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드림을 찾아 한국행을 선택했던 중국 조선족들.... 현재 국내에 거주하는 중국 조선족은 15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조선족들은 한국으로만 돈벌이에 나서는 것은 아닙니다. 중국내에서도 농촌에서 도시로, 또 일본과, 미국, 유럽 등지까지 진출하고 있습니다.. 삶의 터전을 버리고 탈 지역화 바람이 심각하게 일고 있는 중국 조선족들... 일부에서는 조선족 사회의 붕괴를 우려하기도 합니다만 최근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조선족의 노동력 이동과 사회변화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조선족 출신 박광성씨는 조선족의 해외진출은 조선족 사회붕괴나 민족해체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오늘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 박광성씨를 만나 중국 조선족의 해외진출은 어느 정도인가.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조선족은 한민족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나. 조선족들이 우리사회에 바라는 바는 무엇인가 등을 알아봅니다.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조선족 출신 사회학자 박광성씹니다.
박광성씨는 1973년 중국 흑룡강성 해림시 출신으로 1997년 연변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했고 2000년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2000년 8월 서울 유학길에 올라 서울대학교 에서 『세계화 시대 중국 조선족의 노동력 이동과 사회변화』 를 주제로 논문이 통과돼 이번 달 말 박사학위를 받을 예정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박인규 : 우선 박사논문 통과된 것 축하드립니다. 아직 학위를 받으신 건 아니죠?
박광성 : 고맙습니다. 학위는 8월 말에 받기로 돼있습니다.
박인규 : 조선족 출신으로 서울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으신 분이 이전에도 좀 있죠?
박광성 : 네. 여러 명 있습니다.
박인규 : 조선족 출신으로 유학오신 것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논문주제가 상당히 관심을 끕니다. '세계화 시대 중국 조선족의 노동력 이동과 사회변화'. 쉽게 말하면 중국에 계신 우리 동포들이 많이 떠나고, 그러면서 조선족 사회가 어떻게 변하느냐 이런 얘기 같은데, 중국에 계신 조선족들이 외국이나 국내의 타 지역으로 많이 떠나고 있습니까?
박광성 : 조선족의 노동력 이동범위가, 근 10년 내에 조선족 총 인구의 근 50% 정도. 노동력의 근 70% 정도가 이동에 참여했습니다. 짧은 시간에 이동강도가 매우 높고, 이들의 진출지역은 중국 국내에서는 최남단의 주강 삼각주까지 퍼져있고, 국외로는 한국, 일본, 북한, 주변국은 물론 미국, 유럽 등 많은 나라에 퍼져 있습니다. 2002년 연변공화국 출입국관리처 통계를 보면 조선족 자치주 지역주민이 88개 나라에 진출해 있는 상황입니다.
박인규 : 대단하군요. 그렇다면 지금 연변자치주에는 사람이 없겠네요?
박광성 : 연변자치주 같은 경우는, 대부분 농촌지역이나 소도시 지역은 많은 인구가 유출된 상태구요, 나머지 인구는 연길 같은 중심도시로 집결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이렇게 원래 삶의 터전을 떠나는 건 돈을 쉽게 말해서 돈을 좀 벌어보자는 겁니까?
박광성 : 그렇죠. 조선족이 원 거주지를 떠나는 건 전통적인 거주지가 그들의 발전적 욕구를 만족 못 시키는 게 주요 원인이죠. 지역경제가 낙후하고 경제기회가 제한돼 있기 때문에 외지로 진출한다고 봅니다.
박인규 : 삶을 향상시킬 기회가 별로 없어서.. 그렇다면 연길 시나 연변자치주가, 조선족 사회 자체가 없어지는 게 아니냐 이런 걱정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박광성 : 없어진다고는 보지 않는데, 1998년부터 2002년까지 해외에서 연변지역에 송금된 돈이 40억 달러로 추정됩니다. 이렇게 해외에서 많은 돈이 지역에 흘러들면서 초래되는 결과는 바로 지역중심도시로의 인구집중. 따라서 오히려 농촌지역에 퍼졌던 인구가 해외송금으로 인해서 중심도시로 모이고 있지 않나. 중심도시 발전은 오히려 더 빨라진다. 이걸 우리가 조선족 사회의 해체라고 볼 수 있느냐. 이런 문제가 있거든요.
박인규 : 오히려 살기는 좋아졌다.
박광성 : 그렇죠. 중심도시가 발전하니까 오히려 조선족의 삶의 질은 높아지고 있다고 봅니다.
