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극우논리를 펴온 <월간조선> 조갑제 대표 겸 편집장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조선일보 내부 구성원의 ‘쓴소리’가 <조선노보>에 실려 관심을 끌고 있다.
언론계에서는 이와 관련, 최근의 '탄핵역풍'이 돌이킬 길 없이 거세자 조선일보로부터 조갑제 대표가 '팽' 당하려는 신호탄이 아니냐는 해석을 하며 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가끔씩 고개를 설레설레 젓게 한다”**
조선일보 노조의 기관지인 <조선노보>는 19일자로 발행된 노보 686호 1면 머릿기사로 '월간조선 조갑제 편집장께 드리는 레터'라는 제목의 조선일보 편집국 인터넷뉴스부 소속인 김성현 기자의 글을 실었다.
올해 6년차인 김 기자는 이 글에서 조갑제 편집장에게서“80년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기억하고 있는 입장에서 최근엔 기자가 아닌 ‘시민운동가’의 모습이 자꾸 연상된다”고 지적했다.
김 기자는 이 글에서 우선, 조갑제 편집장이 80년대 썼던 글들에 대한 회고로부터 운을 뗐다.
김 기자는 “1980년 광주부터 1985년 2.12 총선, 1987년 6월 항쟁을 다룬 편집장의 취재기를 읽으면서 묘한 감동이 일었다”며 “(이 글에서) 군사정권의 서슬이 퍼랬던 80년대 편집장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어느 정도였는지, 발로 뛰면서 쓴 기사에 대한 자긍심이 어떤 것인지 어렴풋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김 기자는 이어진 글에서 요즘 들어서는“편집장의 글을 보면서 끄덕였던 고개를 언제부터인가 가끔씩 설레설레 젓고 있다”며 “첫 계기는 ‘남북통일은 평양 주석궁에 국군의 탱크가 진주할 때 완성된다’는 취지의 글 이었다”고 꼬집했다.
김 기자는 또 “편집장의 홈페이지에 실린 글을 보면서도 의문은 가라앉지 않았다”며 그러한 이유로 조 편집장이 2002년 ‘전투적 우파에의 기대’ 제하의 글에서 “‘국가와 헌법, 자유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서 반역 독재 정권에 대해 국민은 저항권을 행사할 수 있다. 여기에는 군인도 포함된다’는 글을 읽고 기자가 아닌 ‘시민운동가’의 모습이 자꾸 연상됐다”고 밝혔다.
***“‘기자는 관찰자’라고 하지 않았나”**
김 기자는 조 편집장이 늘 "기자는 관찰자"라고 주장하면서, 실제로 본인은 이에 부합하지 않는 글을 썼다고 꼬집기도 했다.
김 기자는 “작년 말 편집장께선 홈페이지에 ‘시중에 많이 나온 말’이라며 탄핵을 언급했는데 불특정인을 취재원으로 기사를 작성하는 것에 대해 거의 매일 주의를 받고 있는 입장에서는 이처럼 아찔할 정도의 이야기가 ‘시중’을 근거로 작성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며 “편집장께서 개인 홈페이지에 올린 글 가운데 일부는 기자로서 쓸 수 있는 한계를 넘지 않았나 하는 의문을 불러일으킬 때가 많다”고 지적했다.
김 기자는 또 “마지막으로 '보수의 갈 길'에 대한 편집장의 견해에 작은 이견을 적어본다”며 지난 2002년 여중생 효순-미선양 사망사건 이후 벌어진 촛불시위를 예로 들었다.
그는 “(당시를 보며) 사내 선후배들도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 듯 하다”며 “보수가 자신의 가치를 더 벼려서 공세적으로 나가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다양한 문제에 대해 난상토론을 벌인 뒤 자정해야 하는 것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지만 편집장께서 강조하셨듯 기자가 참여자가 아닌 관찰자인 이상 성급히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초조하더라도 시국을 끈기 있게 지켜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기자는 글 마지막 부분에 이같은 글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극히 경계한 듯 “글이 마구잡이로 악용되지는 않을지 적지 않은 걱정이 든다”며 “그럼에도 이 시점에서 편집장의 글을 한번쯤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펜을 들었다”고 밝혔다.
