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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이 운다, 섬이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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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이 운다, 섬이 운다

[황새울에 평화를! 릴레이 기고] 김수열 '제주에서 보내는 편지'

최 신부님,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섬의 하늘은 온통 내려앉아 있습니다. 간간이 비가 내리고, 팽나무를 갈라 치는 바람이 불고, 섬의 어머니 한라산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습니다.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듯한 기세입니다.

이렇듯 가라앉은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금 창밖에서는 확성기를 타고 한 표를 호소하는 후보자들의 간절한 목소리가 애처롭게 들립니다. 마치 자신이 당선이 되면 간이라도 내줄 것 같은, 비굴함에 가까운 호소입니다. 특별자치도 원년에 해당하는 이번 선거에서는 한꺼번에 네 차례의 투표를 해야 합니다. 도지사, 도의원, 비례대표 정당 그리고 교육위원을 뽑는 선거입니다. 선거운동원들이 눈에 띄는 복장을 하고 유세차량에서 흘러나오는 로고송에 맞춰 율동을 하면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지만, 정작 유권자들의 반응은 냉담하기 그지없습니다. 도지사 후보를 제외하고는 우리 마을에 나오는 도의원이 누군지, 교육위원이 누군지조차 알지 못하는 형국이니까요.
ⓒ프레시안

최 신부님,

여여하신지요? 지난 4·3 행사 때, 문정현 신부님과 함께 제주에서 뵌 지 벌써 두 달이 지나고 있습니다. 저만이 아니라 그 행사장을 가득 메웠던 섬사람들을 향해 때로는 성난 사자처럼, 때로는 땅을 빼앗긴 촌로의 애절한 절규처럼 가슴으로 내지르시던 문 신부님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대추리가 송두리째 섬으로 온 느낌이었지요.

4·3항쟁과 대추리, 어떻게 보면 전혀 별개일 수도 있겠으나 실은 전혀 별개가 아니지요. 60년 전의 대추리가 바로 4·3이고, 60년 후의 4·3이 다름 아닌 지금의 대추리겠지요. 문 신부님과 최 신부님을 제주로 오시게 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지요. 제주의 4·3은, 물론 그 동안의 오랜 투쟁의 결과로 특별법을 얻어내고 국가 최고책임자로부터 '국가공권력에 의한 양민학살'이었다는 사과를 받아내는 데까지는 성공을 했지만, 앞으로 가야 할 길은 멀고도 험난한 길이지요.

그런데 섬사람들이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4·3이 그나마 오늘에 이르기까지 절대 섬사람들의 힘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많은 노력과 희생이 뒤따랐지요. 그러나 냉정하게 뒤돌아보면, 70, 80년대의 민주화 투쟁이 없었더라면, 그러한 투쟁의 결과물로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없었더라면 제주4·3은 아직도 폭동이고, 그 당시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간 수많은 주검은 지금도 빨갱이라는 누명을 벗지 못한 채 중음신이 되어 바람길 구름길을 떠도는 원혼으로 남아 있겠지요.

이제 이태 후면 4·3항쟁 60주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역사의 순환고리를 한 바퀴 돌아 다시 원점으로 왔다는 얘기겠지요. 그러나 이렇게 다시 돌아온 원점은 60년 전 그때와는 전혀 다른 그 무엇이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물론 확실한 진상규명도 필요하고 배상과 보상에 관한 문제 등 풀어야 할 난제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만, 이제 제주의 4·3은 이 땅에서 벌어지는, 전 지구적으로 벌어지는 오늘날의 '4·3'과 연대하고 함께 어깨를 겯고 나아가야 한다는 게 제 소박한 마음입니다.

지난 4·3 전야제 때, 대추리 주민들과 함께 생사를 같이 하며 투쟁하고 계신 문 신부님을 모신 것이나, 생명평화탁발순례를 하면서 이 땅의 뭇 생명들에게 진정한 생명의 기운을 북돋우고 계신 도법 스님을 모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지요.

최 신부님,

그때 그 자리에서 저는 섬의 예술일꾼들과 함께 대추리를 찾겠노라고 약속을 했지요. 예술일꾼으로서가 아니라 비록 서툴지만 그곳 주민들의 일손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리고자 하는 마음가짐으로 그곳을 찾겠다고 약속을 했지요. 그런데 신부님, 저는 부끄럽게도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떠나기로 한 날, 섬에서는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졌지요. 80년대, 거리에서 민주화를 같이 부르짖었던 후배가 졸지에 유명을 달리하는 바람에 차마 발걸음을 뗄 수가 없었지요. 하여 저를 제외한 일꾼들만 대추리를 찾았더랬습니다. 딱히 여기 남아서 이미 이승을 멀리 한 후배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빈소 한 구석에라도 있어주는 것이 예의라고 판단했습니다.