박인규 : 98년부터 2002년까지. 4년 사이에 40억 달러면 한 해에 10억 달러씩 들어왔다는 얘기네요.
박광성 : 그 정도로 추산되는데, 해외송금액이 2002년 연변조세수입의 2.6배에 달합니다.
박인규 : 연변 자체 내에서 세금을 거둔 것보다 외국에 나간 조선족이 보낸 돈이 2.6배. 엄청나군요. 제기 15년 전쯤에 연길에 한 번 갔고 작년에 한 번 갔는데, 15년 전에 아주 시골스러웠던 연길공항이 작년에 가봤더니 장춘공항보다 크더군요.
박광성 : 이미 국제공항이 됐구요, 한국, 러시아, 일본의 항선이 개통될 것으로 알려져 있구요. 국내에서도 베이징, 심양 두 개 항선밖에 없었는데 요즘은 광주, 상해 등으로 확대되면서 연길공항이 그 지역 중심공항으로 발돋움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노동력 인구의 70%가 원래 살던 곳을 떠나서 중국 내 도시나 한국, 일본, 미국, 유럽 등 외국으로 떠났다. 중국의 다른 사회에서도 이런 데가 있나요?
박광성 : 중국에서 조선족은 특이한 사례입니다. 그래서 소수민족 연구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조선족같이 단시간 내에 이런 변화패턴을 보이는 소수민족이 드물기 때문에, 혹시 다른 민족에게서 이런 변화가 나타난다고 할 때 이것이 중국사회 전반의 발전과 변화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미래를 내다보는 시각에서 지금 조선족은 상당히 중요한 위치에 있습니다.
박인규 : 그러면 중국정부에서는 조선족들이 자꾸 해외로 나가는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요?
박광성 : 중국 정부 입장에서는, 워낙 나라가 크고 복잡하니까 별다른 태도를 명확히 표하진 않는데, 제가 보기에는, 외국에서 경제활동 해서 돈을 국내에 송금하고 특별히 정치적 분쟁의 소지가 없는 이상 그것에 대해서 별다른 인식을 갖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박인규 : 제 기억으로는 1988년 서울올림픽 때를 계기로 조선족들이 국내에 있는 친척을 찾아서 많이 오셨고. 90년대 초반에 덕수궁 앞에 가면 좌판을 하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 뒤로 식당이나 건설현장에서 어려운 일들을 하시게 됐는데, 지금 조선족들은 다 그런 건 아니죠? 한국에 오셔서 하시는 일이 여러 가지라고 들었는데..
박광성 : 일단 한국에 오는 분들은, 유학생을 빼면 거의 대부분 노동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죠. 따라서 이 분들이 직종에서는 큰 변화가 없습니다. 남성들은 대부분 건축업 관련 직종에 종사하고 여성들도 자영업 중심의 일반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죠. 그런데 문제는 한국에서 조선족에 대한 이미지가 한국에 진출해 있는 조선족 노동자들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사실 조선족에는 여러 집단과 계층이 있고, 거기에는 정치 경제 엘리트 집단도 있는데 한국의 조선족 이미지가 너무 노동자에 초점이 맞춰져서 형성되기 때문에..
박인규 : 조선족은 건축이나 서비스쪽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대부분이다..
박광성 : 그렇게 이미지가 고착화 되는 게 저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지금 미국이나 일본 등 각 나라별로 조선족이 얼마나 나가 있는지 숫자가 좀 나옵니까?
박광성 : 한국을 보면, 2006년 5월 행정자치부에서 외국인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그 조사에서 17만 명으로 집계됐습니다. 조사에서 이 정도 집계라면 실제로는 더 많을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아세아 경제문화연구소에서 조사해서 대개 5만5천 명이 있는 걸로 알려져 있구요, 미국에서는 뉴욕에서 조선족의 활동이 많이 알려지고 있습니다. 뉴욕에 한 3만명 있는 걸로 알려져 있고 뉴욕 조선족 동포협회, 전미 조선족 동포협회 등 단체들도 생겨서 현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뉴욕에서만 3만이라면 최소한 거기도 5만은 넘겠네요.
박광성 : 미국에 진출한 조선족의 80%가 한인업소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인이 집중된 LA같은 지역에는 조선족이 뉴욕보다 더 많을 수 있습니다.
박인규 : 유럽은 어떤가요?
박광성 : 유럽은, 프랑스 파리에 300여 명이 거주하면서 재불 조선족 동포협회를 만들었다는 소식이 전해져 있구요. 한국 유학생들의 소식에 의해서 아일랜드에 조선족이 오히려 한국인보다 많다는 소식이 주간조선을 통해서, 한국 유학생이 현지 르포로 써서 난 적이 있습니다.
