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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이 힘을 합쳐 독도 지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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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이 힘을 합쳐 독도 지켜야"

박인규의 집중인터뷰[07/28] 24년만에 '독도는 우리땅' 후속곡 낸 박인호씨

안녕하십니까? 박인귭니다.

'독도는 우리땅'이 노래를 모르시는 분은 거의 없을 겁니다. 1980년대 초 가수 정광태씨가 불렀던 이 노래는... 가사가 좀 길긴 했지만 재미난 노랫말에 흥겨운 리듬 때문에 유치원생부터 어른들까지 즐겨 불렀고, 후렴구에서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외칠 때마다 작은 애국심이 생겨나기도 했는데요,

현재, 미국에서 살고 있는 '독도는 우리땅'의 작곡가 박인호씨가 최근 독도는 우리땅의 후속곡 녹음을 위해 한국을 찾았습니다.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도 교민사회에 한국정신을 심기 위해 꾸준히 활동했던 박인호씨...

오늘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 작곡가 박인호씨를 초대해서, 독도는 우리땅이 만들어졌던 과정과 그 과정에서 있었던 웃지 못할 해프닝들.. 그리고 이번에 발표한 독도는 우리땅 후속곡의 내용과 의미를 들어봅니다.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작곡가 박인호씨입니다.

박인호씨는 본명은 박문영씨입니다 방송프로듀서 출신 작곡가로 1977년 TBC에 입사한 후에 KBS와 SBS 라디오 프로듀서와 코미디 프로그램 구성작가로 활동했습니다. 한민족의 얼과 한국정신에 유난히 애정이 많았던 그는 1982년 '독도는 우리땅'을 만들었고 1989년에는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그리고 광복절 경축식 때마다 부르는 '아름다운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도요새의 비밀', '김치주제가' 등의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1998년 외환위기때 SBS 프로듀서직을 은퇴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현재 가족과 함께 텍사스에서 살고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박인규 : 한국에 오랜만에 오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얼마만에 오신 거죠?

박인호 : 7년만입니다.

박인규 : 7년만에 와보시니까 한국이 많이 달라졌습니까?

박인호 : 예. 첫째 길눈이 어두워졌구요.. 누가 어디서 만나자고 하면 제가 거길 접근을 못해요. 하도 주변환경이 바뀌어서.. 여기 사시는 분은 모르시겠지만 굉장히 많이 바뀐 걸 체험했습니다.

박인규 : 이번에 들어오신 게 '신 독도는 우리땅' 때문인데요, 이 노래를 음반으로 만들기 위해서 들어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시점에서 이런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셨는지요?

박인호 : 네. 24년 전에 독도는 우리땅을 만들 때는 독도에 관한 개념이 우리 국민들한테 전혀 없었어요. 독도가 존재하는지 사실조차 몰랐는데 그때 사람들한테 5공의 암울한 시대에, 민족정신이 침체돼 있을 때 우리가 이 민족정신을 길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서 독도라는 주제를 정해서, 독도... 우리가 정말 사랑하고 가꿔야 할 우리 민족의 정신과 땅이라는 걸 일깨워 줬습니다. 그런데 24년이 지나고 나니까 독도문제가 점점 심각해졌고 최근에 북한 미사일 문제 때문에 일본이 완전히 우경화 돼서 재무장을 하지 않습니까? 그러다 보면 우리는 그때보다 훨씬 강한 정신재무장을 해야 될 필요를 느꼈어요. 그래서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신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걸 만들어서, 이번에는 확실하게 법률적으로, 국제법적으로 독도는 한국땅이 확실하다, 일본사람들도 좀 알아라, 그래서 일본어도 좀 집어넣었구요. '독도는 한국의 영토입니다'라는 말을 일본어로 넣어서, 자기도 모르게 독도를 한국땅으로 인정할 수 있게끔 하는 전략으로 이번에는 좀 확실하게 만들어 봤습니다.

박인규 : 녹음작업은 다 끝났다고 들었는데, 하시고 나니까 후련하십니까?

