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가 이라크의 '전투적인' 시아파 지도자들에게 '정파간 통합'을 명분으로 경찰과 군대에 대한 통제권을 포기하라는 압력을 넣기 시작했다고 통신매체인 〈인터프레스 서비스〉가 27일 보도했다.
이같은 압박의 원인은 최근 실시된 총선에서 의석의 과반수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시아파 연합 통합이라크연맹(UIA)이 친(親)이란계여서 이들이 경찰과 군부의 통제권을 장악할 경우 미국에 대한 군사적 의존을 재고하려 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시아파 지도자들은 후세인 바트당 인사들의 재기를 막기 위해 국가의 무력 조직을 장악하기로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이 이어질 경우 이미 국내외에서 '철군 압력'을 받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수니파에 대한 시아파의 보복적 폭력이 난무하는 가운데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질 수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美, 시아파-이란의 관계 우려…고문시설 등 문제제기하며 시아파 압박**
시아파와 이란의 관계를 미국이 이슈화한 것은 12월 총선이 임박한 때였다. 그 이전에도 이야드 알라위 과도정부 총리는 2004~05년, 이란이 이라크이슬람혁명최고위원회(SCIRI)와 다와당(자파리 총리가 이끄는 시아파 정당) 후보들, 이란에서 훈련받은 바드르 민병대(시아파 준군사조직)에게 비밀자금을 지원하고 있다고 공공연히 주장했었다. 알라위 내각의 하짐 알 샤란 국방장관은 지난 1월 총선 전 UIA의 후보 리스트는 "친이란 인사 리스트"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부시 행정부는 이같은 이란의 은밀한 간섭에 대해 알라위와 같은 입장이었지만 특별한 언급을 자제한 채 시아파 새 정부의 혼란상을 지켜봐 왔다. 이란의 개입설과 관련한 미국 정부의 언급은 "(이란이) 투명하지 않은 방식으로 이라크에 잘못된 영향을 준다"는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지난 5월 발언이 전부였다.
그러나 미국은 총선이 가까워오자 이 문제를 공식화하기 시작했다. 이라크 주둔 미군 사령관인 조지 케이시 대장은 미국 일간 〈나이트 리더〉와의 인터뷰에서 "이란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이라크 남부 지역에 수백만 달러를 지원했다. 주로 구호단체나 바드르 민병대, 정당 등을 통해 지원됐다"고 말했다.
케이시 대장은 또 시아파 군사 조직으로 이라크 경찰과 내무부 소속 군부대를 장악한 바드르 민병대를 가리켜 "그들(이란)의 사람들"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이런의혹 제기뿐 아니라 미국은 시아파에 대해 고문시설 의혹 등을 거론하며 권력의 분점을 요구하고 있다. 이라크 주재 미 대사관과 미군 사령부는 미군이 바그다드 외곽 자드리아에 있는 내무부 수용시설을 11월 13일 급습한 후 시아파 관리들이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진 고문시설에 대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이례적으로 공동성명을 발표해 시아파를 비난했다.
사실 미군 사령부와 미국 대사관은 그 같은 고문시설의 존재를 수개월 전부터 알았다. 미 군의관인 존 스터키 소령은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와의 인터뷰에서 자신과 미 헌병들이 이라크 내무부의 고문시설을 방문했고 바그다드를 떠나기 전 지난 6월에 고문과 가혹행위의 증거를 상부에 보고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 행정부는 당시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었다.
총선이 임박한 지난 11월, 미국은 이 문제를 공식화해 그 때부터 전투적인 시아파 세력이 치안ㆍ군대 조직에 대한 통제권을 포기해야 한다는 요구를 이슈화하는 데 이용했다.
***시아파에 대한 권력분점 요구의 명분은 '정파 통합'**
시아파 관리들이 운영하는 고문시설의 문제들이 보도된 후 미 대사관은 11월 17일 "이라크 보안군과 시설, 내각 등에 대한 민병대 혹은 분파주의적 세력의 지휘통제가 있어서는 안된다"고 못 받으면서 '정파 통합'을 명분으로 시아파의 권력 집중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그 뒤에도 '정파 통합'의 필요성은 미국에 의해 꾸준히 제기됐다. 12월 총선이 진행되던 당시 칼릴자드 이라크 주재 미국대사는 "과반을 차지하는 당이 없다면 폭넓은 연정이 필요할 것"이라며 미국이 새롭게 태어날 정권에서 영향력을 광범위하게 행사하겠다는 뜻을 뚜렷이 표명했다.
칼릴자드 대사는 총선(12월 15일) 이후인 19일에도 "분파주의자로 여겨지는 내무장관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SCIRI 지도자들에게 치안ㆍ군사 조직에 대한 통제권을 양도하라는 압력을 가했다.
