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한달 2만원으로 한 어린이를 도울 수 있습니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한달 2만원으로 한 어린이를 도울 수 있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08/10] 국제이주기구 김철효 연구원

안녕하십니까? 박인귭니다.

하루에 1달러 이하로 생활하는 사람들을 절대빈곤인구라고 부르는데요 빈곤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현재 전 세계의 절대빈곤인구는 인구의 27.2%인 15억 명을 넘습니다. 그리고 해마다 2500만 명씩 늘고 있다고 하는데요, 절대적 빈곤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먹고 사는 것조차 어렵기 때문에 자녀를 키울 능력도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자녀를 돈을 받고 팔아버리는 부모도 있습니다. 부모 곁에서 매일 굶느니 끼니라도 해결하라고 사정이 좀 나은 집으로 보내는 것인데요 팔려간 자녀는 부모의 생각과는 다르게 노예생활을 하며 비참하게 보내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오늘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 국제이주기구 서울사무소 김철효 연구원을 초대했습니다. 지난 4월 아프리카 가나를 직접 방문한 뒤부터 가나 인신매매아동돕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데요, 지금 가나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일까? 인신매매를 당하는 아동을 도울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일까?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국제이주기구 김철효 연구원입니다.

감철효 연구원은 지난 2000년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2001년 영국 에섹스 대학에서 인권관련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유럽에서 유엔인권관련활동을 모니터하는 국제기구인 팍스로마나와 국제인권단체 엠네스티인터내셔널에서 활동했습니다. 2002년 가을 한국에 돌아온 후 민변에서 난민관련 상담을 맡아 왔으며 지난해 초부터 국제이주기구에서 프로젝트 코디네이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박인규 : 우선 국제이주기구라는 단체를 잘 모르실 것 같아요. 어떤 단체죠?

김철효 : 저도 들어오기 전에는 몰랐던 곳이구요, 정부간 기구입니다. 국제기구는 아니고 정부들이 어떤 사안들을 한 국가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있을 때 서로 협력을 하기 위해서 기구를 설립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런 기구입니다. 1951년에 2차대전 이후의 난민들을 본국으로 되돌려 보내거나 정착을 지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처음에 유럽에서 생겼구요, 그 이후에 사업들이 여러 가지로 확장되면서 지금은 인신매매문제나 이주민의 권리, 이주노동자문제 등 다양한 부분을 다루고 있습니다. 한국은 88년에 가입했구요, 그 이후에 별다른 활동이 없다가 최근 4,5년 사이 이주노동자 문제가 크게 불거지면서 활동들이 좀 많아지게 됐습니다.

박인규 : 88년도에 가입한 건 그 당시에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을 텐데요..

김철효 : 당시에 유엔 가입을 했죠. 그러면서 국제기구에 다 가입하자는 분위기였던 것 같습니다. 저도 잘 모르지만.

박인규 : 인신매매도 다룬다고 하셨는데, 그것도 이주에 해당됩니까?

김철효 : 일단 기본적으로는 범죄죠. 하지만 합법적 이주도 있지만 불법적 이주도 있고 범죄적인 이주도 있는 거고. 인신매매도 국경을 넘어서서 사람들이 사고 팔리는 문제들이 있기 때문에 국가를 넘나드는 국제이주문제입니다.

박인규 : 자발적이든 강제적이든 이주에 포함된다. 최근에 가나에 다녀오셨는데 어떻게 가나인신매매아동돕기 활동이 시작된 건지 과정을 좀 설명해 주시죠.

김철효 : 저희가 작년부터 한국언론재단과 같이 기자분들을 인권교육을 시키기 위해서 외국의 인권상황이 열악한 곳에 같이 가서 보고 연수하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서아프리카에 가게 됐는데, 의도했던 건 아니지만 가나에서 저희 국제이주기구와 다른 국제기구들이 어떤 인권활동을 하는지 보러 갔습니다. 그때 가나의 상황을 알게 됐고, 같이 갔던 많은 기자분들이 여기서 기사 한 번 쓰는 것으로 끝내지 말자. 지속적인 연결고리를 찾아보자고 제안했고 그 업무를 저희 사무소가 맡아서 하게 됐습니다.

박인규 : 어떻게 보면 우연히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김철효 : 가나 사무소는 이미 4,5년 전부터 활동하고 있었고 저희는 사실 잘 몰랐죠.