박인호 : 처음에 독도는 우리땅 나왔을 때는 전혀 모르는 주제였는데, 마침 상당히 많이 알려졌어요. 정광태 가수의 도움으로.

박인규 : 사실 82년도에 독도는 우리땅이 나올 때보다 어떻게 보면 사정이 더 험악하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작년에 일본의 한 지방자치단체가 조례를 통해서 독도를 자기네 나라라고 주장했고. 이번에는 북한 미사일 사태가 생기니까 일본의 주요 정치인들이 북한을 선제공격해야 되는 게 아니냐 그런 말까지 했는데요..

박인호 : 네, 그 와중에서 일본 함대가 독도에 관한 상륙이나 우익단체의 야간상륙이나.. 저는 이런 것까지 예상하고 있거든요. 대단히 걱정스러운 사태인데 그런 사태를 우리가 기민하게 그때그때 폭력을 쓰지 않고 교묘하게 잘 해서 일본의 흉계나 야욕을 꺾으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됩니다. 그래서 이번에 정신무장 부분을 강화했습니다.

박인규 : 가사내용을 잠깐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박인호 : 가사 내용은 약간 재밌게 했습니다. 제가 원래 코미디를 좋아해서, 울릉도 동남쪽 뱃길따라 200리. 이건 독도는 우리땅의 앞부분. '더이상 외롭지 않은 독도는 우리땅 1경 2경 3경 수경 육지를 지키고 해군 공군 24시간 바다를 지킨다. 4800만 2300만 남북의 연합군. 최후의 한사람까지 일어나리라. 우리땅은 우리땅 우리가 지킨다 완전무장 정신통일 근무중 이상무.' 이렇게 해서 모든 국민들이 독도를 지킨다는 내용. 그리고 '대한민국 필승 코리아 성스러운 우리영토. 도쿠도와 강코쿠노 료우도데스'

박인규 : 그게 무슨 말이죠?

박인호 : 독도는 한국의 영토입니다. 제발 우기지좀 마 이렇게 나가는 겁니다.

박인규 : 특이한 게 4800만 2300만. 이건 남북이 합쳐서 지킨다는 말씀이신 거죠?

박인호 : 그렇죠. 한 마음으로 독도를 지켜내야 된다는 말입니다.

박인규 : 이번에 신 독도는 우리땅을 만드시면서, 박인호씨께서 특별히 마음속에 생각나는 분이 있으셨다고 들었습니다.
▲ 박인호 '독도는 우리땅' 작곡가. ⓒkbs 1라디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박인호 : 좀 안타까운 일이지만 독도 수비대장이었던 홍순칠 대장님이라고 계셨거든요. 그 분이 1982년도에 독도는 우리땅이 막 히트했을 때, 아 이제 독도를 지킨 사실을 사람들이 많이 알게 되겠구나, 또 독도가 한국땅인 것을 얘기를 많이 하고 강연도 많이 하고 다니셨는데. 일본의 경제원조 들어오는 것 때문에 일본 쪽에서 독도는 우리땅을 금지시켜 달라고 그랬어요. 저는 이름을 숨기고 예명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잘 포착이 안됐는데, 홍순칠 대장님은 그때 포착이 되셔서 관계기관에 들어가셔서 상당한 고초를 겪으시고. 그 이후에 육체적,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셔서 돌아가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박인규 : 개인적으로 원래 아시던 분인가요?

박인호 : 개인적으로는 모르고, 제가 그걸 했기 때문에 그렇게 하고 다닌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사적으로 만나지는 않았습니다. 일부러.

박인규 : 말하자면, 박인호씨께서는 노래로 홍순칠 대장은 직접 몸으로 지키셨는데 그 분은 고생하고 돌아가셨다...

박인호 : 저는 직장이 방송국이었거든요. 그래서 거기서부터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상당히 먹고 사는 데도... 좀 비겁한 얘깁니다만.

박인규 : 미국으로 가신 게 98년이니까 8년 됐습니다.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서 독도문제를 바라보는 시각과 미국 유럽 등 해외에서 독도를 바라보는 시각에 차이는 있을 것 같아요. 미국사람들이 독도문제를 제대로 알고 있던가요?

