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민주노동당은 2일부터 시작된 비례대표 당내 경선으로 시끌벅적하다. 이번 17대 총선에서 처음 실시되는 정당명부 투표제로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이 기정사실화되면서 누가 비례대표의 상위순번을 차지할 것인가에 대한 당 안팎의 관심이 쏠리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는 2만5천여명의 당권자(당원 중 연속 10개월이상 당비 납부자)가 일반명부 2표, 여성 명부 2표 등 총 1인 4표를 행사해 직접 선출한다. 총 득표 순에 따라 순번을 배정하며 여성은 홀수 순번에 의무적으로 배정된다.
피선거권 제한이 없는한 당원 2백인 이상의 추천만 있으면 누구나 출마가 가능한 이번 경선에서는 노동자, 농민 뿐 아니라 도시빈민, 문화예술, 학생 등 다양한 부문을 대변하는 후보들이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21세기 대안정당, 문화정당을 위하여'라는 모토를 들고 나온 소설가 송경아(33)씨도 그 중 한 명이다.
<엘리베이터>, <테러리스트> 등으로 알려진 소설가 송씨는 지난 해 6월부터 당 내 문화예술위 문화정책팀에 결합하면서 본격적으로 당 일을 시작했지만 민주노동당에 대한 지지는 훨씬 오래되었다. 그는 지난 2002년 서울시장선거에 출마한 이문옥 후보와 대선에 출마한 권영길 후보를 공개 지지하면서 민주노동당원들 사이에 얼굴이 알려졌다. 주간지 <한겨레 21>에서 노혜경 시인과 격돌대담을 벌이기도 하고 홍세화씨와 함께 권영길 후보지지 패널로 방송 출연하기도 했다.
<사진 1>
그는 대선 당시 인터넷 상에서 노사모 지지자들이 우리에게 힘을 모아줘야 한다고 강권하는 것을 보고 '진보가 이런 식으로 가면 곤란하다'고 생각했다.
"1997년 김대중 후보의 당선이 확정되었을 때 그야말로 역사에 진 오랜 빚을 갚은 듯한 기쁘고 후련한 느낌이었어요. 이미 70년대에 당선되었어야 할 그를 이제야 당선시켰고 이 다음 선거부터는 반드시 '나의 정치적 성향'대로 표를 던지겠노라고 마음 먹었죠. 그 당시까지만 해도 현재 자본주의 사회는 극복되야 한다는 막연한 방향성만 가지고 있었지 구체적인 실천이나 대안에 대해서는 두리뭉실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선 당시 노사모의 '민주노동당 지지는 한나라당을 이롭게 한다'는 주장에 '이제 정치하는 사람이 아니라 정당의 정체성과 정책을 믿어야 한다'고 반박했죠. '비판적 지지'라는 것이 민주를 이야기하면서 그 민주의 이름으로 소수의 정치적 선택권을 말살하려는 논리 아닙니까. '파이를 키워 나중에 노동자에게도 나누어주자'던 바로 그 논리가 아니냐구요"
단순한 민주노동당 지지와 비례대표 후보 출마는 다른 문제다. 주위에서도 놀라워 했을 것 같다.
"두어 달 전까지만 해도 저는 제가 후보로 나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다른 문화예술인보다는 정치에 관심있고 정치가 어떻게 되어야 한다는 말을 하면서도 직접한다는 상상은 않는 훈수꾼이었을 뿐이었죠. 그러나 소외계층이 현실을 이기고 바꾸어나가는 동력이 될 수 있는 것이 문화예술이고, 향유를 보장받을 수 있는 문화 정책이 나와야 한다는 주장은 늘 해왔습니다. 이런 와중에 '말만 하지 말고 네가 꿈꾸는 정책을 국회에서 펼쳐라'는 동지들의 협박(?)을 받고 보니 문화 정책을 만들고 펴나가는 데 도전해보자는 욕심이 들었습니다. 더군다나 비례대표는 지역구의 책임과 중압에서 벗어나 정책 개발과 실현에 몸 바칠 수 있는 자리라서 민주노동당의 색채를 띤 문화정책을 개발해 나가고 싶었죠"
***"문화예술은 적을 공격하는 무기가 아니라 우리를 지켜주는 갑옷"**
그는 앞으로 민주노동당이 앞장서서 문화소외계층의 문화예술 향유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문화정책을 개발하고 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의 수도 서울의 삶의 질 수준이 세계 90위권이라고 합니다. 생존경쟁에만 내몰린 우리의 척박한 문화적 환경이 계속된다면 이 안에는 건강한 휴식도 내일을 향한 꿈과 전망도 없습니다. 그동안 민주노동당은 소외된 계층을 대변하는 정당으로서 위상을 각인시켰으나 문화정당으로서 면모를 보여주지 못한 것은 사실이에요.