박인규 : 그렇다면 처음에는 코리안드림을 찾아오셨던 조선족들이 미국이나 일본으로 나가시는 형국입니까?
박광성 : 그렇습니다. 하나는 한국에서 가족들이 진출해서 돈을 벌면 그 돈으로 기타 가족과 자녀들이 그걸 밑천으로 제 3국에 진출하는 사례가 있습니다. 한국에 와서 돈 번 걸 가지고 미국이나 일본에 진출하려는 시도를 보이고 있어서 조선족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합니다.
박인규 : 조선족이라고 하지만 어쨌든 국적은 중국이기 때문에, 여기 와서 일하시면서 불법체류 문제로 고생하시는 분들도 상당히 많은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 문제는 잘 해결이 되고 있습니까 어떻습니까?
박광성 : 불법체류는 아직까지는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국 법무부에서 불법체류 구제프로그램을 여러 번 실시했고 조선족이 합법적으로 입국해서 취직할 수 있는 방법과, 체류에 대한 여러 가지 제도적 개선을 했습니다. 따라서 불법체류자 문제는 이후에 점차 완화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박인규 : 한때 불법체류 문제 때문에.. 조선족이 오시려면 상당한 수수료를 쓰고 들어오는데 1년만에 가야 되니까 문제가 있어서, 아예 조선족이 대한민국 국적을 받는 게 어떻겠느냐. 어떤 목사님이 주도해서... 그때 상당히 논란이 많았습니다. 그게 옳은 태도냐, 우리 동포니까 국적을 줘야 되는 거 아니냐. 조선족 출신 사회학자로서, 조선족이 한국에 와서 국적을 받으려고 집단적인 운동을 하는 게 바람직한 겁니까?
박광성 : 저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국적문제는 법적인 것으로 동포에 대한 사랑이나 감정으로 해결할 게 아니죠. 그리고 현실상에서 조선족이 이미 중국 국적을 갖고 근 100여 년을 생활해 왔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법적으로 합리적으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이렇게 사람을 동원해서 소위 운동식으로 국적회복을 주도하는 것은...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 나라 국민이 다른 나라에서 국적을 달라고 소동부리는 거거든요. 한국 정부에서 봐도 국적은 달라고 요구한다고 줄 수 있는 게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래서 외교분쟁의 소지도 있을 수 있고. 그런데 그렇게 사람들 모아놓고 떠들면 한국정부에서만 봐도 껄끄러운 일이거든요. 결과적으로 조선족은 중국 정부에서도 한국 정부에서도 껄끄러운 존재가 됩니다.
박인규 : 그렇다면, 대한민국 국적을 갖고 싶은 분들은 개인적으로 법적 절차를 밟아서 받는 게 좋지 집단적인 운동을 통해서 국적을 달라는 건 좀 무리한 거다?
박광성 : 무리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대한민국 국적을 합법적으로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지금 여러 가집니다. 혼인을 통해서, 동포 1세.. 이렇게 해서 얻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에는 부모가 동포1세로 국적을 올리면 자식들도 올릴 수 있게끔. 동포1세는 한국에 호적이 남아있거나 직계친척이 한국에 남아있어서 친척관계가 증명돼서.. 국적을 신청할 수 있는 방법이 여러 가집니다. 무슨 얘긴가 하면, 한국국적을 법리적으로 가질 만한 신분이 되는 사람은 갖게끔 돼 있는데..
박인규 : 어떻게 보면 국적취득이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다?
박광성 : 합법적으로 조건을 갖추면 되는 거죠.
박인규 : 혹시 국내에 들어와 계신 조선족 중에 연간 몇 명이 국적을 취득한다는 통계가 있나요?
박광성 : 행자부 통계를 보면 혼인을 통한 방법을 제외하고 지금까지 한 5천여 명으로 알고 있습니다. 국제혼인을 통해서 온 분들은 한 6만 명 되는데, 그 외 다른 방법으로 올린 사람이 5천여 명 되는 걸로 행정자치부가 발표했습니다.
박인규 : 조선족에 관한 연구를 하셨으니까.. 국내에서 활동하시는 조선족 분들이 한국정부에 대해서 이런 걸 좀 해줬으면 좋겠다 하는 게 있던가요?
박광성 : 그 분들의 제일 큰 희망사항은 한국에 좀 쉽게 진출할 수 있게.. 합법적 체류의 길을 터주는 게 제일 큰 희망사항이겠죠.
