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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나라,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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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나라, 미국

촘스키 교수, 미국의 세계전략을 비판하다

다음은 미국의 비판적 지성 노암 촘스키 교수(MIT)의 새 저서 '실패한 국가들 : 권력의 남용과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Failed States : The Abuse of Power and the Assault on Democracy)'의 주요 내용이다.

촘스키 교수는 이 책에서 현재 미국은 자기 나라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고, 국내법이나 국제법을 무시하며, 국내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는 점에서 실패한 국가가 돼가고 있다면서 통렬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미국은 지금까지 이라크나 아이티 등이 실패한 국가라는 이유로 이 나라들에 대한 무력침공과 군사개입을 정당화해 왔다.

그는 이어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자 지도적 국가인 미국에서 국민 여론과 정부정책 사이에 심각한 균열이 드러나고 있는 것은 인류의 품위 있는 생존과 관련해 중대한 문제라면서 이는 미국의 민주주의가 후퇴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미 국내의 민주주의가 후퇴할수록 미국의 지배계층은 외국에 대한 민주주의 확산을 외치면서 진실을 은폐해 왔다고 비판하고 있다.

한편 촘스키 교수는 중국, 쿠바, 베네수엘라 등을 중심으로 아시아와 중남미에서 미국의 일방적 통제를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으며 여기에 정의로운 세계를 갈망하는 지구촌의 대중운동이 가세하고 있다면서 군사력에 의한 미국의 세계지배전략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글은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가 촘스키 저서의 주요 내용을 요약한 것으로('Why It's Over For America', 5월 30일자) 원문은 http://www.commondreams.org/views06/0530-20.htm에서 볼 수 있다. <편집자>


실패한 나라, 미국

인류의 복지와 권리들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사안들이 무엇인지를 결정하는 일은 당연히 주관적인 작업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몇몇 사안들은 인류의 품위 있는 생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에서 반드시 포함되는 것들이 있다.

특히 그중에서 다음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핵전쟁, 환경재앙, 그리고 세계의 지도적 국가(미국)의 정부가 이러한 재앙의 가능성을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행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국가'가 아닌 '정부'라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놀랄 것도 없이 미국 국민들은 정부의 행동에 동의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미국인, 나아가 세계 전체에 심각한 우려의 대상이 되는 4번째 문제가 제기된다. (미국의) 국민 여론과 공공정책 사이의 극명한 균열이 그것이다. 이는 공포의 근원이기도 하며 간단히 도외시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한데 자 알페로위츠(Gar Alperowitz)는 <자본주의 너머의 미국>에서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전체로서의 미국적 '시스템'은 진짜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다. 평등, 자유, 그리고 의미 있는 민주주의라는 자신의 역사적 가치의 종언을 재촉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시스템"은 점점 더 '실패한 국가(failed state)'의 특성을 드러내고 있다. 물론 현재 미국에서 실패한 국가란 미국의 안보에 잠재적 위협이 되는 국가(이라크 등), 또는 심각한 내부적 위협으로부터 그 나라 국민들을 구조하기 위해 미국의 개입이 필요한 나라(하이티 등)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즈>에 따르면 실패한 국가란 개념은 실제 분석에 적용하기에는 "놀라울 정도로 부정확한" 것이기는 하지만 몇몇 기본적 특성들을 잡아낼 수는 있다.

첫째, 폭력, 나아가 대량파괴로부터 제 나라 국민을 보호할 능력이 없거나 보호할 의사가 없다, 둘째, 정부 스스로가 국내법이나 국제법 위에 있다고 생각하며, 따라서 제멋대로 다른 나라를 침략하거나 폭력을 행사한다. 나아가 만일 이 나라가 민주주의의 외양을 갖추고 있다면, 민주주의적 제도에서 실질적 알맹이는 빠져버린 심각한 "민주주의의 결핍"을 겪고 있다.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정직하게 바라본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가장 어려운 일이며, 또한 가장 중요한 일이다. 우리가 우리의 모습을 정직하게 바라본다면, 우리는 바로 현재 미국 안에서 "실패한 국가"의 특성들이 나타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국내 민주주의의 후퇴'와 '대외 민주주의 확산 천명'은 동시에 진행

역사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라면 미국 내부의 민주주의 결핍의 심화가, 외부의 고통 받는 세계를 위해 민주주의를 확산하겠다는 메시아적 사명의 선언과 동시에, 동전의 양면처럼 진행된다는 사실에 그다지 놀라지 않을 것이다. 권력에 의한 고상한 의도의 선언이 완벽한 날조인 경우는 별로 없다. 이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특정한 조건만 충족시킨다면 어떤 형태의 민주주의는 실제로 용납되기도 한다. "민주주의 진흥"의 학문적 옹호자가 결론을 내렸듯이, 다음과 같은 "강력한 연속성"을 발견할 수 있다.

