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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자신의 잘못도 반성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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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우리 자신의 잘못도 반성해야"

박인규의 집중인터뷰[08/17] 만화 '위안부 리포트'의 작가 정경아씨

안녕하십니까? 박인귭니다..

지난 광복절날, 고이즈미 일본총리가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강행하면서 한국은 물론 중국에서도 비난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광복절에 일본총리가 야스쿠니를 공식 참배한 것은 1985년 나카소네 전 총리 이후 21년 만의 일인데요,

이런 가운데, 어제도 서울의 일본대사관 앞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에 대해 공식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수요시위가 열렸습니다.

벌써 13년 5개월째 매주 주요일이면 어김없이 시위가 벌어졌지만 그리고 그동안 97분의 할머니들이 세상을 떠났지만, 아직 우리는 일본으로부터 속 시원한 해답을 듣고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 일본군 위안부제도 피해자들의 얘기를 다룬 만화 <위안부 리포트>를 펴낸 작가 정경아씨를 초대했습니다.

그녀가 만화로 위안부 피해자를 그리기로 한 배경은 무엇인가?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풀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만화가 정경아씹니다.

정경아씨는 중앙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한 이후 애니메이션 "마술피리"의 시나리오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며 만화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만화가로서의 데뷔작은 에디뜨 피아프의 생애를 소재로 한 만화 <빠담 빠담>이며 2001년에는 대한민국 출판만화대상을 수상했습니다. 2003년 이라크 전쟁 발발을 계기로 전쟁과 여성의 관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국 위안부 피해자들의 문제를 보다 널리, 보다 깊이 알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박인규 : 위안부리포트를 만드시게 된 게 2003년 이라크 전쟁 이후였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위안부문제를 만화로 다뤄야겠다고 생각하시게 된 계기 같은 게 있습니까?

정경아 : 제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 대해서 알게 된 건 90년대 중반 변영주 감독님의 '낮은 목소리'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개봉관에서 보고 감동해서구요. 그 영화는 나눔의집에 모여 사는 할머니들의 일상을 차분히 쫓아가는 영화였어요. 그래서 좀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좀 더 알게 돼서 뭔가 얘기할 거리가 나온다면 이걸 만화로 해도 좋겠다. 그럴 필요가 있는 주제라고 생각했구요. 그 후에 2003년 이라크전쟁이 났을 대 전쟁과 여성의 관계에 대해서 돌아보게 됐어요. 제가 딸이 둘인데 딸을 키우는 입장에서, 그리고 이라크전쟁은 민간인 사상자가 굉장히 많았기 때문에 전쟁과 여성의 관계에 대해서 돌아보게 됐고. 그 중 한 테마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되고. 이걸 정말 더 알고자 하고 만화화 하려고 한다면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해서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준비하게 됐습니다.

