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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정부가 나치식 논리를 내세우다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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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정부가 나치식 논리를 내세우다니요"

[기고] 주한 이스라엘 대사에게 보내는 편지

이갈 카스피 주한 이스라엘 대사가 지난달 31일 연세대 강의에서 "아랍인들은 모두 테러리스트"라고 '망언'을 해 학생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은 일에 대해 한국의 한 젊은이가 카스피 대사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프레시안〉에 보내왔다.

'팔레스타인평화연대'라는 시민단체 소속의 안영민 씨는 팔레스타인 현지에서 강경 이슬람 단체 하마스의 집권을 가져온 총선 과정과 이스라엘군의 폭력에 시달리는 주민들의 모습을 목격하고 돌아와 팔레스타인에 대한 지원과 평화운동을 펴고 있다.

안 씨는 이 서한에서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불법 점령 역사와 현재에도 진행중인 폭력의 실상에 대해 담담히 기술하면서 "카스피 대사가 자랑스럽게 말하는 이스라엘식 평화가 그런 것이냐"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가 목격한 '테러리스트들의 땅' 팔레스타인의 진실을 들어보자.

〈사진1 : 체포되는 팔레스타인인〉

***카스피 이스라엘 대사님께**

안녕하세요. 저는 팔레스타인평화연대라는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 한국인입니다. 제가 이렇게 편지를 드리는 이유는 대사님께서 지난달 31일 연세대에서 하셨던 강의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 문제에 대한 제 시각을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저의 기본 입장은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의 탄생 자체가 제국주의와 유대 민족주의 그리고 군사주의의 산물이고 현재 이스라엘은 점령국가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 대해서는 저보다 대사님이 더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제1·2차 세계대전 과정에서 오스만 투르크 제국을 패배시키고 중동 지역을 차지하게 된 영국과 프랑스는 자기들 마음대로 국경을 긋고 국가를 만들었습니다. 그 국가들은 당연히 영국과 프랑스의 이익을 실현할 수 있는 국가였습니다. 단 하나 차이가 있다면 팔레스타인 지역에는 아랍인들의 국가가 세워진 것이 아니라 유대 민족주의자들이 지배하는 국가가 세워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 민족주의자들은 아랍인들의 반발을 억누르기 위해 영국으로부터 지원받은 무력을 앞세웠고, 그 결과가 1948년 5월 이스라엘 건국 선포 전후에 이루어졌던 대규모 학살과 강제 추방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 고향에서 쫓겨났던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스라엘이라는 점령국가가 생긴 지 58년쯤 흘렀습니다. 지난 세월 동안 있었던 또 다른 전쟁과 추방, 학살 등에 대해서는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다만 올해 초 제가 팔레스타인에서 보고 겪은 것에 대해서만 짧게 말씀드리겠습니다.

***팔레스타인차와 이스라엘차 : '억압의 땅' 팔레스타인**

〈사진2 : 팔레스타인 차량 행렬〉

지난 1월 24일 저는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에 있는 칼킬리야에서 라말라로 가기 위해 차를 탔습니다. 그리고 5번 체크포인트(검문소)를 통과해야 했고, 한 체크포인트에서는 차에 탄 채 50분 동안 기다려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분이시니 체크포인트가 무엇인지, 그리고 칼킬리야와 라말라가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는 것도 잘 아실 겁니다. 길게 늘어선 차량 속에서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저는 이스라엘을 원망했고, 초록색 번호판을 단 팔레스타인 차량들 옆으로 빠르게 통과하는 노란색 번호판의 이스라엘 차량을 보면서 황당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치 팔레스타인인들이 오랜 세월 자유로운 삶을 기다리는 동안 이스라엘 정부는 빠른 속도로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억압을 강화해 가는 모습을 보는 듯했습니다.

그후 2월 11일 예루살렘에 있던 저는 '다마스커스 게이트' 근처를 중심으로 벌어졌던 이스라엘 군의 폭력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길 가던 사람들을 이유없이 곤봉으로 때렸고, 학생들이 잔뜩 모여 있던 버스 정류장에 최루탄을 던졌습니다. 사람을 체포해서 손을 묶어 끌고 갔고, 할머니들이 팔려고 길거리에 내놓은 야채 꾸러미를 군화발로 걷어찼습니다. 그리고 사진을 찍는 저에게 사진을 찍지 말라고 욕을 하고 곤봉을 내려칠 듯 위협을 했습니다. 그때 옆에 계시던 한 분이 제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보세요, 이게 바로 테러에요. 이것이 테러가 아니면 뭐가 테러란 말이에요."

