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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드, 내전, 그리고 자이툰 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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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드, 내전, 그리고 자이툰 부대

이라크 북부, 내전 기운 고조로 위기일발

지난 27일 이라크 시아파 지도자인 압둘 아지즈 알 하킴이 이라크 북부 쿠르드 지역의 아르빌을 방문했다. 그는 마수드 바르자니 쿠르드 자치정부 대통령과 회담을 갖고 수니파와 모든 정파를 끌어들이는 대연정을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알 하킴이 이끌고 있는 이라크이슬람혁명최고위원회(SCIRI)가 주축이 된 통합이라크연맹(UIA)은 지난 15일 총선 결과 최다수 의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정국의 주도권을 잡은 시아파 계열 정치연합이다.

쿠르드족 출신으로 현 이라크 대통령직을 맡고 있는 잘랄 탈라바니도 '통합' 정부를 구성하기 위해 선거에 참여한 여러 정당들과 대화를 계속하고 있다.

시아파와 쿠르드족은 총선 결과에 불만을 품고 재선거를 주장하는 세속 시아파 계열 정치세력을 포함해 선거에 참여했던 수니파, 나아가 선거를 거부하고 저항공격을 공언했던 강경 수니파까지 껴안는 대연정을 구상하고 있다.

이는 이라크 정권이 친(親)이란계 시아파에 의해 장악되기를 꺼리는 미국의 요구이기도 하다. 미국은 29일 선거부정 의혹에 대한 이라크선거국제감시단(IMIE)의 현지조사까지 수용하며 시아파 외의 여러 정파, 종파들을 유인하기 위한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쿠르드 독립'이라는 시한폭탄**

이처럼 총선이 끝난 이라크의 정당 및 정치세력들은 다각도의 연정협상을 벌이며 정부 구성을 위한 노력을 계속 하는 것처럼 보인다. 흡사 총선이 끝난 서구의 다당제 국가에서 벌어지는 정치협상을 보는 듯하다.

그러나 이라크의 정정불안이 정치세력 간의 협상만으로 쉽게 가라앉을 것이라고 전망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끝날 줄 모르는 저항세력의 공격, 정권을 둘러싼 세력 간 갈등, 그 갈등을 이용해 이라크를 장기적인 영향력 하에 두려는 미국의 전략 등 수많은 복병들이 도처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시아파 세력이 권력의 대부분을 차지해 미국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것은 중동 지역 차원의 불안 요인이다.

심각한 문제는 또 있다. 전쟁에서 철저히 친미 노선을 견지해 오랜 세월 숙원이던 독립국가를 꿈꾸는 민족, 쿠르드를 둘러싼 갈등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5일간 키르쿠크, 아르빌, 슐라이마니아 등 이라크 북부 쿠르드 지역을 다녀온 미국신문 〈나이트 리더〉의 기자 톰 라세터가 점점 달아오르고 있는 이 지역의 갈등상을 전해 눈길을 끌고 있다.

라세터 기자가 쿠르드 지도자들 및 이라크 정규군 병사들과의 만남을 통해 내린 결론은 '내전의 기운이 감돌고 있다'는 것이다. 아랍민족 출신과 쿠르드족 출신 병사들이 이라크군과 같은 군복을 입고 있지만 쿠르드 독립을 둘러싼 갈등이 폭발할 경우 언제든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눌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양측 간 유혈충돌의 뇌관이 되고 있는 곳은 이라크 최대의 유전지대인 키르쿠크다.

라세터 기자와 만난 아랍 출신의 이라크군 하사는 "쿠르드가 현재의 경계선대로 독립국가를 이루는 건 상관없다"며 "하지만 쿠르드가 키르쿠크를 차지하기 위한 협상은 있을 수 없다. 그게 싸움의 원인이 된다면 나는 키르쿠크를 위한 전쟁에 동참하겠다. 우리는 키르쿠크를 위해 싸우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같은 막사에 있던 쿠르드족 이라크군 대위 이스마일 마흐무드는 "키르쿠크에 대해 하나도 알지 못하는 자들"이라며 버럭 화를 내면서 "선택은 없다. 쿠르드 독립국가가 키르쿠크를 차지하지 못한다면 100년 동안이라도 싸우겠다"고 못박았다.

