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인제 고립지 주민들을 살린 산악인 김경태씨입니다.
김경태씨는 올해 47이구요, 초등학교 때 설악산으로 떠난 수학여행에서 산악인들을 만나면서 등산의 매력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중학교 때부터 암벽등반을 하기 시작하면서 등반기술을 익혀오다가 뜻이 맞는 산악인들끼리 모여 등산학교 열린캠프를 창단했습니다. 열린캠프 활동을 통해 일반 등반요령은 물론 119구조대나 경찰, 교사, 학생들에게 산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고대처 요령과 구조요령 등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현재는 CF감독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산악관련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박인규 : 사고가 난 게 지난 15일 토요일인데요, 5일쯤 지났나요? 기분이 어떠십니까?
김경태 : 몇 달 정도 오지여행을 갔다 온 기분입니다.
박인규 : 그 당시 상황이 너무나 긴박했던 모양이군요. 그 당시 상황으로 한 번 돌아가 보도록 하죠. 토요일. 3일간 연휴의 첫날이었는데 어떻게 해서 한계3리에 가신 겁니까?
김경태 : 저희는 중국 쓰꾸냥 상군의 이글피크라는 세계 미답봉우리를 등반하고, 저는 등반하는 친구들을 영상에 담을 목적으로 훈련차 갔죠. 금요일 저녁에 내려가서 토, 일, 월요일까지 등반훈련을 하고 월요일 저녁에 서울로 올라올 계획이었죠.
박인규 : 쓰꾸냥이라는 건 중국에 있는 산입니까?
김경태 : 예. 사천성에 있는 산군인데요,
박인규 : 미답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거기에 아무도 안 올라갔다는 겁니까?
김경태 : 예. 아직까지 올라간 기록이 없습니다.
박인규 : 쓰꾸냥이라는 게 우리말로 하면 아가씨 네 명이라는 뜻인가요?
김경태 : 네. 거기에 한 6200대 봉우리들이 4개 정도 있어요. 제일 큰 봉우리가 6200 정도고. 중국에서 쓰꾸냥이라고 부르죠.
박인규 : 아무도 안 올라갔던 중국의 산에 올라가고 김경태씨는 그걸 촬영을 하기 위해서 설악산에 가신 거군요. 한계3리가 암벽등반 등 훈련을 하기 좋은 장소인가보죠?
김경태 : 한계3리에서 한계령 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장수대라는 곳이 있습니다. 대승폭포, 소승폭포.. 이런 폭포도 있고. 굉장히 큰 암벽 봉우리들이 많이 있어서..
박인규 : 금요일 밤에 가셨는데, 계곡이 넘치기 시작한 게 15일 아침인가요? 그때 상황을 좀 말씀해 주시죠.
김경태 : 저희가 금요일 7,8시쯤 여기서 출발해서 계속 비가 왔어요. 그래서 천천히 내려가다가 일행들을 전부 만났죠. 원통 쯤에서 만나서, 비가 오니까 젖은 땅에 텐트치기가 좀 그렇고. 그래서 한계3리에 정중교씨라고 적십자구조대 대원으로 오래 계시던 분이 있어요. 그 선배 집에 가서 오랜만에 얼굴도 좀 보고 산 얘기도 하고 이번 등반에 대한 얘기도 하려고 모였죠. 그 집에 모여서 식사하고 술도 한 잔씩 하고 밀린 얘기도 하다가 제가 아침 7시쯤 잠들었어요. 다른 친구들은 먼저 자고, 저와 두 분이서 아침 7시쯤 잠들고. 한 분은 장수대로 올라가고 저는 거기서 잤는데, 잠결에 아주 고성능 스피커의 베이스음이 들리더라구요. 궁궁궁 하는.... 그래서 잠결에 깼는데 정중교씨가 일어나서, 물이 좀 심상치 않은 것 같다. 이렇게 물이 넘친 적이 없다고 해서 밖에 나가봤더니 앞쪽으로 벌써 물이 넘쳐오기 시작하는 거예요. 지금 보니까 그 베이스음은 물속으로 바위들이 구르는 소리였어요.
