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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와 블레어도 전쟁범죄자로 처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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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와 블레어도 전쟁범죄자로 처벌하라"

[김재명의 월드 포커스]〈19〉 밀로셰비치의 항변

이미 보도된 대로, 3월 11일 전 유고연방 대통령 슬로보단 밀로셰비치가 헤이그 유고전범재판소(ICTY) 감옥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지난 2001년 4월 체포돼 ICTY로 압송돼온 뒤 지리한 법정공방을 벌이다 심장마비로 간 밀로셰비치의 삶을 어찌 볼 것인가는 보는 이에 따라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세르비아 수도 벨드라드의 몇 안되는 완고한 밀로셰비치 지지자들은 눈물을 흘리며 복수를 다짐하지만, 같은 발칸반도의 다른 민족집단에선 "그가 저지른 전쟁범죄 죄값을 법정에서 받아야 마땅한데…"라는 안타까움을 보인다.

***발칸증후군 남기고 가다**

20세기의 마지막 10년 유럽사는 유고슬라비아의 세르비아계 정치지도자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를 빼놓고는 마침표를 찍을 수 없다. 크로아티아내전, 보스니아내전, 코보소내전 등 1990년대 발칸반도를 붉은 피로 적셨던 유혈투쟁은 밀로셰비치의 투쟁사이기도 했다. 그가 '위대한 세르비아' 구호와 함께 내걸었던 극단적 민족주의(ultra-nationalism)의 깃발은 주변의 민족주의와 충돌했고, 밀로셰비치에겐 '발칸의 도살자'란 불명예스런 딱지가 붙었다.

(사진설명) 1999년 코소보내전에서의 학살현장. 한 유족이 죽은 이의 훼손된 시신 앞에서 울고 있다.(사진 ⓒ김재명).

밀로셰비치가 1989년 세르비아의 실권을 잡은 것은 "위대한 세르비아" 건설을 깃발로 내걸어 세르비아민족주의를 자극, 대중적 인기를 얻고 나서였다. 밀로셰비치를 권좌로 이끈 것은 바로 코소보였다. 밀로셰비치는 두 차례 코소보를 방문했다. 1987년과 1989년이다. 정치적 야심에 가득 찼던 밀로셰비치는 코소보 첫 방문길에 그곳 세르비아 주민들을 향해 "아무도 당신들을 감히 때리지 못한다"라는 선동적인 연설을 함으로써 일약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이를 바탕으로 그 해 세르비아사회주의당 당권을 장악하고 2년 뒤 세르비아대통령에 올랐다.

이는 거꾸로 유고연방 내의 다른 공화국들로부터 경계심을 불러 일으켰다. 1980년대 말 동베를린 장벽 붕괴와 소비에트연방 해체, 그리고 주변민족들을 자극한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의 세르비아 민족주의는 유고연방 해체의 결정적인 촉매로 작용했다. 결국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진리임을 1990년대의 발칸반도가 보여주었다.

밀로셰비치가 관련된 발칸의 유혈투쟁은 이 지역의 많은 어린이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이른바 '발칸증후군'이다. 코소보전쟁이 막 끝난 1999년 6월 나토군과 함께 코소보에 들어갔을 때, 필자는 아버지 또는 삼촌을 잃고 울부짖는 어린이들을 많이 봤다. 그들의 정신적 아픔이 쉽게 가라앉지는 못한다.

꼭 1년 뒤인 2000년 코소보 서부 산간마을 쿠스닌의 초등학교 교실에 들어가 봤다. 지난 전쟁 중에는 이 학교도 문을 닫고 대부분의 학생들이 부모를 따라 알바니아 또는 마케도니아로 피란을 갔었다. 학교라고 해봐야 큰 교실 하나, 작은 교실 하나, 합쳐 2개뿐이었다. 그래서 고학년과 저학년으로 크게 나눠 2부제 수업이다. 큰 교실에서 30명쯤 되는 어린이들이 공부를 하고 있었다.

알바니아 쿠케스 난민수용소에서도 느낀 일이었지만, 코소보 어린이들은 다들 크고 작은 마음의 상처들을 지니고 있다. 시골아이들, 그들은 순진하고 맑은 눈망울을 지녔다. 그런데 선생님과 둘러앉아 코소보전쟁 때 겪은 체험들을 말하는 순간 한 아이가 감정에 북받쳐 그만 울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다른 아이들도 울먹이기 시작했다. 흐느낌이 온 교실을 덮었다. 아버지 또는 삼촌의 목숨을 밀로셰비치의 하수인들인 세르비아 민병대에게 빼앗긴 그 시골 아이들에게 코소보전쟁은 시간이 흘러도 좀체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겼다.

밀로셰비치는 발칸반도에서 잇달아 전쟁을 치르면서도 결국엔 유고연방이 분해되는 것을 거스르지 못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희생자들만 낳았다. 밀로셰비치에게 돌아온 것은 전쟁범죄자란 낙인과 세르비아 영토 안으로 밀려든 70만 세르비아계 난민이었다.

