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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권력의 심장부를 겨냥하는 화살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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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권력의 심장부를 겨냥하는 화살촉"

[인터뷰]'만해축전-세계시인대회' 참석한 윌레 소잉카

"세계 어느 나라 시인이 정부 허락을 받아야만 다른 나라의 시인을 만나고 문학 행사에 참석할 수 있느냐."

'2005년 만해축전'의 북한 일정(8월 12~13일)이 모두 끝난 뒤 이번 축전의 대표적인 인물 중의 한 사람인 시인 월레 소잉카(Wole Soyinka, 71, 나아지리아)는 자신의 격한 감정을 토로했다. 그저 아쉬움을 나타내는 정도가 아니었다. 북한 시인들이 12일 금강산에서 열린 세계평화시인대회에 끝내 참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소잉카는 아프리카 최초로 198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시인으로서 이번 '2005 만해축전'에서 만해대상 문학부문상을 받았다.

세계시인대회가 금강산에서 열리다 보니 주최측으로서는 이를 허가한 북한 당국이 북한 시인들의 참가도 당연히 허가할 것으로 기대했던 것이 사실. 그러나 대회가 시작되기까지 북한측은 북측 시인들의 참석 여부에 대해 답을 주지 않았고, 끝내 남한-북한-외국 시인들이 어깨동무를 하는 일은 실현되지 않았다.

***"금강산의 웅장함에 교감...그러나 슬펐다"**

주최 측이 소잉카에게 "아마 8.15 축전행사와 겹쳐서 북한 시인들이 못오는 것 같다"며 이해를 구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의 분노를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불참 이유라는 것도 웃기다 못해 우롱당한 느낌이다. (북한의) 현실에 대해 말로 표현하지 못할 만큼의 분노를 느낀다. 한반도 통일을 위해선 남북한이 하나가 돼야 하지만 그 통일은 물리적인 것뿐만 아니라 마음과 생각의 통일까지도 의미한다."

'북한이란 원래 그런 체제이니...'라고 생각했던 기자가 백발이 성성한 70대 노(老)시인의 '예상 밖' 분노 앞에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얼마 전 등을 다쳐 금강산에는 오르지는 못했지만 호텔 창문 밖으로 본 금강산의 웅장함에 교감을 느꼈다. 그러나 나는 산 자체보다 산을 둘러싼 인간문화에 더 영향을 받는 것 같다. 이 아름다운 산 주위의 인간문화를 백담사 만해마을 쪽에서 보았던 것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에 와서 슬펐다. 그런 점에서 산에 대한 즐거움은 남쪽에서 더 컸던 것 같다."

그러나 월레 소잉카가 어떤 시인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이날 그의 반응도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는 시인을 낭만적이거나 신비한 사람으로 보는 입장에 단호히 반대하는 문학인이다.

1934년 나이지리아 서부에서 태어난 그는 1950년대 영국 리즈 대학에 유학해 연극을 공부한 뒤 런던 왕립극장에서 배우와 감독 등으로 일했다. 아프리카 연극을 공부하기 위해 1960년 고국으로 돌아온 소잉카는 나이지리아의 정치적 실력자에게 도전하는 <숲의 춤(A Dance of the Forests)> 공연 등으로 내전 기간 동안 적극적으로 정치적 견해를 밝히다 1967부터 69년까지 22개월 동안 수감되기도 했다.

정치범으로서의 경험과 서구와 아프리카의 문학적 전통을 능수능란하게 융합한 소잉카의 독특한 작품 세계는 <통역자들(The Interpreters)>(1965), <무질서의 계절(Seasons of Anomy)>(1973)을 통해서도 엿볼수 있다. 희곡, 소설, 시, 평론 등 수많은 작품을 출간한 소잉카는 현재 미국과 나이지리아를 오가며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런 이력과 함께 세계평화시인대회의 마지막 행사인 14일 서울 심포지엄에서 그가 밝힌 견해를 들어보면 '자유를 억압하는 권력'에 대한 그의 분노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다.

***"평화는 권력과 지배의 포기로만 가능"**

'창의성과 평화'라는 이날 기조강연에서 소잉카는 "평화는 포기를 요구한다"고 단언했다. 여기서 포기란 지배세력에 대한 약자의 복종이나 패배도, 우월한 의지에 대한 순응도 아니었다. 오히려 강자가 공존의 원칙 아래 자신의 유리함을 포기하고 양도하는 것을 뜻했다.

그는 "평화는 권력을 향한 욕심과 권력의 이름으로 타자를 조종하려는 경향의 포기를 의미한다"며 "권력에 대한, 인간의 측량할 수 없는 열망과 타인을 지배하려는 의지, 독재를 낳는 자만심은 사회 안정을 위협하는 가장 사악한 적"이라고 단호히 말했다.

소잉카에 따르면, "권력의 속성은 강압적인 힘"이며 "시인은 그 권력에 대항해 싸우는 자"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의 역할은 '권력의 심장부를 겨냥하는 화살촉'인 동시에 '세속적인 현실에 새로운 옷을 입히고, 가장 어둡고 초라하고 박탈당한 곳을 밝혀주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는 소잉카가 금강산 인터뷰에서 "평화는 반드시 획득할 수 있지만 그것을 얻으려면 전세계의 정의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라고 말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시인은 그 정의를 위해 저항하는 자라는 얘기다.

***"시인은 지하에서 금을 캐는 광부와 같은 사람"**

그에 따르면 시인은 동시에 '위안하는' 자이기도 하다. 그는 12일 백담사 만해마을에서 열린' 2005 만해축전, 제9회 만해대상 문학부문상' 시상식에서 "시인은 왜 인간사에 전쟁과 폭력이 계속되는지 해답을 주진 못한다"며 "다만 시인은 어둡고 깊은 지하에서 험한 작업을 통해 금을 캐내는 광부처럼 그 빛으로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사람"이라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그의 말처럼 시인은 근본적으로 탐험가다. 언어를 이용해 미지의 세계를 모험하는 이 원정대가 세계에 대한 무한한 감정이입과 교감으로 들고 온 시들은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에게 집중되는 관심이 부담스럽다"며 금강산 인터뷰를 빨리 끝내려는 그에게 기자가 급히 물었다. "여기 금강산 깊은 골짜기에 시인들이 모여 평화를 외치는 것이 일반인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리고 여기서 낭송된 평화의 시들이 전쟁과 폭력에 지친 이들에게 과연 위안이 될 수 있을까?"

"두 번째 질문에 대해 먼저 말하자. 어떤 일이건 항상 뜻있는 사람들이 손과 마음을 모으는 일 자체에 의미가 있다. 독재에 대한 저항, 에이즈 퇴치, 환경 문제, 아동학대 등 그런 문제를 향해 어떤 일이든 지식인들이 뜻을 합하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고, 그 자체가 계속 여파를 낳는다고 본다."

그의 답은 계속 이어졌다. "시인이 위안을 주는 존재라는 것은 전쟁에 관한 시들을 생각할 때 답을 얻을 수 있다. 전쟁에 갈등하는 군인들이 쓴 시가 대통령 등 정치가와 일반 국민들에게 주는 영향을 생각해 보자. 결코 작지 않다. 전쟁 같은 나쁜 일이 있다 보니 거꾸로 시를 통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이 때 시는 다시는 이런 일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경고'를 담은 아름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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