(미국의) 전략적, 경제적 이익에 합치될 때, 오직 그럴 때만 (다른 나라의) 민주주의는 용납될 수 있다. 이러한 명제는 약간의 수정을 통해 미 국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이 직면하는 기본적 딜레마는 때때로 (미국의 정치적 스펙트럼에서 가장 왼쪽에 있는) 유화적 자유주의자들에 의해 솔직하게 토로되기도 한다. 카터행정부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라틴아메리카 담당자였던 로버트 파스토 같은 이는 왜 미 행정부가 살인을 일삼으며 부패한 니카라과의 소모사정권을 지원할 수밖에 없었는지, 또 소모사정권이 무너진 후에도 "적과의 전투에서나 나올 법한 잔혹함으로" 자그마치 4만 명의 자국민을 학살한 국민방위군(그것도 미군이 훈련시킨)을 지원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 이유는 물론 낯익은 것이었다.

"미국은 니카라과나 이 지역의 다른 나라들을 통제할 의사가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 통제 불능의 사태가 벌어지는 것도 원치 않는다. 미국은 니카라과가 독립적으로 행동하기를 원한다. 단 미국의 국익을 해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

미국이 말하는 민주주의란 '미국의 국익 한도 내에서'만

이라크 침공 후 부시행정부도 이와 비슷한 딜레마에 봉착했다. 그들은 이라크인들이 "독립적으로 행동하기를 원했지만, 그것은 미국의 국익을 해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였다. 따라서 이라크의 주권과 민주주의는 일정한 (미국이 설정한) 한계를 벗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해 이는 순종적인 피후견국가(client state), 즉 중미 지역의 국가들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패턴은 제도적 측면에서 미국과는 정반대에 있는 구 소련이나 나치독일 등에서도 그대로 재현됐다. 크레믈린은 국내적으로 철권통치의 원천이었던 군사적ㆍ정치적 힘에 의해 위성국가들을 통제했다. 2차대전 기간동안 독일은 비록 전쟁상황이기는 했지만 점령 외국에 대해, 파시스트 일본은 만주국에 대해 유사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파시스트 이탈리아는 북아프리카에서 이와 비슷한 성과를 이뤘고, 사실상 대규모 학살을 자행했음에도 서방세계에서 이탈리아의 이미지는 전혀 손상되지 않았다. 오히려 히틀러에게 (홀로코스트의) 영감을 불어넣어준 것 같다. 전통적인 제국, 또는 식식민주의 시스템들은 이러한 주제의 여러 변종들을 보여준다.

이라크의 경우, 여러 상황이 이례적으로 유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전통적 목표(미국의 국익이라는 한계 내에서의 민주주의)를 달성한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로 어렵다는 것이 드러났다. 미국의 확고한 통제와 이라크인의 일정한 정도의 독립성을 결합해야 하는 딜레마는 침공 후 얼마 되지 않아 극명한 형태로 드러나기 시작됐다. 대규모의 비폭력 저항운동으로 말미암아 침략자 미국은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자율성을 이라크인에게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이란과 이라크의 시아파, 그리고 인근 사우디아라비아 시아파 지역 간의 느슨한 시아파 연맹 속에 다소간 민주적이며 독립적인 이라크정부가 들어서서 세계 석유자원의 대부분을 통제하고, 워싱턴의 의사를 무시할 수도 있다는 악몽과도 같은 결말의 가능성이 제시되기도 했다.

미국의 통제를 벗어나는 아시아와 중남미

상황은 이보다 더 나빠질 수도 있다. 어쩌면 이란은 유럽이 미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이룰 것이라는 희망을 접어버리고 (중국, 러시아 등) 동쪽으로 고개를 돌릴지도 모른다. 이 문제에 관한 선도적 전문가인 셀리그 해리슨은 다음과 같은 전망을 내놓았다.