박인규 : 그러면 바로 탈출하셨겠네요?
김경태 : 그 집 앞에 저희가 차를 주차를 해놨는데 물이 들어오니까 차를 다른 데로 옮겨 대려고 정중교씨가 후배들을 깨워서 차를 다른데 대자고 했는데, 제가 상황을 봤을 때는 차 옮길 때가 아니더라구요. 그래서 차 포기하고 장비만 빨리 빼자. 자일을 챙겨라. 정중교씨 집 뒤에 바로 2층집이 있었어요. 그 집으로 장비들을 막 옮기고 2층 계단으로 올라서자마자 저희 차들이 떠내려가기 시작했죠.
박인규 : 장비를 챙긴 건 일단 판단을 잘 하신 거네요.
김경태 : 산에 다니는 친구들이 대개 장비에 애착이 많습니다.
박인규 : 차는 잃어버려도 장비는 건지자.. 그럼 그때부터 구조활동을 하신 건가요?
김경태 : 그때는 구조 생각도 못할 때구요, 어느 정도였냐 하면 저희가 2층으로 옮기고 보니까 바로 물이 차올라오기 시작하면서 정중교씨 집 앞에 큰 소나무들이 있었거든요. 그 나무들이 부러져 나가는 게 보이고 전봇대가 넘어져서 변압기가 물에 빠지면서 연기를 내면서 떠내려가고...
박인규 : 마치 재난영화에 나오는 장면을 듣는 것 같네요..
김경태 : 예. 제가 영상쪽 일을 하다 보니까 그런 것들은 거의 미니어처로 만드는데, 이번에 아주 리얼하게 봤습니다.
박인규 : 그 2층집도 잠긴 겁니까?
김경태 : 2층까지 거의 잠겼어요. 2층 위 옥상이 3층인데, 2층 베란다에 물이 찰랑거리면서 지나갔으니까요
박인규 : 그게 한 두세 시간 사이에 일어난 일이죠?
김경태 : 제가 7시쯤 잠들어서 마침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그 시간을 체크해 보니까 10시 2분인가 그렇더라구요. 그러니까 한두 시간 정도 집중호우가 내렸던 것 같아요.
박인규 : 그 마을에, 그 당시에 산악팀 말고 주민들을 비롯해서 몇 분이나 계셨어요?
김경태 : 저희는 밤늦게 갔으니까 전혀 파악이 안 됐죠. 모르고 있었고. 그쪽으로 대피해서 보니까 작은 집들, 단층집들은 이미 쓸려 내려가서.. 집 앞에 있던 담배가게는 이미 다 쓸려가고
박인규 : 그럼 그 안에 계신 분들은?
김경태 : 그게 파악이 잘 안 되는데, 많은 분들이 대피를 하셨더라구요. 저희가 아침에 늦게 일어났으니까.
박인규 : 그럼 2층 옥상으로 올라가셔서, 거기서부터 구조활동을 하신 겁니까? 마을 주민들을 어떻게 구해내신 거예요?
김경태 : 대피를 안 하고 계셨던 분들. 일찍 일어난 분들은 다 대피를 하셨고 노인분들과 거동이 불편한 분들. 그리고 2층집 정도에 있는 분들은, 예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으니까... 개울이 넘치진 않았으니까 집에 그냥 계셨던 것 같아요. 그 분들이, 어떤 분들은 2층으로 올라가야 되는데 나무들이 밀려와서 계단을 막아서 천정을 뚫고 2층에 올라가신 분도 계세요. 전부 2층이나 옥상으로 대피해 있는 상황을 저희가 2층에 있으면서 봤죠. 보니까 저희 건너편 쪽 옥상에 열 분 이상 모여 있었고. 저는 또 깜짝 놀란 게, 그 앞에 모래톱처럼 삼각주가 형성됐는데 거기에 세 분이 있었어요. 그 분들은 비가 조금만 더 와도 금방 쓸려 내려가는 건데.. 그런데 나중에 얘길 들어보니까 거기 있던 전봇대가 쓰러졌는데 전봇대에 있는 전깃줄을 잡고 버텼다고 하더라구요.