박인규 : 할머니라는 표현을 쓰셨지만 처음 이 문제가 사회에 알려졌을 대는 정신대라는 말, 종군위안부라는 말 등 여러 가지 말을 썼어요. 지금도 용어가 정확하지 않을 것 같아요.
▲ ⓒkbs 1라디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정경아 : 지금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됐는데 충분히 알려지지 못했기 때문에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혼동된 채 섞어서 쓰고 있습니다. 이 기회에 좀 정리해 드린다면, 정신대는 정확히 '근로정신대'인데 여자근로정신대에서 노무자로 여성들을 동원했던 정책이고. 그것과는 구분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일본군 위안부라는 말을 몰랐어요. 심지어 끌려가셨던 할머니들 조차 위안부라는 말을 모르고 정신대, 처녀공출 같은 말만 듣고. 끌려가서 강간을 당하고, 위안소의 현판 같은 걸 보고 하는 얘길 들으면서 위안부라는 말을 처음 듣게 된 거예요. 그리고 그 할머니들이 돌아오셔서 다들 침묵하고 계셨기 때문에, 위안소라는 말은 여전히 50년 넘게 알려지지 않고 사람들은 막연히 옛날처럼 정신대, 처녀공출이란 말을 쓰고 있었던 거고. 이것이 90년대 들어서 자료수집이 되고 진상규명 차원에서 조사가 되면서 위안소, 일본군 위안부라는 말이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일본군 위안부라는 말 자체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이 말은 일본군이 썼던 말이에요. 문서나 공식적으로 썼고, 철저히 일본군의 입장을 반영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위안이라는 말은 책 첫 부분에 네덜란드 피해자 얀 할머니가 이렇게 발언하세요. '나는 위안부라는 말을 거부한다. 위안이란 부드럽고 따뜻한 것을 의미하는 말인데 누구를 위안한단 말이냐. 내가 일본군을 위안하려고 스스로 그랬단 말이냐. 그렇지 않고 나는 일본군에 의한 강간피해자일 뿐이다.' 그래서 그런 의미의 연장선에서 위안부라는 말 자체의 의미는 할머니들이 굉장히 거부감을 갖고 계시고, 그래서 영어권에서는 일본군 성노예라는 표현을 씁니다. 그럼 어떻게 부를 것인가를 두고 국제적인 논의가 여러 번 됐고, 거기서 논의된 바로는 위안부라는 개념, 의미에 대해서는 분명히 거부하고 있지만 당시 이것의 실재여부 문제를 갖고 일본에서 계속 부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실재했었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 이 말을 쓰되 그 의미를 거부한다. 거부한다는 뜻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작은따옴표를 반드시 쓰자. 그리고 그냥 강간이 아니라 일본군에 의해서 강간당했다는 걸 분명히 하기 위해서 앞에 일본군이라는 말을 꼭 붙이자. 그래서 일본군 '위안부'제도의 피해자들. 이런 식으로 표현하기로 결정됐구요. 그래서 한자어권에서는 일본군'위안부'제도의 피해자라는 표현과 일본군 성노예제도의 피해자라는 표현을 병용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더 덧붙이면, 종군위안부라는 표현을 많이 써요. 그런데 종군이라는 말을 뜯어보면 스스로 쫓아갔다는 의미거든요. 종군기자라든가.. 그래서 할머니들이 굉장히 거부감을 많이 느끼고 계시고. 그래서 종군이란 말은 틀렸다. 쓰지 않겠다. 일본 시민단체도 그렇고 우리나라도 그렇고 종군이란 말을 쓰지 말자라고 돼 있습니다.

박인규 : 내용적으로는 일본군 성노예가 가장 정확한 말이고, 역사적으로 실체라는 걸 분명히 주장하기 위해서는 이른바 일본군'위안부'제도의 피해자가 정확한 표현이다. 종군위안부라는 말은 절대로 쓰면 안 된다. 이번에 나온 만화 위안부 리포트가 원래는 3부작으로 구성했는데 이번에는 첫 권만 나왔다고 들었습니다. 전반적인 구성을 설명 좀 해주시죠.