***조갑제, 조선일보에서 '팽' 당하나**
이같은 <조선노보>의 조갑제 비판론은 최근의 '탄핵역풍'과 무관치 않은 게 아니냐는 게 언론계의 지배적 관측이다.
조갑제 편집장은 지난 12일 탄핵안 국회 가결직후 자신의 홈페이지에 "대한민국 만세"라며 탄핵안 가결을 대환영하는 글을 실었다가 그 직후 '탄핵역풍'이 거세게 불자 즉각 글을 삭제한 뒤 지금까지 자신의 홈페이지에 일절 정치적 글을 싣지 않고 있다. 언론계 일각에서는 탄핵역풍이 돌이킬 수 없이 거세게 일자,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이 간부들에게 더이상 여론을 자극하는 글을 싣지 말도록 긴급지시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조 편집장은 이처럼 자신이 직접 글을 쓰지는 않으면서도 자신의 홈페이지에 극우정객인 허문도씨나 독립신문 등의 탄핵지지 글을 싣는 것으로 여전히 현 정국에 대한 강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하지만 조선일보내 일각에서도 지난 대선때부터 조갑제씨의 극우편향적 글에 대한 비판여론이 제기됐었고, 일부 편집국 중견기자들은 "조갑제 매니아들이 주류를 이루는 월간조선 독자 몇만명을 유지하기 위해 조선일보 전체가 위기에 처하는 게 아니냐"는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후에도 조갑제 편집장은 부단히 반노(反盧) 전선의 선봉에 서서 최근 탄핵안 국회 가결때까지 '탄핵 드라이브'를 걸어왔고, 그의 논리는 한나라-민주 지도부에게 적잖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탄핵역풍이 폭풍처럼 거세자 조선일보내에서 조 편집장은 고립무원의 처지로 몰리고 있으며, 이번 <조선노보>의 이같은 비판론도 이런 흐름에서 가능했던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극우세력의 선봉장격이었던 '조갑제의 시대'도 이제 막을 내리는 분위기다.
다음은 <조선노보>에 실린 김성현 기자의 원문 글이다.
***조갑제 월간조선 편집장께**
작년 여름 휴가를 이용해 편집장의 '대사건 대추적-대폭발'을 읽었습니다. 동네 헌 책방에서 발견하곤 반갑게 집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1980년 광주부터 1985년 2.12 총선, 1987년 6월 항쟁을 다룬 편집장의 취재기를 읽으며 저는 묘한 감동이 일었습니다. 특히 생생한 취재를 통해 '선명 야당'이던 신민당의 약진을 중산층, 20~40대, 아파트 주민, 고학력자의 지지 때문으로 실증적으로 분석한 구절에서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군사정권의 서슬이 퍼랬던 1980년대 편집장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어느 정도였는지, 발로 뛰면서 쓴 기사에 대한 자긍심이 어떤 것인지 책을 통해 어렴풋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편집장의 글을 보면서 끄덕였던 고개를 언제부터인가 가끔씩 설레설레 젓고 있음을 말씀 드립니다. 첫 계기는 '남북통일은 평양 주석궁에 국군의 탱크가 진주할 때 완성된다'는 취지의 글이었습니다. '사실이 정의와 국익을 구현하려는 것이지 정의가 사실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편집장의 언론관에 공감하고 있었기에 저는 그 글을 보며 의아스러워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글은 사실이 아닌 의견, 설명이 아닌 주장에 근거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편집장의 홈페이지에 실린 글을 보면서도 의문은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2002년 '전투적 우파에의 기대'에서 "한국의 우파는 이제 전투적 조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하셨지요. 사회 일각에 퍼지고 있는 친북 이데올로기에 대한 우려에 공감하지만 "헌법 수호기능을 총동원해 반란을 저지하는 행동으로 나서야 하며 지금부터 그
런 동원력을 준비할 때"라는 구절은 자칫 오해를 부를 수 있다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일부 전현직 대통령에 대해 이미 '친북 좌파' 의혹을 제기하셨기에 그 우려는 더해갔습니다. "국가와 헌법, 자유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서 반역 독재 정권에 대해 국민은 저항권을 행사할 수 있다. 여기에는 군인도 포함된다"는 글에서 기자가 아닌 '시민 운동가'의 모습이 자꾸 연상되는 것은 저만의 기우(杞憂)일까요.