박인규 : 가나에 인신매매가 얼마나 심각하길래 그런 활동까지 하게 됐습니까?
▲ ⓒkbs 1라디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김철효 : 저희가 가나에서 인신매매된 아동 모두를 돕고 있지는 못한데요, 그 중에 특히 고깃배에 팔려가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저희가 추산하는 것만 해도 5천 명이 넘고, 고향 마을에서 부모들이 대부분 양육할 여력이 안 되거나 할 때, 우리 돈으로 60 달러.. 6만원 정도를 받고 볼타호수라는 지역으로 보냅니다.

박인규 :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를 취직도 시키고 공부도 시킬 생각으로 보냈는데..

김철효 : 네. 게다가 돈도 받을 수 있으니까. 그런데 실제로 가서는 대부분의 아동들이 10시간 이상 노동을 하고 있구요, 호수 바닥에 그물을 설치해서 고기를 잡아서, 그물에서 고기를 떼내서 시장에 팔고. 이런 일을 하고 있는데 옛날에 우리나라에서 고깃배에 팔려간다고 했던 그런 일들이 정말 일어나고 있는 겁니다. 정말 놀랐는데.. 아이들이 정말 슬프게 얘길 하는데, 그물을 설치하다가 발이 걸려서 못 나오면 죽는 거고, 말라리아에 걸리거나 온갖 심각한 질병에 걸리는 경우가 많구요. 심리적으로도 충격을 너무 많이 받아서 저희가 구출해 와도 사회에 적응을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박인규 : 그 아이들 나이가 어느 정도 되나요?

김철효 : 5살에서 15살 사이 정도.

박인규 : 이 아이들을 어떻게 구출하는 겁니까? 다시 돈을 주고 사오나요?

김철효 : 그렇죠. 가나에서도 인신매매방지법이란 게 최근에 생겼는데, 인신매매를 하는 사람들을 처벌을 하도록 하는 법은 있지만 쉽지 않은 게, 그 아이를 사간 어부들은 부모가 아는 사람이고 동네에 살던 사람이거나 친척인 경우가 많아요.

박인규 : 사간 사람도 자기가 아이를 착취한다거나 그런 관념이 없군요. 같이 일하는 거다?

김철효 : 전혀 없어요. 인신매매라는 개념 자체를 모르고. 그 사람들을 처벌하는 게 사회적으로 쉽지 않은 거죠. 그래서 일단 아이들을 돈주고 사오는 경우가 많구요. 저희가 처음에는 약간 실패를 했어요. 아이들을 돌려보내면 부모가 다시 팔고, 아이들도 학교에 적응을 잘 못하고. 그래서 일단 아이들을 학교나 가족에게 적응할 수 있게 몇 개월간 재활교육을 하고 부모에게 보냅니다. 또 부모에게도 아이들을 양육할 수 있도록, 경제적 기반을 닦을 수 있도록 소자본대출 등을 통해서 아이를 더 이상 팔지 않아도 되는 경제적 여력을 가질 수 있게. 뿐만 아니라 어부들은 아이들이 싸고 임금을 주지 않아도 되니까 쓰는 건데, 그렇지 않은 방식으로 합법적인 노동력을 고용할 수 있게 하는 지원도 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4월에 다녀오셔서 가나의 인신매매 당하는 아동들을 돕자는 캠페인을 국내에서도 시작하셨는데, 좀 성급한지 모르지만 실적은 어떤지 말씀해 주시죠.

김철효 :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한달 정도 밖에 안 됐습니다. 준비과정이 있었구요. 저희 국제이주기구 웹사이트에 오시면 후원신청서가 있습니다. 그걸 작성하셔서 보내주시고 매달 2만원이면 한 아이를 학교에 보낼 수 있는 돈이 되거든요. 그 돈을 보내주시면 저희가 그걸 전달해서 가나의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박인규 : 하루에 700원을 내며 그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고 생활할 수 있는 거네요. 그렇게 해서 국내에서 호응이 좀 있던가요?

김철효 : 솔직히 기대를 안 했어요. 저도 가나에 대해서 알고 있던 건 초콜릿과 축구 정도였습니다. 이 나라에 대해서 별로 관심도 없었고. 그런데 생각보다 언론에 몇 번 나오면서 되게 짧은 시간 내에 많은 분들이 후원해 주시겠다고 보내주셔서 지금 한 100명 좀 넘는 숫자가 됐습니다.