그곳을 다녀온 친구들로부터 대강의 소식을 들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대추리는 미국 용병이나 다름없는 이 땅의 군인 경찰들에 의해 철저하게 유린당하는 장면을 멀리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지요.
ⓒ 프레시안

최 신부님,

"올해도 농사짓자"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의 구호를 보면서 자꾸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누가 늙은 농사꾼들의 농토를 앗아가려 하는 건지요? 대추리 도두리 사람들은 이미 두 차례나 자신들이 일군 농토를 빼앗겼다 하지요. 일제강점기 때 일본군이 비행장을 만든다며 쫓아냈고, 한국전쟁 직후에는 미군이 기지를 건설하면서 다시 강제수용을 했다지요. 마을에서 쫓겨난 사람들은 내륙 깊숙이 밀려와 농토로는 가당치 않던 척박한 땅에 둑을 쌓아 농토를 만들었고, 그곳이 바로 국방부가 강제수용하여 미군기지로 내주려는 지금의 대추리와 도두리 너른 들판이라더군요.

지금의 대추리 도두리 상황을 보면서 어쩔 수 없이 내가 사는 제주가 자꾸 떠오릅니다. 한편으로는 평화의 섬이라고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군사기지를 건설하려는 야욕을 벼리는 속셈 때문이지요. 해군기지를 건설하겠다는 공론이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자 이젠 공군기지를 건설하겠다는 국방부의 속내가 드러나면서 이번 선거의 커다란 이슈로 부각되고 있지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후보자들의 공통된 견해가 해군기지는 되는데 공군기지는 안 된다는 이율배반적인 논리에 어안이 벙벙할 따름입니다. 그럼 '평화의 섬'은 허울 좋은 구호에 불과한 것이었는지요.

최 신부님,

4·3으로 인한 가장 큰 피해가 무엇인지 아는지요. 물론 엄청난 인명살상을 빼놓을 순 없겠지요.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심각한 것은 섬공동체가 완전히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섬에서는 이웃에 사는 사람들을 남녀 불문하고 '삼촌'이라고 부르곤 했지요. 그런데 그 삼촌이 이젠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이지요. 60년이 지난 지금도 와해된 공동체의 상흔은 어렵지 않게 드러나곤 합니다. 콩 하나도 나누어 먹던 인정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손가락질해야 했던 그 깊은 상처가 아직도 치유되지 않은 채 삶의 여기저기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최 신부님,

대추리와 도두리를 생각하면서 여기저기 실린 글을 읽다가 너무 가슴이 아픈 사연 하나가 실려 있어 소개합니다. 그리고 오는 6월 7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뵐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이만 줄입니다.

"지난 월요일, 대추리를 다녀왔다. 너무나 평온하고 아름다운 곳, 마구마구 살고 싶어지는 곳. 간간이 나부끼는 깃발과 벽시들이 아니었다면, 그곳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려고 하는 건지 까맣게 잊어버렸을지도 모를 만큼, 대추리는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그곳 상황실에 계시던 여름 씨에게 들은 얘기 중 가장 가슴이 아팠던 건, 공동체의 파괴에 대한 얘기였다. 매일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촛불집회에 나온 할아버지가 갑자기 나오시질 않아 이상하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집안의 누군가가 몰래 인감을 만들어 기지건설에 찬성하고 선매금을 받았더라는. 그게 너무 미안해서, 할아버지는 그 이후로 마을 사람들 몰래 다니신다는 얘기. 또 어떤 할머니는 일찌감치 평택시로 이주를 하셨는데, 아파트촌의 적막함을 이기지 못해 대추리로 마실을 오셨다고 한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이 배신자라고 손가락질하며 수군대는 통에, 결국은 발길을 끊으셨다는 얘기.

또 있다. 먼저 이주해 간 사람들이 집을 그냥 두고 가면 다른 사람이 들어와서 사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떠나는 사람들에겐 집을 부수고 가라고 했다던가. 그 아름다운 마을 곳곳에 흉물스럽게 부서져내린 집들은 자신의 삶의 자리를 스스로 파괴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내쫓기듯 떠나간 대추리 사람들의 비명 같았다. 대추리에 웃음이 없어졌다고 한다. 서로를 보고 웃을 수 없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이미, 대추리는 너무 많은 걸 빼앗겼다는 생각. 얘길 듣는 내내, 가슴이 뻐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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