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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정상회담 이후의 한일관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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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한일정상회담 이후의 한일관계 (1)

미래전략연구원의 '지구촌, 분석과 전망' <16> 기획의도

지난 6월 20일 한일정상회담은 노무현대통령의 표현대로 두가지"낮은 수준의 합의"로 끝을 맺었다. 과거사문제에 대한 양국간, 양수뇌간의 간극이 워낙 깊어 공동기자회견의 질문도 생략되었고, 합의사항 역시 사전에 조정된 합의사항일 뿐 정상회담에서 이룬 것은 거의 없다.

이 정도로 끝난 것이 오히려 다행일까. 일본 측에서는 "일-중"의 경우처럼 회담이 격론의 장이 되면 한일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될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한국 측에서는 이미"외교전쟁"이란 격한 용어를 사용하여 상대방을 적으로 만든 상황 하에서 가시적인 성과없는 회담을 할 경우 돌아올 국내정치적 부담에 대한 우려가 교차하는 속에서 아마도 수교 이래 최악으로 기억될 회담을 마쳤다. 이번 정상회담을 보면서 오늘의 한일관계를 어떻게 파악하여야 할까. 왜 이렇게까지 되었는가.

독도문제와 교과서왜곡, 그리고 고이즈미총리의 야스쿠니신사참배가 한일관계를 결정적으로 경색시킨 주요인이지만 이 사안들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역사인식문제는 주기적으로 반복되어왔고 독도에 대한 일본측 공식주장 역시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현재 한일관계는 이런 상수(常數)와 함께 보다 깊은 시대적 변화, 그리고 이에 대응하는 속에서의 양국의 변화가 담겨져 있다. 다시 말해서 오늘의 양국간 갈등은 서로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와 뿌리 깊은 불신의 표출이란 측면을 넘어서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드러나는 불확실성과 불안이 중첩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일 양국은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 혹은 메가트렌드에 능동적이거나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서로에 대해 이해의 곤란을 겪고 있다. 양국은 상대방의 변화 - 대외정책과 국내정치, 사회차원에서의 변화 - 를 제대로 읽지 못하거나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대적 변화 그리고 양국의 변화를 서로 정확하게 읽는 것이 21세기 한일관계를 모색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될 것이다.

***1. 전략환경의 변화와 불확실성**

21세기는 냉전 종식 이후 다극화의 경향을 보이던 국제체제가 미국중심의 단극체제로 변환되어 가는 경향 속에서 미국은 9.11 이후 반테러, 반대량살상무기(WMD) 확산정책을 전면에 내걸고 동맹의 재조정, 미군의 재배치를 추진해 가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세계전략 속에서 그 핵심동맹국으로 일본이 부상하고 있으며 일본의 군사적 역할이 적극 강화되는 것이 현재의 시대적 추세이다. 이를 흔히 "보통국가화"라고도 부른다. 전후 평화헌법에 의한 군사적 활동에의 제약을 넘어 여타국가와 동일하게 군사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국가가 되자는 주장이 그것이다.

일본의 이러한 행보를 한국은 대체로 우경화로 보고 있다. 그러나 그 우경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모호한 측면이 있다. 우경화는 일본의 새로운 국가정체성으로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인가, 아니면 과거로의 회귀인가. 후자라면 언제의 과거인가. 19세기 근대국가 만들기에 매진한 천황제국가로의 회귀인가, 아니면 대동아공영권을 꿈꾼 1931-45년 군국주의 파시즘국가인가, 아니면 패전 이후 보수장기집권에 의한 미국추수의 일국평화주의, 성장지상주의 국가인가.

반면, 일본은 보통국가화를 안보위협에 대한 대응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전후 일본은 거의 안보위협을 받아 본 적이 없으나 최근 중국의 급부상에 따른 안보딜레마, 북한핵 및 미사일이 직접적 안보위협이 되고 있는 전후 초유의 현실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성장신화 속에서 살아온 일본인들에게 지난 수년간 장기불황에 따른 잇따른 마이너스성장은 심리적 충격으로서 외부위협인식을 증폭시키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한편, 일본은 한국의 변화에 주목과 불안을 보이고 있다. 그들은 한국이 좌경화하고 있다고 본다. 일본은 노무현정부를 좌파적 색채가 강하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특히 대외정책에 있어서 친북, 반미, 반일의 정서가 내재되어 있다고 보고 있다. 우리사회에 존재하는 좌파적 역사해석에 따르면 친일파는 해방 후 친미파로 변신하여 반공의 탈을 쓰고 지배를 이어갔고, 이것이 한국외교에 있어서 사대주의의 지속의 원인이다. 일본은 현 정부가 좌파적(즉, 반미, 반일적)이기에, 동북아균형자론과 같은 외교지침이 나올 수 있다고 본다.