박인규 : 아직도 한국에 오거나 여기에 오랫동안 머무르는 게 어려운 모양이죠?
박광성 : 여러 가지 제약이 있습니다. 첫째는 한국에 오려면 여러 가지로 쉽게 못 옵니다. 한 번 오려면 일정한 방법이 규정돼 있는데 그 조건을 갖춘 사람들이 적으니까 한국진출이 자유스럽지 못합니다. 두 번째는 한국에 체류를 해도, 합법적으로 체류할 때 정부에서 정한 법률을 따르려면 오히려 더 번거롭습니다. 업주의 신원보증을 갖고 와라. 여러 가지를 요구합니다. 그러면 사실 한국 고용주 입장에서는 일하겠다고 찾아온 사람한테 여러 가지 법적인 담보를 해주기 어렵거든요. 이런 문제 때문에, 한국에 와도 한국의 법률을 다 따르다 보면 취직이 더 어렵고 번거로워서 자유롭지 못한 현상도 있구요. 그리고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는 기한도 한 1년 2년이라서 아직은 합법적 진출과 체류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최근 서울대학교에서 조선족 문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박광성씨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지금부터는 개인적인 질문을 좀 하겠습니다. 2002년도에 오셨는데 어떻게 해서 서울로 유학을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으셨습니까?
박광성 : 96년도에 연변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는데, 그 당시 자료를 찾으면서 서울대 사회학과 권태환 교수님이 쓴 '중국 연변의 조선족'이란 책을 봤습니다. 그 책을 보면서 확실히 우리 조선족 학자들의 연구와 다르다는 걸 느꼈습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많은 문제들을 발견하고 분석하고 있다. 그래서 기회가 있으면 서울대학교에 가서 이런 교수님 밑에서 공부해서 조선족 사회를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해서, 서울대학에 입학원서를 내고 합격돼서 들어오게 됐습니다.
박인규 : 석사과정은 원서만 내면 들어오는 건가요?
박광성 : 아니죠. 서울대학교 입학이 그렇게 쉬우면 문제가 있는 거죠.
박인규 : 연변대학에서는 역사를 공부하셨는데, 중국에서 공부하는 것과 여기서 공부하는 게 차이가 많던가요?
박광성 : 공부하는 건 어디나 마찬가집니다. 그런데 서울대학에서 공부하면서 제일 좋았던 건 교수님들의 강의입니다. 교수님들이, 난해한 이론을 학생들이 쉽게 할 수 있도록 많이 신경쓰시는 것 같아요.
박인규 : 대부분의 조선족들이 한국에 돈을 벌러 오는데, 지금은 박광성씨처럼 공부하러 오시는 분들도 꽤 많은 것 같아요. 공부를 위해서 오시는 분들은 지금 어느 정도 됩니까?
박광성 : 중국에서 온 유학생이 2004년까지 한 9800여 명으로 통계가 나와 있는데요, 그 중에서 한 40~50%. 한 5천 명 정도는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박인규 : 부인도 충북대학교에서 박사과정 밟는다고 들었습니다.
박광성 : 네. 충북대학교 사학과에서 동양사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부인도 조선족이시죠? 결혼을 중국에서 하신 겁니까?
박광성 : 네. 유학 오기 전에 했습니다.
박인규 : 유학 오기 전에 결혼을 하시고 혼자 나오신 겁니까?
박광성 : 혼자 와서 4년 동안 혼자 공부했습니다.
박인규 : 대단하시네요. 요새 한민족 네트워크라는 얘기도 많이 하고. 조선족뿐만 아니라 외국에 나가있는 한국사람들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지 않느냐 그런 얘기를 많이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외국에 나가있는 조선족들이 한국이나 조선족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박광성 : 조선족은 이미 여러 나라에 진출해 있고, 그 진출지에서 새로운 씨를 뿌리고 집단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조선족의 대규모 분산이동은 민족사회의 해체가 아니라 결국 탈지역적 민족사회에서 탈지역적이고 네트워크화 된, 다원화된 민족사회로 가고 있다고 봅니다. 조선족은 현재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따라서 조선족의 국제적 네트워크가 결성된다면 한국의 대외교류나 중국의 대외교류에서나 조선족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지금 세계화시대에는 네트워크가 중요하지 않습니까? 국제적으로 형성된 네트워크는 결국 중국이나 한국의 국제교류에서..
박인규 : 말하자면 중국도 잘 알고 한국도 잘 아니까 한중간의 가교역할 같은 것도 할 수 있다.
