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농업이 경제중심에서 이미 밀려났고 쌀개방과 FTA 협상이 이어지면서, 한국농업과 농촌의 위기설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이같은 상황에서 지난 40여년간 농촌지도자 양성을 주도해온 가나안 농군학교도 적잖은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지난 70년대 까지만해도, 농업의 신기술을 배우기 위해서 연간 수만여명의 농민들과 시민들이 다녀갔지만 최근에는 교육에 참여하는 농민이 거의 없다고 하는데요
오늘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 가나안농군학교 김종일 이사장을 만나봅니다.
개방의 압력을 받고 있는 최근 농촌의 현실은 어떠한가? 우리사회에서 농업의 의미는 무엇이고, 우리가 농업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개방을 피할 수 없다면, 농업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가나안 농군학교 김종일 이사장입니다.
김종일 이사장은 1930년 경기도 양주 출생으로 서울 장로회 신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동경대학교 농학부 대학원을 수료했습니다. 1955년 부친 고 김용기 장로와 가나안 농장을 창설했고 62년에는 가나안 농군학교를 만들어, 농촌과 사회 지도자 양성에 힘써왔습니다. 75년부터 가나안농군학교 교장을 지냈으며 88년부터는 가나안 농군학교 이사장을 맡고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박인규 : 가나안 농군학교. 저희 또래들은 잘 알지만 요즘 젊은 분들은 잘 모를 수 도 있을 것 같아요. 가나안 농군학교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소개를 좀 해주시죠.
김종일 : 가나안 농군학교는, 역사적으로 보면 1930년대 후반부터 우리 선친 되는 김용기 장로님이 동지들과 함께 항일운동 겸 농촌개발운동을 위해서 만들어진 이상촌운동에서 시작됩니다. 제가 이사장으로 있는 제1농군학교는 개척지로 보면 4차 개척지고, 농업기술개발과 농민의 협동정신과.. 농민도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이 갖춰야 될 교양과 지식, 인격의 도덕성을 강조해온 일종의 지도자 양성기관입니다.
박인규 : 단순히 농사기술만 가르치는 것보다는 삶을 살아가는 자세나 협동의 마음.. 정신교육을 상당히 중요시 하는 곳이군요.
김종일 : 그렇습니다. 저도 어려서부터 농사꾼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바로 됐을 때 농산물이 결실을 맺고 사람이 바로 되지 못하면 나쁜 농산물이 만들어지고. 인간이 가짜면 농산물도 가짜가 나오기 때문에, 역시 바른 정신, 인격을 가진 농민을 만든다는 게 애당초의 생각이었습니다.
박인규 : 62년도에 가나안 농군학교가 설립됐다면 지금 44년이 됐는데 그동안 다녀가신 분들도 상당히 많을 것 같아요.
김종일 : 정규학교가 아니고 한 달씩 혹은 보름, 열흘씩, 혹은 일주일씩 되니까 그 동안 한 65만 명 다녀갔습니다.
박인규 : 전부 농사짓는 분만 오신 건 아니죠?
김종일 : 대개 20% 가량은 농민, 80%는 비농민입니다.
박인규 : 비농민들은 어떤 이유로 가나안 농군학교에 와서 교육은 받는 건가요?
김종일 : 62년도 당시에 새마을운동이 격렬하게 일어났을 땐데, 농촌새마을운동 뿐 아니라 도시새마을운동과 공장새마을운동이란 게 있었습니다. 그 분들이 교육받으러 온 겁니다.
박인규 : 그런데 최근에는 20% 되던 농민들도 줄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김종일 : 그렇습니다. 농업인구 자체가 점점 감소되니까 교육오는 사람도 아주 극히 일부고, 기업에서 오는 분들이나 일반 사회인들도 예전보다 수요가 적어졌습니다.
박인규 : 6,70년대 새마을운동이 한창일 때와 요즘을 비교해 봤을 때 연간 교육생이 대략 어느 정도로 줄어든 겁니까?
김종일 : 지금은 저희 1,2 농군학교 합해서 한 만 명 되지만, 6,70년대 한창때는 한 학교에 2만 명 됐습니다.