라세터 기자는 쿠르드족 출신이 대부분인 이 지역 이라크군을 만나본 결과 많은 병사들이 내전이 다가옴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키르쿠크, 아버지와 형제들의 원한이 서린 곳**

쿠르드족이 이처럼 키르쿠크를 차지하려는 이유는 단지 이곳의 석유가 쿠르드 독립국가의 재정을 뒷받침해줄 원천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담 후세인의 폭정 기간 동안 쫓겨나긴 했지만 키르쿠크는 원래 쿠르드족이 살았던 곳이라는 사실, 그곳을 지키기 위해 싸우다 죽어간 아버지와 형제들의 원한이 서린 곳이라는 사실이 키르쿠크에 대한 집착을 더욱 강하게 하고 있다.

마흐무드 대위의 아버지는 쿠르드 민병대 페시메르가 소속으로 1991년 키르쿠크에서 후세인군과 싸우다 숨졌다. 후세인은 키르쿠크에 있던 그의 이웃 2000여 가구를 몰살시켰고 그 자리에 아랍인들을 이주시켰다.

마흐무드 대위는 "우리는 맨발로 쫓겨났다"며 "이제 내가 싸울 차례다. 내가 성공하지 못한다면 내 아들이 계속 싸울 것이다. 나는 이 사실을 아랍 출신 군인들에게 말하고 싶다. 그들과의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라세터 기자는 쿠르드족 출신의 다른 병사들 대부분이 마흐무드 대위와 같은 경험과 감정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모술에 있는 이라크군 2사단 4여단 소속 사바르 사림 대령은 키르쿠크에 대해서는 어떤 타협도 없다며 "전쟁은 정치적 해결의 또다른 방법이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이라크군 복장을 하고 있지만 마음 속에는 더 큰 임무를 품고 있다며 "나는 이라크군의 일원이지만, 쿠르드족이 한 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내 모든 삶과 영혼을 쏟을 것이다. 특히 키르쿠크를 위해"라고 단호히 말했다.

***군대 내 쿠르드-아랍 비율 균형도 거부**

독립국가와 키르쿠크를 향한 쿠르드인들의 갈망은 이처럼 단지 감정으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쿠르드족은 페시메르가 민병대 대원들을 이라크 정규군에 조직적으로 침투시켜 전쟁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 병사들은 주로 이라크 북부 지역에 주둔한 이라크군에 속해 있다.

쿠르드 출신 병사들은 자신들이 비록 이라크군의 유니폼을 입고 있지만 여전히 스스로를 페시메르가의 일원으로 여기고 있고 부대를 박차고 나오라는 쿠르드 지도자들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미국은 쿠르드, 시아파 등의 민병대가 이라크 정규군으로 자리잡아가는 것을 봐가면서 미군을 철수시키겠다고 말해 왔다. 그러나 쿠르드 지도자들은 미국이 이라크군에 기지와 통제지역을 양도하는 것은 이라크라는 나라를 민병대들의 손에 넘겨주는 셈이라고 말하고 있다. 민병대들은 저항공격을 막는다거나 국가의 통합을 유지하는 것 보다 민족적․종교적 이해관계에 더 충실한 사람들이다.

미군 사령부의 지휘관들은 그같은 사실을 부인하면서, 사태의 악화를 막기 위해 이라크군 개별 부대의 구성 비율에서 종족적 편중을 피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키르쿠크 외곽을 지키는 탈립 나지 이라크군 대령(쿠르드족)은 자신이 속한 여단은 쿠르드족 출신들을 줄이려는 어떤 시도에 대해서도 반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지 대령은 "국방부가 최근 남부에 있던 150명의 아랍족 출신 병사들을 나에게 보냈는데 우리는 그들을 받지 않고 2주 후에 돌려보냈다. 우리는 아랍 출신 병사들을 더 많이 이곳으로 보내지 못하게 할 것이다"고 말했다.

