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남아시아 지진해일(쓰나미) 참사의 최대 지원국이다. 정부와 민간차원의 구호기금을 합치면 약 1억 달러에 이른다. 그러나 고난받는 이들과의 연대는 문화와 국경을 초월한 오래된 것으로 독일만의 현상이 아니다. 오히려 피해지역에 대한 세계 각국의 경쟁적인 지원의 한계는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참사 2주만에 구호금은 이미 50억 달러를 넘어선 바 있다. 이는 5백여만명으로 추정되는 이재민 1인당 1천 달러씩 지원되는 액수로 피해지역 어부의 연간 수입에 해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9.11 미 테러 참사 이후 가장 큰 지원이다.
지진해일 참사 직후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미 군용기를 신속히 피해지역에 투입, 수 시간 내에 지구 반대편 나라에서 구호 작업을 벌였고 향후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도 약속했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 정치권도 연말휴가를 반납하고 경쟁적인 박애정치를 보여 주었다.
따라서 이러한 구호의 손길은 가난한 나라와 부자 나라로 이루어진 이 지구라는 작은 행성에서 세계 각국이 공동의 생존을 위한 연대를 시작한 것이냐는 물음을 던졌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이 처음으로 약속했던 지원액수인 3500만 달러는 이라크에서 하루에 사용되는 액수보다 적은 것이라고 패트릭 레이(Partick Leahy) 미국 민주당 의원의 말을 인용, 주간 디 차이트(1월13일자)는 보도했다. 또 미국은 일본, 인도 그리고 호주 등 협력국을 임의로 선정, 유엔을 제쳐둔 채 독자적 지원을 추진했었다. 이는 미국이 유엔 결의 없이 추진했던 이라크 침공을 연상시키는 것이다. 민주주의적 절차를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참사 직후 프랑스가 보여준 ‘비협조적’인 태도는 이러한 미국의 독단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프랑스는 미셸 바르니에르 외무장관이 태국과 스리랑카 참사 현지를 이틀간 방문한 뒤 자국 피해자와 함께 귀국했을 뿐이다. 특히 시라크 대통령은 위기지역의 구호조처는 유엔만이 결의할 수 있으며 유엔과 유럽연합이 기술의료지원군을 신속히 창설, 파견해야 한다고 연두기자회견에서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는 지난 이라크 개전 당시에도 유엔의 확고한 지도력을 요구한 바 있다.
이 밖에 유럽연합(EU) 집행위는 25개 회원국의 구호기금을 모아 향후 여러 해에 걸쳐 총 15억 유로에 달하는 이른바 유럽지원기금을 조성할 전망이다. 이는 기존의 자연재해와 기아에 대한 지원비를 훨씬 웃도는 규모다.
세계 각국이 이러한 구호의 정치를 통해 ‘하나의 세계’를 강조하고 있지만 이는 자국의 이익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예컨대 독일은 향후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진출하기 위해, 호주는 오세안 지역의 지정학적 권력확보와 행사를 위해, 그리고 미국은 다수가 무슬림 인구로 구성된 참사지역에서 자국의 이미지 개선을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독일 정부의 대규모 지원이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가입을 위한 것이라는 독일 보수야당의 비판은 그리 설득력이 있는 것 같지 않다. 독일의 상임이사국 진출 여부에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할 미국의 결정은 지진해일 참사 대응에 좌우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저개발국 지원과 관련하여 전세계 189개 국가는 지난 2000년에 ‘새천년 저개발국가 개발정책’에 합의, 전지구적 가난퇴치에 주력할 것으로 밝힌 바 있다. 2015년까지 아동사망률을 3분의 2로 낮추고 교육기회와 보건복지혜택을 확대한다는 목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세계 정치권의 의지는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12억명의 하루 수입이 1달러에 미치지 못하던 지난 1990년대에 비해 현실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서구사회의 부국들은 지난 1975년부터 이른바 저개발국 개발지원비를 각국 GDP의 0,7%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추진해왔다. 