박인규 : 그러면 지금 한 4분의 1 정도 밖에 안 되는 거네요. 예전에는 농자천하지대본이라고 했지만 요즘 여의도역에는 기업인천하지대본이라는 말이 붙어있습니다. 그만큼 농업의 위상이 많이 떨어진 것 같고, 농촌에 젊은이들도 없고 농민들이 상당히 힘들어 하시는 것 같아요. 실제로 농민들을 많이 보실 텐데 요즘 농민들이 살아가는 모습이나 현실이 어떤가요?
김종일 : 농업인구 자체도 10% 이하로 줄었거니와, 농업업종 자체가 사회에서 평가하기를 3D업종의 대표직입니다. 그러니까 젊은이들은 전부 기업을 따라서 도시로 혹은 다른 데로 빠지고. 농촌인구는 평균 65세가 넘습니다. 생산기술도 그렇고 농업 기계화가 진행되지 않으면 농촌생산량은 더 떨어질 거구요. 그리고 젊은이가 남아있어도 자기들의 사회적 욕구충족이 안 되니까 다른 데로 가고. 또 하나 중요한 건, 보셨을지 모르지만 농촌지역에 가면 '베트남 아가씨와 결혼하십시오, 우즈베키스탄 아가씨와 결혼하십시오.' 이런 광고가 붙어있습니다. 이 얘기는 한국 처녀들이 농촌청년에게 오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런 것 때문에도 젊은이들이 떠나갑니다.
박인규 : 농업을 한다는 게 경제적으로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인정과 대접을 못 받는 세태가 됐군요.
김종일 : 예. 저희로서는 상당히 분통이 터지는 게, 사실은 모든 도시인들이 활력을 얻는 건 농민이 만들어낸 쌀과 우유, 고기 아닙니까? 그런데 그걸 만들어낸 장본인이 감사를 받는 건 고사하고 사회적으로 밀려난 계층 혹은 소외계층이 돼간다는 건 이치에도 안 맞고. 전 국민적으로 농민의 소득도 소득이지만 농민의 위상이 굉장히 좀 높아졌으면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박인규 : 사실 농업의 위기가 본격적으로 문제가 된 게 94년 우루과이 라운드.. 쌀개방 얘기가 나오던 때였는데, 그 당시 김영삼정부가 쌀개방을 하니까 농촌의 경쟁력도 소득도 떨어질 것이다. 그래서 농업을 살리겠다고 100조인가 되는 돈을 쓰겠다고 했거든요. 십 몇 년이 지났는데 그게 농촌에 도움이 된 겁니까?
김종일 : 저희 농민 입장에서는 굉장히 요긴하게 쓰인 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데도 있습니다. 드라마에도 나온 게 있는데 그 자금을 받아서 농촌에 다방과 술집을 차린 예가 있을 정도니까요. 그건 농민의 의식도 문제가 되는 거고. 또 하나는 정부에서 줄 때 좀 더 과학적으로, 농민을 살리는 방향으로 줬어야 된다고 생각하구요. 그 대신에.... 지금 쌀 한 가마에 20만원씩 하는데, 그때 잘 받은 사람들은 고칼슘 쌀이나 인삼농법에 의한 쌀, 고성능 쌀을 만들어서 60만원씩도 받습니다.
