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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유엔 사무총장' 탄생의 걸림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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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한국인 유엔 사무총장' 탄생의 걸림돌들

〈기고〉 너무 일찍 뜨거워진 유엔 사무총장 선거전

올해 국제정치 무대에서 가장 주목받을 사건 가운데 하나는 코피 아난에 이어 유엔을 이끌어갈 차기 사무총장의 선출일 것이다. 유엔 사무총장은 안보리 이사국의 3분의 2 이상의 추천을 받아 총회에서 임명되도록 규정되어 있을 뿐 특별한 선출절차가 마련되어 있지 못한 상태다. 지금까지는 상임이사국들이 물밑조정을 통해 후보자를 뽑고, 지역별로 돌아가면서 선출하는 것이 관례였다.

현재까지 공식적인 도전의지를 밝힌 인사는 수라키앗 사티라타이 태국 부총리와 지얀티 다나팔라 전 유엔 사무차장뿐이었다. 그러나 시기적인 부적절성과 내부적 알력으로 인해 국제적인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 한국 정부가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출마의지를 공식화함으로서 차기 유엔 사무총장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각국의 경쟁이 예전과는 달리 조기에 본격화되는 양상이다.

반기문 장관 이외에도 아직 공식 후보 출마를 밝히지 않은 잠재 후보군들에 대한 세계 언론들의 검증 시도가 진행되고 있어 후보 간의 물밑경쟁은 점점 더 치열해질 것이다. 노벨상수상자인 동티모르의 호세 라모스-호르타 외무장관, 고촉통 전 싱가포르 총리, 요르단의 제이드 후세인 왕자, 터키의 케말 데르비스 유엔개발계획 사무총장 등이 아시아 권에서 거론되고 있으며, 비아시아권에서는 라트비아 바이라 비케프라이베르가 대통령, 폴란드의 알렉산더 크바스니예프스키 대통령 등이 거론된다.

***미국의 조기공론화와 자질론**

이번 달 유엔 안보리의 순번제 의장인 존 볼튼 유엔 주재 미국대사가 사무총장 인사문제를 의제로 올리자고 제안하면서 후임 사무총장 선출의 조기공론화는 촉발됐다. 다른 이사국들의 반대로 2월 의제로 채택되지는 않았지만, 미국은 이사국들과 개별면담을 통해 이 문제에 대한 논의를 물밑에서 계속 확대해 오고 있다. 미국의 의도는 사무총장의 복잡한 업무를 순조롭게 이행하기 위해 가급적 조기(올 여름)에 후임자를 선출하는 것과 '사무총장의 가장 중요한 자질이 거대한 관료조직의 운영 능력'이기 때문에 그 동안의 관례인 지역순환제을 사실상 사문화시키는 것이었다.

이로써 미국은 이라크 침공을 둘러싼 대립과 석유-식량 프로그램(Oil-Food Program) 스캔들로 멀어질 대로 멀어진 코피 아난 현 사무총장을 무력화시키는 효과를 얻음과 동시에 후임 인사 선정 시 미국의 대외정책에 유엔이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공포하는 효과를 얻었다. 또한 전술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효과적으로 관철하기 위해 복수의 후보자를 비축해 두겠다는 의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아시아에서 차기 사무총장이 나와야 한다는 회원국들의 통념을 깨고 아직까지 유엔 내 5개 지역그룹 중 한번도 사무총장을 내지 않은 그룹인 동유럽그룹에서 나와야 한다고 논리로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는 효과를 얻고 있다.

***차기 유엔 사무총장이 되기 위한 조합들**

유엔 사무총장 선출은 핵심적으로 이른바 P-5라 불리는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의 타협에 의해 여러 가지 조합들이 생겨 날 수 있다. 지금까지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나라(노르웨이, 스웨덴, 미얀마, 오스트리아, 페루, 이집트, 가나)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P-5의 국익을 침해한 적이 없거나 침해할 가능성이 적은 중립적 성향의 약소국(혹은 중견국) 출신이 많았다.

이러한 기준 위에 P-5의 특별한 이해관계에 따라 사무총장의 배출 가능성이 유지되거나 배제된다. 현재 P-5 가운데 미국과 영국은 '정치색이 엷고 행정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입장이고, 프랑스는 '불어를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조건을 강조한다. 중국은 '이번에는 아시아국가 중에서 나와야 한다'는 입장이고 러시아는 '동유럽 국가에 대한 비토 의사'를 밝히고 있다. 그리고 비록 미국이 그 타당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는 있으나, 아직까지 대부분 회원국들은 지역순환제를 지지하고 있다.

