기 때문에 혈족주의는 없는데 세계 유일이다시피 한 단일민족이다 보니까 세계의 유일한 배달의 자손, 단군의 자손이라는 혈족주의가 들어와서 이것이 오늘날까지도 우리의 열린 민족주의를 가로막는 가장 큰 저해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박인규 : 하긴 독일 같은 경우는 아리안 민족주의라고 해서 홀로코스트를 일으켰고, 일본도 대일본제국이라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고생했는데, 교수님이 말씀하고 싶으신 건 우리 민족만이 최고라는 폐쇄적인 생각은 안 된다..

이원복 : 그런 것도 있지만 민족주의의 가장 큰 위험요소는 정치인들에게 악용될 요소가 크다는 겁니다. 독일과 일본의 민족주의. 그게 전부 군국주의자들과 나치, 파시스트들에 의해서 대독일 대일본 대이탈리아 이런 식으로 자존심과 역사를 자극하고 자기민족을 성스런 존재로 만들어서, 결과적으로 권력을 장악하는 데 이용되지 않습니까? 지금 북한도 마찬가지라고 봐요.

박인규 : 가로세로 세계사 2권이 동남아시아편인데, 그 지역이 참 가까운 것 같으면서도 멀고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이원복 : 가깝지만 모르는 나라죠. 멀진 않아요. 동남아시아편을 만들다가 굉장히 쇼킹한,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했는데, 동남아시아 11개 나라가 있는데 그 지도가 강대국들의 군사분계선이에요. 말레이시아는 말레이 반도 남단과 보루네오 섬 위에 있는 두 지방이 합해진 건데, 두 국토의 거리가 500km 가까이 되거든요. 이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냐는 얘기죠. 비행기도 없던 시대에 500km나 떨어진 해외 영토를 내 나라로 만드는 것이. 그러니까 이게 전부 인조적인 국경이라는 겁니다.

박인규 : 외국세력이 지배하던 것이 그대로 한 나라가 돼 버리는..

이원복 :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1824년 런던협정에 의해서 말레이시아 반도 남쪽에 있는 1만7천여 개의 모든 섬들은 전부 네덜란드가 갖고, 그 외에 반도나 육지는 전부 영국이 갖고.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섬은 네덜란드 육지는 영국으로 갈렸는데, 그 중에 보루네오 섬의 일부분을 영국이 차지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2차대전이 끝나고 독립을 시키면서 이 영국령 영토를 묶어놓은 것이 말레이시아고 네덜란드 영토를 묶은 것이 인도네시아에요. 우리가 아주 간단하게 생각하는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지만 가장 기초적인 사실이 원래는 한 나라 한 민족이었는데 두 나라의 조작으로 그렇게 된 거죠. 또 예를 들어 캄보디아나 라오스나 베트남 경계선도 프랑스와 영국이 만든 인위적인 국경선이라는 거죠. 이런 만큼 우리가 동남아시아에 대해서 싸게 갔다 올 수 있는 휴양지 정도로만 알고 있지 그 처절했던 과거는 너무 모르고 있거든요. 또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그들의 역사가 우리 역사와 너무 똑같아요. 말하자면 평화로운 농업국가였다가 강대국들이 몰려와서 식민지화 하고, 그러면서 민족주의에 눈뜨고. 전쟁이 끝나면서 이들이 물러나니까 전 지배자가 남긴 민주제도를 실험하다 실패하고. 그 다음에 내란으로 퍼졌다가 군사독재가 오고, 경제발전과 민주발전을 이뤄서 미래를 바라보는 그 역사가 우리나라와 너무 똑같아요.

박인규 : 이 역사만화 한 권 내시는 데 시간은 얼마나 걸리십니까?

이원복 : 지금까지는 보통, 권당 1년에서 1년 반. 그때는 저 혼자 완전히 작업할 때고 지금은 도와주는 친구들이 좀 있어서 조금 빨라져서 부지런히 서두르면 6개월에서 5개월. 그 정도면 한 권이 나오는데 졸속으로 하면 물론 안되죠.

박인규 : 지금 발칸반도와 동남아편이 나왔는데 앞으로는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십니까?