박인규 : 하지만 이번에 한미FTA협상이 나오면서 정부의 태도를 보면 국제경쟁력이 없으면 도태되는 게 아니냐 이런 말까지 나오면서 정부가 아예 농업을 포기한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는 것 같은데. 사실 땅도 좁고 경작지 면적도 작은 우리나라 농민들에게 국제경쟁력을 가지라고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종일 : 농민으로만이 아니라 이 나라 국민의 한사람으로.. 농업윤리를 기업윤리에서만 따지지 말고, 하나는 아무 때든지 생산되는 식량이 자급자족 돼야 됩니다. 그게 안 되면 어떤 경우에는 안보문제와도 관계될 수 있구요. 어떤 나라에서 식량을 무장화 할 때 대단히 문제가 되니까. 또 하나는, 농촌이 없어지면 환경의 오염도 커집니다. 그건 무슨 얘기냐... 우리나라의 논 면적에 물을 담아두면 우리나라 환경을 깨끗이 하는 데 굉장히 큰 역할을 합니다. 만약에 논이 없고 전부 산이나 들판으로 바뀌면 담수량이 없으니까 공중의 습도도 모자라고 식물에 주는 영향이 굉장히 큽니다. 그런 사회, 환경의 입장에서도 그렇고. 또 인간은 아무래도 식량을 먹게 돼 있으니까 생명을 구제하는 입장에서도 그렇고, 경제논리만이 아닌 인간존중 논리에서 다시 생각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식량부분은 경제적 부가가치와는 다르게 식량안보다 환경보전 측면에서 분명히 보존돼야 한다는 취지의 말씀이시죠? 제가 최근에 봤는데, 도하라운드라고 해서 우루과이라운드 다음에 WTO체제 논의를 하다가 결렬이 됐거든요. 그때 뉴욕타임즈 기사를 봤더니, 결렬시킨 원인은 농업이었다. 왜 그런가 하면, 유럽은 유럽 농민을 보호하기 위해서 보조금을 계속 줘야겠다고 하고.. 미국도 농민의 국제경쟁력이 있다고 하지만 보조금을 거의 천억 달러인가 굉장히 많이 준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두 강대세력이 싸우다 보니 결렬됐는데 결국 핵심은 보호하겠다는 거였다. 그런 걸 보고 유럽이나 미국도 국제경쟁력이 있는데도 농민보호에 굉장히 신경을 쓰는구나 했는데, 우리 정부가 농업이나 농민을 보호하기 위해서 하는 대책을 보시면서 아쉽다거나 부족하다고 느끼는 점이 있으신지..
김종일 : 그렇습니다. 정확한 수치는 몰라도 예전에 6,70년대 정권이 중농정책을 쓴다면서도 농업분야 예산을 보면 불과 3~4%밖에 안 됩니다. 다른 나라는 적어도 13%는 써야 중농정책이라고 하는데.. 지금도 농민을 보호해야 된다는 건 대명제로 나와 있으면서 구체적으로 농민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에 관한 기술적 사회적 측면에서의 농민보호정책이 나와 있지 않습니다. 물론 정부에서 애는 많이 썼겠지만 농민 입장에서 보면 지금 말씀하신 미국이나 유럽쪽이 어마어마한 비용을 들여서 보호하는 것과는 좀 대조적입니다.
박인규 : 무작정 보조금을 준다고 농민이 살아날 것 같진 않고, 엄청나게 큰 기업농을 하기엔 우리나라 농지가 너무 작고. 김종일 이사장님이 보시기에 정부에서 최소한 이런 부분만은 좀 도와서, 국제경쟁력을 완벽히 갖추지는 못해도 농민들을 위해서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다 하는 게 있으신가요?
김종일 : 개인의 생각으로는 우선 아까 말씀드린, 식량은 기필코 자급자족 돼야 되니까 쌀도 고부가가치가 있는 고기능쌀을... 지금 브랜드가 천 몇백 개 있는데 그런 것에 좀 더 과학적인. 그들에게 경제적인 걸 줘서 고부가가치가 있는 브랜드를 만들게 하고. 그리고 농산물 전반에 관한 유통구조가 개선돼야 됩니다. 지금은 그저 수요 공급의 원칙에 맞춰져 있는데 그러지 말고, 농산물이란 건 구조상 수요 공급의 원칙을 벗어날 수는 없지만 정부에서 비축해 뒀다가 비수기에 내놓는다든지. 보니까 일본이 비교적 그런 게 잘 돼있습니다. 우리도 그런 걸 농협이나 기타 기관을 통해서 한다든지... 과잉됐을 때는 비축해 두고 공급이 끊어질 때는 방출해서 가격을 맞춰주는 유통구조가 있었으면 좋겠구요. 또 유통과정에서 우린 기생충이라고 부르는데, 기생충이 많습니다. 자꾸 중간 마진이 생기는데 그게 줄어들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양계장에서 노계 한 마리에 5백원씩 가져갑니다. 그런데 그게 도시에 와서 통닭이 되면 만원에 팔립니다. 그 유통과정에서 여덟 군데쯤 거치면서 결국 생산자인 농민은 500원에 팔고 소비자는 만원에 잡수시게 되니까. 이런 기생충이 좀 없어지도록 정책을 세워줬으면 하는 게 농민측 입장이고. 제일 심한 게 그 정도지만 쌀도 비슷하고 모든 농산물이 비슷합니다. 그래서 농민이 수탈당하는 일도 유통구조상에 많이 있습니다.
