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뉴욕타임스가 특종기사를 1년이나 '묵힌' 까닭은?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뉴욕타임스가 특종기사를 1년이나 '묵힌' 까닭은?

테러와의 전쟁에 무릎 꿇은 '펜타곤 페이퍼' 주역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19일(현지시간) 앞으로도 미 국민에 대한 비밀도청을 계속하도록 허용할 것이라고 당당하게 밝혔다. 지난 16일 〈뉴욕타임스〉의 단독보도로 미 정부가 2001년 9.11테러 이후 36차례 이상 불법도청을 감행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일었지만 이에 개의치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가진 송년 기자회견에서 "미국 대통령이자 미군의 총지휘관으로서 조국을 보호하기 위한 합법적 책임과 권한을 갖고 있다"며 비밀도청 허용의 합법성을 강조했다.

부시 대통령의 이같은 태도는 NYT 기사가 나간 다음날부터 행정부가 보여 왔던 '정면돌파' 전략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부시 대통령은 17일 도청 사실을 순순히 시인하면서 도청의 합법성과 필요성을 적극 옹호했다. 딕 체니 부통령과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도 몇몇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들의 합법성을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민주당과 언론, 인권단체 등에서는 부시 행정부의 국내 도청은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행위이고 대테러전 결의안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라고 강력 반발하고 있다.

***책 판매 늘리려고? 애국법 저지하려고?**

이같은 논란 속에서 이번 사건이 특히 주목을 끄는 점은 NYT가 이미 지난해 도청 정보를 입수해 기사를 써 놓고도 부시 행정부의 요청에 의해 1년이나 보도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NYT는 1년 전 취재 사실을 알게 된 백악관 관리들이 자사 간부들을 불러 "도청 사실이 폭로되면 수사가 어렵게 되고, 테러용의자들이 행동을 조심하게 된다"며 기사를 게재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고 기사가 나간 16일 밝혔다.

빌 켈러 편집장은 성명에서 "부시 행정부는 국가안보국(NSA)이 국내 도청을 하고 있다는 기사를 쓰면 국가 안보의 효과적인 수단을 빼앗기는 것이라고 강하게 주장했다"고 밝혔다.

켈러 편집장은 또 "백악관 관리들은 도청 행위에 법적인 문제가 없도록 다양한 법적 검토를 거친 것이라고 우리 고위 편집진들에게 확인했다"며 "국가 안보에 대한 주장이 설득력이 있어 비보도에 동의했다"고 말했다.

이어 NYT는 테러리스트들에게 "유용"할 만한 정보를 삭제했고 "추가 취재를 위해" 1년간 기사화하지 않았다고 밝혔으나 추가로 취재된 부분이 어떤 것인지는 명시하지 않았다.

NYT의 이같은 해명에 대해 일부에서는 이 신문이 책 판매량 늘리기 위해 불법 도청이라는 중요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고 비난하고 있다. 그 책은 이번 도청 기사를 쓴 제임스 라이슨 기자의 〈전쟁 국가: CIA와 부시 행정부의 은밀한 역사〉로 내달 출간 예정이다.

한편에서는 NYT가 미 상원의 이른바 '애국법'(US Patriot Act) 연장 표결을 부결시키기 위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보도 시점을 조절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상원은 16일 올해로 만료되는 테러방지법인 애국법 개정안을 부결시켰다.

***"문제의 본질은 언론자유에 대한 위협"**

그러나 NYT가 부시 행정부의 '설득'에 의해 취재 즉시 보도하지 않은 것은 대테러전쟁을 명분으로 미국의 민주주의, 그 중에서도 미국인들 스스로 최고의 가치로 꼽고 있는 표현의 자유가 심각히 침해됐음을 보여주는 일이고, 나아가 미국식 권언유착이기도 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나아가 미국의 주류언론들이 국가안보를 내세운 정부의 사실상의 언론통제에 순응함으로써 앞으로 미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은 더욱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1971년 닉슨 행정부의 온갖 위협에도 불구하고 미 국방부의 베트남 관련 비밀문서를 폭로해 미국의 베트남전 정책을 바꾸게 했던 '펜타곤 페이퍼' 사건의 주역 NYT가 정부의 요청을 순순히 따른 것은 언론 스스로가 표현의 자유를 포기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펜타곤 페이퍼 사건은 미국이 1964년 벌어진 통킹만사건을 조작해 베트남전 확전의 구실로 이용했다는 것을 NYT가 무려 6면의 지면을 할애해 폭로한 일이다.

시사주간 〈네이션〉은 18일 "독자들은 NYT가 왜 백악관의 요청에 '투항'했는지를 알아야 한다"며 "또 어떤 기사들이 정부의 감언이설과 압력, 협박에 의해 보류됐는지 밝히라"고 요구했다.

〈네이션〉은 "정부가 민주주의의 근본인 언론자유를 어떻게 위협했는지가 문제의 핵심"이라며 "얼마나 많은 뉴스들이 비밀을 지켜달라는 정부의 요청에 따라 정부의 잘못을 밝혀야 하는 언론의 의무를 저버렸나"고 물었다.

이 잡지는 CIA가 동유럽 국가에 비밀수용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지난달 〈워싱턴포스트〉의 특종 기사를 거론하며, WP도 수용소가 위치한 국가 이름만큼은 명시하지 말아달라는 백악관의 요청을 받아들였다며 "정부의 실책을 지적하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제어하는 감시자로서의 언론의 역할을 무력화하려는 시도가 매주 한 건씩 밝혀지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에 앞서 WP는 17일 NYT가 도청 기사를 1년 보류했다고 보도하면서 자신들의 비밀수용소 보도 직전에도 행정부 고위 관료들이 비밀수용소가 있는 국가들의 반테러 정책을 난관에 빠지게 하고 테러리스트들의 보복 공격도 있을 것이라는 점을 들어 나라 이름을 명시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힌 바 있다. WP는 이 요청을 받아들였다.

부시 대통령은 NYT의 이번 보도에 앞서 지난 6일에도 아서 슐츠버거 발행인과 켈러 발행인 등 NYT 간부들을 자신의 집무실로 불러 보도를 필사적으로 막으려 했다고 시사주간 〈뉴스위크〉가 19일 보도했다.

이와 관련 미국과학자연합(Federation of American Scientists) 소속 정보 비밀 전문가인 스티븐 애프터굿은 〈네이션〉과의 인터뷰에서 "부시 행정부의 정보 통제 관행은 이 정부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선호한다는 것을 뜻한다"며 "정보는 민주주의의 산소와 같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네이션〉은 이어 "언론인들과 언론사들이 무서운 '설쳐대는' 정부를 견제하면서 감시자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