여유있는 자들만이 누리는 문화, 문화를 말하면 '배부르냐'는 비아냥이 돌아오는 문화가 더이상 지속되어서는 안됩니다. 국민소득이 이만불이 아니라 세계최고가 되더라도 그런 문화속에서는 삶의 만족을 찾을 수 없습니다. 경제적 소득에 따라서만 문화를 누릴 수 있다면 십년 후, 오십년 후에도 자식을 위해 이민을 가고 제 가족을 위해 남을 짓밟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을 겁니다. 문화권은 사회적 권리죠. 권력, 부와 상관없이 모두가 보편적으로 누려야 할 권리로 보장받아야 합니다"
한국사회에서 경제적 소득에 따라서만 누릴 수 있는 것이 비단 '문화권' 뿐일까. 교육, 의료 부문에서의 공공성 약화는 고질적인 문제가 아닌가.
"문화예술은 남루한 현실에의 적응이 아니라 드높은 이상을 가슴에 품게 해줍니다. 문화예술은 변혁의 길에서 적을 공격하는 무기가 아니라 우리의 인간성이 마멸되지 않도록 지켜주는 갑옷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돈 있는 자만이 아니라 모든 이가 향유할 수 있어야죠. 특히 소외계층이 현실을 이기고 바꾸어나갈 수 있는 동력으로 작용해야 합니다"
***"사회개혁을 통한 문화향유와 문화를 통한 사회변혁은 같이 가야"**
그는 최근에 한 당원으로부터 몇 가지 날카로운 질문을 받았다. '모든 이들의 문화예술의 향유 이전에 사회적 시스템 개선이 우선이지 않은가'와 '문화 강조가 자칫 민주노동당이 대중성을 얻기 위한 효율적 아이템으로만 작용할 수 있지 않겠는가'였다고 한다.
"사회시스템의 실질적 개선 없이는 문화적 향유 또한 불평등한 사회조건에 좌우될 수 밖에 없습니다. '사회개선을 통한 모든 이들의 문화 접근성 확대'와 '문화를 통한 사회변혁'은 상호보완적인 관계입니다. 같이 가야죠. 그리고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할 것은 현재 '민주노동당에 문화가 있는가'하는 근본적 문제입니다. 중요한 것은 당연히 아래로부터 만들어지는 자생적인 문화의 형성입니다. '땀의 문화'죠. 아래에서 생성되는 문화를 긍정하고 그것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 후원하는 것이 민주노동당 문화정책의 출발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는 "엘리트 문화 또한 일반인들이 당연히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래에서부터 만들어진 투쟁동력으로서의 문화 외에도 소외계층의 질 좋은 문화로의 접근성도 필요합니다. 누리지 못할 이유도 없구요. 둘 다를 균형 잡히게 누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엘리트 문화는 질이 높습니다. 질이 높지 않을 수 없어요. 엘리트 문화는 모든 시간과 노력을 총동원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 사람들이 생산하는, 질의 정점에 이른 것이거든요. 그런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문화예술은 그 사람의 위치를 가능하게 한 모든 사람들의 몫입니다. 역사적으로 엘리트 예술이란 것도 시간이 지나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자산이 되어 왔습니다"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 확대 통해 국가가 소외계층의 문화권 보장해야"**
그가 문화예술 비례대표로서 가지고 나온 공약은 ▲노동자 문화휴가 제도 도입 ▲ 미국의 문화제국주의에 맞선 문화다양성 협약 체결 ▲ 문화소외계층의 문화적 권리 확대다.
이를 위해 유급휴가로 월 1회 '문화의 날' 신설, 공공도서관 확충 및 운영프로그램 개혁, 스크린쿼터제 확대 강화, 예술영화와 독립영화의 문화적 기반 확대 등을 내세우고 있다.
"보수정당들은 문화를 삶의 질이 아닌 국제경쟁력 차원에서만 바라봅니다. 최소한의 휴식과 재창조를 위한 주5일 근무마저도 노동자의 이기심이라고 몰아붙이고 있는 실정이니까요. 문화를 말로는 떠들지만 표심이나 현실 등을 운운하며 시선이 많이 흐트러져요. 흐트러지지 않고 문화의 공공성에 현실을 고정시키고 있는 정당은 민주노동당밖에 없다고 봅니다.
민주노동당의 문화정책의 기본은 전반적인 여건 조성이고 당이 문화 이슈를 주도하기 보다는 밖의 만개한 문화가 무언가를 요구했을 때 강력한 연대의 거점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비례대표 후보로 의원이 된다면 여러 문화단체의 제안을 국회에서 실현시키도록 노력하는 것이 할 일이라 생각합니다"
'인간이 선해질 수 있는 능력을 믿을 수 없는 나약한 자들은 비정함에서 자기만족을 느낀다. 진정한 강함은 인간성에 대한 믿음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다'
그가 쓴 칼럼의 한 구절. 앞으로 문화정당으로서의 민주노동당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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