박인규 : 그런 분들을 어떻게 구해내신 겁니까?
김경태 : 그 상황이 한 20분 정도.. 계곡물은 쉽게 불었다 쉽게 빠지거든요. 물이 좀 잦아들기 시작했을 때 저희가 탈출루트를 뚫었죠.
박인규 : 말하자면 저쪽 옥상에 있던 분들을 이쪽 옥상으로 모셔오는 겁니까?
김경태 : 네. 그 분들을 구조하기에 그 때는 물이 너무 많았고, 저희가 일단은 탈출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산쪽으로 탈출루트를 뚫어나가는 과정에 그 사람들을 본 거죠. 일부 대원들은 루트를 뚫어서 거기에 있던 주민들은 저희가 같이 모시고 나가고, 뚫고 나가서 보니까 상황이 아주 심각해요. 옥상에 있던 분들, 삼각주에 있던 분들. 저희가 돌아 올라가면서 그쪽 주민들이 둑에 나와 있었으니까 그분들과 협조해서 유도를 했죠. 저희가 구조할 수 있는 쪽으로 초대한 오고.. 거기 같이 있던 친구들은 탈출을 하다가 물이 좀 잦아드니까 그 분들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간 거죠.
박인규 : 대개 로프를 타고 오실 것 같은데, 나이 드신 분들도 다 타고 나오실 수가 있었나보죠?
김경태 : 저희는 '티롤리안 브릿지'라고 해서, 원래는 산봉우리와 산봉우리 사이에 로프를 연결해서 그 로프로 이동하는 방법이 있는데... 이건 아주 특별한 상황이었어요. 건물과 건물 사이에는 급류가 흐르고 그 사이를 티롤리안 브릿지로 이동한 거죠. 그런데 거의가 노인 분들이어서 저희 안전벨트를 벗어서 채워드리고, 한 번도 해본 경험이 없는 분들이라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죠.
박인규 : 같이 안고 들어오신 건가요, 혼자 가시도록 한 건가요?
김경태 : 티롤리안 로프를 연결하고, 거기에 도르래를 연결하고, 안전벨트로 해서 그 분들과 도르래에 연결해 달고 다른 로프로 도르래를 당기는 거죠.
박인규 : 구조되신 마을 주민들은 웬 구조대가 이렇게 빨리 왔나 하는 생각도 하셨다고 그래요. 구조하시는 과정에서 다치거나 환자는 없었습니까?
김경태 : 저희 대원들은 없었는데, 주민들 중에 인공뼈를 하신 분도 계셨고 물과 사투를 벌이다 팔이 부러진 분도 계셨고. 노인 분들이라 신발도 못 신고 피신을 했는데 찰과상 입은 분도 있었고.
박인규 : 안전하게 구조를 하시고 나니까 거기 계신 분들이 상당히 잘 대접을 하셨다구요..?
김경태 : 저는 이 마을 주민들에게 참 감동을 받았어요. 저희가 아침도 못 먹고 하루 종일 했잖아요. 구조가 끝난 게 한 오후 5시쯤 됐더라구요. 먹을 것 좀 있냐고 했더니, 식수도 없고 물도 안 나오고 전기도 없는 상황이니까 감자를 삶아서 김치하고 내오시고. 어떤 분이.. 제일 안전한 쪽에 계셨던 분이 늘 빨간 모자를 쓰고 다녔는데, 그분이 아주 헌신적이셨어요. 자기 집으로 전부 모시고 가자. 우리 집이 그래도 물을 많이 저장하고 있으니까.. 물도 많고 쌀이 많으니까 그리 가자고 하셔서. 20평 정도 되는 그 분 집에 한 50 분이 있었고. 그 밑에 암자가 있었는데 그곳 스님이 전부 모시고 오라고 하셔서 거기에도 계시고.
박인규 : 정작 구조대가 온 건 언제입니까?