박인규 : 그럼 100명의 어린아이들을 구해낸 거라고 말할 수 있는 건가요?

김철효 : 그렇죠. 구해낸 것 뿐 아니라 그 아이들이 지속적으로 학교를 다닐 수 있게, 그리고 성인이 될 때까지 더 이상 팔려가지 않을 수 있게 된 거죠.

박인규 : 좀 죄송스러운 질문일지 모르지만 돈 내시는 분들 입장에서는 그 돈이 정말 아이들에게 제대로 가는 건지 의심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김철효 : 충분히 그렇죠. 저희도 그걸 어떻게 잘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었구요.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 국내에서는 일대일 후원을 하는 NGO도 많은데, 쉽게 말하면 후원자의 만족도를 높이면 높일수록 돈은 적게 갑니다. 후원자에게 자료를 만들어 보내주거나.. 심한 경우에는 후원금의 절반 가까이가 그런 데에 소요되는 일도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가능하면 그런 걸 줄이려고 생각했고, 저희 웹사이트를 보셔도 아시겠지만 좀 어설퍼요. 전화하시는 분들도 왜 전화로 후원금을 보내는 거라든지 인터넷으로 바로 보낼 수 있는 시스템이 없느냐. 다 있는데.. 저희도 그런 걸 하려고 했는데 돈이 많이 들어요. 그러느니 차라리 저희를 믿고 돈을 보내주실 수 있는 분이.. 적더라도 그 돈을 그대로 다 전달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박인규 : 사실 가나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도와줄 어린아이들이 무척 많죠. 일부에서는 국내를 돌아보자는 말도 합니다. 결식아동도 있고 소년소녀 가장도 있고 탈북자도 있는데 무슨 아프리카까지 가서 도와주느냐. 일종의 사치라고 보시는 분도 있는 것 같아요. 이런 활동이 왜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김철효 : 남아시아에서 축구공 만드는 아이들이 좋은 예가 될 것 같아요. 5살 6살짜리 애들이 하루 10시간씩 어두침침한 곳에서 바늘에 손을 찔려 가며 축구공을 만들었는데, 그게 우리가 2002년 월드컵에서 썼던 피버노바라는 축구공이죠. 그걸 갖고 저희는 즐기고 환호했습니다. 간접적인 가해자가 우리가 될 수 있고 책임이 있지 않느냐. 팔은 안으로 굽지만 다리는 뒤고 굽거든요. 나라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내가 가해자거나 책임이 있는 문제라면 국경이 의미가 있는지. 또 인권의 문제로 생각한다면, 인권은 국민의 권리가 아니라 사람의 권리거든요. 사람은 누구나 다 똑같고. 가나의 아이들도 똑같이 아프고 학교 다니고 싶어하고 축구선수, 음악가가 되고 싶어하는 꿈이있는 아이들입니다. 가서 보니까 더 그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박인규 : 다른 나라 아이들에게 일어나는 일이지만 그게 결코 우리와 상관없는 문제는 아니다. 지구촌 한가족으로서 도와줄 필요가 있다. 혹시 방송 들으시고 가나 아이들을 돕고 싶다는 청취자가 있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김철효 : 저희 웹사이트 주소를 알려드릴까요? . 국제이주기구 홈페이지에 들어오시면 신청서와 후원방법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은행계좌이체 같은 형태로 돈을 보내주시면 저희가 그 돈을 직접 전달하고 그 돈이 현지에서 어떻게 쓰였는지까지 나중에 보고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가나 인신매매아동복지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국제이주기구 서울사무소의 김철효 연구원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지금부터는 개인적인 질문을 좀 해보겠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을 보면 예전보다 활동폭이 넓어졌단 생각이 들어요. 취업 외에 시민단체나 자원봉사활동도 하고. 특히 김철효 연구원처럼 국제적인 인권활동도 많이 하시고. 어떻게 보면 좋아졌다고 할 수 있는데, 어떻게 해서 이런 활동, 특히 국제적인 활동을 하실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네요.

김철효 : 학교 다닐 때 저희 세대가 말하자면 학생운동의 끝물이랄까요. 96년에, 기억하시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한총련 사태라든지 이런 걸 거치면서 학생운동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고민을 많이 하던 시기였구요. 그러다 우연히 엠네스티 인터내셔널이란 단체를 알게 됐고 인권이란 단어를 처음 접하게 됐어요 대학 다닐 때. 당시에는 주로 광주학살자처벌, 우루과이라운드 반대 같은 주제였지 인권이란 말을 하면 무슨 배부른 소리냐.. 그랬는데 저는 그 단어를 조금씩 공부하고 알게 되면서 좀 더 본질적이고 기본적인, 근본적인. 사회가 나가야 될 방향이 인권보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공부도 하게 됐구요. 특별한, 아주 중요한 계기 보다는 고민을 하고 그걸 키워나가면서..

