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비밀 도청 승인에 대한 반발 여론이 가열되면서 다수의 미국 언론들이 대통령 탄핵 문제를 거론하기 시작했다고 미국의 언론전문지 〈에디터 앤 퍼블리셔〉가 22일 보도했다.
이 잡지는 "이번 주 갑자기 'I' 혹은 'IO'라는 글자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며 "미 국민에 대한 도청을 승인했다는 폭로로 분노가 폭발했고 일부 보수적인 매체들까지도 탄핵 논란에 동참하고 있다"고 전했다. I는 '탄핵(impeachment)'을, IO는 '탄핵 사유(impeachable offense)'를 뜻하는 영문 머리글자다.
***〈워싱턴포스트〉에 탄핵 여론조사 실시 압력도**
〈에디터 앤 퍼블리셔〉에 따르면 미국 전역에 수십개의 신문을 갖고 있는 신문체인 〈나이트 리더〉의 백악관 출입기자인 론 허치슨은 "일부 법률 전문가들이 부시 대통령이 탄핵 사유가 될 정도로 법을 어겼다고 주장한다"고 보도했다. 법률가들은 신문이나 방송에서 대체적으로 그같은 견해를 나타냈다고 이 잡지는 전했다.
시사주간 〈뉴스위크〉는 인터넷판에서 "이구동성으로" 탄핵을 얘기한다고 전했고, 워싱턴 주재 기자인 하워드 파인맨은 부시 대통령의 반대자들이 그를 '닉슨 버전2'로 부르고 있다며 "'I'자가 나오고 있고 내년에는 더 많이 들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탄핵 문제를 다루지 않는 언론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여론조사부장 리처드 모린은 독자들과의 온라인 대화에서 〈워싱턴포스트〉는 왜 탄핵에 관한 여론조사를 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나를 미치게 하는 질문"이라고 답했다. 두번째, 세번째 독자도 똑같은 질문을 하자 "더 미치겠다"고 화를 냈다.
이 잡지는 "미 공영방송 〈PBS〉의 언론 비평 프로그램인 '언론이 문제다(Media Matters)'가 〈워싱턴포스트〉는지난 1998년 1월 클린턴 대통령의 섹스 스캔들이 폭로된 지 며칠도 되지 않아 탄핵에 관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고 보도했다"면서 여론조사를 미저거리는 리처드 모린의 반응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했다.
잡지는 또 "다양한 여론조사를 훑어보면 탄핵을 지지하는 의견이 상당하다는 것이 발견된다"고 전했다. 그러나 여론조사기관인 갤럽의 프랭크 뉴포트 이사는 최근 탄핵 문제가 주요 정치 쟁점이 될 때만 여론조사를 하겠다고 말했다. 뉴포트는 탄핵 여론을 조사하라는 이메일에 시달리고 있다면서도 이는 부시 반대파의 '조직적' 행동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그 문제를 검토 중이다. 우리는 심각한 책임감을 갖고 있어 여론조사를 고려할 것이다"고 덧붙였다.
***보수 언론 "탄핵 절차 들어가면 부시 지지도 상승할 것"**
그러나 부시 대통령에 대한 지지 성향의 매체들은 이 문제를 다루면서도 '국가 안보'를 중시하는 미국인들에 의한 '탄핵 역풍'을 기대하고 있다.
보수세력의 대변지인 〈내셔날 리뷰〉의 조나 골드버그는 인터넷판에서 탄핵 여론을 참조·보도함으로써 부시의 반대자들에게 "탄핵 한 번 해봐라"며 거의 '조르는' 식의 태도를 보였다. 골드버그는 "부시가 탄핵 절차에 들어간다면 미국인들은 결국 그의 (도청에 대한) 승인을 지지하는 여론이 높아져 (탄핵을 반대하는) 답변이 급증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수파들의 블로그인 〈레드 스테이트〉에서도 "탄핵을 우려하는 이들은 핵심을 놓치고 있다. '탄핵'을 들먹이는 민주당원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공화당에게는 이득이다. 민주당 패거리들은 현실감이 없고, 당파적이며 국가 안보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생각을 확인시켜주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새해 되면 논란 더욱 가열될 것" 전망은 일치**
하지만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닉슨 대통령의 법률고문이었던 존 딘은 부시가 "탄핵이 될 만한 사유를 (스스로 공개적으로) 인정한 첫번째 대통령"이라고 지적했다. 또 미국인권연합(ACLU)은 22일 〈뉴욕타임스〉에 비밀 도청 문제를 조사할 위원회 설치를 요구하고 의회가 관련 범죄 행위를 검토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내용의 전면광고를 내면서 이 문제에 기름을 부었다.〈MSNBC〉의 온라인 여론조사에서는 21일 저녁 현재 88%가 이같은 생각을 지지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의 칼럼니스트인 댄 프름킨은 21일 이 문제에 관한 발언을 모아 소개하며 "(논란의) 배후에는 'I'자가 있다"고 말했다. 바바라 박서 민주당 상원의원(캘리포니아)은 부시 대통령의 영장 없는 도청 승인이 탄핵사유가 되는지에 대해 4명의 대통령학 학자들에게 질의서를 보냈다고 프롬킨은 전했다.
〈달라스 모닝 뉴스〉의 토드 길만 기자는 "존 루이스 민주당 의원이 '부시의 행위가 탄핵 사유가 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프름킨은 조지워싱턴 대학의 법학 교수 조나단 터리와 도청 관련 법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대통령이 연방법을 어기도록 승인해 심각한 헌법적 문제가 발생했다"고 전했다.
〈워싱턴포스트〉의 리처드 모린은 독자들과의 대화에서 결국 "우리는 탄핵이 고려할 만하지 않거나 심각한 토론 주제가 아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여론조사를 하지 않는다. 민주당 지도부나 대권 후보들 중에서 부시의 탄핵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보라. 탄핵이 토론 주제가 된다거나 민주당 지도부가 그런 말을 한다면 여론조사를 하겠다"고 답했다.
모린은 "나를 비롯한 여론조사 담당자들이 민주당 계열의 웹사이트에 의해 조직된 여론몰이의 공격 대상이 됐다"고 불만을 표했다. 프름킨은 그러나 "질문을 하는 건 잘못된 게 아니다"고 평했다.
잡지는 "새해가 되면 이같은 논란이 확대될 것이 분명하다"며 "(내년이 되면) 양 당은 상대 당을 향해 '반역'을 저지르고 있다고 비난할 것이다. 민주당은 부시 행정부가 미국의 헌법을 파괴했다고 비난할 것이고 공화당은 민주당이 미국의 안보를 파괴한다고 비난할 것이다"는 파인맨의 전망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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