그러나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들만이 이 목표액에 가까운 지원비를 부담해왔을 뿐이다. 따라서 지난 2002년 봄 유럽연합은 오는 2006년까지 최소한 GDP의 0,39%에 달하는 개발지원비를 부담한다는 목표를 새로 설정한 바 있다. 그러나 예컨대 유럽 최대의 경제대국 독일의 저개발국 지원비는 여전히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비싼 대가를 치른 통일비용의 부담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지진해일 피해국에 대한 독일정부의 지원과 민간차원의 대규모 지원은 오히려 나치즘의 그늘에 드리워 있는 독일인들의 집단적 비관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지적이다. 예컨대 지난 2차대전 패전 이후 독일인들은 전범국가로서의 죄의식을 씻어내기 위한 명쾌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다만 열심히 일한 성과를 중시하는 근면한 생활방식의 메커니즘으로 죄의식에 대한 감정을 억제해왔다고 최근 독일의 사회심리학자 율리우스 쿨(Julius Kuhl) 교수는 분석했다. 그러나 이러한 ‘근면성의 메커니즘’이 최근 독일의 경제불황에 따른 사회심리적인 상실감과 세계적인 테러의 공포에 시달려 온 독일국민들의 감정을 통제하는 데에 한계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는 전세계적인 위협으로부터 독일도 더 이상 예외가 아니라는 위기의식이 증폭된 결과이다. 더군다나 많은 독일인 사상자를 낸 지진해일 참사는 이러한 독일 사회의 공포감을 더욱 확산시켰다고 쿨 교수는 분석했다.
물론 독일은 이번 지원사업과 무관하게 지난 2001년 “세계 지방자치단체 협력사업”을 출범시켜 이른바 저개발국에 환경, 교육, 보건과 식량 지원을 위한 협력을 지속해온 바 있다. 예컨대 라인란트-팔츠 주는 르완다와, 또 헤센주는 인도 남부의 도시 마드라스와, 그리고 힐데스하임 시는 인도네시아의 파당시와 협력을 맺고 지원사업을 추진해왔으며 브라운슈바이크 주도 인도네시아의 반둥시와 협력해왔다. 베를린 시는 자카르타시와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지역적인 협력과 달리 대규모 참사에 대한 세계적 차원의 적극적인 협력은 세계사회의 당당한 일원이라는 인상을 갖게 해준다. 따라서 독일인들은 지진해일 피해국 돕기와 같은 대규모의 지원을 통해 일종의 휴머니즘을 오래 전부터 보여주고 싶어했던 것 같다. 아울러 이는 나치즘에 대한 죄의식을 덜어내는 데에도 기여하는 것으로 참사 직후 독일 현지 언론들이 성금마련 행사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인 것 같다. 특히 언론은 이번 지진해일 참사를 피해당사자 뿐만 아니라 세계인들의 사건으로 만들었다. 예컨대 지난 1976년 중국에서 발생한 대지진은 이번 쓰나미 참사보다 더 많은 인명을 앗아갔지만 생중계되지 않아 그 반향은 적은 것이었다.
사회심리적 비관주의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대규모 성금마련과 지원사업으로 인류애적 가치실현에 동참했다. ‘하르츠(Hartz)4’로 불리는 사회복지감축정책으로 표출된 심각한 경제난을 겪으면서도 먼 나라에서 발생한 참사에 인류애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나아가 세계 각국의 참사 지원행렬은 이 지구라는 작은 행성에서 살아가는 세계인들간의 화해를 위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곳은 내일에도 그리고 모레에도 있다. 따라서 세계의 부국들이 향후 장기적인 안목에서 저개발 국가지원정책을 추진하는 진정한 공존의 정치를 보여주느냐가 관심의 초점이다.
기술만능주의 그리고 물신숭배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세계’라는 관념은 어쩌면 현대사회가 낳은 환상에 불과할지 모른다. 게다가 지난 몇 년간 ‘하나의 세계’에 위협적인 핵문제 해결을 위한 것이라면 인간성도 훼손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져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진해일 참사에서 보여준 피해국에 대한 세계 각국의 적극적인 지원은 대륙의 경계를 넘어선 공존의 연대가 시작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이는 ‘느낌’으로 그쳐서는 안된다. 저개발국을 방문한 서구인이 위기에 처했을 때 그곳 주민들은 이들에게 기꺼이 도움을 베풀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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