박인규 : 어쨌든 유통상인들도 나름대로 그걸로 생활을 하시니까.. 사실 이런 유통단계를 줄이고 소비자와 농민이 직거래했으면 좋겠다고 하면서도 잘 안돼요. 정부가 유통단계를 줄이는 역할을 할 수가 있는 건가요?
김종일 : 정부에서는 잘 안될 것 같아요. 저는 그래서 개인적으로, 생활협동조합을 만들어서 직거래운동을 해봤습니다. 그런데 개인의 능력으로는 한계가 있고 정부에서 조금 지원해주면 직거래운동을 통해서 농민을 보호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데, 민간운동으로 할 수 있도록 유도해 주면 좋을 겁니다.
박인규 : 농민들이 신협 같은 것을 통해서 직거래운동을 하되, 그걸 정부에서 보조해 주는 형식으로 하면 좋겠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가나안 농군학교 김종일 이사장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우리나라 농촌은 상당히 쇠퇴일로에 있긴 하지만, 가나안 농군학교는 외국에서 오히려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김종일 : 예. 저희는 54년도부터 정착해서 62년에 제1농군학교를 만들었고, 원주시 신림동에 있는 농군학교를 73년도에 세웠습니다. 그리고 2000년도에 와서는 경상남도 밀양에 밀양농군학교를 만들어서 주로 부산과 경남 쪽의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역시 우리나라는, 힘들다고는 해도 농업분야도 점점 좋아진 거고 소득도 높아지니까, 이제는 우리보다 못 사는 이웃들을 향해서, 아시아에 도전하자. 그래서 맨 먼저 간 데가 필리핀입니다. 필리핀이 과거에는 잘 살았지만 지금 굉장히 못 사는 나라니까. 거기 가서 우리가 봉사를 해보자고 해서 필리핀에 있고. 그러다 보니까, 태국 사람들이 비교적 새마을운동 때부터 우리나라에 배우러 오던 사람들인데, 방콕시장을 했던 잠농이라는 사람이 와서 교육을 받고 농군학교를 해야겠다고 해서 거기는 그 분이 직접 합니다. 우리에게 와서 교육을 받고 우리가 지원을 해주고. 그 다음에는 인도네시아,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인도, 아프리카, 요르단, 중국.. 중국에도 단동과 왕청이란 곳에 두 군데, 그리고 우즈베키스탄에 있습니다. 대개는 농업개발도상국가라고 보고.
박인규 : 그러면 총 몇 개 나라에 있는 겁니까?
김종일 : 12개 나라에 있습니다.
박인규 : 농군학교에 계시는 분들이 현장에 가서 가르치시는 간가요?
김종일 : 대개는 거기 요원들을 데려다 강원도에 있는 제2농군학교에서 훈련시켜 보내는데 이런 게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기독교계 17개 교단에서 선교사들이 세계에서 제일 많이 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분들이, 미얀마나 인도네시아, 라오스, 캄보디아 쪽이 사회주의 국가면서도 불교국가거나 무슬림이라서 선교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우즈베키스탄도 사회주의라서 어렵고. 그러나 그 국가들에서도 한국이 급격히 30년 동안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올라간 역사를 압니다. 그들이 볼 때 그게 새마을운동이라고 보고, 새마을운동의 불길을 일으킨 곳이 가나안 농군학교다. 그러니까 가나안 농군학교가 당신들의 농촌과 농업기술을 위해서 우리가 수고해 주겠다고 하니까 굉장히 좋아하고. 거기에는 각 교단에서 나가있는 선교사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선교를 못하니까 농군학교로 변신해서. 비교적 여러 나라에 정착이 되는 데에는 그런 역사적인 일도 있습니다.