김경태 : 토요일 오후에 저희가 구조를 하고, 그날 상류쪽에 세 분이 고립돼 있는 걸 확인했어요. 그런데 거기까지 가기에는 계곡이 세 개가 있었는데 그 물살로는 거기를 건널 수가 없어서 안전지대로 피신하라고 수신호를 저희가 잤죠. 그리고 아침 7시쯤에 다시 그쪽으로 갔는데 그때쯤 구조대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박인규 : 한계3리는 지금 어떻습니까? 집이 하나도 안 남아있는 상황인가요?
김경태 : 개울 가운데에 마을이 형성돼 있는데, 거기에 30여 채 있었다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집 형체가 남아있는 게 한 4채 정도 남아있고, 그것도 거의 반파 이상 된...
박인규 : 그 마을 어르신들은 이번과 같은 물난리를 겪어보신 적인 있다고 하시던가요?
김경태 : 제가 거기서 대피해 있는 상황에서 들었는데, 일흔둘 되신 분이 말씀하시기를,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이런 일을 겪었다는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박인규 : 70년 만에 있었던 일이네요.
김경태 : 73년 만에 있었다고 아주 자신있게 말씀하시더라구요.
박인규 : 엄청난 사고였군요. 어쨌거나 마을 주민들이나 거기 계시다가 구조된 분들이 굉장히 고마워하겠어요.
김경태 : 네. 굉장히 고마워 하셨습니다. 그런데 저희는 오히려 그게 더 눈물겹도록 고맙더라구요.
박인규 : 하여튼 아주 어려운 상황에서도 목숨들을 많이 구할 수 있게 돼서 정말 다행입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지난 주말 폭우로 고립됐던 강원도 인제군 북면 한계3리 마을 주민 등 50명을 구한 8명의 산악인 중 김경태씨와 말씀 나누고 있습니다. 김경태씨 같은 경우는, 그 당시 한계3리에 계셨으니까 마을주민을 구조했지만 서울에서도 동료들이 내려와서 구조작업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김경태 : 예. 저희가 토요일에 구조를 끝내고 일요일 아침에 세 분을 마저 구조하고. 그 동네 분들은 전부 구조가 됐는데 환자들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팔이 부러진 분, 어린아이도 있었고 투석을 해야 되는 아주 긴급한 분이 계셨고. 그 분들을 후송하려고 하면 한계천을 건너야 되는데 한계천에 아직 물살이 많았고. 저희 로프도 많이 모자랐고. 그래서 제가 열린캠프로 전화를 했더니 그곳 책임강사이신 전두성 선배가 출동하신 겁니다. 서울에서 내려오셨는데, 그분들도 토요일에 인수봉에 야영을 들어갔다 내려와 있는 상황이었는데 제가 전화로 그런 얘길 했더니 자일과 벨트 등 들것들을 가지고 여섯 분이 내려오셨어요. 차 두대로 나눠 타고.
박인규 : 말하자면 자원봉사 구조대를 하신 거네요.. 열린캠프라고 하셨는데, 제가 알리고는 등산학교, 등반학교로 알고 있는데 열린캠프란 게 어떤 겁니까?
김경태 : 열린캠프가 생긴 지는 10여 년 정도 됐는데요, 목적이 산으로 자연을 알고 등반으로 자아를 구현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삶의 가치를 깨닫자는 목적으로 만든 학교입니다.
박인규 : 우리나라에 등산학교가 상당히 많은 걸로 아는데, 다른 등산학교와는 산을 오르는 목표가 조금 다르다고 들었습니다.
김경태 : 글쎄요. 별반 다를 건 없지만 저희가 지향하는 목적이 조금 다를 뿐이죠.
박인규 : 등정주의, 등로주의..?
김경태 : 그건 아주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얘긴데, 산의 정상을 가장 노멀루트로, 쉬운 루트로 올라가는 게 등정주의고. 저희는 '등로주의'라고 해서 어떤 루트로 올라가느냐, 어떻게 올라가느냐를 중요시하는 것뿐이죠.
박인규 : 그리고 열린캠프에서는 단순히 등산만 하는 게 아니라 119구조대라든가 경찰들에게 구조요령도 많이 가르치신다고 들었습니다. 많이들 오시나요?