"이란과 유럽연합 간의 핵협상은 미국에 견제당하고 있는 유럽연합이 자신의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이라는 전제 위에서 진행됐다. 거래의 내용은 이란은 우라늄 농축을 중단하고 유럽연합은 이란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것이었다. 공동성명의 표현은 분명했다. 공동성명은 '상호 인정한 합의에 따라' 이란의 핵프로그램이 '전적으로 평화적 목적이라는 것'을 객관적으로 보장하는 동시에 '안보 문제들에 대한 확고한 보장'을 제공한다고 규정했다."

'안보 문제들'이란 말은 미국과 이스라엘에 의한 이란 공습, 또는 그러한 준비태세를 가리키는 말이다. 1981년 사담 후세인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는 장소로 의심되던 오시라크 원자로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습이 그 선례로 꼽힌다. 이란에 대해 이와 유사한 공습을 감행할 경우, 즉각적인 반격이 있을 것임을 워싱턴도 잘 알고 있다. 이라크의 영향력 있는 시아파 성직자 무크타다 알 사드르는 최근 테헤란을 방문한 자리에서 만일 이란이 공격당할 경우 자신이 지휘하고 하고 있는 알 사드르 민병대는 이란을 수호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에 대해 워싱턴포스트는 "서방측과 이란의 갈등이 현실화될 경우 이라크에까지 그 불똥이 튈 것임을 시사하는 가장 강력한 신호 중의 하나"라면서 "이라크의 시아파 민병대, 나아가 미군이 훈련시킨 시아파 위주의 이라크 정규군마저 이란에 동조해 미군을 향해 총부리를 돌릴지도 모를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2005년 총선에서 상당한 의석을 획득한 사드르 블록은 머지않아 단일 정치조직으로는 이라크에서 가장 강력한 정치세력이 될 가능성이 높다. 사드르 블록은 팔레스타인의 하마스처럼 군사점령세력에 대한 강력한 저항, 그리고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위한 의료ㆍ교육 등 풀뿌리 차원의 사회조직을 결합시켜 집권에까지 성공한 이슬람세력들의 선례를 의식적으로 따르고 있다.

지역안보 문제에 대한 합리적 대응을 거부하는 워싱턴의 태도는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라크와의 대결 때도 이러한 워싱턴의 입장은 반복적으로 드러났다. 실상을 말하자면 중동지역 안보 문제의 핵심은 이스라엘의 핵무기 보유인데, 미국은 국제무대에서 이 문제가 거론되는 것을 철저히 봉쇄하고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 핵무기 뒤에는 해리슨이 "세계 비확산체제의 중심적 문제"라고 정확하게 지적한, 더 큰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기존 핵무기보유 국가들이 핵확산금지조약(NPT) 상의 의무사항, 즉 "현재 보유 중인 핵무기를 단계적으로 감축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는 것, 특히 미국의 경우에는 아예 공식적으로 거부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시아에너지안보망

유럽과 달리 중국은 워싱턴의 협박에 굴복당하지 않고 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중국에 대한 미 전략가들의 두려움이 커져가고 있는 것이다. 이미 이란 석유의 상당량이 중국으로 흘러가고 있으며, 중국은 이란에게 무기를 공급하고 있다. 아마도 이 무기들은 미국의 위협에 대한 (이란의) 억지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게다가 <파이낸셜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워싱턴의 심사를 더욱 불편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중국과 사우디의 관계가 극적으로 진전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중국의 사우디에 대한 군사원조, 사우디의 중국에 대한 가스전 탐사권 부여 등이 그것이다.

2005년 현재 사우디는 중국이 수입하는 석유의 17%를 제공하고 있다. 중국과 사우디의 석유기업들은 석유 채굴 및 거대 정유공장 건설 등의 계약을 맺고 있다(여기에는 미국의 석유기업 엑슨모빌도 참여하고 있다). 지난 1월 압둘라 사우디 국왕의 베이징 방문에서 양국은 "석유, 천연가스, 광물자원 분야에서 협력과 투자를 증진"하자는 양해각서를 교환했다.