〈사진3 : 야채꾸러미 할머니들〉

대사님, 혹시 가자지구에 가보셨습니까? 아시겠지만 가자지구로 들어가거나 가자지구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에레즈 체크포인트를 통과해야 합니다. 혹시 대사님도 에레즈 체크포인트를 통과하실 때마다 원통형의 공간에 들어가 두 손을 머리 위로 든 채 전신 엑스레이 촬영을 당하시나요? 물론 이스라엘인이신데다 대사쯤 되시니 이스라엘 정부가 대사님께는 그러지 않겠죠. 가난하고 힘없는 가자지구의 노동자들이나 엑스레이 촬영을 감내하며 일을 하러 가는 거겠죠. 혹시 사람이 매일 전신 엑스레이 촬영을 당하면 그 사람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이나 해 보셨습니까? 이런 것들이 과연 대사님이 자랑스럽게 말씀하시는 이스라엘식 평화입니까?

***'테러리스트' 국가들과 협력하는 이스라엘**

대사님은 민주주의에 대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지난 1월 25일 팔레스타인 총선이 치러지는 과정을 지켜봤습니다. 팔레스타인 총선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민주적으로 치러진 선거였습니다. 그런데 총선 전부터 이스라엘과 미국, 유럽연합(EU)이 보인 태도는 어땠습니까? '팔레스타인인들이 하마스를 지지하면 '더 이상 협상은 없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겠다'며 노골적으로 선거에 개입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심지어는 하마스와 관련된 사람들을 체포하고 구속까지 하지 않았습니까? 이것이야말로 비민주적인 행동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대사님도 그렇고 이스라엘 정부는 지금까지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과 대화나 협상할 의지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렇습니까? 지금 하마스를 포함해 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에 대해 요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건국 이전 역사적인 팔레스타인 땅 가운데 22%, 즉 가자지구와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서안지구만이라도 돌려주면 이스라엘과 협상을 벌여 독립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런 제안마저도 거부하고 있는 것이 이스라엘입니다. 가슴 아프지만 많은 것을 양보하고서라도 평화와 생존을 얻겠다고 나서는 것은 이스라엘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입니다.

연세대 강의에서 대사님은 팔레스타인인들뿐만 아니라 아랍 사람들 전체가 테러리스트이고 민주주의를 전혀 모르는 족속들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왜 요르단과 평화협정을 맺었습니까? 왜 이스라엘은 이집트와 평화협정을 맺은 것도 모자라 이집트로부터 천연가스를 수입하기로 했습니까? 테러리스트들이 바글대는 테러리스트 정부와 이런 친선관계를 맺은 이유를 대사님은 무어라 설명하시겠습니까?

이집트와 요르단의 예를 빼고라도 대사님의 발언은 아주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 받고 죽임을 당했던 홀로코스트에 대해서는 저보다 대사님이 더 잘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이런 일들이 벌어질 때 나왔던 논리가 무엇입니까? 가해자는 위대한 민족이고 피해자들은 사라져야 할 민족이라는 논리 아닙니까? 그런데 홀로코스트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자는 이스라엘 정부가 어째서 지금 나치식의 논리를 내세워 아랍인들을 짓누르려고 하는 겁니까?

어떤 사람이건 집단이건 누구나 실수도 하고 잘못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자신의 잘못을 얼른 깨달아 반성하고 고치려는 사람을 지혜롭다고 합니다. 반면에 자신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고, 알아도 고치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을 어리석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이라고 불리는 지역을 포함해 역사적인 팔레스타인에는 메마른 땅도 많지만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푸른 땅도 많습니다. 많지는 않아도 사람들이 쓰기에 크게 부족함이 없는 물도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이 땅에서 그들이 유대인이건 아랍인이건, 이스라엘인이건 팔레스타인인건 모두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사는 자유롭고 평등한 국가를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 정부는 지혜의 길을 버리고 팔레스타인인들을 무력으로 장벽으로 체크포인트로 죽이고, 때리고, 가두는 길을 선택하여 점점 더 깊은 어리석음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사진4 : 보안장벽〉

따라서 카스피 대사님이 진정으로 이스라엘 정부가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지혜의 길을 가기를 원하신다면 지금부터 하셔야 할 말씀은 '아랍인은 테러리스트다'가 아니라 '아랍인들에 대해 가졌던 저의 편견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무력 공격을 중단하겠다'는 것과 같은 말씀일 겁니다.

오늘은 뜻하지 않은 기회에 그리 유쾌하지 않은 이유로 이렇게 대사님께 편지를 썼습니다. 다음에는 편지가 아니라 직접 뵙고 차나 한 잔 나누기를 바랍니다. 점령과 억압의 세월이 지나고 인간과 인간이 평화롭게 연대하며 살아갈 수 있는 팔레스타인에서.

2006년 4월 7일

〈사진 5 : 삽화〉

(아래는 박스로 처리해주세요...........)

* 팔레스타인평화연대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가하고 있는 군사점령, 살인, 구금, 빈곤 등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며 지난 2003년부터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들의 단체다. 거리캠페인, 강연, 홈페이지 등을 통해 미국, 이스라엘 그리고 보수 언론들이 만들어 내고 있는 '팔레스타인=테러리스트'라는 이미지를 넘어 지금 팔레스타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 진실을 알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홈페이지 주소는 http://www.pal.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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