박광성 : 그렇죠. 일본에 유학 간 조선족들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일본에 진출한 조선족 유학생들은 상당히 성공적으로 시회에 적응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들이 중국어 한국어 일본어를 다 하기 때문에 회사에서도 쉽게 적응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한테는 세 나라의 업무를 동시에 맡길 수 있거든요. 그래서 일본에 간 유학생들은 일본사회에서 상당히 중시 받고. 그리고 일본에서 일부 학자들이, 앞으로 동아시아 시대에 한, 중, 일의 시장이 연결되는 통합시장 모델을 만들 때 조선족은 이런 연결 역할을 하는 주체가 되지 않겠나. 그래서 와다 하로키같은 저명한 학자들도 조선족 문제에 요즘 상당히 관심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박인규 : 동아시아 3국간의 화해일 수도 있고. 상업경제활동에서도 조선족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박광성 : 조선족같이 세 나라 말을 하는 언어조건을 갖고 있는 조건이 드물잖아요.
박인규 : 그렇다면 최근에는 일본으로 유학가는 조선족들도 많겠네요?
박광성 : 많습니다. 일본에는 지금 한 5만 명 정도 있는 걸로 알려져 있는데, 일본에 진출한 조선족들은 거의 유학생이라고 보면 됩니다. 일본에는 한국처럼 일하러 못 가니까요.
박인규 : 조선족은 일본에서 취업은 안 됩니까?
박광성 : 불법체류도 하고 노동하는 분들도 있는데, 한국보다 그 장벽이 더 높아서 쉽게 진출을 못하니까. 언어적으로도 문제가 있잖아요. 그래서 일본은 유학생들이 가면서 가족들이 가거나.. 이런 패턴을 보이고 있습니다.
박인규 : 조선족들이 해외로 진출하면서 여러 가지로 한국을 위해서도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얘기를 저도 들었는데, 실제로 우리 사회나 정부에서 그런 데에 관심이 덜한 건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보시기에 어떻습니까?
박광성 : 잠시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한국에서 조선족의 이미지는 결국 한국에 진출한 조선족 노동자에 맞춰져 있지 조선족에 대한 전면적인 이해에 기초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실 한국 입장에서는 노동자도 중요하지만, 조선족의 인적자원을 어떻게 활용하는가가 더 의미가 있거든요. 중국이 세계에서 인구가 제일 많은 나라지만 그 나라에서 조선족이 제일 교육수준이 높은 민족입니다. 만약 10000명 당 박사학위 소유자를 따지면 한국보다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한국에서 조선족들을 주목한다면.. 조선족의 인적자원과 네트워크를 어떻게 활용할지 방안을 연구하고 이걸 지지해줄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그런데 한국에 돈 벌려고 온 노동자 집단에 초점을 맞춰서 불법체류자다, 가정해체가 일어난다는 식으로 논의를 만들어 가니까 결국은 재외동포 사회의 소통에도 껄끄러운 부분이 생기고 재외동포 사회의 활용에도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박인규 : 이달 말에 학위를 받으시면 바로 중국에 돌아가시는 겁니까?
박광성 : 학위를 받고 나서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에서 객원연구원으로 1년 있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일단 1년간은 논문주제와 연관해서 연구를 계속하고, 내년 9월에 중국에서 대학교수로 취직할 생각입니다.
박인규 : 서울이나 한국보다 중구에서 대학교수르 하시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하시는 모양이죠?
박광성 : 제가 중국에 가서 대학교수를 하는 게 중한 관계에서나 여러 모로 봐서 제 역할을 더 잘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하서 귀국을 선택했습니다.
박인규 : 박사학위는 옛날에는 학문의 끝인 것 같았지만 요즘은 학문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을 얻은 거라고들 합니다. 조선족 출신으로서 조선족 문제를 연구하시니까, 앞으로 좀 더 연구하고 싶은 게 있다면 어떤 것인지 마지막으로 말씀해 주시죠.
박광성 : 조선족이 초국적 생활공간을 어떻게 구성해 가는가. 조선족 연구에서 가장 시야를 바꿔야 될 것이 자꾸 지역에 국한돼서. 연변이라는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지역을 벗어나서 여러 나라에서 형성되고 있는 이민집거지나 이민공동체에 주목해야 되고, 이런 공동체가 어떤 연결망을 통해서 초국적 생활공간을 구성해 가는가. 바로 여기에 초점을 맞춰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이 방면으로 제가 계속 연구를 밀고 나가려고 합니다.
박인규 : 세계화 시대를 어떻게 보면 선도할 수 있는 조선족들의 활약상.. 기대가 됩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