인도의 분석가 아이자즈 아마드는 이란의 역할에 대해 "중국과 러시아는 세계에너지 공급에 대한 서방의 독점을 깨고 아시아지역의 거대한 산업혁명을 안전하게 완수하기 위해서는 '아시아에너지안보망(Asian Energy Security Grid)'의 확립이 절대적으로 긴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면서 "앞으로 십수 년 간에 걸쳐 형성될 이 안보망에서 이란은 실질적인 연결고리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에너지안보망에는 한국과 동남아 국가들은 물론이고 일본까지도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인도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이냐 하는 점이다. 인도는 이란과의 송유관 건설 계획을 취소하라는 미국의 압력을 물리친 바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인도는 이란의 핵개발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 결의안 채택 과정에서 (이란을 비난하는) 미국과 유럽 편을 들어줬다. 이란은 NPT에 가입했고 적어도 현재까지는 관련 의무를 충실히 지키고 있는 반면 인도는 NPT체제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인도의 태도는 서방측의 위선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하겠다. 아마드에 따르면, 인도가 이란에 대한 입장을 바꾼 이유는 이란이 200억 달러짜리 가스 계약을 취소하겠다고 위협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편 워싱턴은 인도에 대해 만일 인도가 미국측의 요구를 따르지 않는다면 "미국과의 핵기술 협력이 차질을 빚을 수도 있음"을 경고했다. 이에 대해 인도 외교부는 강경한 반박성명을 내놓았고 그러자 인도주재 미 대사관은 해명에 나서기도 했다.

2차대전 후 유럽과 아시아가 갈수록 독립적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은 미 전략가들에게는 커다란 골칫거리였다. 게다가 (라틴아메리카 등에서) 남남(南南)간의 협력이 진척되고, 유럽연합이 중국을 포용하며, 특히 (미국, 유럽, 아시아 등) 3극질서의 형성이 뚜렷해지면서 이러한 우려는 더욱 증폭되고 있다.

미국의 정보기구들은 당분간 미국이 중동의 석유자원을 통제하겠지만, 미국 자체의 석유 수요는 주로 서아프리카, 미주대륙 등 보다 안정적인 대서양쪽의 석유에 의존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미국의 중동 석유자원 통제는 이제 결코 확실한 것이 못 된다. 더욱이 세계무대에서 미국의 고립을 현저하게 심화시킨 부시행정부의 정책 덕택에 중남미 대륙에서 미국을 배제한 중남미 국가들 간의 협력이 심화되면서 이러한 미 정보기구의 전망마저도 위태로워진 실정이다. 부시행정부는 심지어 전통적 맹방인 캐나다마저도 돌아서게 만들었다. 참 대단한 업적이 아닐 수 없다. 최근 캐나다의 자원부 장관이 현재 캐나다가 미국으로 수출하고 있는 석유 중 4분의 1은 앞으로 수년 내에 중국으로 수출될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게다가 미주 대륙 최대의 석유 수출국인 베네수엘라는 다른 어떤 중남미 국가들보다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적대적 태도를 노골화하고 있는 미국에의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중국에 대한 석유수출 증대를 추진함으로써 워싱턴의 에너지계획에 타격을 가했다. 베네수엘라뿐만 아니라 중남미 국가들 전체가 중국과 교역 등 기타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중국과 중남미 국가들간의 관계는 약간의 우여곡절은 겪겠지만 결국에는 확대될 것으로 보이며, 특히 원자재 수출 국가인 브라질, 칠레와의 관계가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남미 선(善)의 축, 쿠바와 베네수엘라

한편 쿠바와 베네수엘라 간의 관계는 양국이 상대방의 비교우위 분야에 상호 의존하면서 매우 긴밀해지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자국산 석유를 값싸게 쿠바에 공급하고, 쿠바는 자국의 교사, 의사 등 고급인력 수천 명을 베네수엘라에 보내 문맹퇴치 및 보건의료사업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쿠바의 전문직 인력들은 다른 제3세계 국가에서도 그랬듯이 베네수엘라에서도 가장 가난하고 가장 소외된 지역에 들어가 활동하고 있다. 쿠바와 베네수엘라의 협력관계는 카리브해 지역의 국가들에까지 확대되고 있다. 베네수엘라가 돈을 대고 쿠바의 의사들이 이들 나라에 들어가 의료사업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기적 작전(Operation Miracle)'으로 불리는 쿠바-베네수엘라의 합작사업에 대해 쿠바 주재 자마이카 대사는 "남남 협력 및 남남 통합의 선구적 사례"라고 칭송했으며, 중남미의 대다수 가난한 민중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고 있다. 쿠바의 의료지원사업은 다른 지역에서도 큰 호응을 얻고 있다. 2005년 10월에서 파키스탄에서 발생한 지진은 근년에 발생한 끔찍한 자연재해 중의 하나였다. 엄청난 희생자가 발생한 것은 물론이고 숫자조차 파악되지 않는 수많은 생존자들이 쉴 곳이나 식량, 의약품조차 없이 엄혹한 겨울을 나야 했다. 당시 남아시아 지역의 신문들은 "쿠바가 아무런 비용부담을 요구하지 않은 채 (아마도 베네수엘라가 비용을 댔을 것이다) 최대 규모의 의사 및 의료인원을 파키스탄에 파견"했으며, 이에 대해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은 쿠바 의료팀이 보여준 "봉사정신과 열정"에 "깊은 사의"를 표했다고 전했다.

