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탈북자 송환 반대 운동의 불편한 진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탈북자 송환 반대 운동의 불편한 진실

[데스크 칼럼] 그들의 자충수를 막아야 하는 까닭

최근 탈북자에 대해 취재한 바를 정리하면 이렇다. 국내로 들어오는 탈북자의 수는 2006년 이후 매년 2000명대를 유지한다. 이명박 정부 들어 특별히 늘지도 줄지도 않았다. 탈북자들이 국내로 들어오는 루트는 다양하다. 일단 중국으로 탈북해 태국, 라오스 등을 경유해 들어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국에서 곧바로 한국으로 오는 경우는 매우 적다. 중국에 있는 외국의 대사관·영사관에 들어갔다가 한국으로 오는 방식이 한때 번성했지만, 이제는 '구식'이 되어 매우 극소수만 그 길을 택한다. 탈북자들을 한국으로 데려오면서 돈을 버는 브로커들이 보다 빠르고 안전한 길, 달리 말해 돈을 더 잘 벌 수 있는 길을 찾았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가 중국에 협조를 구하는 지점은 어디인가. 우선 북한 주민들이 중국으로 넘어오는데 대한 단속을 느슨하게 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어 중국 당국이 이미 넘어온 사람들을 체포하지 못하게 하고, 붙잡힌 탈북자들을 북한으로 돌려보내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중국 내 외국 대사관·영사관에 들어가 몇 년째 사실상 감옥생활을 하고 있는 탈북자들을 데려오기도 해야 한다. 요컨대, 중국으로 하여금 탈북을 묵인·방조하도록 하는 게 한국이 해야 할 외교다.

이를 목표로 한 대(對)중국 외교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한중관계 전반을 원만히 관리하고 신뢰를 쌓는 게 기본이다. 그 바탕 위에서 사안별로 긴밀히 협의해 중국의 협조를 이끌어 내야 한다. 중국은 탈북자 문제만큼은 '혈맹' 북한과의 관계를 최우선으로 고려하기 때문에, 이 과정은 어쩔 수 없이 물밑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른바 '조용한 외교'다. 대통령이 공개 기자회견에서 중국의 탈북자 북송을 비판하고, 국제 외교 무대에서 중국의 체면을 깎고, 언론은 중국을 비판하는 기사를 쓰고, 서울의 중국 대사관 앞에 몰려가 데모를 하는 건 정확히 그 반대의 길이다.

탈북자 문제가 공론화하면 할수록 북한은 중국에 더 강한 단속을 요구한다.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북한의 대남선전용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는 지난달 24일 "국경지대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모든 위험요소로부터 자국민의 안전과 이익을 보호해야 할 국가의 응당한 의무"라고 주장했다. 최근 탈북자 문제가 부각되는 걸 보고 중국에 단속 강화를 요구하겠다는 신호탄이다. 이로 인해 중국 내 탈북자, 붙잡힌 탈북자, 탈북한 가족을 둔 북한 주민들의 신변은 더욱 위험해졌다. 한국 대사관·영사관에 있는 탈북자들을 데려오는데 대한 중국의 협조를 받기도 더욱 어려워진다. 이것이 현실이다. '탈북자 송환 반대'를 외치는 목소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탈북자들은 더 위험해진다.

이 현실을 말하면 대개 이런 반론이 나온다. '중국의 눈치나 보면서 선처를 구걸하자는 말이냐? 중국의 잘못된 처사를 두둔하는 것이냐? 탈북자의 인권을 외면하자는 것이냐? 잘못됐다고 말도 못하냐? 당장 송환 위기에 있는 사람들을 구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는 것 아니냐?'

탈북자의 인권을 외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진정으로 순수한 동기를 가졌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위와 같은 반론을 편다면 앞서 말한 '현실'을 다시 일깨워 주는 수밖에 없다. 탈북자 인권·구명 운동을 단념하라는 게 아니다. 실효적인 해결책은 따로 있다는 것이다. 한중관계를 개선하고 신뢰를 쌓고 탈북자 사안별로 긴밀히 협력하라는 요구를 한국 정부에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는 겉으로는 탈북자의 인권을 말하면서 실제로는 다른 목적을 위해 이 사안을 이용하는 세력이 있다. 이 문제를 총선의 의제로 만들고 진보·개혁 진영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삼으려는 일부 언론이 있다. 총선을 앞두고 탈북자 문제로 국회의원 배지 같은 정치적인 이득을 챙기려는 일부 개인과 단체들도 있다. 그런 저의를 가진 세력의 목소리가 사실은 더 크다.

그들은 자신들의 목소리가 잘 통하지 않자 극단적인 방법까지 동원한다. 중국에서 붙잡힌 탈북자나 한국에 있는 가족들, 북한에 남은 가족들의 신상 정보를 공개한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짓이다. '이번에 북한으로 끌려가는 사람들의 희생이 있더라도 앞으로 더 많은 북송을 막으려면 어쩔 수 없다'는 논리를 펴기도 한다.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이라크 민간인들이 희생당하는 '부수적인 피해'는 감수해야 한다는 무서운 논리와 닮아 있다. 그들은 또 '진보는 왜 탈북자 문제로 촛불시위를 하지 않나' 같은 말을 먼저 내세워 자신들의 저의를 솔직히 드러내기도 한다.

총선 전 불거진 탈북자 문제는 불순한 목적을 가진 세력이 조장하는 게 분명하나, 그들이 이처럼 무리수를 쓰면서 자신들의 정체와 목적을 스스로 폭로하는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탈북자 문제, 북한 문제를 정치화하려다가 제가 놓은 덫에 제가 걸려든 꼴이다. 그들의 자충수를 두고 볼 필요도 있겠지만, 그건 곧 탈북자들을 더 위험하게 만드는 것일 뿐이다. 그러니 이제 이 정치놀음을 집어치우길 바란다. 당신들의 아젠다 세팅은 실패했다.

▲ 새누리당 이상득 의원이 8일 서울 종로구 중국 대사관 앞에서 '대한민국지키기불교도총연합' 주최로 열린 탈북자 강제 북송 반대 기자회견에 참석해 박수치고 있다. ⓒ연합뉴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