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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화살>, 알고 보면 '좌파와 우파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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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화살>, 알고 보면 '좌파와 우파의 문제'

[창비주간논평] 좌우파 균형과 합리적 개혁을 위해

영화 <부러진 화살>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재판절차나 교수신분 등 우리 사회의 이런저런 주요 문제를 다루는 의미있는 화제작이기 때문이다. 조금 깊이 파고들면 비합리적 좌우대립이 왜 생기는지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의미를 제대로 따지려면 영화와 실제를 구분해야 한다. 특히 일각에선 영화가 곧 실제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영화의 소재가 된 사건 관련자들의 주장과 기록을 종합해보면 실제는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김교수는 성균관대 수학과 동료교수들의 입시문제 출제오류를 지적하면서 미운 털이 박혔고, 그게 재임용 탈락의 근본원인이다. 다시 말해 학과내 반대파들에 의해 보복을 당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점은 김교수 주장이 옳다.

그러나 정치판이나 일반 회사에서도 그렇듯이 적을 공격할 때는 서로 사이가 나쁘다는 걸 내세우기보다 표적수사를 하고 먼지털이를 한다. 거기에 김교수가 걸려든 셈이다.

엎치락뒤치락 진실 공방

성균관대 측은 공식적 탈락이유로 김교수의 연구자 및 교육자로서의 자질을 문제삼았다. 재임용 탈락을 다룬 민사 항소재판부는 이에 대해 대학측의 연구자 자질 부족 주장이 근거 없다고 보아 처음엔 김교수 손을 들어주려 했다. 그런데 재판서류상의 미비가 발견되어 변론이 재개되었다. 그 과정에서 교육자로서의 자질 문제가 크게 불거지고 재판부가 그걸 인정해 대학측 손을 들어주게 된 것이다.

교육자 자질로서 재판부가 문제삼은 내용 중엔 교수인 본인이 보기에 교수라는 직업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일례로 우수한 학부생에게 연구환경이 더 좋은 다른 대학원에 진학하라고 김교수가 권고한 게 문제로 지적되었는데, 이는 대학에서 흔히 있는 일이고 학생의 발전을 위한 것이다.

다만 동료교수 및 학생과의 관계에서 김교수의 잘못으로 여겨지는 부분도 있다. 그게 꼭 해직시켜야 마땅한 사안인지는 의문이지만, 해직시킨 결정을 무조건 부당하다고 하기도 힘들다.

그리고 영화의 형사재판에서와는 달리, 김교수는 재임용 관련 민사 항소재판에서 변호사 없이 독학한 법률지식으로 스스로 변론했다. 능력있는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은 탓에 대학측 증인에 대한 반대심문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민사재판은 '변론주의' 또는 '당사자주의'라고 해서 적극적으로 변론하지 않는 당사자를 재판부가 잘 봐주기 힘들다. 이건 김교수의 실수다.

▲ 영화 <부러진 화살>의 한 장면 ⓒ프레시안

형사재판 과정에서 분별할 것들

석궁사건 이후 형사재판의 경우는 어떤가. 거기서 김교수측 요구를 묵살하지 않고 혈흔을 검증했다면 지금 같은 논란은 많이 줄어들었을 것이다. 아마도 재판부가 화살 맞은 판사에게 그런 요구를 하기가 미안했던 게 하나의 원인이 아닌가 싶다. 또 재판부에겐 김교수가 '또라이'로 보였고 너무나 뻔한 사건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아직도 남아 있는 법원의 '절차적 폐쇄성'이나 지나친 '권위주의'를 바로잡을 필요는 있다. 안 그래도 재벌총수들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라든가 전관예우로 인해 국민의 사법부 불신이 깔려 있지 않은가. 영화 <부러진 화살>의 사회적 의의는 이를 지적한 데 있다.

다만 그렇다고 혈흔을 판사가 조작했다고 한다면 그건 억지주장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조작할 이유를 찾을 수 없다. 부러진 화살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것도 법원의 잘못이 아니라 수사를 담당한 경찰의 엉성한 증거물 관리체계 때문이다.

그리고 선고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판사에게 석궁을 들고 간 행위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입장을 바꾸어보자. 낙제성적 F를 주거나 학위논문심사에서 떨어뜨리는 판정(일종의 선고)을 했다고 학생이 김교수에게 석궁을 들고 오면 되겠는가.

법원도 개혁이 필요하지만 검찰이 훨씬 더 문제인데, 법원과 검찰을 도매금으로 처리하는 건 곤란하다. 법원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대체로 한나라당은 법원을 공격하고 야당은 법원을 옹호한다. 판사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우리나라 권력기관 중 공정성이 그나마 상대적으로 나은 게 법원이다.

재판의 민주성과 효율성, 좌파와 우파의 가치

이상이 객관적 사실이다. 그런데 <부러진 화살>을 둘러싸고는 사실인식뿐 아니라 가치판단도 작동한다. 예컨대 김교수 같은 '괴짜'를 얼마큼 포용해야 하는가이다. 재판의 민주성과 효율성 중 어느 걸 더 중시해야 하는가 같은 사안도 있다. 약간 뜬금없이 보일지 모르지만 이게 따지고 보면 좌파와 우파의 문제다.

흔히들 <진보↔보수>와 <개혁↔수구>란 용어를 제대로 정의하지 않고 사용한다. 그런데 근대사회에서 진보파(좌파)와 보수파(우파)의 구분은 경제활동을 조정하는 두 축인 '시장과 국가'의 '상대적' 양(量)에 관한 것이다. 좌파는 시장보다 국가를 더 선호하며 우파는 그 반대다.

