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부러진 화살>과 사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부러진 화살>과 사실

[다산 칼럼]<14>

영화감독 정지영이 단돈 5억 원으로 영화를 만든다는 소식에 접했을 때 느낌이 씁쓰레했다. <하얀 전쟁>과 <남부군>이라는 문제작을 남긴 노장에게 충분한 제작비를 대기 어려운 영화계 사정도 안타까웠지만, 천하의 정 감독이 그런 적은 돈으로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영화를 만들고 표표히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안쓰러웠다. 그러나 그건 기우였다. <부러진 화살>은 관객 2백만을 돌파하며 최고의 화제작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부러진 화살>은 영화 자체가 수작(秀作)이다. 아마추어이긴 하나 영화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정지영 영화에 대해 조금은 부정적인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정 감독은 버릇처럼 도입부와 종결부에 군더더기를 곁들여 스스로 맛을 떨어트리곤 했다. 그런데 이번 영화 <부러진 화살>은 전혀 달랐다. 이 영화는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법정영화를 긴박감 있고 사실적으로 연출해냈다. 우리나라에서 이만한 법정영화는 처음이 아닌가 한다. 이 영화는 법정영화라는 장르와 관계없이 정 감독의 대표작으로 꼽을 만하다. 그는 오랜만에 메가폰을 잡았지만 우리로 하여금 명불허전(名不虛傳)이라는 성어를 실감나게 만들었다.

영화 속 팩트 논란, 허구를 사실로 느끼게 해

이 영화의 최대 강점은 사실감이다. 영화란 본질적으로 허구인데 관객은 너 나 없이 이 영화를 사실로 느낀다. 감독이나 제작진이 이 영화의 95% 이상이 사실이라고 주장해 사실감을 한 겹 더 두텁게 만들었다. 허구를 사실로 느끼게 한다면 영화를 잘 만들었다는 말 이외에 덧붙일 말이 없다. 그러나 이 영화의 사실감 때문에 일부에서는 이 영화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며칠 전에 MBC-TV의 <백분토론>에 참여한 두 법조인의 태도에서 그런 시각이 여과 없이 드러났다. 변호사 두 분은 이 영화가 사실을 왜곡했다고 입을 모았다. 한 분은 더 나아가 이 영화가 악의적으로 법조인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고 있다고 핏대를 세웠다. 법조인의 눈으로는 전혀 사실이 아닌데도 많은 관객은 왜 모든 것이 사실인 것처럼 느낄까? 영화를 잘 만들었다는 이유 말고도 다른 설명이 가능하다. 법조인이 상정하는 사실과 일반인이 생각하는 사실은 본질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법조인은 법리라는 전문적인 잣대로 사안을 평가한다. 법리로 치면 <부러진 화살>은 거짓투성이일지 모른다. 피고가 자해라고 주장하는 상황에서 혈흔이 판사의 것인지 아닌지를 가릴 필요가 있겠느냐는 물음에 법 전문가는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피고가 판정에 불만을 품고 석궁을 들었다면 법리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 감독이 피고의 시각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 자체도 수긍하기 어려울 것이다.

부러진 화살이 던진 메시지, 사법부 불신으로 이어져

그러나 일반인의 눈에 그런 법리적 사실은 전부가 아니다. 그들은 내용(content)보다는 맥락(context)에 주목한다. 영화에 나오는 교수는 입시문제가 틀린 사실을 지적했다가 학교에서 쫓겨났다. 어디서 한 번 잘리면 어디서도 일자리 찾기가 어려운 우리 상황을 감안하면 해임은 지나친 조치였다. 그러나 법원은 법리에 따라 그의 복직을 막았다. 일반인은 밥줄을 끊어놓은 판사를 석궁으로 응징하고자 한 교수의 감정에 은근히 공감한다. 석궁을 쏘아 그 정도 상처를 냈다고 해서 교수에게 중죄를 내리도록 분위기를 몰아 간 법원당국의 처사는 일반인 정서로는 지나치다. 교수에게 그 흔한 사면조차 없었다면 그것도 냉혹하다.

법리에 충실하고자 하는 법조인을 욕해서는 안된다. 법조인이 법리마저 팽개친다면 그건 큰일이다. 그렇다고 법리로만 사실 여부를 가리려는 태도 역시 온전치 않다. 일반인은 법리에 대해 유념하고, 법조인은 일반인의 정서를 헤아릴 필요가 있다. 그렇게 접근할 때 우리는 사실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다산연구소가 발행하는 '다산포럼'(www.edasan.org) 2월 7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