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1라디오가 뉴스채널로 전환한지 3년을 맞아 이번 한 주간은 집중기획 "2006 한국사회를 말한다"를 방송하고 있는데요,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 <차별과 편견에 도전하는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우리사회에서 차별받고 있는 사회적 약자들을 만나 이들이 차별과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알아보고 있습니다.
어제는 장애인을 대표해서 시각장애인 국회의원 한나라당 정화원 의원을 만나봤는데요,
오늘은 그 두 번째 시간으로 이주노동자를 위한 이주노동자방송 뚜라 공동대표를 초대했습니다.
12년 전 산업연수생으로 한국땅을 밟은 뚜라씨... 그러나,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많은 상처를 받으면서 노동운동을 시작했고, 이주노동자와 실태를 알릴 수 있는 방송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는데요..
그가 말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원하는 삶이란 무엇인가?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이주노동자방송 뚜라 공동대푭니다.
뚜라 대표는 1972년 버마 출신으로 1994년 한국에 산업연수생 자격으로 입국해서 9년 동안 경기도 일대의 제조업체에서 프레스 기계가공 분야에서 일했습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비인간적 대우에 항변하고자 이주노동자운동을 시작해, 올해로 7년째 계속하고 있습니다. 2003년부터는 미얀마민주화운동단체인 버마행동을 조직해서 현 미얀마상황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있으며, 2004년 4월부터 이주노동자방송 공동대표로 활동하며 이주노동자 관련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박인규 : 이주노동자 방송대표이신데, 독립적인 방송국을 갖고 계신 겁니까?
뚜라 : 독립적인 방송은 갖고 있는데 채널은 시민방송 RTV채널을 통해서 보내고 있습니다..
박인규 : RTV에서 하루 종일 이주노동자만을 위한 방송을 하는 건 아니죠?
뚜라 : 아닙니다.
박인규 : 언제 이주노동자를 위한 프로그램이 나갑니까?
뚜라 : 저희가 프로그램 2개를 제작하는데, 하나는 한국사회를 말하는 '이주노동자의 세상'이라는 프로그램이구요, 그게 한 달에 한 번 셋째 주 토요일에 나가구요, '다국어 뉴스'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8개의 국가 언어로 진행되는 뉴스프로그램인데 두 번째 토요일과 네 번째 토요일 밤 11시에 나갑니다.
박인규 : 다국어뉴스라는 건 우리나라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본국 말로 뉴스를 한다는 말씀이죠? 8개라면 어떤 나라 말인가요?
뚜라 : 방글라데시, 네팔, 중국, 버마, 인도네시아, 러시아, 필리핀, 그리고 영어.
박인규 : 우리나라에 와서 일하시는 이주노동자들의 국적이 상당히 다양하군요. '다국어뉴스'는 10분씩 8개 나라 말로 뉴스를 한다고 하셨고, '이주노동자 세상'이라는 건 어떤 성격의 프로그램입니까?
뚜라 : 1시간짜리 프로그램인데요, 예를 들어 한국사회에서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이 같이 살고 있지만 이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잘 모르시잖아요. 그런 것들을 영상물로 보여주고, 거기에 더 하고 싶은 말들을 붙여서 리포트 하고 MC가 같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박인규 : 뚜라씨가 그 진행자라고 알고 있는데요..
뚜라 : 예. 저는 말을 잘 못하는데 진행자를 맡았습니다.
박인규 : 지금 '이주노동자 세상'이라는 프로그램은 전부 다 이주노동자들 자신이 만들고 있는 겁니까?
뚜라 : 예. 저희 직접 촬영하고 작가도 저희가 하고 편집도 저희가 하고, 이주노동자들이 직접 만들어서 하고 있는 방송 프로그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박인규 : 제가 작년인가요, RTV의 백낙청 대표님 말씀을 들었더니 지금까지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국내 언론인들이 많이 만들었지만 그건 아무래도 제3자 한국사람 입장에서 본 것이고, 이 프로그램은 이주노동자들이 자신의 삶을 보여주기 때문에 특이하다, 다른 데가 있다는 말씀을 하시던데요, 이주노동자들이 직접 우리들에 관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자고 생각하시게 된 계기나 이유는 어떤 겁니까?
