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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비아 25년만에 외교관계 전면 정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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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비아 25년만에 외교관계 전면 정상화

北·이란에 '메시지'…사실상 '양자접촉', 북핵 해법과 달라

미국과 리비아가 25년여만에 외교관계를 전면 복원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15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리비아를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하고 수도 트리폴리에 미국 대사관을 개설하는 등 양국간 외교관계를 전면 정상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15일로 정해진 미 의회 통지기간을 거쳐 트리폴리에 대사관을 개설하는 등 대사급 외교관계를 복원하고 45일 내에 리비아를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미 국무부는 매년 국가별 테러리즘 보고서를 발표해 국제적인 테러행위에 직접 가담했거나 이를 지원·방조한 혐의가 있는 나라를 테러지원국으로 분류하고 있다. 올 4월 발표된 보고서에서는 리비아와 북한, 이란, 쿠바, 시리아, 수단 등 6개국이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됐었다.

라이스 장관은 성명에서 리비아가 2003년 12월 이후 미국과의 합의를 통해 대량살상무기(WMD)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폐기했다며 리비아는 북한과 이란 같은 나라에 "중요한 모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2003년이 리비아 국민들에게 전환점이 됐던 것처럼 2006년은 북한과 이란 국민들에게도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말해 이번 결정이 북한과 이란에 대한 정치적 메시지를 보내기 위한 것임을 내비쳤다.

북한·이란 향한 정치적 메시지 의미 짙어

미국은 1979년 트리폴리 주재 미국 대사관이 시위대에 의해 공격을 받은 뒤 1980년 리비아와 외교관계를 끊었고 리비아를 테러지원국 명단에 올리는 등 오랜 기간 적대관계를 유지해왔다.

특히 1986년 미군 병사들이 많이 출입하는 베를린 디스코클럽 테러사건에 리비아가 연루된 것으로 밝혀지고, 1988년 270명의 희생자를 낸 팬암기 폭파사고에도 리비아가 개입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양국관계는 크게 경색됐다. 미국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1981년과 1986년 두차례 리비아를 폭격하기도 했다.
▲ 1986년 미국의 폭격에 의해 파괴된 리비아 카다피 원수의 집무실. 카다피는 이 사건으로 딸을 잃었다. ⓒ연합뉴스

리비아는 그러나 2003년 12월 미국과 WMD프로그램 폐기에 전격 합의했고, 이후 구체적인 핵무기 시설 해체에 나서 관련 시설들을 미국으로 옮겨 보관하는 작업이 현재 마무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레이건 대통령 시절 '중동의 미친 개'라는 악담을 들으며 미국과 날카롭게 대치해 왔던 무하마드 카다피 국가원수가 그같이 극적인 전환을 하게 된 것은 미국이 WMD 프로그램 보유를 이유로 이라크 공격을 단행하자 다음 공격 목표가 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이었다는 분석이 우세했다.

리비아의 핵무기 프로그램 폐기는 국제사회에서 이른바 '리비아식 모델'이란 새로운 핵문제 해결방식으로 꼽혀 왔다. 미국은 리비아의 이같은 결정에 따라 2004년 트리폴리에 이익대표부를 개설했고 같은 해 6월 이를 연락사무소로 격상한 바 있다.

특히 미국이 리비아와 외교관계를 전면 정상화한 것은 리비아가 석유 부존량이 많은 주요 산유국이라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리비아의 핵 포기는 사실상의 '양자접촉' 결과

라이스 장관의 성명에도 드러나듯 미국은 '선 WMD 해체 선언 후 안전보장-경제협상-관계정상화'라는 '리비아 모델'을 북한과 이란에 강요하고 있다. 먼저 일방적으로 '항복'을 하고 나오면 안전을 보장해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리비아의 WMD 해체 과정에는 영국을 매개로 한 미국과의 양자 접촉이 명백히 존재하기 때문에, 북한·이란과의 협상에서 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양자 대화가 반드시 필요함을 지적하고 있다. 미국은 북핵 문제에서는 6자회담, 이란핵 문제에서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과 이란의 협상 같은 다자적 해법에만 골몰하고 있다.

리비아는 2003년 12월 핵 프로그램 포기 합의를 하기까지 6개월동안 영국과 비밀 접촉을 했다. 그 과정에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를 통해 안전보장과 경제 보상 같은 구체적인 메시지를 전달했고 그같은 교감의 과정이 사실상의 양자접촉이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또한 리비아와의 핵포기 협상은 이미 클린턴 행정부 때 시작돼 부시 행정부가 이를 계승해 마무리지은 반면, 북한과의 협상에서는 부시 행정부가 전임 클린턴 행정부 때의 협상 성과를 깡그리 무효화했다는 점에서 결정적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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