이원복 : 6권을 목표로 잡고 있는데, 세 번째로 작업중에 있는 것이 이슬람 세계입니다. 911테러가 세계적인 화제죠. 문명의 충돌이라는데 제가 볼 땐 그게 아니고 무지의 충돌로 보고 있습니다. 서로 알려고 하지도 않고 서로 모르고. 그러면서 기독교에서 이슬람 교리를 알려 하지 않고, 기독교에 대해서 이슬람은 알려고 하기보다도 이슬람교도 앞에 나타난 기독교인을 항상 침략해 왔기 때문에 본능적인 방어를 합하면, 이것은 문명의 충돌 보다는 무지의 충돌로 보는 것이 정확합니다. 우리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분명한 이유 없이 유대교나 기독교를 지지하고 있고,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중동을 테러집단으로 보는 왜곡된 시각이 있거든요. 그런데 알고 보면 이슬람이라는 종교가 대단히 합리적이고 관용적이고, 다른 종교를 포용해 주는 종교인 걸 모르면서 이렇게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건 옳지 않다. 그래서 이슬람을 포교하는 게 아니라 정확하게 알고 넘어가자, 있는 그대로 팩트를 전하자는 게 가장 큰 목적으로 중동편이 세 권째가 되겠구요. 네 번째는, 모두에도 말씀드렸지만 우리가 상당히 왜곡된 역사관을 갖고 있는데, 프랑스 미국 영국 중심이에요. 그럼 우리에게 빠진 부분이 뭐냐. 1차대전에서 진 중부유럽. 바로 합스부르크왕가와 오스트리아왕가입니다. 갑자기 뜬금없이 웬 왕가 얘기인가 하지만 합스부르크를 이해 못하면 유럽 뿐 아니라 세계의 역사를 이해 못해요. 오늘날 세계를 정확하게 보시면 19세기를 지배했던 유럽은 합스부르크 왕가, 그리고 동양쪽은 오스만투르크 제국. 그럼 오늘날 지도를 보십시오. 수십개 나라가 있지만 과거 중부유럽은 바로 합스부르크의 영토가 갈라진 것이고 중동이나 북부아프리카는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분할 된 거거든요. 이 두 개는 꼭 알아야죠. 다섯 번째는 우리가 세계로 뻗어나가는데, 이제는 미국같은 나라보다도 우리가 알아야 될 게 태평양의 이민국가들. 젊은 나라들이죠.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같은. 백인들이 만들었지만, 제 친구가 미국에 가니 그러더군요. "야, 여기다 깃발 꽂으면 네 나라야." 미국은 어렵지만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캐나다는 아직도 그런 가능성이 많거든요. 우리 한국인이 무한히 뻗어나갈 수 있는 여지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런 걸 좀 정확하게 가르치고. 마지막은 저한테 좀 무리한 도전인 것 같습니다만 중국편인데, 중국은 너무 방대하기 때문에 다 다룰 순 없고. 중국 가운에 우리에게 하나의 틈새인, 말하자면 중국현대사. 우리가 반공을 했기 때문에 중국의 공산당 역사는 안 가르쳤잖아요. 그 지하에서 뭐가 벌어졌는지. 우리가 알고 있는 건 모택동이 장개석 쫓아내고 중국 통일한 49년 얘기. 그 다음부터 천안문까지 완전히 비었어요. 그 외엔 모르지 않습니까. 그래서 중국의 현대사를 다루면 북한과도 연계되고 우리도 중국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박인규 : 오랫동안 만화를 준비하시면서, 세계적인 흐름에 대해서 나름대로 느끼신 게 많이 있을 것 같아요.

이원복 : 예. 늘 다니면서 사진도 많이 찍어 놓고 현지인들과 얘기도 많이 나누고. 요즘 재밌는 얘길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예를 들어 독일 친구들한테 너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으면 피식 웃으면서 독일 사람이지 누구야 했습니다. 이태리 사람들은 밀라노 사람라고 합니다. 이태리 사람은 이태리 사람이라고 안 그래요. 그런데 요즘에는 너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으면 '유러피언'이라고 합니다. 나는 유럽인이야. 민족의 의미가 거의 없어지고 나라의 국경이라는 게, 요즘은 120km시속으로 고속도로로 국경을 넘어가 버리거든요. 국경, 국적이 거의 의미가 없고 내가 어디 사느냐. 그것이 이 사람들은 유럽이라는 거죠. 그런 걸 보면서, 요즘의 세계는 무서운 속도로 변해가고 있다. 그런 반면에 우리는 좀 더 폐쇄적인 민족주의에 자꾸 자극되는 게 아니냐..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먼나라 이웃나라에 이어서 두 번째로 세계사를 다룬 <가로 세로 세계사> 를 출판하고 있는 덕성여대 시각디자인학과 이원복 교수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이런 만화를 그려야겠다고 마음먹으신 특별한 계기가 있었습니까?