박인호 : 그런 문제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전혀 모르고, 동해바다를 거의 일본해라고 인식하고 있거든요. 그런 건, 일본의 전체적인 국력이 우리보다는 크지 않습니까? 인구도 많고. 그런 것 때문에 제가 미국에서 어떻게 하면 한국의 정신과 기개, 그리고 특히 일본의 우익이 정치계를 좌우하고 경제계를 좌우하고 있는데 일본의 흉계를 한국사람은 다 알고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미국사람들은 잘 모르기 때문에.. 작년도에 일본이 안보리 진출을 하려고 했는데 제가 나름대로 독도십자군 운동이라고 해서, 독도는 우리가 지킨다. 그래서 안보리 진출 반대 이메일 보내기, 백악관이나 국회나. 교포2세들이 하니까 다 미국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미국이름도 다 있고. 그런 것을 청소년들에게 많이 독려를 했습니다. 효과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진출이 좌절됐습니다. 굉장히 저로서는 기분이 좋았습니다.

박인규 : 국제사회에서는 독도 문제 뿐 아니라 한일간 분쟁이 있을 때 국력의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한국보다 일본 입장을 많이 들어주는 게 보이지 않던가요?

박인호 : 그런 입장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런데 들어주는 입장에서, 우리가 조금 약자인 입장이니까... 약자인 경우에는, 일본사람들이 만날 하듯이 냉정을 찾아야 된다는 논리를 자꾸 얘기하죠. 약자인 경우 절대 냉정해선 안됩니다. 크게 부르짖고 자꾸 외치고 정말 독도가 한국땅이고, 이 바다는 동해 혹은 한국해. 일본해가 아니란 걸 자꾸 얘기하고 일본이 안보리 진출하는 걸 자꾸 반대하고 자꾸 소리를 내야 되는데 그 동안 그런 소리를 내는 것에 대해서 상당히 경계하고.. 독도는 한국땅인데 뭘 그런 당연한 거 가지고 그러느냐. 그런데 이건 이미 분쟁화 돼 있고 우리가 분쟁이라고 얘기 안하면 거의 일본의 것으로 인식이 되는 과정입니다. 그럴 때는 자꾸 얘기를 해야 됩니다.

박인규 : 우리 입장을 알리기 위해서는 보다 열혈적으로 국제사회에 얘길 해야 된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지금 박인호씨가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노래를 만드시고, 또 민간단체에서도 한국과 관련해서 잘못된 것을 고치기 위한 사이버 사절단고 있는데, 미국 나가서 보시니까 우리 정부에서 우리 입장을 알리는 걸 잘 하고 있던가요?

박인호 : 그 전 정부까지는 상당히 소극적이었는데, 노무현정부에서 그런 면에서는 상당히 적극적으로 나와 주는 것에 대해서 그건 제가 상당히 고맙게 생각하고 있구요. 마땅히 해야 될 일을 그 동안은 여러 가지 문제, 특히 일본의 눈치보기.. 옛날에도 독도는 우리땅이 금지될 때 저는 우리끼리 눈치보는 걸로, 알아서 기는.. 그래서 금지시켰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고 일본측에서 직접적으로 한일간 분쟁과 반일감정의 불씨가 되는 이런 노래는 안했으면 좋겠다고 정식으로 제의를 했더라구요. 그런 걸로 봐서는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굉장히 불리하고 떠들수록 유리한 환경입니다. 그런 걸 잘 알고 우리가 자꾸 얘기하고. 일본에도 홍보를 하고.. 우리 정체성, 자아, 나는 누군가, 한국사람은 누구인가, 우리는 어떤 민족인가. 우리는 일본을 누르고 세계적으로 도약할 민족이라는 것을 각성하는 게 굉장히 필요해서 그런 종류의 노래도 만들고, 그렇게 해서 우리 정신을 좀 살려야겠다는 게 제 목표입니다.

박인규 : 다소 엉뚱한 제안인지도 모르지만, 독도는 우리땅은 우리나라에서는 모든 국민이 다 아는 노래가 됐지만 이런 노래들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서 가사를 영어로 바꾼다든가, 혹시 그런 생각은 안 해보셨습니까?