이런 점에서 일본에게 한국은 균형자(balancer) 아닌 동맹의 훼방자(spoiler)로서의 인상을 주게 되는 것이다. 역으로 일본이 중국을 본격적으로 겨냥, 미일동맹으로 견제하게 될 때, 북한에 본격적 압박을 가할 때, 또는 동아시아통합 속에서 미국의 충실한 대변자로 기능할 때, 한국에게 일본 또한 훼방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2. 경제환경의 변화와 불확실성**

한일 외교관계에는 한류(寒流)가 흐르고 있지만 경제, 문화교류에 있어서는 난류(暖流)가 흐르고 있다. 세계화/정보화의 영향일 것이다. 비정치적 분야에서 양자간 접촉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보는 만화(애니메이션 포함)가 거의 일본 것인 만큼 일본에서의 한류(韓流) 열풍은 한국인의 상상을 넘는다. 일본의 한국이미지는 빠르게 상승하고 있고 인적 교류의 확대뿐만 아니라 경제면에서도 양국간 상호의존은 날로 심화되고 있다. 교역의 규모보다도 교역의 내용을 들여다 보면 산업내 교역이 심화되고 있으며 양국기업간의 초국적 생산네트워크가 보다 촘촘하게 짜여가고 있다.

그렇다면 양국은 경제적 상호의존을 더욱 심화시켜 제도화해 갈 것인가. 이는 정치적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인가. 경제적 상호의존의 심화는 정치적 spill-over효과(즉, 우호적 외교관계)를 가져올 것인가. 혹은, 경제적 상호의존의 심화가 정치적 민감성과 취약성을 초래하고 이는 양국간에 불균등(uneven)하게 나타나는 것이라면 한국은 일본에 민감, 취약하게 될 것인가. 혹은, 양국간 외교관계가 악화될 경우 경제적 상호의존의 진전에 제동이 걸릴 것인가. 세계화론자들이 주장하듯 세계정치는 더 이상 국민국가의 전유물이 아니라 국가와 비국가행위자(다국적기업, 시민사회단체, 지역기구, 국제기구 등)간의 복합적인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면(이를 글로벌 거버넌스로 부른다) 한일간에도 유사한 정치/외교패턴이 등장할 것인가. 즉, 새로운 "한일거버넌스"가 등장할 수 있을 것인가.

일본과 중국이 경쟁과 대립을 지속하는 가운데 동북아(한-중-일)경제통합을 지향하는 한국에게 한일FTA는 지역통합의 디딤돌(stepping stone)인가, 아니면 걸림돌(stumbling)이 될 것인가. 일본과 중국 사이에 에너지확보 경쟁이 가속화되는 속에서 한국은 일본과의 관계를 어떻게 가져가야 하는가.

***3. 기획의 방향**

이상과 같은 질문들은 상대방에 대한 불확실성과 불안을 담고 있다. 탈냉전과 미국중심의 세계질서, 세계화와 정보화란 시대적 변환(transformation)의 흐름 속에서 한일 양국은 서로에 대한 불확실성과 불안, 그리고 서로간의 인식의 차이를 노정하고 있다(우경화 vs. 좌경화, 균형자 vs. 훼방자, 한류 vs. 난류). 과거사해법이 필요한 만큼 이러한 문제 역시 풀어가야 한다.

이번 미래전략연구원의 “이슈와 비젼: 한일정상회담 이후의 한일관계”는 이러한 관점에서 현재 한일간에 걸려있는 주요 이슈의 본질을 읽고 그 해법과 전망을 모색하고자 한다. 먼저, 박영준 교수의 글은 우리에게 초미의 사안인 북핵문제를 푸는데 있어서 일본 활용의 방법을 제시하며, 전진호 미래전략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본의 UN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입노력과 전망, 한국의 대응을 풀어낸다. 한일간 경제관계에 관해서 최태욱 연구위원은 현재 경제면에서 최대현안인 FTA문제의 본질과 해법을, 김현진 연구위원은 일-중 간에 심화되고 있는 에너지확보 경쟁의 본질과 이에 대한 한일협력의 전략을 다룬다. 끝으로 이 근 원장의 글은 새로운 시각에서 한일관계의 최대 쟁점인 과거사문제의 해법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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