뚜라 : 그 전에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다른 방송 프로그램도 여러 가지 많이 있었지만, 인터뷰할 때나 방송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말들을 하면 방송에서는 편집이 돼서 안 나가고 방송사 입장에서만 나가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방송에 대해서 이주노동자들이 불만이 되게 많았어요. 그래서 사회에서 같이 살아가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이 많은데 그 사람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방송이나 언론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처음 시작하게 된 거구요.
박인규 : 보는 분들이 많은 모양이네요?
뚜라 : '다국어뉴스' 같은 경우 해당되는 국가의 이주노동자들이 거의 대부분 보고 있습니다.
박인규 : '다국어뉴스'에는 주로 어떤 내용이 들어갑니까?
뚜라 : 한국사회에서 생긴 핵심적인 문제나 이주노동자 관련된 문제, 그리고 정부나 노동부, 법무부에서 이주노동자 관련해서 발표한 내용들이 있잖아요. 그런 것을 일반 TV를 통해서는 알 수가 없는데 우리 뉴스를 통해서는 알 수가 있어서 친구들이 그 뉴스를 계속 기다리고 보는 거죠.
박인규 : 이주노동자 입장에서 불법체류 문제라든가 그런 조치는 굉장히 중요한 관심이 될 텐데, 법무부 같은 데 취재하려고 하면 기자로 대접을 좀 해주던가요?
뚜라 : 아직까지는 기자 대접을 못 받고 있구요, 법무부에서 발표하는 내용들을 우리가 계속 지켜보고 친구들한테 전달하는 것밖에 못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이주노동자들이 직접 만드는 이주노동자 프로그램이 2년이 넘었어요. 그 방송을 하고 나니까 이주노동자들 사이에 변화가 있거나 좋은 점이 있습니까?
뚜라 : 예. 이주노동자들 사이에서는 많은 변화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 친구들에게 많은 도움이 돼가고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구요, 예를 들어 이 친구들이 한국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되고 법이 어떻게 변하고 정해져 있는지를 처음에는 몰랐는데 이 방송을 통해 알게 되면서 자기가 어느 위치에서 어떻게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도 다시 알게 되고, 자기가 해야 하는 일도 미리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갈 수 있는 거죠.
박인규 : 자기가 처한 상황을 좀 더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약간 사소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아무리 자발적으로 하신다고 해도 방송 프로그램을 만드시려면 장비라든가 활동비 같은 비용이 들 것 같은데 어떻게 충당하시는지요?
뚜라 : 아직까지는 저희가 여기저기에서 지원받는 건 없습니다. 하지만 RTV에서 프로그램 한 시간을 보내면 저희가 50에서 100만원 사이로 받고 있는 것 같아요.
박인규 : 프로그램 제작료를 RTV측에서 준다?
뚜라 : 예. 그 돈으로 우리가 직접 제작하는 거죠.
박인규 : 우리나라 이주노동자들이 들어온 게 대략 90년대 초부터인 것 같은데, 현재 우리나라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대략 몇 명쯤 있을까요?
뚜라 : 정확한 숫자를 말씀드리기는 어려운데 40만 명 정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40만 명이면 우리나라 인구가 4700만이라고 하니까 거의 1%에 육박하는, 굉장히 많은 거네요. 뚜라씨는 우리나이로 94년도.. 우리 나이로 23살 때 들어와서 지금 35살이시죠. 12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오랜 기간인데 본인이 94년에 처음 들어올 때하고 지금하고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랄까 대우 같은 게 좀 나아진 것 같습니까?
뚜라 : 많이 변하진 않았지만 조금이라도 변해가고 있다고는 말할 수 있습니다.
박인규 : 크게는 아니지만 조금 변해하고 있다. 변한 부분은 어떤 겁니까?
뚜라 : 예를 들어, 예전에.. 저희가 처음에 한국에 왔을 때 사람들이 외국인을 보면 신기해하기도 하고, 또 외국인은 시키는 일 하려고 온 사람이라는 인식이 돼 있었기 때문에.. 사람이기 보다는 모든 걸 시킬 수 있는 일꾼, 심각하게는 노예같이 생각하는 의식들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구요, 적어도 우리를 동등한 사람으로 대접해 주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박인규 : 그런 사회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보는 시각 말고, 경제적 대우랄지 불법체류자 문제가 많은데 법적인 지위랄지.. 예를 들어 임금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가요?