***'한국인 유엔 사무총장'**

오늘로써 반기문 외교통상부장관의 유엔 사무총장 도전이 공식화됐다. 지난 수 개월 동안 국제정치 무대에서 그의 출마를 기정사실화하고 유력한 후보 중의 하나로 자리메김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공공연히 해 왔다는 점에서 이번 발표는 국민을 향한 공식화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국민들도 반기문 외교통상부장관의 도전에 긍정적일 것이다. '한국인 유엔 사무총장'은 상상만 해도 즐거운 일이니까. 아니 도전 그 자체로도 아름다운 것이니까. 그러나 즐거운 상상과 이름다운 도전이 반드시 의미 있는 성과를 도출해낼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한국은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하는 데에 장점보다는 단점을 더 많이 갖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한국인 사무총장이 과연 민감한 국제 문제를 중립적이고 공정하게 관리할 수 있겠느냐는 국제사회의 우려일 것이다. 우선 한국은 유일패권국가인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중립적인 국가를 선호하는 기존의 관례로부터 벗어나 있다.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 출신 인사가 유엔 사무총장의 자리에 오름으로써 미국의 영향력이 더욱 세질 것이라는 유엔 회원국들의 의구심을 해소하기 힘들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 또한 한국의 유엔 사무총장 진출을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유엔 안보리의 주요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 이란의 핵개발 의혹인 바, 이 또한 북한과의 특수한 관계로 볼 때, 테러, 비확산, 불량정권에 보다 단호한 입장을 요구하는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깊은 의구심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동안 한국은 국가의 지위나 규모에 비해 유엔을 비롯한 국제활동에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우선, 유엔 정규분담금이 작년 말 현재 1억2000만 달러 체납된 상황이고, 자발적인 기여금도 인색하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2000년에 나온 유엔 밀레니엄개발목표(MDG)는 차기 사무총장의 주요한 임무 중 하나인데, 이와 관련한 사업에 그동안 적극적이지 않았다. 특히 MDG는 공공개발원조를 국내총수입(GNI)의 0.7%까지 확대할 것을 권고하고 있으나, 한국은 0.06%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더나가 한국은 평화유지의 활동, 인권개선활동, 인도주의적 지원 등과 같은 평화구축사업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물론 한국인 유엔 사무총장의 탄생에 유리한 측면도 없지 않다. 그것은 한국이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짧은 시간에 달성한 모범국이라는 사실 그 자체이다. 현재 국제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가 빈곤과 저발전임을 감안할 때, 한국의 경험이 사무총장의 지도력으로 구현될 때, 유엔의 당면 최대과제인 유엔 밀레니엄개발목표 달성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할 것이다.

그리고 한국인이 유엔 사무총장으로 탄생하기에 또 다른 유리한 측면은 사무총장 선출시 국가적 고려보다는 개인적 요인을 점점 더 고려해 왔다는 사실이다. 이미 코피 아난 사무총장은 국가외교관들 가운데서 후보가 나온 그간의 전통을 깨고 최초로 유엔 사무국 출신으로서 피선되었다. 코피 아난 사무총장의 석유-식량 프로그램 스캔들의 여파로 유엔사무국 내의 인사는 배제된 상태다. 상대적으로 유엔 내 경험은 부족하지만, 거대한 관료기구와 국제외교 경험이 있는 한국의 후보가 유리할 수 있다는 얘기다.

***국익과 한국인 유엔 사무총장**

선출 절차를 중심으로 보자면, 한국인 유엔 사무총장이 탄생하는 데에 핵심은 거부권을 갖고 있는 P-5의 지지 내지 묵인이다. 특히 유엔 내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미국의 지지와 동의가 필수적이다. 차기 사무총장 선거운동 차원에서 미국을 비롯한 P-5의 지지와 동의를 얻기 위해 우리의 정치 경제적 이익을 훼손할 수 있다.

한국의 후보가 현직 장관일 경우 이러한 현상을 더욱 두드러질 것이다. 국민 일각에서는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합의, 스크린쿼터제 축소방침 결정, 그리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위한 협상개시 등 최근 발표된 일련의 한미간의 합의가 한국인 유엔 사무총장의 탄생과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이러한 사태가 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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