박인호 : 이건 네티즌이나 젊은 영스타들이 이런 걸 해주면 저로서는 정말로 고맙고. 사실 이거 할 때 개인 돈으로 다 하거든요. 체력이 많이 딸립니다. 독도는 우리땅,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이런 노래 보급하려면, 사실 이게 상업적인 노래가 아니잖아요. 댄스뮤직 이런 걸 해야 돈을 버는데 저는 다 사비를 들여서 하니까, 하다가 완전히 지치게 됩니다. 그럼 좀 쉬었다가.. 제가 빵 만드는 기술자거든요. 열심히 만들어서 돈을 또 벌어서 이번에 어느 정도 자금을 마련해서 이노래를 만들고, 또 열심히 하다가 돈 떨어지면 다시 열심히 일하고. 그런 식으로 살아가는 인생이죠.

박인규 : 혹시 이번 노래도 정광태씨가 부르나요?

박인호 : 그런 건 아니고, 이번에는 음악계에서 오래 활동했던 분들인데요, 제가 한 번 꾸려봤습니다. 프로젝트 록그룹인데, '마법전설'

박인규 : 이 노래만을 위해서 모인 분들이죠? 어떤 분들입니까? 청취자들이 알만한 분들이 있나요?

박인호 : 나이가 좀 되신 분들이구요.. 알만한 분은 전혀 없습니다. 왜냐면 알려진 분들은 자기 먹고 사는 데 바쁘고.. 열혈, 끓어오르는 거 좋아하는 사람들 위주로 구성했습니다.

박인규 : 기대를 해보겠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독도는 우리땅의 작곡가 박인호씨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신 독도는 우리땅'을 잠깐 들어봤습니다. 상당히 재밌네요. 제가 음악은 잘 모르지만 이것도 굉장히 많이 불릴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박인호 : 재밌게 해야지요.

박인규 : 지금부터는 독도는 우리땅을 어떻게 만들게 되셨으며, 그 과정에 얽힌 얘기를 좀 여쭤볼까 합니다.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노래를 방송국 피디를 하시면서 직접 만드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만드시게 된거죠?

박인호 : 피디로 현역에 있을 때 제가 글쓰는 재주가 있어서.. 코미디 작가. 유머일번지라고 있었어요. 거기 있는 선배 피디 분이 구성작가를 해달라, 한 코너를 맡아달라.. 그래서 한국정신을 갖고 코미디를 하는 프로. 그래서 그 당시에 덜 알려진 임하룡, 덜 알려진 심형래, 좀 많이 알려진 김학래인가? 포졸복 입히고 제가 만든 노래를 가르쳤습니다. 기타를 치고 가사를 손에 들고. 그렇게 해서 녹화를 딱 끝냈어요. 제가 통기타 그룹 '논두렁밭두렁'을 만든 멤버입니다. 한국적인 걸 찾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는데, 그때 만들어서 녹화를 훌륭하게 잘 끝내고, 저는 끝났으니까 쓰레기통에다 가사를 버렸죠. 그런데 정광태씨가 쓰레기통에서 그걸 끄집어내서 적어서 레코드 회사마다 돌아다니면서 막 해달라고 했는데, 그 당시 LP판에 A면에 2분이 부족했어요. 그래서 그 밑에다가 시간조절용으로 2분짜리 노래를 박자. 그래서 할 수 없이 5번으로 맨 끝에.. 불씨, 유리벽... 시간을 조절하기 위해서 거기다 넣었는데 판이 나오고 나서 일부 젊은 피디들이 그 노래를 많이 틀기 시작했어요. 상당히 많이 알려지니까 갑자기 A면으로 올라갔습니다. 하나 에피소드가 있는데, 5공의 전 대통령이 그 노래를 들으셨어요. 라디오에서 나온 걸 듣고 이 노래 참 좋다 한 마디를 하셨어요 회의할 때. 그때 허 모 장관님이라고 아주 유명하신 분인데 그 분이 바로 저하고 가수를 불러서, 노래 참 좋은 거 만들었다면서 대통령께서 좋아하시는 노래라고 말하더니.. 저는 금일봉이나 좀 줄까 하고 기다렸는데. 그러더니 아쉬운 게 없냐고 해서.. 그 당시에 방송국에서 노래가 금지가 됐어요. 이상한 노래라고 윗사람들이 못 틀게 했어요. 개인적인 금지죠.

