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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불량자가 아니라 금융피해자다"

한국인권재단 주최 '채무자와 인권' 토론회

"이제는 '신용불량자' 대신 '금융피해자'라는 용어를 사용하자."

'빈곤과 차별에 저항하는 인권연대'의 서창호 상임활동가는 29일 오후 한국인권재단 주최로 열린 '채무자와 인권' 토론회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채무자는 '빚진 죄인'?

사실 '신용불량자'라는 용어는 법률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지난해 4월 '신용불량자 등록제도'가 폐지되면서 신용불량자라는 용어는 '금융채무 연체자' 혹은 '금융채무 불이행자'로 대체됐기 때문이다.
▲ 인권연대의 서창호 상임활동가. ⓒ프레시안

하지만 이날 발제를 맡은 서창호 활동가는 "신용불량자라는 말은 여전히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토론회의 사회를 맡은 한국인권재단의 양영미 사무총장은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빚진 죄인이라는 통념이 존재한다"고 진단했다.

이헌욱 변호사는 "우리나라에서 채무자는 의무만을, 채권자는 권리만을 가진 사람으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라며 "채무자를 단순히 의무만 부담하는 자로 규정하는 것은 채무자에게 당연히 부여돼야 할 '권리'를 소홀히 하게 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인권연대의 서창호 활동가는 "신용불량자라는 용어에는 '채무란 개인이 책임을 지고 반드시 갚아야 하는 것'이라는 사회적 전제가 깔려 있다"면서 "사회적인 문제로 고질적인 채무를 떠안게 된 사람들을 이제는 '금융피해자'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채권·채무 관계는 사회적 문제"

이헌욱 변호사는 "현대 자본주의에서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는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2004년 12월에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신용불량자'의 수는 전국적으로 361만 명에 이른다. 관련법이 사라졌으므로 정부는 그 뒤로 통계를 내지 않고 있다. 그러나 개인회생이나 개인파산을 신청한 채무자는 2004년 이후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다.

서창호 활동가는 "생활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채를 이용한 서민들은 66%의 고금리로 인해 적게는 원금의 300%에서 많게는 800%까지 갚아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며 "이들이 이같은 상황에 내몰린 것이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라고 말했다.

서창호 활동가는 "IMF 이후 실질임금 자체가 열악한 수준으로 떨어지고 비정규직이 확대되면서 고착화된 양극화가 이들에게 신용불량자라는 주홍글씨를 새겼다"며 "IMF 사태를 부르고도 카드발급을 남발해서 개인에게 빚을 지게 만든 정부와 금융기관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채무의 원인을 제공한 것이 정부와 금융권이므로 책임도 개인이 아니라 사회적인 차원에서 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헌욱 변호사도 "과중채무자들을 방치하면 결국 이들을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하는 국민이 먹여살려야 한다"며 "파산제도 등을 확대·보완해서 이들에게 새출발의 기회를 주는 것은 가장 기초적인 사회보장제도의 역할을 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새벽 5시에…10분마다 전화로…"빛 갚아라"
▲ 이헌욱 변호사. ⓒ프레시안

한편 이날 토론회에서는 불법추심으로 인한 채무자들의 인권침해 문제도 집중적으로 거론됐다.

인권연대의 서창호 활동가는 "불법추심 등을 통한 채무자에 대한 끝없는 인권유린과 사회적 왕따 현상은 대단히 심각한 문제"라며 "상담을 통해 만난 채무자들의 30%정도가 장기밀매를 통해 빚을 갚고자 하는 충동을 느낀 적이 있다고 털어 놓더라"라고 말했다.

채무자에게 가해지는 불법추심의 사례는 끝이 없었다.

서창호 활동가는 "추심원들이 회사로 찾아오거나 상사에게 이야기를 해서 채무자가 실직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심지어 새벽 5시에 갑자기 추심원들이 찾아와 빚 독촉을 하는 사례도 있는데 결국 가정이 파탄나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은 채권추심원이 채무자에게 폭력이나 협박을 가하거나 정당한 사유 없이 채무 사실을 가족이나 직장 동료에게 알리는 행위 등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이헌욱 변호사는 "그러나 법률절차에 의한 정당한 추심은 많은 시간과 비용을 요하기 때문에 대부업자를 중심으로 폭력적인 방법이 동원되거나 신용정보업자에 의한 다양한 불법추심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며 "추심업자들이 영업정지를 받은 경우는 지금까지 단 한 건도 없다"고 말했다.

서창호 활동가는 "더욱 심각한 것은 채무자 스스로가 느끼는 피해의식"이라며 "불법추심 행위로 피해를 입어도 자신의 인권이 유린당하고있다는 사실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라고 말했다.

개인파산제도는 기본…개선해야 할 부분도 많아

한편 이날 토론회에서는 개인파산제도나 개인회생제도 등 법률적 구제조치의 한계도 지적됐다.

이헌욱 변호사는 "채무자의 빚을 탕감해 주는 개인파산제도는 기본 중의 기본"이라며 "하지만 지금의 파산제도로는 채무자의 인권을 보장하고 새로운 출발을 보장해주기에 미흡하다"고 말했다.

현행 파산제도는 빚을 탕감받은 파산자에 대해 150여 개의 자격을 가질 수 없도록 하고 100여 개의 사업을 금지하며 특히 공무원이나 사립학교의 교원의 경우에 파산제를 이용하면 퇴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현욱 변호사는 "국가가 마련한 정당한 법절차를 이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러한 차별적 취급을 하는 것은 매우 부당하다"며 "파산을 하더라도 세금이나 공과금, 건강보험료 등은 면책되지 않고 계속 납부해야 하는 부분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창원 활동가는 "채무자가 당하는 인권침해를 사회적으로 공론화시키는 한편 법적·제도적인 개선에 함께 힘써야 한다"며 "가장 근본적으로는 채무자를 양산하는 사회적 양극화를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로 발제를 마무리했다.

"인권은 그 어떠한 이유로도 유보되어서는 안 되며, 금융피해자라는 처지 때문에 양보되어서도 안 된다. 금융피해자의 처지와 조건에 앞서 그들의 소중한 삶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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