뚜라 : 임금도 조금 달라졌습니다. 제가 한국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기본으로 한 달에 18만원 받았구요, 야간수당은 한 100시간 넘게 해야 5만원 정도 받았구요. 지금은 최저임금도 70만원이 넘었으니까 그 수준에서 받는 사람들이 있어요.
박인규 : 지금 최저임금이라는 건 법적으로 70만원 이상 주게 돼 있다는 겁니까?
뚜라 : 예. 그래도 최저임금 이하로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박인규 : 18만원이라는 건 그때는 정식 일꾼이라기보다는 산업연수생이니까 기술을 배운다는 명목으로 조금 밖에 안 준거죠?
뚜라 : 예. 명목은 그런데 일은 노동자보다 더 많이 했습니다.
박인규 : 일은 많이 했는데 산업연수생이라는 이유로... 사실 가장 큰 문제가 불법체류 문제인 것 같은데 상당히 많은 분들이 불법체류자로 돼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도대체 어떻게 풀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세요?
뚜라 : 불법체류자 문제는 어떻게 보면, 쉽게 하면, 그냥 합법화 시키면 해결이 되는 거죠. 지금 요구하는 것도 합법화시키는 것이구요.
박인규 : 아까 40만 정도로 추정하신다고 했는데 그 중에 불법체류자 신분인 분이 대략 몇 퍼센트나 될까요?
뚜라 : 불법체류자가 거의 70% 정도 되지 않을까..
박인규 : 합법체류자 보다도 많은 겁니까?
뚜라 : 합법체류자보다 더 많은 걸로 생각하거든요. 지금 정부에서 중국인들, 중국 동포들 같은 경우에는 갔다가 다시 오면 합법적인 비자를, 자격을 살 수 있게끔 해주기 때문에 조금 숫자가 줄었을 수도 있는데, 대부분은 불법체류자가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70%라고 치면 약 28만 명 정도인데, 그렇게 많은 불법체류자를 합법으로 만들어주면 사회문제가 생기는 거 아니냐고 많은 분들이 반론할 거 같은데요?
뚜라 : 그렇다면 이미 문제가 생기는 거죠.
박인규 : 왜 이렇게 불법체류자가 많아졌다고 생각하세요?
뚜라 : 제가 생각하기에는, 대부분 산업연수생 제도를 통해 들어오는 사람들인데 계약기간이 지났는데 집에 안 가서 불법체류자가 되는 거죠.
박인규 : 산업연수생은 원래 기술만 배우면 고향으로 돌아가게 돼 있는데, 안 가고 한국에 남아있고자 한다. 왜 남아있고자 하는 겁니까?
뚜라 : 산업연수생이라는 것 자체가, 명칭은 그렇게 돼 있는데 실제로는 오는 사람도 돈 벌러 오는 거고 데리고 오는 사람들은 일 시키려고 하는 거예요. 오는 사람 입장에서는 많은 돈을 주고 와야 되는데, 그 많은 돈을 주고 왔는데 내가 여기서 그 돈도 안 벌면 어떻게 내 집으로 갈까. 3년 동안 제대로 돈을 안 벌어 놓으니까 이 사람들이 집에 못 갈 수밖에 없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올 때 500만원 내지 1000만원 정도의 수수료를 주고 오신다는데, 왜 그렇게 많은 돈이 듭니까?
뚜라 : 여러 국가에서 이주노동자를 모집하는데, 500명을 모집한다면 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5000명 되거든요. 그 이상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선적으로 가고 싶은 사람한테 업체에서는 돈을 요구하는 거죠. 그 돈이 처음에는 액수가 작았다가 지금은 점점 커지면서 500만원 1000만원 그렇게 돼 버린 거죠.
박인규 : 인력송출업체라는 겁니까? 나라에서 하는 게 아니라 민간에서 하기 때문에 그렇게 돈을 준다..?
뚜라 : 예. 산업연수생 제도는 한국의 중소기업중앙회에서 하고, 그 중앙회와 연결된 현지에 있는 업체가 있습니다. 그 업체가 관리하는 거죠.
박인규 : 그렇다면 오시는 분들은 어쨌든 비싼 돈 들여서 왔기 때문에 적어도 속된 말로 본전을 뽑기까지는 갈 수가 없는 거요. 우리나라에서는 산업연수생이다... 최근에는 그게 고용허가제로 바뀌지 않았습니까? 좀 나아진 거 아닌가요?