***쿠르드 정치지도자가 다가서자 '거수 경례'**

페시메르가 민병대는 부대원들을 이라크 정규군에 침투시키는 것과는 별도로 이라크 북부 전역에 있는 주요 건물과 주택 지대에 자체 부대원 약 1만 명 이상을 배치시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고 민병대 지도부들은 전하고 있다.

쿠르드민주주의당(KDP)의 페시메르가 지도자인 하미드 아판디는 아르빌에서 라세터 기자와 만나 이라크군에 침투한 페시메르가 부대원들 역시 최소 1만 명 이상이라고 말했는데 이라크군 지휘관들도 그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아판디는 "그들은 모두 정부군 소속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모두 쿠르드족이다"며 "모든 페시메르가 병사들은 우리의 지휘 아래 있다"고 말했다.

탈라바니 대통령의 측근이자 쿠르드애국동맹(PUK) 소속 페시메라가 민병대의 부(副)사령관인 자파르 무스타피르도 "우리는 (독립을 위한) 외교적인 노력을 경주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실패한다면 쿠르드 독립국의 국경을 확보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할 것이다"며 "바그다드에 있는 정부는 쿠르드 민중들의 의지를 꺾기에는 약할 것이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무스타피르는 PUK 소속 페시메르가 병사 최소 4000명이 이라크군에 속해 있다고 말했다.

쿠르드족은 아르빌과 모술 등 키르쿠크 서부 지역과 술라이마니야를 포함한 동부 지역 모두에서 자신들의 병사를 이라크군에 침투시켜 놓고 있다. 아르빌-모술 지역에 있는 이라크군 2개 사단은 도합 1만2000 병력인데 그 중 90%가 쿠르드족 출신이라고 사단 행정관들은 전하고 있다.

특히 아르빌에 있는 3000명의 이라크 군에도 2500명의 페시메르가 병사들이 속해 있다. 모술에 있는 이라크군의 경우는 심지어 페시메르가 민병대의 병사와 직위를 그대로 옮겨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 지역 이라크군의 중위인 헤리시 나미크는 "(이번에 구성될) 의회는 쿠르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며 우리는 쿠르드 접경지대와 모술 지역의 쿠르드 거주지 등을 확보하기 휘해 쿠르드 병력을 배치할 것이다"며 "우리 각자는 모두 페시메르가 병사들이다. 우리는 페시메르가로서 주어진 우리의 임무를 다할 것이다"고 말했다.

라세터 기자는 KDP 모술지구당수의 보좌관인 피라스 아흐메드가 모술에 있는 이라크군 2사단 본부 입구에 닿자 이라크군 복장의 초병이 그들에게 경례를 했다며 이라크군의 실상을 보여줬다.

***"자이툰과 페시메르가는 어깨를 겯고 싸울 것"**

라세터 기자가 방문한 쿠르드 지역은 우리 자이툰 부대 3200여 명이 주둔하고 있는 곳이다. 자이툰 부대는 최근까지 이라크 정규군에 대한 군사 교육 일부를 담당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리 정부는 '자이툰이 교육한 부대는 쿠르드 민병대'라는 반전단체들의 주장에 대해 사실 무근이라고 부인했지만, 라세터의 기사에 따르면 '이라크군 군복을 입은 쿠르드 민병대'를 교육한 것이 확인된 셈이다.

마수드 바르자니 쿠르드 자치정부 대통령은 29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아르빌 지역에 테러가 번질 경우 자이툰 부대와 함께 싸워 줄 것을 요청하겠다"며 "자이툰과 페시메르가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쿠르드 지도자은 이달 초 자이툰 부대를 방문했던 임종인, 유승희 의원에게도 "자이툰이 영원히 주둔하기를 바란다"고 말했었다.

언론과 국민들의 무관심 속에 주둔기간을 1년 연장하게 된 자이툰 부대는 이처럼 내전의 수렁 한가운데에 놓여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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