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은 10일 철도청(현 철도공사)의 석유사업 개발 의혹과 관련해 "이광재 의원이 지난해 8월 철도청에 유전 개발 사업을 제안했다"는 내용이 담겨있는 내부 문건을 공개하며 이른바 '오일게이트' 공세를 강화했다. 그러나 당사자인 이 의원과 철도공사 등이 반박에 나서면서, 11일부터 시작되는 국회 대정부질의에서 최대 현안이 될 것임을 예고했다.
***한나라 제기의혹 1. "이광재가 유전 사업 참여 제의"**
한나라당 러시아 유전개발의혹 실태조사단(단장 권영세)은 이날 오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지난 2004년 8월12일자로 작성된 '사할린 유전ㆍ정유 및 북한 건자재 채취사업 참여'라는 제목의 철도청 내부문건을 공개했다. 이 문건은 신광순 차장과 왕영용 사업개발본부장 등 철도청 고위 간부들이 사할린 유전 사업에 대한 설명ㆍ토론회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문건에 따르면, 왕 본부장이 "유전 참여 동기는 이 사업을 주도하는 외교안보위(이광재 의원)에서 청에 사업 참여를 제의, RISK(리스크ㆍ위험) 보상 차원에서 북한 건자재 채취사업 참여를 역제의한 상태(유전사업 불참시 건자재 사업은 포기)"라고 말한 것으로 기록돼있다.
문건은 또 "유전사업은 하이앤드사와 석유공사가 공동 추진할 계획이었으나 지분율 다툼으로 석유공사가 불참 표명"이라며 "철도교통진흥재단이 참여토록 하고 소요자금 3백90억원은 우리은행에서 철도청 간접보증 조건으로 대출"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조사단장인 권영세 의원은 이와 관련, "이 의원이 깊숙이 관여한 게 사실로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권 의원은 북한 건자재 사업과 관련해서도 "(여권인사) 다수가 개입했을 개연성이 드러났다"고 새로운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문건에는 '객관적 팩트(사실)'가 잘못된 부분이 발견돼 신빙성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 의원은 문건에 적시돼 있는 '외교안보위'가 아닌 산업자원위원회 소속이고, '외교안보위'라는 상임위는 국회에 존재하지 않고 있다. 이 의원은 16대 국회때부터 산자위에 소속돼 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17대 원 구성이 된 지 얼마 안된 시점이라 착오로 오기를 한 것 같다"고 풀이했다.
***한나라 제기 의혹2. "우리당 서혜석의원, 황모 후원회장 모두 우리은행과 특수관계"**
한나라당은 한편 이날 "열린우리당 서혜석 의원이 철도교통진흥재단의 법률자문을 맡았다"는 사실이 적시된 팩스를 공개하며 "여권에서 광범위하게 협조해 이번 사업을 추진했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팩스는 작년 9월16일 철도청의 러시아 유전사업 카운터파트인 알파에코사가 계약금 납입을 최종통보하기 위해 철도청 계약대행사인 법무법인 W사에 보낸 문서다.
권 의원은 "팩스에 따르면 수신자 중 한 사람이 '헤이젤 서'로 돼 있는데 이는 열린우리당 비례대표인 서혜석 의원"이라며 "법무법인 W사의 황모 고문도 열린우리당 강원도당 후원회장"이라고 밝혔다. 서혜석 의원은 올 1월에 박홍수 의원이 농림부 장관에 임명되면서 비례대표를 승계해 의원이 됐고, 열린우리당 강원도당 후원회장인 황씨는 법무법인 W사의 상임고문으로 있다.
한나라당은 서의원이 2004년초까지 우리은행의 사외이사, 황 고문은 2002~2003년 우리은행 자회사인 우리카드 대표였다는 점을 지목하며, 이같은 우리은행과의 인연때문에 우리은행에서 비정상적 여신이 가능했던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한나라 제기의혹 3. "감사원, 우리은행 감사 돌연 중단"**
한나라당은 또 작년 11월30일자로 감사원이 우리은행에 보낸 '감사자료 제출협조 요청'이라는 제목의 문건을 공개하며 "감사원이 작년 12월에 우리은행에 대한 감사를 시작했다가 중단했고, 언론에서 이 문제가 시끄러워지자 다시 감사를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감사원은 문건에서 우리은행측에 "코리아쿠르드오일(주)로부터 러시아 유전 및 정유회사인 페트로사 인수를 위한 외화차입을 요청받고서 2004년10월4일 계약금 6백20만불을 대출, 지급한 관련서류 사본 일체를 2004년12월1일(수)까지 제출해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드러나 있다.
권 의원은 "감사원이 작년 11월 이번 사건에 대한 의혹을 파악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해명 1. 이광재 "철도공사 관계자, 8월엔 만나지도 않았다"**
한나라당이 새로 제기한 ▲이광재 의원의 사업 참여 제의 ▲서 의원을 비롯한 다른 여권 인사의 연루 가능성 ▲감사원의 감사 중단 의혹 등 세가지 의혹에 대해 관련 인사와 기관들이 적극적인 해명과 반박에 나섰다.