심지어 일부 분석가들은 쿠바와 베네수엘라가, 미국으로부터 독립된 라틴아메리카 블록의 형성을 촉진하기 위해, 통합할지도 모른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최근 베네수엘라는 남미 국가들의 관세동맹인 메르코수르에 가입했는데, 이에 대해 키르츠네르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남미 무역블록 형성의 "이정표", 룰라 브라질 대통령은 "남미 통합의 새로운 장"이라며 환영했다. 또한 독립적 전문가들은 "베네수엘라가 메르코수르에 가입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메르코수르를 지역 전체로 확대한다는 지정학적 비전을 강화시켰다"고 평가했다.

베네수엘라의 메르코수르 가입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우리는 이번 기회를 단순한 경제적 프로젝트, 즉 엘리트나 초국적기업만을 위한 프로젝트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중남미 민중들의 강력한 반발을 초래했던 미국 주도의 '미주지역자유무역협정(FTAA)'을 겨냥한 것이다.

베네수엘라는 또한 아르헨티나의 에너지난 극복을 위해 난방유를 값싸게 공급했으며, 2005년 아르헨티나 정부가 발행한 국채 중 거의 3분의 1을 사들였다. 베네수엘라의 아르헨티나 국채 매입은 미국 주도의 IMF에 의한 통제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지역 차원의 노력의 일환이다. 중남미는 1980년대 이후 20여년간 IMF가 강요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정책에 순응한 결과 파멸적 재앙을 경험했던 것이다. 키르츠네르 대통령은 IMF의 질곡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일방적 부채상환 계획을 발표하면서 "IMF는 아르헨티나 국민에게 가난과 고통을 초래한 정책들을 입안하고 집행했다"고 비난했다. IMF가 정한 규칙을 과감하게 위반함으로써 이제 아르헨티나는 IMF정책들이 초래한 파탄으로부터 상당한 회복을 누리고 있다.

미국으로부터 독립된 지역통합을 향한 발걸음은 2005년 12월 원주민 출신의 이보 모랄레스가 볼리비아 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모랄레스는 취임 직후 베네수엘라와 에너지협약을 맺었다.

중미 지역 대부분이 레이건행정부 이래의 폭력과 테러에 굴복한 반면 나머지 지역, 특히 베네수엘라에서 아르헨티나에 이르는 지역은 그렇지 않다. 이들 나라들은 IMF와 미 재무부가 신자유주의 정책의 모범사례로 꼽았던 나라들이지만 신자유주의 정책의 결과 국민경제가 결딴나면서 새롭게 각성하고 있다. 현재 이 지역 대부분의 국가들에는 중도좌파 정부가 들어서 있다. 원주민 출신 국민들은 점점 더 활동적이 돼가고 있으며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주요 에너지 생산국인 볼리비아와 에콰도르의 국민들은 석유와 가스 등 자국의 에너지 자원을 자신들이 통제하길 원하고 있으며, 심지어 일부 국민들은 생산 자체를 반대하고 있다.

많은 원주민들은, 값비싼 스포츠차량(SUV)을 타고 교통체증 속에 귀중한 석유를 태우고 있는 뉴욕 시민들을 위해 자신들의 삶과 사회와 문화가 방해받고 파괴돼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일부 원주민들은 남미 지역에 '인디오 국가'를 세우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한편 남미지역의 경제통합이 진행되면서, 남미지역의 엘리트 및 경제가 제국주의 세력과는 연결되는 반면 남미 국가들 간의 연계성은 없던, 스페인의 아메리카 정복 이래의 패턴이 역전되고 있다. 광범위한 분야에서의 남남 협력이 강화되는 것과 함께, 이러한 남남 협력은 역사상 유례가 없었던 전 지구적 정의실천운동이라는 기치 아래 뭉치고 있는 대중조직들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다. 이 대중운동은 '반세계화운동'이라고 불리고 있는데, 이는 이 대중조직들이 투자자와 금융기관들의 배만 불리는 세계화가 아니라 민중의 이익을 증진하는 세계화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여러 이유들로 인해 미국의 지구지배 시스템은 취약해져 가고 있다. 부시행정부의 전략가들이 초래한 타격이 없었더라도 미국의 지배력은 약화됐을 것이다.

