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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고전범재판소, 할 일 아직도 많다"

[인터뷰] 밀로셰비치 재판맡았던 권오곤 재판관

'발칸의 도살자'로 악명 높았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슬라비아 대통령이 11일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 감방에서 숨진 채 발견되면서 1990년대 발칸 분쟁에 대한 재판이 끝없는 미궁으로 빠져 들어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ICTY 재판관으로서 밀로셰비치에 대한 심리를 맡았던 권오곤 재판관은 그러나 12일 "밀로셰비치에 대한 재판만 있는 것은 아니라서 아직도 ICTY가 할 일은 많다"고 밝혔다.

지난 2001년 대구고등법원 부장판사 시절 ICTY 재판관으로 선출돼 네덜란드 헤이그에 머물고 있는 권 재판관은 이날 〈프레시안〉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현재 재판이 끝난 사람이 70명이고 진행중인 사람도 20~30명"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사진 : 권오곤〉

***"사건 줄이자는 재판부 말 들었더라면…"**

권 재판관은 그러나 "밀로셰비치에 대한 재판은 국가원수에 대한 세계 역사상 첫 재판이라는 의의가 있었다"며 "판결만 공정하게 된다면 (밀로셰비치가 무고하다는) 불만도 잠재울 수 있고 평화 정착에도 큰 기여를 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짙은 아쉬움을 나타냈다.

밀로셰비치의 변호사가 제기한 독살설과 자살설에 대해 권 재판관은 "부검 결과가 나와야 되겠지만 병으로 사망했다고 확신하고 자살도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밀로세비치의 동료였던 밀란 바비치가 감옥에서 자살한 후 6일만에 밀로셰비치마저 주검으로 발견되자 칼 빌트 전 스웨덴 총리 등은 ICTY의 위상에 타격을 줄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권 재판관은 이에 대해 "재판을 결국 못하게 됐으니 타격을 받긴 받을 것"이라고 인정하면서도 '밀로셰비치가 모든 학살의 기획자'라는 식의 생각은 '선입견'이라며 아직 체포되지 않은 학살범들에 대한 체포를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검찰 입장에서는 모든 사건을 다뤄야 피해자들에게 공정한 결과를 제시할 수 있다고 했는데, 재판부에서는 한두 건만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며 "재판부 말대로만 됐더라면 재판이 진작에 끝났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재판부가 모스크바로 가서 병을 치료하겠다는 밀로셰비치의 요청을 거절했다는 비판에 대해 "러시아에서 할 수 있는 것을 네덜란드에서 못한다는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말했다.

다음은 권 재판과의 일문일답 내용이다.

***재판을 정치선전 무대로 이용한 밀로셰비치**

프레시안 : 재판은 어떤 단계에 있었나?

권오곤 재판관 : 한국의 재판은 검찰측 증인과 피고측 증인이 교대로 증언을 하면서 심리를 진행한다. 그러나 영미식 재판은 검찰 증언을 다 듣고 그게 끝나면 피고측 증언을 들은 후 약간의 반박 절차를 거쳐 판결을 내린다.

밀로셰비치에 대한 재판은 2002년 2월 검찰 증언을 시작해 2004년 4월 끝냈고, 그해 여름부터 피고측 증거조사가 시작돼 현재 거의 마무리 단계여서 올 여름까지 재판을 마치지 않을까 하는 예상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제 밀로셰비치가 허망하게 사망한 상황에서 전망을 말할 수는 없지만 아쉬움이 크다. 1, 2차 세계대전 후에 황제건, 대통령이건, 천황이건 국가 원수를 법정에 세우려는 노력이 수없이 많았지만 한번도 성사되지 못했는데 밀로셰비치에 대한 재판은 국가원수에 대한 세계 역사상 첫 재판이라는 의의가 있었다.

그러나 결국 끝까지 가지 못해 학살 피해자 입장에서 정의를 세우지 못했다는 얘기가 나오는 걸 이해할 수 있다.

반대로 세르비아 입장에서는 밀로셰비치의 무고함이 밝혀질 수 있는 기회가 없어졌다는 것을 비판하고 있다. 전쟁에서는 양측이 다 잘못을 하기 마련인데 세르비아에서는 자기들만 기소당했다는 것에 불만이 컸다. 판결만 공정하게 됐다면 그런 불만도 잠재울 수 있고 평화 정착에도 큰 기여를 할 수 있었을 텐데 담당 판사 입장에서 아쉬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프레시안 : 재판을 너무 오래 끌었다는 비판도 있는데….