우선 이광재 의원은 이날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해당 문건은 지난해 8월 작성됐는데 내가 철도공사 관계자들을 처음 만난 것은 지난해 10월"이라며 "철도공사관계자들을 만나기도 전에 철도공사 내부회의에서 내 이름이 거론됐다면 누군가 내 이름을 판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이어 "내가 외교안보위 소속이라고 말한 것 자체가 내가 사기사건에 이용 당했다는 결정적 반증자료"라고 주장하며 "한나라당이 정확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폭로정치의 종말을 보게 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검찰은 수사를 통해 내 이름을 팔고다닌 인물이 누구인지를 밝혀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왕 본부장 "이 의원이 제의했다고 말한 적은 있지만, 직접 제안 받은 것은 아니다"**
철도공사 왕영용 본부장도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회의와 문건 작성 여부에 대해선 "모두 사실"이라고 시인하면서도 "이 의원이 사업 참여를 제안했다고 말한 적은 있지만, 이 의원에게 직접 제안을 받은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는 "일체의 외압은 없었다"고 거듭 주장했다.
왕 본부장은 문건에 드러난 대로 "8월 10일 철도청 정책토론회에서 '이광재 열린우리당 의원이 사업참여를 제의했다'고 이야기한 적은 있다"고 시인했다. 그러나 왕 본부장은 "그 당시 (앞서) 허문석 박사가 '이광재 의원이 (이번 사업에 대해) 관심 있다'고 말한 것을 듣고, 개인적으로 이 사업이 원활하게 추진되는 것이 국가적으로 유리하고 철도청 부대사업에 도움이 되겠다고 나름대로 생각해서 말한 것"이라고 밝혔다. 즉 왕 본부장 자신이 '이 의원의 이름을 판 당사자'라는 주장이다.
왕 본부장은 이 의원과의 접촉 여부에 대해서도 "10월 중순경에 허문석씨와 함께 한 번 만난 적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 의원이 산자위 위원이기 때문에 이런 부분(석유사업)에 관심이 있는 줄 알고 사무실로 찾아가 봤다"며 "자세한 날짜는 기억이 안나지만 10월 중순경이었다"고 말했다. 왕 본부장은 현 철도공사 사장인 신광순 당시 철도청 차장이 이 의원을 만나 이 의원에게 '철도청이 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면박을 당한 직후 이 의원을 만났다고 밝혔다.
왕 본부장은 허문석 박사와 함께 찾아가 "고속철도의 부채가 10조원이 넘어 경영을 압박해 오고 있는 상황이라 어떤 부대사업이라도 하려 한다"며 "사업을 하게 된 경위를 납득시켰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왕 본부장은 "(러시아 유전개발사업을) 철도청 정책토론회에서 결정한 당시(8월초경)에 이 의원은 이 사업을 철도청에서 한다는 것을 전혀 몰랐을 것으로 판단된다"며 "당시 이 의원과 전화한 적도, 만나서 이야기한 적도 없다"고 밝히며 이 의원을 적극 두둔했다.
왕 본부장은 "국민께 죄송하고 이 사건에 대한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해명2. 서혜석 "W사 소속 변호사로서 계약서 위험성 분석했을 뿐"**
한편, 철도교통진흥재단의 법률 자문을 맡았던 서혜석 의원은 "W사 소속 변호사로서 계약서의 위험성을 분석했을 뿐, 철도청과 정치권과는 관계가 없다"고 '여권 인사들이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주장을 반박했다.서 의원은 "W사는 지난해 9월10일께 철도청과 알파에코사의 계약서에 법적인 문제점이 있는지를 살펴달라는 의뢰를 받고 알파에코사 인수에 따른 위험성을 분석했다"며 "실사결과 조세와 유전면허기간 종료 등의 문제가 발생할 위험이 크다고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서 의원은 이광재 의원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비례대표직을 승계하기 전에도 몰랐고, 지금도 모르는 관계"라며 "국회에서 마주치면 인사말 정도 건넬 정도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광재 의원도 이와 관련, "서의원은 의원 선서식을 할 때 처음 봤다"고 밝혔다.
황모 우리당 강원도당 후원회장도 "강원도당 후원회장은 학교선배인 이창복 전 도당위원장 부탁으로 맡았고 이광재 의원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해명했다.
***해명3. 감사원 "2월28일부터 정식 감사했다"**
한나라당이 제기한 또 다른 의혹인 감사원의 조사 중단 주장에 대해 감사원은 이날 해명자료를 내고 "내사를 계속 진행 중이었으며 감사를 중단한 바는 없다"고 반박했다.
감사원은 "철도청 유전개발 사업 의혹에 대해 지난해 11월20일께 실무자 차원에서 첩보를 입수했으며, 12월1일 처음으로 우리은행 등을 상대로 사실 확인 차원의 자료수집에 착수했다"며 "이 사건의 내용을 파악한 뒤, 계약금을 돌려받는 것이 국익에 중요하다고 판단해 진행상황을 예의 주시해 왔다"고 밝혔다.
감사원은 "계약금 반환 협상차 러시아에 출장을 갔던 왕 본부장이 귀국한 후인 2월28일부터 본격적인 감사에 착수했다"며 "이는 언론이 보도하기 훨씬 이전"이라고 반박했다.
우리은행측도 "당시(12월초)에는 감사원이 정식 감사를 한 것이 아니라 관련 서류를 요청해 하나씩 받아간 것"이라며 "감사원이 정식으로 감사를 시작한 것은 3월부터로 알고 있다"고 감사원과 일치된 주장을 했다.
이 같은 당사자들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은 금주 중 특검법을 발의하겠다고 밝히며 공세를 이어간다는 방침이어서, 11일부터 시작되는 대정부질문에서 '오일게이트'가 최대 쟁점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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