새로운 장애에 직면한 미국의 민주화저지작전

그 결과 '민주화 저지'라는 미국의 전통적 정책을 추구해 온 부시행정부의 노력은 새로운 장애들에 직면하고 있다. 2002년 베네수엘라 쿠데타 실패에서 부시의 전략가들이 뼈아픈 교훈을 배웠던 것처럼, 이제 더 이상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군사쿠데타나 국제테러로 전복하는 일은 쉽지 않게 됐다. 이라크의 예에서 드러나듯, 대규모의 비폭력저항운동은 워싱턴과 런던이 피하고자 했던 총선을 치를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뒤이어 미국이 선호하는 후보를 밀어주고 독립적 언론의 입을 막아 미국의 입맛대로 선거 결과를 유도하려 했던 시도도 실패했다.

미국은 또 다른 문제들에도 직면했다. 미 점령당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노동운동은 상당한 실질적 진전을 이뤄낸 것이다. 이라크의 현 상황은 2차대전 후 유럽과 일본의 상황과 비슷하다. 당시 미국과 영국의 기본 목표는 독립적 노동운동의 기반을 잠식시키는 것이었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이유들로 인해 같은 정책을 추구했다. 그러나 노동조합은 대중적 참여와 함께 기본적으로 민주주의의 작동에 기여했다. 식량배급을 중단하고 파시스트적 경찰을 지원하는 등 당시 동원했던 수단들은 이제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다. 또한 '미국자유노동발전연구소'와 같은 노동관료조직을 동원해 노조를 와해하는 것도 이제는 불가능하다. 오늘날 미국의 일부 노동조합들은, 콜롬비아의 노동자들을 지원했던 것처럼, 이라크의 노동자들도 지원하고 있다. 최소한 미 금속노조와 일부 노조들은 이라크 노동조합들을 지원하고 있다.

이라크에서와 마찬가지로 팔레스타인에서도 선거는 (미국에게)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이미 말했던 바와 같이 미국은 야세르 아라파트가 살아 있는 동안 선거를 허용하지 않았다. 미국이 원치 않는 자가 지도자가 되는 사태를 경계했기 때문이다. 아라파트가 죽자 부시행정부는 선거 실시에 동의했다. 미국이 선호하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측이 승리할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바라는 선거 결과를 얻기 위해 부시행정부는 예전부터 써먹었던 방법을 동원했다.

부시행정부는 미 대외원조처(USAID)를 '은밀한 통로'로 이용해 "과격 이슬람단체 하마스로부터 강력한 도전을 받고 있는 현 집권세력 PA의 지지도를 높이기 위한" 은밀한 공작을 펼쳤고(워싱턴포스트), "집권 파타당의 이미지를 높이기 위한 수십 가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거의 200달러를 뿌렸다(뉴욕타임스). 미국이나 다른 서방국가의 선거에서 외세 개입의 흔적이 조금이라도 드러난다면 그 후보는 당장 파멸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뿌리 깊은 제국주의적 근성에 젖어 있는 부시행정부는 다른 나라에 대해 이러한 공작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일상적으로 행하고 있다. 그러나 선거 결과를 조작하려던 이러한 공작은 다시 한번 뼈아픈 실패를 맛보아야만 했다.