정경아 : 말씀하신 대로 세 권으로 구성돼 있구요. 일본군 위안소 자체에 관한 설명 뿐 아니라 이것이 해방 후 어떤 식으로 쉬쉬됐는가. 그리고 종전처리 과정에서 어떤 식으로 묻혀졌는가. 그리고 어떻게 해서 다시 등장하게 됐는가. 그동안 또 우리는 뭘 하고 있었나 이런 문제를 총체적으로 말씀드리려고 세 권으로 구성했어요. 1권은 네덜란드 위안부 피해자 얀 할머니의 얘기를 잠시 다뤘어요. 그래서 이게 단지 한일간의 문제 뿐 아니라 전체 여성들의 문제라는 점을 먼저 강조하고 들어갑니다. 그리고 바로 일본군 위안소의 역사를 다룹니다. 어떤 배경에서 어떤 과정으로 만들어졌고 우리 여성들이 어떻게 납치됐고 어떻게 성노예 생활을 강요받았는지. 또 전쟁이 끝나면서 어떻게 버림받았는지를 서술하려고 했구요. 2권에서부터는 종전처리와 전범재판 등을 통해서 이 문제가 어떻게 처리됐는지. 제대로 처리되지 못했다면 왜 그렇게 됐는지. 한일회담. 개인청구권말소 등의 문제를 좀 따라가 보려고 하구요. 3권은 91년도 김학순 할머니 증언으로부터 시작한 우리나라 일본군 위안부 운동의 추이. 굉장히 드라마틱해요 사실은. 그래서 그 과정을 재현하면서 지금 운동의 현재성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박인규 : 일본의 우익정치인이나 많은 분들은, 이건 일본군이나 정부가 아니라 민간업자들이 한 건데 왜 자꾸 일본 정부에 대해서 책임을 묻느냐는 얘길 많이 하거든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정경아 :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일본정부나 우익들은 할머니들의 증언을 굉장히 불신하고 있어요. 물론 나이가 많아서 기억이 오락가락 하시기도 하고, 한 문제를 이렇게 얘기하셨다가 조금 다르게도 얘기하셨다가.. 하지만 너무나 많은 분들이 우리나라에 한정되지 않고 동북아 곳곳, 동남아를 포함해서, 심지어는 네덜란드 할머니들까지 증언자가 너무나 넓고 많이 분표돼 있고. 그 증언들의 공통된 내용이 있기 때문에, 증언의 사소한 의심스러운 부분들은 사실 문제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 증언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것은, 끌려갈 때 대부분의 경우 인신매매를 당했어요. 취업사기. 만주에 가서 고무신공장에 가서 일하게 해주겠다. 쫓아가 보면 일본군 위안소였던 거죠. 그런 식으로 사기, 불법, 인신매매에 걸린 경우가 굉장히 많고. 그 외에 식민지기구.. 조선총독부나 그 산하의 경찰행정부에서 권력과 폭력을 동원해서 그냥 끌고 가는 경우도 허다했고 길거리 납치도 굉장히 많았어요. 그래서 끌려갔던 과정의 공통점이라든가... 또 증언이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건, 그렇게 끌려가면 반드시 어떤 장소에서 자기와 비슷하게 끌려온 여자들과 합류해요. 만나서 눈 가리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납치돼 가는 거죠. 일본군의 수송수단에 의해 옮겨지고 위안소로 들어가고 거기서 일본군의 감시와 통제를 받는 식으로 관리됐고.

박인규 : 따라서 궁극적인 책임은 일본정부에 물을 수밖에 없다.

정경아 : 그렇죠. 이건 일본정부, 일본군정 당국이 제도적으로 시행한 정책이었어요. 그걸 일본쪽에서는 매춘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일본군이 매춘업소를 운영했느냐고 되물어볼 수도 있겠죠. 그게 군대냐고.

박인규 : 아직 2부, 3부가 나오진 않았지만 말씀에 따르면 2부에서, 전쟁범죄에 가까운 행위를 했는데 45년 동경전범재판 등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제기되지 않았단 말이죠. 나름대로 조사를 하셨으니까, 왜 그렇다고 보시는 거예요?

정경아 : 일단 전쟁범죄에 가까운 게 아니라 이건 전쟁범죄입니다. 전쟁시 성폭력이라는 건 군대가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 것이고. 전쟁강간은 범죄고, 일본군 성노예제도 내지는 일본군 위안부 제도라는 것은 사실 강간제도에 다름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건 범죄였고. 그런데도 2차대전 끝나고 연합군에 의해서 벌어진 전범재판, 도쿄대재판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조사차원에서 거론은 됐어요. 조사가 돼서 보고되긴 했는데 본회의에서 거론조차 안됐다고 돼 있거든요. 그건 전쟁과 전쟁 속에서의 성폭력에 대해서 굉장히 하찮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 재판 자체가 굉장히 성적으로 편향된 시각을 갖고 있었다라는 점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전범재판이 3년 8개월인가, 되게 오랜 기간 지속됐는데 그 과정에서 재판 자체가 점점 왜곡됐다고 알고 있어요. 당시 국제정세, 냉전체제가 새로 만들어지면서 연합국의 중심세력인 미국이라든가 이쪽이 일본이란 나라를 새로운 정치파트너로 생각 하게 되면서 재판 자체가 흐지부지된, 그런 흐름이 있거든요. 그러면서 일본군의 여러 가지 전쟁범죄가 확실히 파헤쳐지기 보다는 어느 선에서 형식적으로 끝나고 흐지부지 돼버리는 경향들. 그런 것 때문이라고 ..

