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정치개혁법안 협상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27일 정당법 소위원회, 정치자금법 소위원회, 선거법 소위원회 등 3개 소위를 모두 열고 지구당 폐지, 경선탈락자 출마 금지, 비례대표 여성에 50% 할당, 선거법 위반자에 한해 불체포특권의 제한, 10만원이하 정치자금에 대한 세액 공제 등 진취적 내용의 정치개혁안에 대해 전격 합의했다.
그러나 이날 각 당의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의원 정수 문제 등에 대해서는 여전히 합의를 도출해 내지 못했고, 전자서명제, 전과기록 우편 발송 등 새로운 쟁점도 부각돼 상당한 진통을 예고하고 있다.
***지구당 완전 폐지**
국회 정당법 소위는 '돈 먹는 하마'로 불려온 지구당을 완전 폐지하고 선거일전 1백20일부터 선거일후 30일까지 1백50일간 선거사무소만 설치키로 합의했다.
이들은 지구당 폐지 시점을 17대 총선 이전으로 못박지는 않았지만 2월 임시국회에서 정당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바로 그 효력이 발휘돼, 사실상 이번 총선부터 지구당 없는 선거가 치러질 전망이다.
소위는 또한 지구당을 폐지하는 대신 이를 대체할 사무소를 두지 않고 각 시도지부에서 지역구 당원들을 관리하도록 했다. 중앙당의 유급 사무직원은 현행 1백50명 이내에서 1백명 이내로 줄이고, 각 시도지부의 유급직원은 5명 이내로 제한하도록 했다.
***경선 탈락자, 무소속 출마 금지**
정당법 소위는 각 정당의 경선 탈락자들이 무소속으로 출마할 수 없도록 법제화하는 데 합의했다. 이는 역대 총선에서 공천에 탈락한 사람들이 당적을 옮기거나 무소속으로 출마해 철새 논란이 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소위는 이 같은 법안의 실현을 위해 당내 경선 과정의 공정성이 담보돼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하고 당내 경선의 선거운동부터 투ㆍ개표까지의 전 과정을 선관위에 맡기도록 합의했다.
그러나 경선 탈락자들에 대해 무소속으로까지 출마할 수 없게 한 것이 피선거권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이 아니냐는 위헌시비 여지가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이에 대해 정개특위 한 관계자는 "경선불복자 출마 금지 문제는 위헌 논란이 있으나, 일단 당내 경선제도 정착을 위해 법제화한 뒤 위헌시비가 일 경우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받기로 했다"고 말했다.
소위는 또 정치자금법을 위반해 1백만원 이상 벌금형을 받은 사람은 5년간, 징역형을 받은 사람은 10년간 공무담임권을 박탈하는 등 피선거권 제한 요건도 대폭 강화했다.
이밖에 정당법 소위는 비례대표 후보자에 여성을 50%이상 공천하도록 의무조항으로 명문화했다. 이미 각 당은 비례대표 후보자의 절반 이상을 여성에게 할당하도록 당헌ㆍ당규에 규정한 바 있다.
***10만원이하 정치자금 세액 공제**
17대 총선에서 유권자들은 좋아하는 후보자에게 10만원 이하의 정치자금을 부담 없이 기부할 수 있게 됐다.
이날 정치자금법 소위는 소액다수 후원제도를 확립한다는 취지아래 10만원 이하의 정치자금에 대해서는 세액공제를 실시하고, 10만원을 초과하는 금액에 대해서는 현행처럼 소득공제를 하기로 합의했다. 즉 어떤 사람이 정치인에게 10만원을 기부했을 경우 그 기부자는 10만원이 세금에서 공제된다는 얘기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세액공제의 기준이 1만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3달러로 책정돼있는 미국에 비해 10만원은 지나치게 높을 뿐더러, 세수(稅收)가 줄어드는 데 대한 대책 마련이 없다는 측면을 들어 부정적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에 선관위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미국처럼 기부문화가 발달돼지 못해서 10만원으로 한 것"이라며 "소액 다수 후원제도를 확산시키기 위해서는 좋은 제도"라는 견해를 밝혔다. 시민단체들도 대체로 환영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후원회 폐지 놓고는 이견**
그러나 후원회 폐지 문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각 당의 입장이 엇갈렸다.
한나라당은 중앙당과 시.도지부 후원회는 폐지하고 개인(국회의원 및 예비후보자)후원회만 두자는 입장을 고수했다.
반면 이날 소위에 참석한 열린우리당 정장선 의원은 "후원회 폐지는 중앙당의 존폐 문제와 관련돼있기 때문에 혼자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주장해, 이 부분에서는 합의를 보지 못하고 처리가 유보됐다.
민주당도 중앙당 후원회를 폐지하는 데는 반대입장을 밝혀 향후 처리과정에서 난항을 겪을 전망이다.
***선거법위반 불체포특권 제한**
국회의원의 회기 중 불체포특권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선거법 위반자에 한해서는 불체포특권이 제한된다.
선거법 소위는 이날 선거재판의 신속한 마무리를 위해 선거법 위반혐의자가 재판에 불참하더라도 재판을 진행하는 궐석재판을 도입키로 하고 특히 징역형도 선고할 수 있도록 합의했다.
이같은 법안이 통과될 경우, 선거법 위반혐의를 받고 있는 현역의원이 1심이나 2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을 경우 곧바로 구속돼 불체포특권이 인정되지 않는다.