작년 말 편집장께선 홈페이지에 "탄핵 뒤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야3당의 합의만 이뤄지면 된다. 이를 만들어낼 인재는 없는가"라고 반문하셨습니다. 이어 한나라당이 조순형 대표를 차기 대통령 후보로 지지하는 대신 개헌 등을 조건으로 다는 건 어떨까 하는 이야기가 "시중에서 많이 나온다"고 하셨습니다.
불특정인을 취재원으로 기사를 작성하는 것에 대한 주의를 거의 매일 받고 있는 저로서는 이처럼 아찔할 정도의 이야기가 '시중'을 근거로 작성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기자 역시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언제든 자유롭게 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실리는 글의 성격은 엄격하고도 정밀해야 하는 기사와는 다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편집장께서 개인 홈페이지에 올린 글 가운데 일부는 기자로서 쓸 수 있는 한계를 넘지 않았나 하는 의문을 불러 일으킬 때가 많습니다.
특히 언론의 메커니즘에 익숙하지 않은 일부 독자들은 편집장의 글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서 이 같은 의견을 곧바로 조선일보의 공식 입장과 등치시키도 합니다. 편집장께서 회사와 사회에서 차지하고 계신 비중이 결코 적지 않기에, 이 후배는 때때로 곤혹스러움에 빠지기도 합니다.
저는 작년 영화 '황산벌'을 유쾌한 웃음과 씁쓸한 감정을 동시에 갖고 보았습니다. 코미디가 '역사의 희화화'를 피할 수는 없지만, 좀더 세련된 방식으로 포장할 수도 있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편집장께선 "한국사의 가장 비장하고 감동적인 장면을 파괴하고 우스개로 만든 비(非)국민적, 반(反)역사적 행태" "민족사적 범죄"라고 직설적으로 비판하셨습니다.
'한국사의 로마는 신라'라는 평소 편집장의 지론을 알고 있기에 역사에 대한 논쟁을 감히 펼칠 생각은 없지만, 글을 읽으며 저는 최소한의 유머를 불허하는 완고한 기성세대의 이미지를 떠올렸습니다. "희극이란 유명한 사람, 권력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비천하고 어리석으나 사악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소설의 한 구절을 영화에 대한 변론 삼아 뒤늦게 인용해봅니다.
마지막으로 보수의 갈 길에 대한 편집장의 견해에 작은 이견을 적어봅니다. 저는 산업화와 근대화의 혜택을 사실상 가장 많이 누려온 20~30대가 그 공과(功過)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있다고 있다는 주장에 공감합니다. 하지만 최근 자주 회자되는 '보수의 위기'를 더 보수적인 방식으로 돌파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아직 유보적입니다.
지난 2002년 대선 과정에서 저는 사건 기자로 여중생 사망 사건에 대한 '촛불 시위'를 수 차례 취재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일부 주최자들은 '반미'나 '친북'을 조장하는 구호를 외치고 과격한 퍼포먼스를 벌였으며 선거에 이용하려는 의도를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과 달리 조금 더 균형 있는 한·미 관계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 시위를 복잡한 마음으로 지켜보며 저는 보수가 소위 '개혁'이나 '진보'에 대해 더 열린 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잠정 결론'을 내렸습니다.
사내 선·후배들도 이 같은 주제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 듯합니다. 보수가 자신의 가치를 더 벼려서 공세적으로 나가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다양한 문제에 대해 난상토론을 벌인 뒤 자정(自淨)해야 하는 것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습니다.
그러나 편집장께서 강조하셨듯 기자가 참여자가 아니라 관찰자인 이상, 성급히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초조하더라도 시국을 끈기 있게 지켜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해봅니다.
사회를 갈갈이 찢고 있는 '이분법의 광풍'이 휘몰아치고, 고난의 현대사를 묵묵히 지켜온 조선일보 80여년 역사를 손쉽게 평가절하하고 매도하는 '철부지'들이 적지 않은 지금, 이 같은 글이 그들에게 한번 더 마구잡이로 악용되지 않을지 적지 않은 걱정이 듭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 시점에서, 편집장의 글을 한번쯤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펜을 들었습니다.
막 6년째 기자 생활을 하고 있는 후배의 용기로 여겨주십시오. 봄이 왔는데도 아직 춥고 탁하기만 합니다. 편집장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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