이원복 : 제가 만화를 그린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인 62년부터니까 그건 평생의 일이라고 할 수 있지만, 먼나라 이웃나라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직접적으로 75년 독일에 갔을 때, 처음 외국엘 나갔는데 도처에서 굉장히 문화적 충격을 많이 받았어요. 특히 역사에 의한 충격을 많이 받았어요. 75년만 해도 우리가 굉장히 가난했던 때였고, 제가 제일 몰랐다가 충격을 받은 게 독립문을 길 놓는 데 방해된다고 옮겼던 시대였거든요. 둘 뚫으면서 걸린다고 번쩍 들어서 옮겼단 말이에요. 그 당시에는 발전에 밀려서 우리 역사의식이 그 정도 밖에 안됐어요. 그런데 독일 가니까 돌 하나를 봐도 350년 된 거라고 하고. 잘 아실 겁니다. 옆집에 가보니까 이 방에서는 하이데거가 무슨 시를 쓴 곳이고. 등등 할 것 없이 모든 것이 역사와 연결돼 있는 거예요. 그때 저는 역사란 이미 죽어버린 것이고 배우기 재미없는 과목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게 생활 곳곳에 다 녹아있는 걸 보고 그건 아니구나 했죠. 그리고 외화를 써가면서 거기 가있는데 이건 나 혼자 누리기엔 아깝다. 그래서 먼나라 이웃나라가 아니라, 나이가 좀 드신 분들은 기억하시겠지만 새소년이란 잡지에 시간이와 병호의 모험이라는 연재만화를 6년 했습니다. 그런데 오자마자 했으니까 얼마나 많은 오류가 있어요. 괜히 아닌 거 가지고 흥분하고 틀리게 적기도 해서 그걸 완전히 절판시켜 버리고, 81년부터 소년한국일보에 먼나라 이웃나라를 연재하기 시작했죠.81년부터 86년까지 어린이신문에 연재한 걸 87년에 묶어서 나온 게 먼나라 이웃나라입니다.

박인규 : 하긴, 독일에서 오신 어떤 분이 서울 거리를 다 돌아다니면서 한 얘기가 서울은 역사가 30년 밖에 안 된 것 같다는 말씀을 했다고 하더라구요. 하도 개발을 많이 해서..

이원복 : 그래도... 역사도 등 따숩고 배불러야 역시지 굶주리면 무슨 역사입니까..

박인규 : 원래 역사를 전공하신 분이 아닌데 어떻게 각 나라 역사를 이렇게 속속들이 아시는지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어떻게 공부를 하셨습니까?

이원복 : 공부를 한 게 아니구요, 독일이란 나라를 가보니까 제가 한국에서 그때까지 청년으로서 전혀 못 겪던 경험이 가능하더라구요. 옆에 있는 한 기숙사에 사는 아이들 국적이 한 4,50개가 됩니다. 유고슬라비아, 헝가리, 미국인, 스페인, 이탈리아 할 것 없이 인터내셔널한 친구들이 다 모여 있으니까 자기 나라에 대한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그런데 그게 학교에서 배운 것과는 전혀 딴판이에요. 예를 들면, 나폴레옹 위대하다고 하면 불란서 사람은 그게 왜 위대하냐 살인자지, 이런 식의 안목. 파리는 무조건 아름다워야 되고 에펠탑은 최고로 멋있어야만 된다고 믿었는데 에펠탑은 아주 징그럽고 흉물스런 철덩이야. 파리는 멋대가리 없어. 이런 식으로 자기 의견을 얘기하는 걸 보고, 이 세상에는 다양한 의견도 있을 수 있고 바라보는 눈도 굉장히 다양한 면이 있겠구나 하는 것이 저로서는 상당히 큰 충격이었고, 그걸 보면서 이런 걸 어떻게 한 번 재밌게 만화로 해볼 수 없을까 한 것이 그 동기가 됐죠.