그리고 한국에선 좌파와 우파라는 기준과 별개로 '개혁과 수구'라는 구분도 강조될 필요가 있다. 개혁파는 시장과 국가의 질(質)을 높이려는 세력이고, 수구파는 이에 반대하는 세력이다. 좌파-우파를 가로축(x축)에 놓는다면, 개혁-수구는 세로축(y축)에 놓을 수 있다.

나아가 '좌파-우파'를 근대사회를 넘어 인류사회 전반에 적용하면 어떨까. 좌파는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고 사회연대(공생), 평등, 분배, 민주성을 강조하는 반면, 우파는 사회적 강자를 대변하고 자기책임(경쟁), 자유, 성장, 효율성을 강조한다.

인간본성으로 볼 때 좌파는 모성(母性)과 음(陰)에 가까우며, 우파는 부성(父性)과 양(陽)에 가깝다. 어머니는 못난 자식이 더 안타까운 반면, 아버지는 잘난 자식을 편애하기 쉽다.

좌우의 균형 속에 개혁으로 나아가야

김교수처럼 주위와 잘 융합하지 못하는 소수자라도 껴안고, 재판에선 피고의 주장을 최대한 들어주자는 게 좌파라 할 수 있다. 반대로 다수를 힘들게 하는 소수자는 물리치고, 재판에선 효율성을 증진시키자는 게 우파다. 범죄자를 치료대상의 병자로 보는 게 좌파라면, 격리대상의 병균으로 보는 게 우파다(물론 범죄자는 양 측면을 다 갖고 있다).

그런데 개인과 사회가 건전하게 발전하려면 좌파적 논리와 우파적 논리가 균형을 이뤄야 한다. 그게 바로 음양의 조화다. 건강한 인간상태를 나타내는 음양화평지인(陰陽和平之人)이라는 말도 있다. 좌파와 우파 어느 한쪽이 지나치면 개인이나 사회가 병든다.

활력을 잃고 붕괴한 소련 및 동유럽 체제는 좌파논리의 극단적 사례다. 거꾸로 양극화가 심해지고 금융위기가 발생한 오늘날 자본주의는 시장만능주의라는 과도한 우파논리가 지배한 결과다.

그러면 인류사회 전반에 적용 가능한 '개혁-수구'의 정의는 무엇일까. 사실과 이성에 입각하며, 효율성과 민주성 모두를 해치는 사회씨스템, 예컨대 부패구조 같은 걸 뜯어고치려는 세력이 개혁파다. 수구파는 그에 저항하는 세력이다.

좌파와 우파는 선과 악의 관계에 놓여 있는 게 아니고 양자가 조화로운 균형을 달성해야 한다. 하지만 개혁과 수구 사이에선 수구를 물리치고 개혁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게 역사발전이다.

과도한 좌우파 논리와 비합리성이라는 이중 문제

한국에선 그동안 압축적 고도성장 과정에서 우파의 논리가 지나치게 우세했다. 아울러 근대화의 역사가 짧고 분단체제하에 놓인 탓에 좌파든 우파든 객관적 사실을 외면하고 비합리적 주장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즉 '우파논리로의 편중'과 '좌우파의 비합리성'이라는 이중적 문제점을 안고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한편으론 좌우균형을 위해 복지를 확대하는 진보가 요구된다. 여야의 총체적 좌클릭도 이런 사정에 기인한다. 다른 한편으론 좌우파 모두의 합리화도 필요한바, 그게 바로 수구를 벗어나는 개혁이다. 진보(좌)-보수(우)를 떠나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자는 말이 사실은 개혁을 의미한다.

하지만 좌우파의 균형과 합리화에는 갖가지 난관이 가로놓여 있다. 한국의 보수수구파는 자신들의 과도한 특권이 계층갈등을 심화시켜 사회의 존립기반을 허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반대로 북유럽 등의 이상사회를 꿈꾸는 진보개혁파는 그런 사회가 어떻게 가능한지 잘 모른다. 예컨대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 대신에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이 억울하지 않은 세상'을 지향해야 함을 잘 납득하지 못한다.

진실 추구와 좌우 균형으로 합리적 사회를

김교수 사건에선 과도한 좌우파 논리와 비합리성의 문제가 뒤엉켜 있다. 혈흔감정을 받아주지 않은 데는 재판효율성이라는 우파논리가 과도하게 작용했고, 온갖 걸 다 요구한 김교수의 증인·증거신청 행태는 재판민주성이라는 좌파논리의 남용인 셈이다.

그리고 선고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석궁 들고 김교수가 판사 찾아간 건 곽노현 교육감 판결에 불만을 품은 '꼴통'단체가 판사 집에 쳐들어간 것과 마찬가지로 이성을 상실한 행태다.

한국의 사법부는 과거 군사독재하에서 맥을 못 췄고, 오늘날도 모든 면에서 공정하다고 하기는 힘들다. 따라서 사법부의 진보와 개혁을 위한 비판은 필요하다. 그러나 진보파든 보수파든 사법부를 비이성적으로 공격하면, 그건 도리어 사법부와 우리 사회를 망칠 위험성이 있다.

영화 〈부러진 화살〉을 둘러싼 뜨거운 논란을 계기로 한편으로 객관적 진실을 추구하는 노력과 더불어 다른 한편으로 재판을 비롯한 사회 전반에서 좌우파의 균형과 합리화가 진행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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