박인규 : 광주.. 우루과이라운드 반대 같은 문제보다도 인권이라는 것에 더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씀하셨는데, 아직도 한국에서는 우리 자신의 문제에 관심이 많고 국제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좀 우리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이 많은 것 같아요. 인권운동을 하시고 엠네스티 인터내셔널 같은 국제단체에도 참여 하셨으니까.. 보편적인 인권에 대한 감각과 국내에서 활동하실 때의 차이를 느끼기도 할 것 같아요. 어떻습니까?

김철효 : 처음에 제가 인권운동에 관심갖게 됐을 때로부터 10년이 지났는데요, 엄청나게 많이 바뀌었습니다. 미얀마의 아웅산 수지라는 사람을 지금은 많이 알고 있죠. 양심수고 독재치하에서 민주화운동을 벌이는 사람으로 알고 있는데 10년 전만 해도 아는 사람이 별고 없었고, 아웅산 수지를 석방하자 이런 얘길 하면 정말 욕 많이 먹었어요. 지금 그 문제가 왜 중요하냐. 그런데 요즘 제가 많이 놀라고 있는 게, 미얀마에 한국기업들이 들어가서 석유개발이나 이런 것들을 하는 게 옳지 않다. 그곳의 독재정권을 배부르게 하는 건 우리가 할 일이 아니다 이런 식으로. 인권침해로 인해서 누군가는 간접적으로 이익을 보고 그게 내 자신일 수도 있고 우리 사회일 수도 있다는 생각들을 조금씩 해나가는 것 같아요.

박인규 : 국제감각이나 세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김철효 : 그게 내 문제와 완전히 동떨어진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아가고 있는 것 같구요.

박인규 : 국내 문제기도 하면서 지역적 문제기도 하면서 세계적 문제라고 할 수 있는 게, 국내에 들어와 있는 이주노동자들. 우리 인구의 1% 정도 된다고 하는데 국제이주기구이기 때문에 이주노동자 문제에 대해서도 상당한 활동이 있을 것 같은데요. 어떻습니까?

김철효 : 저희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직접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구는 아니구요. 그런 데는 국내에 있는 150개 정도의 NGO. 종교단체라든지 많은 무료지원이나 법률지원을 해주고 있구요. 저희는 좀 더 정책적인 면에서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 노동이주라는. 외국에서 노동자를 들여와서 관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정책적인 문제에 대한 연구나 조사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이주노동자들 불법체류자들이 단속되고 구금되고 강제퇴거 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인권침해가 많았다는 언론보도도 있고 해서 그 문제를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실태조사를 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와 같이 했는데 위원회가 법무부에 권고를 했구요 많이 개선되고 있는 것 같아요.

박인규 :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한국사회의 인식이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

김철효 : 유럽에서는 이주노동자를(독일에서라고 들었는데) '게스트워커'라고 부릅니다. 초청노동자. 그들이 돈을 벌러 온 건 맞지만 우리 한국이 필요해서 데려온 사람들이고. 한 편으로는 나쁘게 범죄자라고 보시는 분들도 많지만, 또 한편으로는 불이익을 당하는 이주노동자들을 불쌍한 사람으로 보는 경향도 많은 것 같아요. 저는 범죄자로 보는 것도 그렇지만 불쌍한 사람으로 보는 것도 아주 좋은 방식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기본적으로 똑같은 사람으로 봐야 하는데 자꾸만 뭔가 다르거나 열등한 사람으로 본다 이거죠?