박인규 : 왜 그런 거죠?

박인호 : 이상하다 이거죠. 노래라는 건 사랑하고 댄스하고 이런 거 해야 되는거 아닙니까? 그런데 이상한 노래를 하니까, 괴상한 노래 틀지 말 것. 그래서 금지가 됐었는데 그걸 바로 일렀죠 정광태씨가. 모 방송국에서 노래가 안 나옵니다. 어 그래? 그럼 내가 해결하지. 그리고 전화를 몇 군데 걸었더니, 그래 이제 가봐. 해서 저희는 쓱 나왔는데, 택시를 타고 나오는데 그 노래가 딱 나와요. 어, 노래 나오네.. 저희는 왜 전화를 걸었는지도 몰랐어요. 그런데 다른 데서 또 나오고.. 광화문에서 여의도까지 오는데 한 12번인가 들었어요. 엄청 나왔죠.

박인규 : 제일 높으신 분이 좋다고 해서 그런 건가요?

박인호 : 그렇죠.

박인규 : 박인호씨는 피디를 하시다가 방송용으로 만든 노래가 그렇게 국민적 히트가요가 됐는데, 제가 아까 소개도 드렸지만 위인 노래도 만드신 겁니까?

박인호 :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그건 제가 방송국을 퇴직하고 나와서 사업을 하겠다고 만들었죠. 89년쯤인데, 만들어서 방법이 없으니까 국민학교마다 다 돌아다니면서 제가 가르쳤어요. 그랬더니 학생들이 무진장 좋아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 노래도 상당히 알려지게 됐어요.그 다음에 또 김치주제가 만들어서 가르쳤더니 아이들이 갑자기 햄버거에서 김치를 먹기 시작하더라구요. 그게 캠프장 같은 데서... 김치게 제일 싸잖아요, 그래서 무진장 많이 트니까 세뇌가 되는 거예요. 무조건 김치가 좋다. 그리고 힘내라 힘, 이런 노래들. 흘러다니는 유행가, 그게 사실 작곡가가 있는 거거든요.

박인규 : 민중가요랄까요...

박인호 : 민중가요에도 많이 있습니다만, 하여간 그런 노래를 주로 많이 만들었습니다.

박인규 : 독도는 우리땅,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김치주제가만 해도 가요사에 남을 만한 명곡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속된 질문인지 모르지만 혹시 돈 좀 버셨습니까?
▲ ⓒkbs 1라디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박인호 : 돈 문제에 있어서 좀 애매한 게, 가요 해서 돈을 버는 방법은,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댄스곡 아니면 발라드를 해야 돈을 벌거든요. 원래 이쪽은 돈이 안 돼요. 많이 알려지기만 하고 실속은 없습니다. 명예는 되고, 국민학생들이 불러 봤자 거기서 돈이 나올 이유가 있습니까? 판도 그리 많이 안 팔리고 그저 흘러다니는 구전 노래.. 사람은 굉장히 좋아해요. 정말로 좋아합니다.

박인규 : 신 독도는 우리땅도 이거 한 곡만 나오진 않을 거 아닙니까? 음반을 내시거나...

박인호 : 싱글음반인데, 이 노래하고, 리믹스로 해서 춤추기 좋게 하는 거. 요즘은 그렇게 하더라구요. 그리고 반주음악으로 판을 구성해서 낼겁니다.

박인규 : 이번에도 별로 돈 벌 생각은 없으신 거군요?

박인호 : 돈 벌 생각은 없고 제로제로. 손해만 안 보면 다음 작업도 할 수 있거든요.

박인규 : 98년도에 SBS를 그만 두시고 미국 텍사스에 살고 게신데, 타향 땅에서 사실 만합니까?