뚜라 : 좀 나아졌다고 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고용허가제 자체도 노동자라고 인정하지만 사실은 노동자가 자유롭게 노동할 수가 없구요, 고용주 마음대로 고용하고 해고할 수 있고. 고용주의 허가가 없으면 아무 일도 못하게 되고 이동도 못하구요. 그것도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70%가 불법체류 신분이라고 하시니까... 뚜라씨도 불법체류자죠? 이렇게 막 돌아다니셔도 괜찮습니까?
뚜라 : 저는 지금 버마에 정치적 문제 때문에 '정치적 난민'신청을 해놓은 상태입니다.
박인규 : 신청만 해놓고 수용은 아직 안된... 말하자면 한국으로 망명을 하시겠다는 얘기군요. 그렇다면 불법체류신분이 많으시니까 그 분들을 대표해서, 이른바 외국에서 와서 한국에서 일하시는 이주노동자들이 우리들을 좀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다라는 걸 말씀해 주시죠.
뚜라 : 쉽게 말하자면 이 친구들이 지금 가지도 못하고, 가면 어떤 데에서는 벌금을 내고 가라는 데도 있구요, 다시 들어오고 싶어도 못 들어오게 돼 있구요. 쉽게 들어와서 일자리를 찾아서 일하고 쉽게 나갈 수 있으면 한국에서도 불법체류자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만 제대로 관리하면 한국에서 이런 제도적 문제가 해결되구요, 하지만 같이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인간으로서, 한국사람들이... 외국인도 어차피 우리가 세계화 흐름에 따라서, 여러 민족들이 같이 사는 시기잖아요. 그걸 인정하고, 이 사람들도 이 사회에서는 당분간이라도 같이 살아가는 시회구성원, 하나의 인간으로 봐준다면 해결되지 않을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박인규 : 일하고 싶은 의사가 있다면 자유스럽게 오가게 해주고, 한국인들은 다민족사회가 돼가고 있기 때문에 이주노동자들도 하나의 인간으로 대접해 줬으면 좋겠다. KBS 1라디오는 뉴스전문채널로 전환한지 3년을 맞아 '집중기획 2006 한국사회를 말한다'를 방송하고 있는데요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 "차별과 편견에 도전하는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우리사회에서 차별받고 있는 사람들, 또, 이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오늘은 외국인 노동자를 대표해서 이주노동자방송을 운영하고 있는 뚜라 공동대표를 초대했습니다. 지금부터는 좀 개인적인 얘기도 좀 물어보겠습니다. 94년도에 한국에 오셨는데 어떻게 해서 오시게 됐습니까?
뚜라 : 그 당시 저는 학교를 졸업하고.. 버마가 아직도 군사독재정부지만 그때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학생운동도 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당분간 외국에 가야하는 상황이기도 하고, 가서 경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게 돈 때문이라서 돈 적게 들어가는 나라를 찾다가 한국에 들어오게 된 거죠. 한국의 산업연수생 제도가 기술도 배우고 돈도 벌 수 있다고 하니까 참 좋은 거라고 생각하고 왔었습니다.
박인규 : 94년도면 그 당시 한국으로 일하러 오시는 분들이 막 시작할 땐가요?
뚜라 : 산업연수생 제도로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들어오기 시작한 시기죠.
박인규 : 와보니까 어떻던가요?
뚜라 : 처음에는 한국은 정말로 선진국이고 사람들이 국제사회에 대해서 문이 열려있는 국가라고 많이 생각하고 왔는데, 지금도 안 그렇고 그 당시에는 지금보다 좀 더했어요.
박인규 : 처음에 와서 일하신 데가 경기도 어디였습니까?
뚜라 : 저는 경기도 인천, 부천 쪽에서 많이 하고, 맨 처음에는 충청도에서 일했습니다.
박인규 : 와서 일해보시니까 어떤 게 제일 견디기 힘들던가요?
뚜라 : 대우 받는 것. 일 자체가 몸이 많이 힘들고, 사람이 대우받는 것 때문에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고, 너무 외롭기도 하고 그런 거죠. 그런 것들이 혼자서 외국을 경험하는 사람에게는 많이 견디기 힘듭니다. 진정으로 대우를 받았다면, 나를 인간으로서 따뜻하게 해줬다면 즐겁게 지낼 수 있을지 몰랐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박인규 : 같은 사람이 아닌 것처럼 대접하는 것들이 힘들었다.