김철효 : 그렇죠. 많은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지원을 위한 활동들이 있지만, 자선사업이나 불쌍한 사람들을 돕기 위한 방식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의미있고 중요하고 필요한 일입니다. 무료로 진료해준다든지 하는 것들. 그런데 제 생각에 이주노동자는 노동자거든요. 노동권을 가진, 똑같은 권리를 가진 사람이고. 그 사람들이 자신의 권리를 인식하고 보장받도록 하는 식의 접근이 더 옳지 않느냐 하는 식의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일방적으로 도와주는 일도 필요하지만 그것이 이주노동자 문제를 푸는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는 없다. 그럼 어떻게 대체해야 된다는 말씀이신가요?
▲ ⓒkbs 1라디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김철효 : 예를 들면, 무료진료소 같은 경우도 많은 지원을 해주고 있는데,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아프면 무료진료소에 가서 일시적인 처방을 받고 진료를 받습니다. 그래서 의료보험에 가입을 안 해요. 일단 그런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도 문제가 되구요. 정부에서 예산을 쓰고 있지만 언제까지 무료진료를 해줄 수 있는지는 모르는 문제고. 또 역차별 아니냐 하는 얘기들도 있고.

박인규 : 그런데 정부에서 지원을 많이 해줍니까?

김철효 : 작년, 재작년부터 무료진료소를 직접 짓거나 간접적으로 적십자 등을 통해서 지원하기도 하고. 많이 되고 있습니다.

박인규 : 말하자면 무료진료소를 통한 이주노동자들의 진료가 임시변통이다.

김철효 : 근본적인 해결은 보건소에 가서 똑같이 진료받는 거죠. 물론 그러지 못하게 돼있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더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의료보험이라든지 한국사람과 똑같은 대우를 받을 수 있게 하는 제도를 더 확대시켜 나가고,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더 많이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또 하나는 이런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이주노동자들이 계속 살면 자녀들이 생기는 거 아닙니까? 이런 분들의 자녀들에 대해서는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어떻게 보고 계세요?

김철효 : 최근 1,2년 사이 상당히 많이 나아졌어요. 불법체류자 자녀들조차도 학교에 다닐 수 있는 제도가 만들어졌고. 그런데 더 문제는 불법체류자 자녀들이 부모 따라 온 것뿐인데 한국에 산다는 것만으로 불법인 사람이 된 거죠. 이 아이가 성장과정에서 겪는 심리적 부담이나.. 아무래도 불법체류자 자녀이다 보면 의료진료나 교육면에서 많이 차이가 날 수밖에 없고, 또 한국사회에 잘 적응하느냐 하는 문제도. 학교에 다닐 순 있지만 차별을 당할 수도 있고. 그런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박인규 : 이주노동자들이 국제이주기구 서울사무소를 찾아가면 현실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나요?

김철효 : 저희가 무료진료를 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법률상담을 해주는 것도 아니고. 그런 문제들이 있으면 저희가 많은 NGO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면서 같이 하고 있는데, 그런 쪽으로 소개를 시켜드리고 있구요. 그게 아니라 국제적인 네트워크가 필요한 일. 예를 들어 우크라이나에서 저희 사무소로 전화가 와서, 한국의 어떤 여성이 인신매매 당할 위험에 처해있는 것 같다. 그런 제보가 들어와요. 가족들로부터. 그런 것은 저희가 나서서. 물론 NGO들과 같이 협력을 해야 일을 할 수 있는데, 그런 사태를 파악해서 우크라이나에 알린다든지. 그 사람들이 풀려나올 수 있게 도와준다든지 이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작년부터 국제이주기구 서울사무소 일을 시작하신 건데, 앞으로 계속 인권관련 일을 계속 하실 것 같습니다. 앞으로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 마지막으로 말씀해 주시죠.

김철효 : 제가 이런 인터뷰를 나올 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아직 정신없이 일하고 있는 때라서 특별한 계획이라기보다는 인권과 관련된, 직접적인 인권운동은 아닐 수도 있거든요 제가 하는 일이. 하지만 그런 관련된 일을 계속 하고 싶은 생각이 많구요. 특히 인권이라는 건 법이나 제도로 보장되지 않는 권리라고 생각하거든요. 사람의 권리. 제도나 법으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에.. 그래도 사람인데 나한테 이런 권리는 줘야 되지 않느냐 하고 부르짖는 게 인권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건 사회의 소수자나 알려져 있지 않은 사람들. 이주노동자들이 80년대 말부터 한국에 있었는데 저는 몰랐죠. 그렇게 모르고 있는 부분에서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서 그들이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게 하는 일들을 하고 싶은 생각이 많습니다.

박인규 : 대략 7,80년대까지는 우리도 먹고 사는 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그때 사실 먹고 사는 게 인권이었는데, 지금은 인권의 범위가 넓어지고 인간답게 살기 위한 보다 구체적인 것들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런 부분에서 김철효 연구원도 많은 역할을 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