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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동쪽에 괴물은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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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동쪽에 괴물은 없지만…

[데스크 칼럼] 통합진보당, 신발끈을 다시 묶어라

요즘 읽는 공상과학 소설 이야기. 이 소설에 따르면, 주인공(들)은 뚜렷한 실체가 없으나 대체로 빨간색 기생 생물체로 추정되며 태곳적부터 경기도 동쪽에서 번식을 시작해 인간과 인간집단을 숙주삼아 이들의 사고와 행동을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의 괴물들이다. 이정희 대표는 이들에게 영혼을 판 마녀이며, 괴물들의 군집체인 통합진보당은 얼뜨기 민주통합당을 살살 꾀어내 맑고 밝은 대한민국을 전복시켜 북녘의 대마왕에게 봉헌하려한다는 게 소설의 줄거리.

이정희를 향한 마녀사냥이 끝난 뒤 보수언론들이 공동으로 연재 중인 '경기동부 괴담'은 먹고사는 일이라는 깊은 시름까지 팽개치고 몰입하기엔 구성도 소재도 진부한 감이 있다. 다만, 한시가 촉박한 선거 정국에 평소엔 쳐다보지도 않던 진보정당을 이슈의 중심에 세운 노력만큼은 갸륵하다 할 것인데, 그 핵심은 진보정당이 의회에서 차지하는 의석이 많아질수록 뭔가 경천동지할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일깨움이다. 또한 진보정당을 한 축으로 한 연합정치가 가공할만한 위력을 낼 수 있음을 부정적으로나마 그려냈다는 데에 있다.

벼랑 끝에 몰렸던 야권연대가 이정희 대표의 총선 불출마 선언으로 되살아났다. 아울러 진보정당의 원내교섭단체 달성 가능성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실무진의 부정이 밝혀지면 꼬리 자르고 뭉개기에 급급한 기존 정치인들과 달리 자기희생의 모습을 보여준 이 대표의 결단이 이룬 반전이다.
▲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와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 ⓒ뉴시스

그렇더라도 통합진보당이 이번 사태를 겪으며 지불해야 할 수업비용은 이정희라는 썩 괜찮은 정치인을 잃은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왜 통합진보당을 원내교섭단체로 만들어야 하는지, 야권연대라는 구호 너머로 유권자들에게 들려줄 준비된 이야기는 무엇인지를 진보정당을 지지하고자 하는 유권자들 앞에 내놓아야 할 책임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연합정치를 진보정치의 성공적 발전 경로로 안착시켜야 할 책임이다. 87년 이후의 거의 모든 선거는 진보적 유권자들에게 곤혹스런 선택을 해야만 하는 절차였다. 진보정당이 없거나 존재감이 미미하던 시절, 독자적 집권론은 비현실적이었고 번번히 뒤통수를 치는 자유주의세력에게 힘을 몰아주자는 주장은 찜찜했다. '비판적 지지'라는 형용모순의 단어가 그 곤혹스러움의 상징적 표현이다. 민주노동당의 전신인 '국민승리21'이 결성돼 치른 97년 선거 이후에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2002년 대선 막바지에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를 둘러싸고 벌어진 '사표 논쟁'도 같은 맥락이었다.

시작과 더불어 게임이 끝나 비판적 지지 논쟁도 사표 논쟁도 맥없었던 2007년 대선 이후, 진보진영이 연합정치의 위력과 매력에 눈을 뜬 계기는 2010년 지방선거였다. 일부에선 보편적 복지 등 진보적 의제가 지방 공동정부의 실험으로 현재진행 중이다. 연합정치가 진보세력의 수권능력이 학습되는 모델로 주목받는 지금, '반MB'라는 낡은 슬로건에 안주해 연합정치를 선거기술적 의미로 한정할 일은 아니다. 2012년의 연합정치가 과거의 비판적 지지론보다 나으려면 통합진보당이 경쟁과 협력의 주체로서 존재 의미를 스스로 입증하는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선 통합진보당이 내부 혁신의 과제를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 통합진보당이 탄생하는 과정에서 진보정당들과 세력의 폭넓은 통합이 무산된 점에 아쉬움이 여전히 깊다. 이정희 대표는 "진보진영 내 일부 세력도 비열한 색깔공세에 동조하고 있다"고 불쾌한 심경을 토했으나, '경기동부 괴담'을 둘러싼 진보진영의 오해가 있다면 이 역시 매끄러운 통합이 좌절된 데에 따른 상처가 그만큼 깊게 패여 생긴 부산물이다. 지난날 민주노동당 분당의 한 원인이었던 패권주의적 정서가 잔존해있지 않은지도 다시 한 번 살필 일이다.

이번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이 국회에서 의미 있는 영향력을 가진 세력으로 성장하느냐 여부는 우리 정치의 앞날에 대단히 중요한 변수다. 최근 발생한 불미스런 일들에도 불구하고 도덕적 재무장과 내부 혁신에 소홀한 채 선거 승리를 기대한다면 경기동부 괴담만큼이나 허황된 진보정치의 꽃타령이 될 수 있음을 잊지 말기를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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