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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로셰비치 사망, 세르비아 현안에 부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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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밀로셰비치 사망, 세르비아 현안에 부정적"

[인터뷰] 김영희 세르비아-몬테네그로 대사

'발칸의 도살자'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의 사망으로 또다시 세계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구(舊) 유고연방의 세르비아-몬테네그로.

수십만 명의 사망자를 낸 잔혹한 살육전의 '본부'가 있었던 곳이면서 여전히 밀로셰비치를 지지하는 이들이 남아 있고, 그가 파탄 낸 경제로 인해 실업과 생활고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이곳에 그의 죽음을 계기로 묘한 긴장이 감돌고 있다.

35명의 교민들과 함께 우리 정부를 대표해 베오그라드에 주재하고 있는 김영희 주 세르비아-몬테네그로 대사는 밀로셰비치의 죽음으로 세르비아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현안들이 난관에 빠질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내다봤다.

〈사진 2: 세르비아 모습〉

지난해 9월 현 정부 들어 첫번째 여성 대사로 임명된 김 대사는 14일 〈프레시안〉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세르비아 정부는 밀로셰비치가 사망한 상황에서 전범들을 잡아 넘기라는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의 요구와 국민 정서 사이에서 곤혹스러울 것"이라며 이같이 전망했다.

***갈 길 먼 세르비아 발목 잡는 밀로셰비치 사망**

밀로셰비치의 사망 소식을 접한 세르비아에서는 그의 사저에 헌화 하는 이를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냉담한 반응이 주조를 이뤘다. 그러나 세르비아에는 여전히 밀로셰비치에 대한 지지 여론과 향수가 잠재해 있고, 자신들의 대통령이었던 이를 잡아 가둬 재판하고 심지어 감옥에서 죽게 한 데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과거 자신들의 정치 지도자였던 라도반 카라지치와 라트코 믈라디치를 세르비아 정부가 잡아 ICTY에 넘긴다면 잠재된 불만이 터질 수 있다는 게 정부의 우려다.

유럽연합(EU)에 가입하길 원하는 세르비아 정부는 그러나 그들을 잡아 넘겨야만 가입 절차를 밟을 수 있다는 EU의 압박도 받고 있다.

밀로셰비치가 살아 재판을 받고 있다면 비교적 수월했을 전범의 체포와 이송, 그리고 EU와의 협상은 그의 죽음으로 이처럼 벽에 부딪히게 됐고 미래지향적인 길을 걷고자 하는 세르비아 정부의 발목을 또한번 잡고 있는 것이다.

김 대사는 이 외에도 코소보와 몬테네그로의 분리 독립 움직임, 실업률이 40% 이상인 경제의 회복 등 세르비아 정부가 직면한 현안들이 산적해 있다며 밀로셰비치의 사망이 몰고 올 영향에 대해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 대사는 그러나 역사가 준 교훈과 세르비아-몬테네그로의 혈연적 관계 등 때문에 몬테네그로 독립 과정에서 또다시 유혈 사태가 발발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다음은 이날 진행된 김 대사와의 전화인터뷰 내용.

***"시민들 반응은 냉정…꽃 한송이 바치는 사람 없다"**

프레시안 : 밀로셰비치 사망 후 그의 고국 세르비아 현지의 반응은 어떤가?

김영희 대사 : 세르비아 주민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한다면 밀로셰비치를 지지하는 사람이 상당한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사망 소식이 전해졌는데도 실제로 국민들의 반응은 거의 없다.