이제 미국과 이스라엘 정부는 이스라엘의 존재를 부정하는, 아니면 최소한 자신들이 주장하는 선을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국경으로 하는 조건에서 무기한 휴전에 응할 용의가 있다는 팔레스타인의 이슬람정권(하마스)에 어떻게든 대응해야만 한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입장은 서안지구의 상당 부분(본래 팔레스타인의 영토였으나 이스라엘의 정착촌 건설로 야금야금 먹어들어간)과 골란고원(1967년 6일전쟁 당시 시리아로부터 빼앗은)을 이스라엘의 영토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마스가 이스라엘의 "생존의 권리"를 거부하는 것은 워싱턴과 예루살렘이 팔레스타인의 "생존의 권리"를 거부하는 것과 닮은꼴이다. (미국의 이웃인) 멕시코는 미국의 "생존의 권리"를 인정했다. 하지만 미국이 전쟁에 의해 빼앗아간 멕시코 영토 거의 절반(캘리포니아주 등 현재 미국의 서남부 지역은 본래 멕시코 영토였다)에서의 "생존의 권리"까지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파멸시키겠다"고 공식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최근 수년간 이스라엘의 존재를 부정해 온 하마스가 이러한 강경정책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팔레스타인의 국가수립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미국 및 이스라엘의 태도와 닮은꼴이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자. 만일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의 노른자위 땅에 거대한 정착촌들을 여기저기 짓고 분리장벽을 만들어 이스라엘 국토를 조각조각으로 분리시킨 다음, 그것을 "하나의 국가"라고 우기면서 이스라엘인더러 거기 살라고 한다면 그걸 받아들이겠는가? 만일 하마스가 그런 제의를 한다면 미국과 이스라엘은 하마스에 대해 과격하고 극단적이며 폭력적이고 나아가 평화롭고 공정한 문제해결에 심각한 위협이라고 비난하지 않겠는가?

팔레스타인 이외 다른 지역에서도 민주주의를 잠식하기 위한 미국의 전통적 수법은 성공을 거두어 다. 아이티의 경우, 부시행정부가 사랑하는 "민주주의 건설의 선봉대, 국제공화당연구소"는 전 아리스티드 대통령의 반대파를 육성하기 위해 원조 중단 등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 온갖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아리스티드의 승리가 확실시되자 미국과 반대파는 선거 자체를 보이코트했다. 원치 않는 후보가 승리가 불가피할 경우 애용해 온 수법이다. 1984년의 니카라과, 2005년의 베네수엘라에서도 같은 수법이 동원됐다. 그것도 안 되면 군사쿠데타, 대통령 축출, 테러와 폭력 등이 동원된다.

미국은 한편으로는 인권과 자유 등 고상한 가치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입에 발린 말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위와 같은 온갖 수단을 동원해 다른 나라의 민주주의를 파괴하면서 미 국내 지배세력의 전략적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 이는 사실상 역사적으로 보편적 현상이었으며, 이 때문에 양식 있는 사람들은 지도자들의 고상한 선언에 콧방귀를 뀌는 것이다.

미국이 민주주의를 회복하려면

이와 같은 비판에 대해 일부에서는 잘못된 것을 지적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대안을 제시하라고 반박한다. 그러나 실상은 이와 다르다. 비판자들이 대안을 제시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들이 제시한 대안을 지도자들은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미국이 해야 할 아주 간단한 제안들이 여기 있다.

1) 국제사법재판소 등 국제법정의 권한을 인정할 것
2) 교토의정서를 비준하고 실행에 옮길 것
3) 국제적 위기의 해결은 유엔의 주도에 맡길 것
4) 테러문제의 해결은 군사적 수단이 아닌 외교적, 경제적 수단에 의할 것
5) 유엔헌장을 미국 입맛대로 해석하지 말 것
6) 유엔 안보리의 거부권을 포기하고, 미국독립선언이 권고한 대로 인류사회의 의견을 존중할 것(그것이 권력 핵심의 입맛에는 맞지 않는다 해도)
7) 군사비를 대폭 줄이고 사회복지비용을 대폭 늘일 것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에게 이는 별로 과격한 제안도 아니다. 또한 미 국민 대다수, 대부분의 경우에는 압도적 다수가 지지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는 현재 미국의 공공정책과 정반대다. 그런데 우려스러운 것은 현재 미국의 실제 여론이 이를 지지할지 확실치가 않다는 점이다. (현재 미국이 처하고 있는) 민주주의의 결핍에 의해 이러한 주제들이 공공담론에 거의 등장하지 못하고, 기본적 사실조차 거의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 미국은 매우 원자화된 사회이며, 이에 따라 국민들은 사려깊은 의견을 형성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온건한 제안은 사실과 논리, 기본적 도덕률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위에 말한 것들만 제대로 지킨다면 현재 우리가 맹신하고 있는 독트린의 상당 부분과 결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간단한 진실에 충실하기만 해도 우리는 보다 구체적이고 자세한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다. 나아가 이를 실행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으며, 우리에게 덧씌워진 환상으로부터 벗어나 현실을 직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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