박인규 : 12개 나라에 나가서 활동하시다 보면 아실 테니까.. 그 나라들의 농업이 차지하는 위상이나 위치가 우리나라하고는 상당히 비교가 될 것 같아요
김종일 : 지금 개발도상국가라는 건 역시 우리나라 60년대처럼. 국가에서는 소위 중농정책을 쓴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들의 기술이 너무 낙후됐고, 또 그 사람들도 잘 사는 운동을 농업에 투자하는 건 투자효율이 없다고 보고. 오히려 우리나라의 IT산업 같은 쪽에 더 관심이 더 많은 것 같구요. 그러나 우리나라 보다는 여건이 낫습니다. 우선 1차산업이 돼야 나머지 2,3차 산업이 성공할 수 있다고 그들도 보니까.
박인규 : 김종일 이사장님은 사실 아버님의 뜻을 이어받아서 계속 가나안 농군학교를 하시는데, 바로 흔쾌히 하시진 않고 정착하시기까지 고민이 많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김종일 : 예. 저는 5살 때부터 일을 했으니까요. 초등학교 다닐 때도 방학에도 쉬지 않고 일을 하다 보니까.. 나중에 대학갈 때 어떤 과목을 전공해야 아버지 직업과 반대되는 직업을 가질 수 있을까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사실은 사치스럽게 일본에 유학갈 수 있는 계기가 못 됐는데 아버지로부터 합법적으로 도망가는 길이 일본으로 가는 길이어서 일본에 가게 됐고. 그러나 결국 나중에 생각해 보니까 역시 우리 아버지의 사상이 옳았다고 인정이 되고. 그래서 탕자가 돌아오듯 돌아와서 잘못을 고백하고 그 후엔 열심히 했습니다.
박인규 : 농사꾼이자 농촌지도자, 교육자라고 할 수 있는데, 후회는 안 하십니까?
김종일 : 후회 안 합니다.
박인규 : 아드님도 아마 아버님의 뜻을 따른다고 들었는데요, 분자생물학 박사라고 들었습니다.
김종일 : 네. 미국에서 자연과학을 전공했지만, 분자생물학 하는 학자는 너무 많으니까 넌 나와 같이 미생물이나 농업과학을 이끄는 데 같이 협력했으면 좋겠다. 그런 뜻으로 같이하고 있습니다. 온지 한 달인가, 얼마 안 됩니다.
박인규 : 분자생물학 박사면 요즘 굉장히 잘 나가는 직업인데, 앞으로 그 아드님은 어느 쪽 일을 하시게 되나요?
김종일 : 제가 개인적으로 우즈베키스탄 농업개발을 위해서 더 중점적으로 활동을 합니다. 왜냐하면 거기는 고려인이 20만 명 가까이 되는데 그들이 너무 빈곤합니다. 또 그곳 농업이 아주 낙후돼 있어서 그쪽도 돕고. 또 제가 재단법인의 이사장이라 재산관리 등에도 젊은이가 필요하니까.. 저는 나이를 먹었고. 그래서 저와 함께 일을 하고, 농군학교를 돕는 일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최근에는 한미FTA협상이 진행되고 하니까 일부에서는 아예 농촌 자체가 없어지는 게 아니냐는 극단적인 비관론까지 나오는데.. 그렇지만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농촌은 우리 마음의 고향이고 삶의 고향이거든요. 그래서 농업을 대하는.. 국민들에게 농업이란 게 어떤 것이다라는 말씀을 좀 해주시죠.
김종일 : 아까 말씀드린 대로 농촌은 없어질 수 없습니다. 농촌이 없어지면 황폐화 되고 자연도 전부 훼손되고 사막화 될 거고. 또 하나, 우리 인간은 먹어야 살기 때문에 식량은 어떤 경우에도 자급자족이 돼야 되고. 또 하나는, 농촌은 우리 모든 인간의 고향이고 인간의 휴식처기 때문에 그런 아름다운, 행복한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농촌분야가 굉장히 중요시 돼야 되고 그곳이 아름답게 가꿔져야 도시에 있는 분들도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경제도 사람 잘 살기 위한 건데 경제가 삶의 논리를 압도하는 건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우리 농촌을 발전시키고 살려 나가는 데 큰 역할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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