칼릴자드 대사는 그동안 통합이라크연맹(UIA)은 적은 의석을 얻고 알라위의 이라크국민리스트(INL)는 많은 의석을 얻어야 한다는 희망을 공공연히 표하면서, 시아파 정당들을 향해 알라위와 수니파 정치지도자들을 포함하는 대연정 정부를 구성토록 압력을 넣기도 했다.
***시아파 지도자들 '美 알라위 데려오려는 것 아닌가'**
시아파에 대한 다각도의 공격과 총선 후의 폭넓은 연정 주장 등 미국의 시아파 견제 움직임에 대해 시아파 지도자들은 12월 총선에서 시아파 연합인 통합이라크연맹(UIA)이 의회의 다수파가 되는 것을 막고, 이야드 알라위 전 총리의 득표를 돕기 위한 것으로 봤다.
이브라힘 알 자파리 총리와 시아파의 중심 조직인 이라크이슬람혁명최고위원회(SCIRI) 지도자들은 지난 8월 미국이 12월 총선에서 알라위를 다시 데려오기 위해 정부를 마비시키려고 시도하고 있다고 당원들에게 말했다.
후세인 바트당원이었던 알라위 전 총리는 미국으로 망명, 그 후 미 중앙정보국(CIA)에 오랫동안 부역해 온 인물로 '세속주의적' 시아파로 분류된다. 그가 이끄는 이라크국민리스트(INL)는 지난 15일 총선에서 개표 부정이 있었다며 재선거를 요구하면서 새로 구성되는 의회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알라위 전 총리와 함께 선거 부정 의혹을 제기하며 재선거를 요구하는 수니파 그룹의 이라크 국민대화전선(IFND) 대표인 하싼 자이단 알 라하이비는 가짜 투표용지가 담긴 몇몇 투표함이 시아파가 집권한 이란에서 넘어오는 등 이란이 이라크 선거에 개입한 증거가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개입은 또 다른 재앙의 원인 될지도**
이란의 이라크 선거 개입 의혹을 푸는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UIA가 새 정부를 구성하려면 쿠르드족의 지지가 필요하다. 그런데 쿠르드족들은 수니파 정치지도자들을 정부에 참여시켜야 한다고 요구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어 총선 이후 이라크 상황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쿠르드족인 잘랄 탈라바이 이라크 대통령은 지난 25일 칼릴자드 대사와의 만남에서 "수니파 정당이 없다면 통합정부도 없고 이라크에 단결도 평화도 없게 된다"고 말했다. 쿠르드족 지도자들은 또 시아파가 내무부에 대한 통제를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월 총선 후 UIA의 정부 구성 작업은 쿠르드족의 요구 때문에 3개월이나 지체된 바 있다. 당시 군부와 내무부에서 바트당 인사들(수니파)이 요직을 유지할 수 있게 하라는 쿠르드족의 협상 전략은 미국의 요구와 일치하는 것이었다.
시아파 지도자들 입장에서는 세속적인 시아파 및 수니파와 권력을 나눠가지라는 미국의 압력은 대단히 어려운 문제다. 시아파들은 내무부와 같은 통제 조직을 장악하는 것을 시아파 권력 장악의 핵심으로 여기고 있는 까닭이다.
압둘 아지즈 알 하킴 등의 SCIRI 지도자들은 미국의 군사적 보호와 시아파 권력의 안전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느끼고 있는데, 이들은 후자를 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인터프레스 서비스〉는 전했다. 그들은 미국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에 간섭을 계속한다면 미군 철수 시간표를 제시하라고 요구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미국의 압력에 대응하고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난감한 요구사항이다. 이라크가 안정화되기 전에 미군이 철군한다는 것은 시아파 지도자들이 이란으로부터의 재정 지원, 심지어 군사적 지원에 의지하겠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한편 부시 행정부는 폭력이 계속되는 상태가 지속되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공공연히 경고해 왔고, 저항세력의 폭력이 악화된다면 미국인들의 반전ㆍ철군 여론은 높아질 것이다. 그런데 이라크는 지금 알라위 전 임시정부 총리가 주도하는 선거 부정 의혹 등으로 다시 총선 전후의 일시적 평화가 끝나고 시위와 저항세력의 공격이 증가되고 있다. 친 이란계 시아파의 의회 다수 의석 장악을 그대로 두자니 마음에 걸리고, 총선에 대한 문제제기가 과격해질수록 이라크 상황은 악화되어 미국내 반전 여론 또한 높아질 난관에 봉착한 것이다.
따라서 이라크 저항세력의 폭력과 시아파의 치안ㆍ군사 조직에 대한 장악 기도, 그리고 이를 저지하려는 미국 측의 압력 등은 대단히 미묘한 갈등구조를 만들어내고 있으며 자칫 이라크와 이란을 포함하는 중동 전체의 또 다른 재앙으로 이어질 폭발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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