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갈 카스피 주한 이스라엘 대사가 지난달 31일 연세대의 채플(성경수업) 강연 도중 아랍인들을 테러리스트라고 지칭하고 민주주의도 전혀 모른다는 등의 아랍권 비하 발언을 해 파문을 예고하고 있다.
카스피 이스라엘 대사의 '테러리스트' 발언이 나온 것은 이날 2교시(1학년 대상)와 3교시(2학년 대상) 수업으로 '중동평화'를 주제로 한 연대 교목실의 초청 강연에서였다.
이 수업에 참석했던 전기전자공학과 2학년 김용진 군은 "카스피 대사가 강연 중 '중동 국가들이 국제사회에 공헌한 것이라고는 오직 기름뿐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김 군은 또 카스피 대사가 "우리가 팔레스타인 땅을 차지할 권리는 성경에 있다" "팔레스타인은 테러리스트 집단"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정권이 우리와 얘기할 의지가 없기 때문에 이스라엘도 팔레스타인과 대화할 수가 없다"는 등의 발언을 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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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 문제 제기에도 '아랑곳' 없어**
카스피 대사의 이같은 발언은 수업 당시에도 문제가 됐다. 교목실 관계자에 따르면 2교시 수업이 끝난 뒤 몇몇 학생들이 강사 대기실에 있는 카스피 대사에게 직접 찾아와 수업 내용에 대해 항의했다. 또 3교시 수업 중에는 한 학생이 자리에서 일어나 문제제기를 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 학생은 수업이 끝난 후 인터넷 '연세대 정보공유 게시판'에 글을 올려 "처음부터 대사의 말을 듣는 내 귀를 의심했다"며 "대사가 '팔레스타인이 아니라 아랍 사람들 전체는 테러리스트이고, 민주주의를 전혀 모르는 족속들이며, 평화와 민주주의 세력의 대변자는 이스라엘'이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이날 3교시 수업의 사회를 맡았던 연대 교목실의 이대성 교목은 5일 〈프레시안〉과의 전화 통화에서 "대사가 그런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은 맞다"고 확인하고 자신은 수업 후 학생들에게 강연에 대한 판단은 스스로의 몫이라고 강조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 대사관측은 "대사의 발언은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지 특정부분만 잘라서 봐선 안된다"고 주장하면서 학생들이 대사의 발언을 왜곡했다고 말했다.
이 대사관 관계자는 이어 "팔레스타인 영토의 경우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의 땅이었다는 의미였다"면서도 "전쟁을 일으키려는 쪽은 이스라엘이 아니라 아랍권 국가들인 것은 중요한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2차대전 후 '전쟁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일본을 보는 듯 했다"**
수업에 참석했던 학생들은 교목실 홈페이지와 인터넷 정보공유 게시판 등에 카스피 대사의 발언과 관련한 글을 올려 이스라엘의 편향된 정치관을 제3국의 대학 수업에서 일방적으로 펼친 카스피 대사의 태도에 불쾌감을 토로했다.
3교시 수업 도중 대사의 발언에 대해 항의했다고 밝힌 한 학생은 "오히려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분리)장벽 안에 가둬놓고 생활권을 박탈해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못하고, 청년들은 직장에 가지 못해 인간다운 삶을 포기한 상황이 떠올랐다"고 지적했다.
그는 "카스피 대사가 나중에 아랍 인민들과 아랍 위정자들을 분리해서 얘기한 것이라고 변명을 했지만 그 사람의 말을 자세히 들은 사람이라면 분명 대사가 아랍 '인종'과 이슬람 '종교'에 대한 증오를 걸러내지 않고 배설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게시판에서 논란이 지속되자 그는 '당사자'라는 아이디로 또 다른 글을 남겨 "남의 종교와 남의 문화와 남의 민족 자체를 격하하고 비난했다. 강사들이 자기의 종교와 민족을 자랑하는 건 똘레랑스(관용)의 측면에서 용납할 수 있겠지만, 다른 종교와 다른 민족 자체를 비난하고 격하하는 건 앵똘레랑스라고 생각한다"라고 주장했다.
'채플 싫다'는 아이디의 한 학생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들은 약자이고 선하고 민주적이라는 논리'는 한 마디로 일본이 2차대전을 일으키고는 자신들은 '전쟁피해자'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꼴 같았다"고 반발했다.
이 학생은 "미국의 묵인 하에 핵무기까지 보유하고 있는 이스라엘이 어떻게 약자이며, 팔레스타인 사람이 1000명 죽고 이스라엘 사람이 10명 죽었는 데에도 팔레스타인이 테러를 저질렀다고 주장하는 국가가 왜 선한가? 팔레스타인에서 투표를 통해서 정권교체도 이뤘는데 왜 민주적이지 않은가? 이스라엘이 마음에 안 드는 투표 결과면 무조건 비민주적인가? 마치 이라크처럼…"이라고 비판했다.
이 수업을 듣지 않은 학생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사학과 박상은 양은 "팔레스타인인들을 다 테러리스트로 모는 것은 어처구니가 없는, 기본이 안 되어 있는 발언"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교목실 책임' 지적도…교목실도 사과 발표**
논란이 지속되면서 대사의 발언 내용을 사전에 조율하거나 막지 못한 교목실에도 비판의 화살이 쏠리고 있다.
교목실 홈페이지에 '연세인'이라는 아이디로 글을 남긴 한 학생은 "의견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이런 극단적인 정치적 의견을 개진할 자리를 채플시간에 마련해 줬다는 것이 문제"라며 "사전에 어떤 의견을 얘기할지 적어도 확인하고 채플의 취지를 전달해야 하는 것은 전적으로 교목실 책임"이라고 지적했다.
'이민형'이라는 아이디로 글은 남긴 한 학생은 "연세대학교 채플이 무슨 자기 나라를 대변하는 자리냐"고 비판하며 "한 나라의 외교관이라는 사람이 머릿속에 서구우월주의만 꽉 차서 팔레스타인인도 아닌 우리에게 포고 아닌 포고를 하는 모습"이 불편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도중에 뛰쳐나가려다가 말았다"고 덧붙였다.
학생들의 반발이 쏟아지자 연대 교목실은 31일 오후 5시 경 홈페이지를 통해 "균형 잡히지 않은 한 쪽의 의견이 일방적으로 전달되게 된 상황에 대해서 교목실에서도 미안하게 생각한다"며 강사 선정에 더욱 주의를 기울이겠다고 강조했다.
교목실 관계자는 "강사를 선정한 후 강연 내용에 대해 사전에 조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대사의 발언에 교목실도 당황했다고 털어놨다.
이대성 교목은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며 "(카스피 대사가) 정치적 입장을 강하게 가진 분이어서 그 입장을 얘기한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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