박인호 : 제가 방송국에 근무했기 때문에 육체노동은 안했고 그런데 갑자기 외지에 떨어져서... 그 당시에 제가 3000만원이 있었거든요. 반지하 전세에 살았는데, 그 돈을 갖고 가서 상당히, 나름대로 정말 열심히 일해서 아침식사 빵공장을 했거든요. 그걸로 상당히 나름대로 제 인생에 이렇게 큰 돈을 번 적이 없을 정돕니다.

박인규 : 독도는 우리땅 같은 노래를 만드신 걸로 봐서는, 이런 표현이 정확할지는 모르지만 대단한 애국자이신 것 같은데 왜 미국에 가셨어요?

박인호 : IMF때 제가 자원해직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두 명씩 배정이 되거든요. 그런데 다른 사람이 잘리면 참 먹고 살 길이 막연하니까 제가 스스로 해직을 하고. 그래도 저는 노래도 만들고 먹고 사는 방법이 있겠다 싶어서 했는데 그런 게 잘 안 보여서, 할 수 없이 처가가 있는 미국으로 가서 거기서 육체노동부터 해서 기술도 연마하고 나름대로 열심히 일한 결과, 그래봤자 얼마 안 되지만 저로서는 큰 돈을 벌었습니다.

박인규 : 대단한 역할도 하시고 대단한 재능이 있는 피디였던 것 같은데 방송국에서 생각을 잘못하신 거 아닌가 모르겠네요.

박인호 : 저는 프로그램을 만들면 반드시 성공시키고 시청률을 많이 올리는데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얘긴 좀 그렇지만, 항상 제가 낭중지추라고 그런 걸 많이 당했어요.

박인규 : 너무 재능이 많으셔서 힘드셨군요.

박인호 : 글쎄요 그렇게 봐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박인규 : 지금 텍사스에 사신다는데, 교민들은 어떻습니까?

박인호 : 사실 교민들이 굉장히 어렵게 살고 있어요. 미국에 사는 사람들을 대단하게 생각하는데... 미국에도 잘 사는 사람은 있죠. 그런데 100명 중 한 두 명이에요. 나머지 분들은 다 청소하시고 아주 힘들게 살고 계세요. 나름대로 아주 열심히 살지 않으면 안 되는 나라가 미국입니다. 그럴 때 한국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일어나는 걸 볼 때 저로서는 상당히 속이 상하죠.

박인규 : 신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음반을 만드셨으니까.. 제가 느끼기에는 음반만으로는 부족하고, 마법전설 프로젝트 그룹이 전국순회공연이라도 한 번 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박인호 : 네, 불러주시면 얼마든지 하라고 제가 단단히 부탁을 해놨고, 저는 좀 있으면 또 가야 되거든요 사업을 하는 입장이니까. 그 팀을 불러주시면 얼마든지 가서 열심히 하고, 한국인의 정신을 고양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노력을 할 예정입니다.

박인규 : 아직 공연요청 문의같은 건 없습니까?

박인호 : 아직은 없지만 앞으로 많겠죠.

박인규 : 기대가 되구요. 신 독도는 우리땅이 많이 불려지기 바라고.. 미국 돌아가시면 생업으로 하시는 빵집 말고 한국을 알리기 위해서 나름대로 구상하시는 사업이 있으십니까?

박인호 : 재미교포들한테 한국의 정신을 심어주는 운동을 제가 계속 조금 더 조직적으로 많이 하고 싶은 생각이고, 여건이 된다면 확실하게 조직체도 만들 생각입니다.

박인규 : 거기서 잘 되면 한국으로 들어오실 수도 있겠네요?

박인호 : 그 학생들 데리고 독도도 방문하고. 몇 번 시도는 했습니다만 이번에 좀 데리고 와서, 그 사람들이 정체성 때문에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하거든요. 그 사람들에게 독도도 방문시키고 민족의 성지도 방문시키고. 그럴 계획입니다.

박인규 : 다른 어떤 역사학자나 선생님보다도 이 노래가 민족교육에 상당한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노래 많이 만들어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박인호 : 감사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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