현행법상으로는 선거사범 궐석재판이 인정되지 않아 국회의원의 경우 고의로 재판에 참석하지 않거나, 임기가 끝날 때 쯤 대법원 최종판결이 나오는 경우가 있어 위법을 하더라도 붙고보자는 심리가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소위는 또 현재 선거일 후 6개월로 규정된 선거법 위반 공소시효를 행위 시부터 6개월로 개정, 선거가 끝난 뒤 사후에 대가를 제공했다가 적발될 경우에도 6개월 이내에 법위반 사실이 드러날 경우 처벌할 수 있도록 법근거를 마련했다.
***학위 증빙서류 의무 제출**
그동안 선거때마다 논란이 돼온 '허위학력'에 대한 제재도 강화됐다.
17대 총선에 출마하게 될 후보자들은 자신의 홍보물에 표시한 학력에 대해서 후보자 등록시 졸업증명서 등의 학위 증빙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현행 선거법상에는 상대방 후보자 등이 이의 신청을 할 경우에만 증빙서류를 선관위에 제출하도록 돼 있다.
선거법 소위는 이 같은 학력 시비를 막기 위해 외국학력의 경우 외국의 정규 교육과정으로서 외국의 정부, 지방자치단체 및 권한있는 공공기관이 공인하는 교육기관에서 이수한 학력이 아닌 학력을 개제할 수 없도록 하고, 학력 개제 시에는 반드시 학력 증빙서류를 첨부토록 했다.
***전자서명제 논란**
한편 전자서명제 도입이 정개특위 협상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현재 민주당과 자민련이 무책임한 게시판 비방글의 난립을 막기 위해 이 제도의 도입을 추진하는 반면, 열린우리당은 네티즌들의 글쓰기를 사실상 원천봉쇄할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의원별로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전자서명제란 인터넷 공간에서 여론을 주도,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각 언론사 사이트, 인터넷 언론사이트, 후보 홈페이지 등의 게시판에 선거관련 글을 등록할 때 '사이버인감'이라 할 수 있는 전자서명을 통해 실명확인 과정을 거치게끔 의무화하자는 것이다.
전자서명제가 도입될 경우 네티즌들은 일정한 금액을 내고 전자서명을 받은 뒤 글을 등록하여야 하고, 인터넷 사이트 관리자들은 각 게시판에 대해 인증 프로그램을 설치해야 한다.
이에 대해 열린우리당 유시민 의원은 "1천만명이 5천원씩만 내고 전자서명을 받는 경우 5백억원이 소요되고 각 사이트 별로 프로그램을 설치할 경우 전자서명제 도입에 대한 사회적 비용은 수천억원에서 수조원까지 들 수도 있다"며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그는 "네티즌들은 '사이버인감'을 디스켓 등에 넣어 다니며 글을 쓸 때마다 이를 설치해야 한다"며 "사실상 선거관련 글을 올릴 네티즌들이 다 떠나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도 "전자서명제도는 과도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라며 부정적 입장을 밝힌 뒤, "어느 당도 이에 대한 당론이 결정되지는 않은 것으로 안다"고 추후 논의가 더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한나라당 이재오 정개특위 위원장은 27일 KBS라디오에 출연, "실명이 아닐 경우 비방이나 허위선전으로 확산될 우려가 있고 불법 선거운동이 될 것"이라며 "신문도 기명기사를 쓰는 만큼 인터넷에서도 자료를 요청하거나 기사를 올릴 경우 실명확인을 받아야 한다"고 전자서명제 찬성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장성원 의원은 "인터넷 등, 사이버 상에서 일어나는 일일수록 투명하게 관리돼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라고 전자서명제 도입 추진 의사를 밝혔다.
선거기간 동안 네티즌들의 글쓰기를 사실상 원천 봉쇄할 수 있는 전자서명제의 도입에 대해 같은 당내에서도 입장이 엇갈리고 있어, 향후 논의 과정의 귀추가 주목된다.
***전과기록 우편 발송 유보**
선관위가 후보자의 전과, 병역, 체납 기록 등을 요약해 유권자들에게 우편으로 발송키로 한 방침은 이날 소위에서 유보됐다. 유권자들의 알 권리를 확충시킨다는 측면에서 기대를 모았던 이 같은 방침이 유보됨으로써 여론의 빈축을 샀다.
현행 선거법상 후보자의 전과, 재산 기록 등은 공개하도록 돼 있고 선관위는 이를 인터넷상에 공개해 왔다. 그러나 이날 선관위는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후보자 정보의 접근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후보자들의 전과, 병역, 체납 기록 등을 요악한 한 페이지 분량의 비교표를 발송하기로 했다.
선관위는 현행법상에도 전과 기록 등을 공개하도록 돼 있기 때문에, 공개 방식의 조정은 법 개정 없이도, 규칙 등으로 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선관위의 이 같은 방침에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제동을 걸었다. 유시민 의원은 "각 후보자가 제출한 기록 등이 선관위를 통해 가공된 정보라는 점이 문제가 될 수 있고, 병역, 체납 등에 문제가 있는 사람에 대한 소명 기회가 마련돼 있지 않다"고 부정적 견해를 비췄다.
이에 선관위는 관련 규칙을 재정비해 다시 마련하기로 하고 처리를 유보했다.
정개특위는 28일에도 선거법 소위와 정치자금법 소위를 잇달아 개최하고 의원정수, 후원회 폐지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할 방침이다. 개혁을 부르짖었던 국회의원들이 각 당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사안에 대해서도 전격적인 합의를 이뤄낼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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