박인규 : 정부간의 공식적 해결과정에서는 거론만 됐을 뿐이고, 그러던 것이 국제적으로 문제가 된 게, 민간차원이긴 하지만 우리나라의 김학순 할머니가 91년도에 피해자라는 사실을 밝히면서 세계적인 문제로 떠오른 것 같아요. 김학순 할머니 증언의 의미랄까.. 어떻게 보십니까?

정경아 : 김학순 할머니는 굉장히 용감하고 훌륭한 여성이라고 생각합니다. 91년도 당시가 윤정옥 교수님이 (그땐 정신대라고 불렀어요.) '정신대 발자취를 따라서'라는 연재를 하면서 오키나와에 있는 배봉기 할머니를 취재하고 문제제기를 하신 상황이었는데, 그 할머니는 고국에 돌아오길 거부하셨고 91년도에 돌아가셨나.. 그랬고. 실제로 일본정부는 그런 건 사실무근이라고 잡아떼고 있는 상태에서 실제 그것을 증언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그래서 굉장히 이매한 상태였거든요. 그런데 일본정부가 잡아떼는 장면을 TV로 보시고 김학순 할머니가 노하셔서, 내가 이렇게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는데, 가만히 있으면 사실이 없어지는가. 물론 내가 이제껏 말하지 않고 참아왔던 건 여러 가지 수치심이나 내가 더렵혀진 여자라는 잘못된 생각들 때문이었지만, 그리고 그런 생각이 많이 없어진 건 아니지만 나는 이 문제가 다시는 벌어지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 얘기를 증언해야겠다고 나오셔서 증언하신 거예요. 굉장한 용기구요. 그 이후로 다른 할머니들이 그 모습을 TV로 보시면서 용기가 전염된 거죠.

박인규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한국과 일본간의 문제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들과도 관련이 있고. 더 나아가서는 이게 전쟁과 여성의 문제일 수도 있는데, 우선 궁금한 건 지금까지 알려진 일본군 위안부 제도 피해자가 대략 몇 분이나 되는지, 통계 같은 게 나와 있습니까?

정경아 : 통계는 피해자들의 규모나 일본군 위안부 제도는 조선왕조실록 같이 공식적으로 기록된 역사가 아니에요. 그리고 또 일본이 패전하면서 자신들의 전쟁범죄와 관련된 여러 가지 기록들을 다 말소했기 때문에 실제로 이 문제에 대한 역사를 재구성하려면 여러 가지 증거, 역사의 편린들을 재구성하는 수밖에 없고, 그것으로 추측하는 통계가 있어요. 그런데 이것도 이견이 있고, 일단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서는 전체 피해자 할머니들을 10에서 20만 정도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한국에서만인가요?

정경아 : 아니요. 전체 피해자입니다.

박인규 : 그 분 중에 살아있는 분이 얼마인지는 모르겠군요.

정경아 : 그렇죠. 왜냐하면 모두가 증언한 게 아니기 때문에.

박인규 : 전체 피해자가 최대 20만인데 일본 정부는 책임지지 않고 있다. 참 큰 문제군요. 오늘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 위안부제도 피해자들의 얘기를 만화로 다룬 <위안부 리포트>의 저자 정경아씨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지금부터는 한국에 살아남아 계신 위안부 피해자들은 어떻게 살고 계신지, 또 문제해결을 위해서 우리가 해야 될 부분은 어떤 것인지 질문해 보겠습니다. 나눔의집에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살고 계시죠? 몇 분 계십니까?