공식 반응이 나온 곳은 밀로셰비치가 여전히 총재로 있는 사회당밖에 없다. 당 차원에서 분향소를 설치했다. 사회당은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에서 판결을 받기 전이라서 밀로셰비치는 여전히 자유인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대통령을 지냈기 때문에 국장(國葬)을 치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혹시라도 국민들 중에 시위하는 사람이 있나 했는데 그런 반응은 전혀 없었고 사저에 꽃을 갖다 놓는 사람 하나 없었다. 시민들의 반응은 그렇게 냉정하다시피 하다. 특히 그의 사망이 발표된 12일은 공교롭게도 조란 진지치 전 세르비아 총리 암살 3주기였는데, 진지치 무덤에는 비가 많이 왔는데도 불구하고 우산을 쓴 수백 명이 다녀갔지만 밀로셰비치의 죽음에 애도하는 분위기는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보리스 타디치 세르비아 대통령은 유가족들에게는 심심한 조의를 표하나 국장을 고려할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못 박았다. 그 외의 반응은 없다. (세르비아의 공식 국명은 세르비아-몬테네그로 연방공화국이고 타디치 대통령은 그 연방공화국의 구성체 중의 하나인 세르비아의 대통령이다.)

프레시안 : 장례식과 장지(葬地)에 관해 가족 간의 갈등이 있다는데….

김영희 대사 : 밀로셰비치 사망과 관련해 현재 가장 큰 이슈는 장례를 어디서 치를 것이냐의 문제다. 밀로셰비치는 부인과 동생, 아들, 딸을 두고 있다. 러시아에 있는 부인은 인터폴에서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태이고 동생도 밀로셰비치 대통령 재임 시절 러시아 대사를 지낸 후 지금까지 러시아에 머물고 있다. 아들도 러시아에서 망명생활 중이고, 딸은 몬테네그로에 살고 있다.

부인은 러시아에서, 동생은 대통령을 지낸 세르비아에서, 딸은 할아버지(밀로셰비치의 아버지)의 고향인 몬테네그로에서 장례식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가족 간에 의견 갈등이 있다. (밀로셰비치의 한 변호인은 13일 장례식 장소에 상관없이 장지는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세르비아 정부, EU 압박과 국민 정서 사이에서 갈등**

프레시안 : 밀로셰비치가 사망했긴 했지만 여전히 학살의 주역들은 체포되지 않고 있는데….

김영희 대사 : 현재 ICTY로 체포해서 넘겨야 하는 사람들은 밀로셰비치와 함께 3대 전범으로 분류된 라도반 카라지치와 라트코 믈라디치다. ICTY 측에서는 보스니아 스레브레니차에서 8000명의 이슬람교도들을 학살했던 사건의 배후였던 이들을 잡아서 보내라고 세르비아 정부에 압력을 넣고 있다. 믈라디치는 세르비아 군이나 정보기관에 의해 세르비아 어딘가에서 보호를 받고 있다는 얘기가 있는데 세르비아 정부는 사실무근이라고 밝히고 있다. 카라지치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한 수도원에 잠적해 있다는 소문 등만 난무하고 있다.

ICTY는 특히 믈라디치를 반드시 잡아 보내야 유럽연합(EU)과 안정제휴협정(SAA)을 맺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SAA를 거쳐야 그 다음 단계인 세르비아의 EU가입 문제가 결정된다. SAA에 관한 대화를 4월 5일에 시작하는데 믈라디치 송환을 대화의 조건으로 걸고 있는 셈이다.

밀로셰비치가 사망한 상황에서 세르비아 정부가 믈라디치를 잡아 보내려는 노력은 다소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세르비아 국민들이 밀로셰비치의 사망에는 일단 잠잠하지만 그래도 정서라는 게 있고 여전히 그들을 지지하는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세르비아는 여전히 공산주의에서 민주주의로 전환되는 과정에 있어 국민들의 상당수는 아직 과거에 대한 향수가 있다. 현재는 안정된 상태지만 믈라디치와 카라지치를 무리하게 잡아 송환한다면 반발이 심할 수 있다. 약간 곤혹스러울 것이다.

〈사진 2 김영희 대사〉

프레시안 : 구 유고연방의 정치 상황을 간략히 소개한다면.

김영희 대사 : 1980년 요시프 티토 유고연방 대통령이 사망하고 1987년 밀로셰비치가 공산당 서기장이 되면서 실권을 장악했다. 그후 그는 1997년 유고 대통령이 됐고 2000년 선거에서 부정을 저질러 다시 집권했지만 국민들의 저항으로 그해 10월 6일 패배를 인정하면서 물러났고 보이슬라브 코스투니차 세르비아 현 총리가 대통령이 되었다. 그 와중이었던 1999년 3월 24일부터 78일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대공습이 있었다.