뚜라 : 예. 차별이나 탄압이나, 이런 것들.
박인규 : 한국말을 이제는 상당히 잘 하시는데 어떻게 배우셨습니까?
뚜라 : 한국말을 처음에는 배울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차별받고.. 월급 받아야 되는데 제 시간에 월급을 안 줘요. 그러면 월급 왜 안주냐고 따져야 되고, 휴식을 안 주는데 왜 안주냐, 밖에 못 나가게 하는 건 왜 그런지 따져야 되는데 아무 말 못하고. 그래서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박인규 : 월급 제때 달라, 밖에 나가게 해달라는 얘길 하면 사장님이 좀 들어주시던가요?
뚜라 : 아니죠. 절대 쉽게는 안 받아주고.. 그냥 욕먹고 때려 맞기도 하고 싸우기도 했습니다.
박인규 : 공장에서 일하실 때 차별을 받고 사람 취급 안 한다는 말씀을 하셨지만, 그래도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해서 애쓰는 한국사람들도 꽤 있죠?
뚜라 : 많이 있습니다. 제가 공장에서 일하면서 아주 안 좋은 추억을 만들어준 사람들도 있지만, 같이 활동하다 보니까 좋은 추억이 된 사람들도 꽤 많이 있습니다.
박인규 : 지금은 공장에서 일 안하신다고 그래요?
뚜라 : 공장에서 일 안한지 3년 넘었습니다.
박인규 : 그러면 이주노동자 방송하고 버마행동... 버마행동이라는 건 어떤 건가요?
뚜라 : 버마행동은.. 지금 버마를 미얀마라고 하지만, 군사독재정부 때문에 저희가 해외에서는 버마의 군사독재문제와 인권침해 문제들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그리고 한국사회에서 한국사람들과 같이 할 수 있는 건 하자고 해서 민주화 운동을 하는 방식으로 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그러면 국내에 버마 출신, 미얀마출신 노동자들도 상당하다는 얘기네요?
뚜라 : 예. 한 2500명 정도 있을 겁니다.
박인규 : 아까 이런 정치적인 이유로 난민신청을 하셨다고 그랬어요. 그러면 앞으로 계속 한국에 사실 계획이십니까?
뚜라 : 한국에 계속 살 수는 없죠. 버마 민주화가 될 때까지는 제가 여기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구요, 민주화가 되면 저도 거기서 할 일들이 많아서 가야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그럼 지난 12년간 버마에 한 번도 돌아가시지 못했습니까?
뚜라 : 한 번도 안 돌아갔어요. 가끔 전화하거나 편지를 하는데 편지가 잘 안 가서 잘 안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상당히 돌아가고 싶으시겠네요.
뚜라 : 예. 마음은 그렇습니다.
박인규 : 가족들과는 계속 연락이 되시구요?
뚜라 : 가끔 친구를 통해서 전화하기도 하고..
박인규 : 어쨌든 방송도 하시고, 버마문제는 고국의 문제긴 하지만, 방송이라는 게 말하자면 40만 외국인노동자들을 대표하는 지리기 때문에, 기왕 이 자리에 나오셨으니까, 한국에 계시는 여러분들에게 이주노동자들을 이렇게 봐주셨으면 좋겠다는 부탁의 말씀 같은 걸 마지막으로 해주시죠.
뚜라 : 아주 짧게 예로 얘기할게요. 지금 이주노동자가 하나의 흘러오는 물이라고 생각하면 한국사회는 그 물이 흘러가는 하나의 마을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그 흘러오는 물이 마을을 지나가려고 하는데 그 물을 길을 잘 만들어서 마을 안에서 농사짓는 데에 잘 쓰면 쓸모가 많구요, 길을 내주지 않으면 그 물이 마을에서 좀 피해가 되지 않는가. 그런 식으로.. 한국사회가 마을이고 이주노동자들이 흘러오는 물이라고 생각하면, 이 물을 우리가 이 사회에서 어떻게 좋은 일에 사용하면 좋을까. 그렇게 한국사회에서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였으면.. 지금 세계 흐름에 따라서, 다민족 다문화 흐름에서 쉽게 편안하게 변화해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외국인노동자들, 이주노동자들의 노력이 한국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열린 마음으로 받아줬으면 좋겠다. 그런 사회, 그런 시대가 곧 오기를 바랍니다. 많은 노력도 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뚜라 : 감사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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