정경아 : 지금 9분 계신 걸로 알고 있어요. 계속 숫자가 변하기는 하는데. 왜냐면 들어오셨다가 나가시기도 하시고 새로 들어오시기도 하고 그런데, 지금 현재는 9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박인규 : 지금 국내에서 내가 위안부 제도의 피해자라고 공식적으로 밝히신 분이 몇 분쯤 되죠?

정경아 : 지금 생존해 계신 분이 109명이구요, 그 중 아홉 분은 나눔의 집에 게시고.

박인규 : 13년 5개월째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정부의 공식사과와 배상을 요구하고 있는데 많은 분들이 돌아가시고, 일본정부는 민간기금으로 배상하는 것으로 끝나는 줄 생각하고 있고. 갑갑한 상황인데, 할머니들은 어떠세요? 최근의 그런 상황에 대해서..
▲ ⓒkbs 1라디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정경아 : 할머니들은 여전히 용감하시고 열심히 싸우시고 건강하세요. 많이 돌아가셨고 많이 아프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상태가 괜찮으시면 어김없이 수요집회에 나오시고 열심히 발언하시고. 또 해외로 강연활동도 다니시면서 열심히 살고 게십니다. 그래서 저희도, 언제 해결되겠어? 이런 관점이 아니라 할머니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같은 곳을 쳐다봐야겠다. 활발히 활동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박인규 : 정경아씨도 수요집회에 여러 번 참석하셨죠? 참석해 보시면 느낌이 어떠십니까?

정경아 : 제가 처음 수요집회에 참석한 건 부끄럽지만 이 작품을 하기로 마음을 먹으면서였어요. 그런데 수요집회에 가면 할머니들이 쫙 앉아 계시고 그 뒤로 시위대열이 있고. 앞에는 단상이 있죠. 높지는 않은데 거기서 사회자가 마이크 잡고 발언하고. 또 지지발언 하러 오신 분들 소개하는 형식이거든요. 30분가량 하는데, 제가 맨 처음 가봤을 때는 일본 시민단체에서 왔어요. 와서 앞에서 말씀을 하시는데 눈물을 막 흘리면서 정말 미안하다. 대신 사과하겠다고 하시는 모습을 봤어요. 저는 피해당사자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굉장히 마음이 격해지면서 화가 났어요. 용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고. 그런데 의외로 할머니들은 굉장히 의연하세요. 물론 표정은 굳어 계시지만 의연하시고. 그리고 단지 당신들과 일본군의 문제를 뛰어넘어, 과거사 문제를 뛰어 넘어서 이 문제가 왜 일어났는가. 결국은 전쟁 때문이다. 제가 처음 참여했던 당시가 이라크전이 났을 때라고 말씀 드렸는데, 전쟁 얘기를 많이 하셨어요. 전쟁반대를 강력히 주장하시고, 그런데 거기다 파병을 하느냐면서 강력히 파병반대를 하시고. 그런 걸 보면서 이 할머니들이 정말 훌륭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바깥에서 볼 때는 불쌍하고 가엾으신 할머니.. 이런 동정어린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런 이미지로 그리게 되는데, 실제로 안에 들어가서 보면 그렇게 용감하고 이성적이시고 미래를 향해 계시다는 점이 참으로 돋보였구요. 그런 면을 본받아서 좀 귀를 기울이자는 생각을 하면서, 이 작품을 할 때도 그건 정말 잔혹한 일이었다고 고발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왜 이렇게 됐고 이런 일이 다시 안 일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 안에 문제는 없는가. 이런 문제를 좀 더 폭넓게 얘기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박인규 : 수요집회에 일본 시민단체에서도 왔다고 말씀하셨는데 우리나라 남학생이나 남성들도 많이 옵니까?