유고슬라비아는 6개 공화국이 묶여진 연방국가였다. 90년대 초반부터 공화국의 독립이 시작됐는데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마케도니아 순으로 이미 독립을 했고 현재 연방으로 묶여 있는 공화국은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다. 몬테네그로는 올해 5월 21일 분리 독립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할 예정이다. 몬테네그로 국민투표는 유권자 50% 이상이 참여해서 55% 이상이 찬성하면 독립할 수 있다.

가장 큰 현안은 세르비아 내의 코소보가 독립하려는 문제다. 코소보는 국제법상 세르비아 영토지만 자치를 누리는 지역이다. 유엔은 1만7000명의 군대를 파견하면서 코소보를 직접 관할하고 있다. 세르비아는 코소보의 자치를 인정하긴 하겠지만 영토 자체는 자신들의 것이므로 독립은 안 된다는 입장이다. 상당한 곡창지역이기도 한 코소보에는 현재 알바니아 난민이 95%이고, 세르비아인들은 전쟁중에 거의 탈출해서 현재는 5% 정도밖에 없다.

***코소보·몬테네그로 독립 문제 가장 큰 현안**

프레시안 : 몬테네그로의 독립 투표나 코소보 분리 독립 움직임 과정에서 과거와 같은 유혈 충돌이 빚어질 가능성은 없나?

김영희 대사 : EU는 세르비아와 '베오그라드 협정'을 맺고 몬테네그로 주민이 독립을 결정할 수 있다는 조항을 넣었지만, 가급적 독립을 할 수 없게 하기 위해 55%라는 조건을 내놨다. 몬테네그로 여론도 독립 찬반이 과반을 왔다 갔다 하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베오그라드 협정에 정부와 국민들이 동의한 상태기 때문에 국민투표 자체는 물론이고 독립 찬성이 나왔을 경우 아무도 막지 못한다. 유혈충돌 가능성은 없다.

충돌을 하면 너도 죽고 나도 죽는다는 과거의 경험 때문에 그렇다. 또 티토 정권을 지나면서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 사람들 중에는 피가 안 섞인 사람이 없다고 한다. 두 나라 국민을 엄격히 나누기 어려워 독립된 두 나라로도 잘 지낼 것이다.

요컨대, 현재 이곳의 가장 큰 현안은 첫째가 인구 200만의 코소보 완전 독립 문제, 둘째는 몬테네그로 분리 독립을 위한 5월 21일 국민투표의 결과, 셋째는 세르비아가 믈라디치와 카라지치를 ICTY로 넘겨 EU와의 SAA를 무난히 체결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 모든 문제들은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다. 국제적으로 미국과 러시아, EU 등이 세르비아에 직접적으로 간섭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결론적으로 밀로셰비치의 죽음은 이곳의 정치 현안을 푸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프레시안 : 이번 기회를 틈타 사회당의 지지율이 높아질 가능성은 없나.

김영희 대사 : 여론조사를 하면 지지도는 높지만 의석은 91석 중 8석밖에 안 돼 별 의미가 없다. 정치가들이 국장을 치러야 한다고 얘기하면 국민들은 실업률이 40~50%가 되는 경제 수준을 끌어올리는 문제가 더 시급하다고 말한다. 일부 국민들은 믈라디치고 카라지치고 다 잡아 보내고 몬테네그로도 나가고 싶으면 나가라고 한다.

끝으로 과거 밀로셰비치가 했던 대학살을 두고 '인종청소'라고 지칭하는 것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싶다. 대학살은 인종청소가 아니라 종교청소라고 하는 게 더 맞다. 코소보 지역은 완전히 이슬람 지역이고, 세르비아는 그리스 정교, 크로아티아는 가톨릭,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는 이슬람 지역이다. 전쟁은 이 세 종교 사이의 싸움이었다. 종교끼리 서로 밀치고 죽였던 것이었다.

프레시안 : 긴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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