권오곤 : 크로아티아 전쟁(1991-1995년)과 보스니아 전쟁(1992-1995년)이 데이튼 협정으로 끝이 났었는데 1999년 코소보 전쟁까지 재판에서 다루다 보니 사건의 규모가 너무 커져서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됐다.

검찰 입장에서는 모든 사건을 다뤄야 피해자들에게 공정한 결과를 제시할 수 있다고 했는데, 재판부에서는 한두 건만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재판부 말대로만 됐더라면 재판이 진작에 끝났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다.

프레시안 : 재판을 받던 밀로셰비치의 태도는 어땠는가?

권오곤 : 재판이 생방송으로 진행되니 정치적 입지를 회복하기 위해 변호사를 선입하지도 않고 재판을 정치 선전의 무대로 이용했다. 자기가 직접 증인 신문을 하면서 학살의 주범은 나토(NATO)와 미국이고 자신은 평화를 지키려 했던 선의의 패해자라고 말했다.

***"ICTY, 타격 받겠지만 할 일은 많다"**

프레시안 : 한 변호사는 독살설을 제기했고 자살설도 흘러나온다.

권오곤 : 부검 결과가 나와야 확증이 되겠지만 병으로 사망했다고 확신한다. 자살도 분명 아니다. 고혈압이 심해서 건강상의 이유로 재판이 여러 차례 연기됐다. 그러다 보니 최근에는 고혈압 약을 주는 대로 먹지 않으면서 건강 상태를 안 좋게 하려고 했다는 의심을 받아 왔고 그에 대한 공방을 벌이면서 스트레스가 많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더 이상은 언급할 수 없다.

〈사진 : 밀로세비치〉

프레시안 : 모스크바에서 치료하겠다는 것을 재판부가 거부한 이유는 무엇인가?

권오곤 : 일종의 병보석 신청이었다. 러시아 의사들이 와서 감정 의견서를 내고 피고가 그것을 증거로 병보석을 요청했다. 그러나 재판부 입장에서는 러시아에서 치료할 수 있는 것을 네덜란드에서는 할 수 없다는 말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교도소에서 그를 진찰했던 의사들은 네덜란드 최고의 심장 전문의였다. 재판이 막바지에 다다른 시점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프레시안 : 재판 자체가 미궁에 빠질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권오곤 : 밀로셰비치에 대한 재판만 있는 건 아니다. 재판이 끝난 사람이 70명이고 현재 진행중인 사람도 20~30명이다. 어쨌건 밀로셰비치 재판은 끝나게 됐고, 앞으로 더 체포해 올 사람도 있는데 그게 진행이 잘 안 되고 있어 이번 자살로 인한 파장이 걱정된다. 어제 재판부가 만났는데 지금으로서는 재판부 입장에서 할 일이 의외로 없는 상황이다.

프레시안 : 칼 빌트 전 스웨덴 총리가 "밀로셰비치의 사망은 헤이그 법정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ICTY의 위상이 위기에 빠졌다는 얘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권오곤 : 칼 빌트 전 총리는 우리 재판의 증인으로도 나왔고 그 전에는 발칸 분쟁의 중재자로서도 많은 역할을 한 사람이다. 재판을 결국 못하게 됐으니 타격을 받긴 받을 것이다. 정치적인 면에서나 법적인 면에서 엄청난 의의가 있는 재판이었는데 가장 중요한 사건의 재판을 너무 오래 하다가 결국 피고가 죽었으니 아쉽다.

그러나 다른 중요한 사건들도 엄청나게 많아 할 일도 많이 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밀로셰비치가 모든 범죄의 기획자라는 식으로 얘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건 선입견이다. 예를 들어 어떤 학살 사건은 보스니아 내부의 독립된 세르비아계와 보스니아 간의 전쟁으로 발생한 것이 있다. 당시 밀로셰비치는 별도의 공화국인 세르비아의 대통령이었다. 그런 경우 밀로셰비치는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에 대해 검사측에서는 '나쁜 짓을 하는 데에 왜 군대와 돈을 보냈느냐'는 식으로 추궁했고 그는 '내가 언제 범죄를 저질렀느냐'는 식으로 반박했었다.

프레시안 : 긴 시간 설명에 감사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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