정경아 : 그럼요. 많이 오시는데, 시위가 되게 큰 형태로 이뤄지지는 않아요. 평균 50에서 100 명 정도 오십니다.

박인규 : 집회를 통해서 많이 배우는 게 있다고 보시는 겁니까?

정경아 : 그렇죠. 왜냐하면 저 자신도 이 문제에 대해서 사전지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가서 보면서 할머니들에 대한 이미지가 되게 많이 바뀌었고. 그리고 그때는 작품의 방향을 잘 못 잡고 있었는데 이런 문제제기와 방향으로 가야겠다고 결심했듯이, 실제로 가서 할머니들 말씀을 들어보고 개인적으로 접촉해서 말씀을 들어보면 할머니들에 대해서 기존에 갖고 있던 상상을 초월한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시게 될 거고, 새로운 사고로 생각이 넓혀지는 걸 느끼게 되실 겁니다.

박인규 : 일본정부는 공식사과나 배상을 하지 않고 민간기금에 의해서 약간의 배상금을 주면서 끝났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지금 우리 피해자 할머니들이 일본정부에 대해서 요구하는 가장 중요한 건 뭡니까?

정경아 : 당연히 인정이죠. 일본정부가 공식 인정을 하고 그 연장선에서 진상규명에 들어가고 국회결의 차원에서 사과가 나와야 하고, 피해자에 대한 법적배상이 이뤄져야 하는 거고. 이런 것들을 먼저 요구하고 계시죠. 그것은 하나의 강간사건, 전쟁범죄로서 이 사건을 확실히 처리하기를, 결론내기를 바라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위안부제도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만화로 다루는 건 이 문제가 보다 우리 사회에 널리, 깊이 알려지기를 바라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끝나진 않았지만 이 만화를 그리시면서 정부차원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이런 문제를 어떻게 봐줬으면 좋겠다 하는 메시지 같은 게 있다면 마지막으로 말씀해 주시죠.

정경아 :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가지고 할머니들이 너무나 억울한 세월을 사셨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해서 일본정부는 제대로 된 사과를 하고 진상규명을 해라. 이건 당연한 것이구요.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서 단지 일본정부의 문제로만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일본정부가 해결해야 할 어떤 요구사항, 과제들로만 보고 이 사건이 왜 일어났느냐를 따져보면, 사실은 당시 우리나라 안에 인신매매 시장이 팽배해 있었고 조선인 뚜쟁이들이라고 표현하는 매춘업자들이 한 몫 했었고. 그리고 할머니들이 해방 후에 돌아오셔서도 굉장히 오랜 시간을 쉬쉬하면서 살 수밖에 없었던 건,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정조관념 같은 것 때문에 강간피해자를 오히려 손가락질하고 놀림거리 삼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보거든요. 그런 풍토들 전체가 결국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인생을 졸라매고 있었다고 생각하고, 그것의 연장선에서 우리 자신의 잘못을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여전히 강간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는데, 현재 일상생활 속에서. 그런데 그 분들이 다 신고를 하느냐 하면 그렇지 않거든요. 왜냐면 신고를 해봤자 얻을 것보다 잃을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그게 사실은 현실이에요. 그렇지 않은 사회를 만드는 것이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그렇지 않다면 전쟁이 터졌을 때 또 이런 일이 당연히 벌어질 것이다. 일상에서 그렇게 강간에 대해 쉬쉬하는 사회가 전쟁에 휘말리면 그것이 아주 극단적으로 표출되겠죠. 그런 면을 좀 부각시키고 싶습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우리나라가 성폭력 없고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항상 생각하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 하는 바람입니다.

박인규 : 근본적인 책임은 물론 일본에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가 잘못한 부분은 없는지에 대한 자기반성도 필요하다.

정경아 : 네. 좀 더 미래를 향해야 한다는 얘기죠.

박인규 : 어떤 나라를 떠나서 여성을 성의 도구로 보는 잘못된 생각을 버려야겠다. 앞으로 2, 3권 더 좋은 작품 만드시길 기대하면서,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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