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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남은 왜 '자진월북'이라고 말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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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남은 왜 '자진월북'이라고 말하지 않았나

[분석] 메구미 관련 증언의 신빙성 확보하려

김영남 씨의 29일 기자회견에서 3대 쟁점은 그가 북한으로 간 이유와 전 부인이었던 요코다 메구미의 사망 여부, 그리고 일본에 보낸 메구미 유골의 가짜 논란이었다.

이에 대해 김 씨는 우연히 북한에 가게 됐고, 메구미는 1994년 4월 13일 우울증으로 자살했으며, 2004년 11월 일본 대표단에게 건네준 유골은 진짜라고 말했다.

여기서 관심을 끄는 것은 김 씨가 메구미와 관련된 2가지 문제에 대해서는 모든 이들의 예상대로 답한 반면, 북한에 간 경위에 대해서는 일부에서 예상했던대로 '자진월북'이라고 주장하지 않고 "그 누구에 의한 납치도 아니고 자진월북도 아닌 대결시대에 우연적으로 일어난 돌발적인 입북"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김 씨가 이처럼 모호한 표현을 사용한 것은 여러가지 정황상 '자진월북'이라고 하기에는 신빙성이 너무 떨어지고, 그렇다고 '납북'이라고 말한다면 '납북자는 없다'는 북한 당국의 기본 입장과 배치되는 데에 따른 '묘수'로 풀이된다.

'자진월북'이 성립할 수 없었던 이유는 김 씨가 전북 군산 선유도에서 북한 선박에 의해 남포로 갔던 1978년에는 17세에 불과했고, 당시 철저한 반공교육을 받은 평범한 공고생이었던 그가 북한을 동경할 이유도, 먼 길을 항해해 북한에 갈 방법도 없었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 1997년 11월 검거 후 김 씨를 납치했다고 실토한 남파간첩 김광현 씨가 비교적 상세한 납치 경위를 밝혔고, 선유도에 같이 있었던 친구들로부터 김 씨의 실종 사실이 알려진 점 등으로 볼 때 '자진월북' 주장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뻔한 '억지 주장' 대신 모호한 표현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그것은 자진월북이 아니라는 게 그처럼 명백한 상황에서 '북한이 좋아 내 발로 왔다'고 억지 논리를 편다면 이날 기자회견의 진짜 핵심인 메구미 문제에 대한 설명에서도 그 신빙성을 크게 의심받을 수 있다는 고려가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김 씨는 메구미의 사망 경위와 관련해 "결혼 전부터 병적인 현상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딸 은경의) 출산 후 좀 더 악화됐고, 우울증에 정신이상 증세까지 나타나 할 수 있는 모든 치료를 다했지만 끝내 회복되지 못하고 숨졌다"고 말했다.

이어 "우울증이 상당히 호전됐다고 봤는데 호전됐을 때 자살 시도가 많다고 들었다"면서 "여러번 그런 시도가 있었고, 구체적인 방법은 말씀드리지 않겠지만 결국은 병원에 가서 자살한 것으로 됐다"며 사망 날짜까지 확인했다.

가짜 유골 문제와 관련해 김 씨는 "2004년 11월 평양을 방문한 일본 정부 관계자를 만나 구체적으로 (사명경위를) 설명해 줬다"며 "유골도 넘겨줬고, 일본은 유골을 받으면서 '나에게 직접 받았다' '메구미 부모에게 전달하겠다' '공표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자필 확인서도 남겼지만, 유골을 여기저기 나눠주면서 '감정놀음'까지 하며 졸렬하고 유치한 주장을 펼쳤다"고 강조했다.

김 씨의 이같은 주장은 그간 메구미 문제에 대해 북한이 밝혀 온 것과 동일한 것이지만 묘사와 설명이 한층 구체화된 것으로 평가된다.

김 씨는 또 일본측에서 지속적으로 의혹을 제기하는 것에 대해 "그들의 속셈은 북을 모략하고 좋게 발전하려는 북남관계에 쐐기를 짓고 불신, 불화, 대결을 조장하는 데 목적이 있다"며 '정치적인 의미'까지 가미해 자신의 말에 설득력을 더하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북일 관계의 미래는?

그러나 그의 기자회견에 대한 일본의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메구미의 부친은 "메구미는 살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며 그의 주장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고, 공영방송 <NHK>도 김 씨의 기자회견과 북한의 그동안의 설명에서 메구미의 사망일, 입원한 병원, 유골 등에 모순이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아베 신조 일본 관방장관은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없는 환경에서 한 증언이라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며 "납치피해자가 전원 생존해 있다는 것을 전제로 교섭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해 이 문제를 여전히 북일 관계의 핵심 쟁점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로써 김 씨가 기존의 납북자들이 고수해온 '자진월북' 주장까지 포기하면서 자신의 말에 신빙성을 높이려 했던 시도는 별다른 소득 없이 끝날 공산이 커졌다.

또 양측 모두 기존의 주장을 굽히지 않음으로써 메구미 사망설과 가짜 유골 논란 역시 이제 영원히 풀리지 않는 진실게임 속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올 9월로 끝나는 임기중에 북한과의 관계정상화를 이루겠다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이제 어떤 묘안을 내놓을지 주목되는 대목이다. 관계정상화의 핵심 걸림돌이 더욱 튼튼해졌고, 미사일 위기까지 겹친 상황에서 고이즈미 총리가 운신할 폭은 더욱 좁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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