박인규 : 그 뒤로도 계속 만화를 그리시려면 책으로만은 부족할 것 같고, 여행을 많이 다니신다고 들었습니다.
▲ ⓒkbs 1라디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이원복 : 제가 독일에서 10년 가까이 있었는데 폐차시키고 온 게 여섯 대에요. 오해하지는 마시고, 살 때 200불 300불 짜리 폐차 직전의 아주 고물차를 샀지만, 하나 사서 1만, 2만km 뛰고 버렸으니까, 육로로 거의 많이 돌아다녔죠. 동부권은 못 갔으니까 서부권 쪽으로. 많이 다닌 이유가 저는 시각디자인 전공이거든요. 핑계가, 보는 게 남는 거지 도서관의 책은 한국에서도 구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 핑계 하에 무조건 돌아다녔습니다. 또 그런 심정 있잖아요. 내가 여기 언제 또 와보나. 그래서 오히려 제가 한국에 어두워요. 한국에 있으면 언젠가는 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래서 참 게으르게 되는데, 외국 나가 있으면 제한된 유학기간 동안에 뭔가 가능한 한 많이 보고 가는 게 남는 거 아니냐 해서 그 10년 동안 엄청나게 돌아다녔는데 여기 들어와서는 다시 또 그리 가게 되더라구요.

박인규 : 원래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하더라구요. 요즘도 해외여행 많이 하시나요?

이원복 : 한 달에 한 번 정도 나가다시피 하죠. 짧게..

박인규 : 교수님의 여행하시는 법은 보통사람들과는 상당히 다르다던데요..

이원복 : 저는 주로 혼자 다닙니다. 그룹으로 간다고 해도 제가 그룹을 만들어서 갑니다. 가이드 분들이 그 나라에 가면 그 나라 가이드가 있거든요. 그 분들을 폄하하려는 게 아니라, 비엔나에 가면 비엔나에서 이 건물은 언제 누가 짓고 무슨 의미가 있습니다라고 하지만 그게 역사와 어떤 관계가 이어지는지 모릅니다. 또 한 나라 국경을 넘어가면 다른 가이드가 나오기 때문에 안 이어지거든요. 그래서 단체여행을 가면 많은 걸 봤는데 도대체 뭘 보고 들었는지 기억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제가 하는 역할은 어떤 테마를 가지고, 이번에 다녀온 곳이 합스부르크인데, 합스부르크의 흔적을 쭉 따라다니면서 이 건물이 역사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고 이 인물이 역사에서 무슨 일을 했고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그 맥을 이어주는 겁니다. 가이드가 아니라.. 가이드는 별도로 있고 저는 버스 속에서 강연을 합니다.

박인규 : 하나의 주제의식을 갖고 다닌다는 말씀이시군요.

이원복 : 그래서 예를 들면, 지난번에 아일랜드 갔을 때는 스코틀랜드 아일랜드를 돌면서 켈트 문화. 작년에는 발칸문화라고 해서 동구권.

박인규 : 가로 세로 세계사가 지금 두 권 나왔고, 앞으로 언제까지 끝내야겠다는 계획이 있으십니까?

이원복 : 교수가 이런 말씀 드리면 비난하실 분도 계실지 모르지만, 책도 엄연한 상품입니다 상품인 이상은 구매력이 있어야 되고 타이밍과 시장에서의 생명력이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행본은 한 권 보다도 어느 정도 한 세트가 될 수 있는 여섯 권 정도가 나왔을 때 자생력이 생기는 거거든요. 그래서 조금 무리가 가더라도, 조금 서둘러서 내년 내지는 내후년까지는 여섯 권을 끝내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이것 만들고 나서 또 그리고 싶은 만화가 있으실 것 같아요.

이원복 : 글쎄요, 그 때 되면 제 기력이 남아있을까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올해 60인데..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앞으로도 잘 관리하면 일이야 많이 하겠죠. 마지막 욕심이 있다면 가로 세로 세계사를 끝내고, 역시 귀소본능에 의해서 가로세로 한국사를 한 번 다뤄보고 싶습니다.

박인규 : 가로세로 한국사가 나올 때를 기다려 보면서 오늘 말씀은 여기서 그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