***밀로셰비치 "증거를 제시하라"**

밀로셰비치의 급작스런 죽음에 외신들은 헤이그 ICTY 관계자들이 당혹감을 느낀다고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속사정은 다르다. 그 자신 변호사 출신으로 법을 잘 아는 밀로셰비치는 헤이그 법정에서 "증거를 들이대라"고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인종청소의 전쟁범죄를 지시했다는 증거를 가리킨다. 문서로 그런 증거가 남아 있을 턱이 없다. ICTY로 압송돼 온 전 세르비아계 장군 등 일부 밀로셰비치의 측근들도 문서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헤이그 법정에 증인으로 나서서 밀로셰비치를 고발하는 사람들도 눈물을 흘리며 그들이 겪었던 고난의 순간들을 증언했다. 그렇지만 밀로셰비치가 꼼작 못할 증거를 들이대지는 못했다. 그래서 헤이그 ICTY 검사들은 밤잠을 못 이룰 정도로 고민에 빠졌고, 재판도 5년 가까이 엿가락처럼 늘어졌다. 밀로셰비치가 급사했다는 소식에 검사들은 속으로 "아무튼 골치거리가 끝났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전범재판은 미국의 정치적 도구"**

"헤이그 유고전범 특별법정은 미국의 정치적 도구다. 내가 전범재판을 받는 것은 전쟁에서 졌기 때문이다."

밀로셰비치는 헤이그 ICTY 법정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밀로셰비치는 만일 그가 전쟁에서 이겼다면, 미국 대통령이 코소보 공습이란 전쟁범죄 혐의로 법정에 서야 했을 것이라는 논리를 폈다. 전쟁이란 적군이나 아군 가릴 것 없이 생존을 위해 처절한 사투를 벌이는 속성을 지녔다. 따라서 패자만이 전쟁범죄로 처벌 받는다는 것은 정치적 보복이 아니겠느냐는 항변이었다.

1990년대 보스니아와 코소보 내전에서 '호랑이 민병대'라는 사설 군사집단을 이끌며 무차별 살륙, 강간, 학살로 악명을 얻었던 아르칸(본명은 젤리코 라즈나토비치)도 이렇게 말했었다.

"만일 미국인들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베트남, 캄보디아, 파나마에서 저지른 전쟁범죄로 기소된다면, 그때 가서 나도 법정에 스스로 걸어가겠다. 그 전까진 어림없다." (아르칸은 2000년 벨그라드에서 저격수의 총알에 죽었다(밀로셰비치의 전쟁범죄 비밀을 너무 잘 알고 있어 입을 막으려 죽였다는 설이 나돌았다.)

***밀로셰비치의 항변"부시도 전범자다"**

"전쟁터가 법을 결정한다(Battlefields determine the law)."

한 국가의 정책결정이 합리적이라고 여기며 특히 힘(power)을 중시하는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들의 주장이다. "이긴 자가 역사를 쓴다"는 옛말과 같다. 지금껏 미국은 베트남전쟁 말고는 전쟁에서 패한 적이 거의 없다. 따라서 미국 정치지도자나 군부 지도자가 전쟁범죄자로 처벌받은 일도 없다.

그렇지만 미국과 겨뤘던 독일·일본·유고연방·아프간·이라크 지도자들은 모두 전범재판소로 향했다. 발칸의 밀로셰비치뿐 아니라,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도 전쟁범죄자로 처벌받는 운명이다. 밀로셰비치나 후세인이 미국의 뜻을 거스르지 않았다면, 그들은 지금도 푹신한 권력의 자리에 앉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밀로셰비치를 위한 변명이 가능해진다.

"애써 미국에 맞서지 않았다면 감옥에서 숨지진 않았을 텐데…."

국제법을 어기고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은 공습 등으로 아프간과 이라크에서 많은 민간인들을 희생시키고도 전쟁범죄 처벌을 비껴갔다. 관타나모에서의 미군 전쟁범죄는 국제사회의 비난 속에서도 시간이 흐르면서 흐지부지 되는 모습이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대목이 있다. 국제사회의 흐름은 반인류적인 전쟁범죄를 저지른 자들은 "국적과 시효에 관계없이 처벌돼야 한다"는 보편적 사법권(universal jurisdiction) 논리가 점차 힘을 얻고 있다.

그런 어느 날, 밀로셰비치는 땅밑 관을 열고 나와 이렇게 외칠지도 모를 일이다. "부시 미 대통령이나 블레어 영국 총리는 왜 전범재판에 회부되지 않는가. 그들이야말로 전쟁범죄자다." 부시뿐 아니다. 이라크 포로학대사건의 상급 책임자인 미 국방부 고위관료와 장성들은 전범재판 굴레로부터 자유로울까. 팔레스타인을 강점해 온 이스라엘 정치-군사 지도자들은 또 어떠한가.

필자 이메일: kimsphot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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