김경태 : 지금 한 30여 분 정도가 다녀갔고. 지금도 하고 있구요. 재밌는 얘기가.. 구조대가 왔을 때 환자이송 때문에 서울에서 중앙구조대가 왔는데 처음으로 한계천을 건너서 온 구조대가 저희 열린캠프 동문이었어요.
박인규 : 말하자면 거기 졸업생이 온 거네요. 그 동안 열린캠프를 10년 동안 한 보람이 있네요. 이번에 한계리에 가신 게 쓰꾸냥이라는 산에 가기 위해서라고 하셨는데, 언제 가실 계획이세요?
김경태 : 지금이 중국 사천성 쪽이 우기거든요. 우기가 끝나면 9월 말쯤 출발할 예정입니다.
박인규 : 거기 가시는 건, 루트를 개척하시는 것도 있고. 김경태씨같은 경우는 영화를 만드실 생각도 있다고 들었는데...
김경태 : 네. 국내에 많은 등산학교도 있지만 '익스트림 라이더'라는 등산학교가 있어요. 거기는 일반 등산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나 전에 산에 다녔던 사람들이 가서 거벽등반의 기술 등을 습득하는 곳인데 거기 강사진들이 굉장히 첨예한 등반을 많이 하는 분들이에요. 세계적인 신루트도 개척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 분들은 등반을 하고 저희 열린캠프 쪽에서는 그 분들의 영상을 찍어서... 일단은 다큐멘터리 식으로 영화를 만들어서 산악영화제 같은 데에 출품도 하고
박인규 : 지금은 다큐멘터리지만 김경태감독께서는 외국의 '버티칼리미트'나 'K2' 같이 아주 멋있는 산악 극영화를 만들고 싶은 꿈도 있으시다고 들었어요.
김경태 : 네. 그게 제 꿈이죠. 극영화를 만드는 게 꿈이고, 그 전초전으로 암벽상에서의 카메라나 사람들의 동선, 그런 무브먼트를 좀 고려해 보려고 가는 거죠.
박인규 : CF감독을 하셨다니까, 혹시 청취자들이 들으면 알 만한 광고 만드신 거 있으십니까?
김경태 : 방송에서 특정 브랜드가 나가는 건 그렇고, 지금도 하고 있어서... 전에 96년도 초에 '스포츠는 살아있다.000'
박인규 : 워낙 산을 좋아하시니까 CF도 그런 쪽으로 하시는 군요.
김경태 : 그렇게 인정이 됐습니다
박인규 : 다큐멘터리를 하려면, 외국등반이란 게 여행비용도 있어서 상당히 돈이 많이 들 것 같은데 후원자들이 좀 있습니까?
김경태 : 그게 지금 가장 어려운 문제죠. 등반팀들이 저희와 약속을 한 게, 최악의 경우 스폰서를 못 구하면 자비로 가고. 그리고 익스트림 라이더 친구들은 굉장히 자존심이 센 친구들이라서 될 수 있으면 스폰서를 안 받고 자기 힘으로 가려고 노력들을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워낙 비용이 많이 드니까 스폰을 받을 수 있으면 등반경비로도 쓰고. 저희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하는 데에도 카메라나 특수장비들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박인규 : 아직까지는 후원자를 못 만나신 거군요?
김경태 : 네. 아직 못 만났습니다.
박인규 : 이번에 한계3리에 가신 게, 원래는 아주 멋있는 산악영화를 만들기 위한 준비작업으로 가셨는데, 그런 훈련은 못했지만 귀중한 목숨을 많이 구하고 돌아오셨습니다. 마지막으로 혹시 한계3리 주민들에게 하실 말씀 있으시면 해주시죠.
김경태 : 어려우시겠지만 용기 잃지 마시고.. 고난을 극복하신 것만큼 생업에 종사하셔야 되니까.. 저희가 영화를 만들어서 한계3리 주민들 모시고 시사회를 한 번 하고 싶습니다.
박인규 : 취미생활로 시작하셨겠지만 산을 타는 기술들이 많은 목숨을 구할 수 있게 돼서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구요, 쓰꾸냥 산에 가셔서 멋있는 산악영화 만드시길 기대하겠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김경태 : 감사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