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요며칠 프랑스의 농민운동가이자 반세계화 운동가인 조제 보베(Jose Boveㆍ49)의 역동적인 활동이 국내외 언론에 크게 보도되고 있더군요. 지난 주말 프랑스 남부 지역인 라르작에서 보베를 중심으로 좌파 시민단체와 노조들이 주최한 ‘대안(代案) 세계화운동(Altermondialisation) 집회’에 20만~30만명의 군중을 끌어 모으는 등 대중적 인기를 과시하자 보베가 이제 정치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는 것 같던데요.
<사진1>
A) 프랑스의 대표적 좌파 신문 리베라시옹은 11일자 1면 톱에서 ‘보베, 야권의 넘버 원’이라고 보도했고, 르 몽드는 ‘라르작 효과’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보베가 세계화와 자유경쟁체제의 희생자들인 저소득계층을 파고들고 있다”며, 중도 우파 정부와 중도 좌파 야당으로부터 모두 외면당한 저소득계층의 지지를 받고 있는 보베의 정치력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이처럼 보베의 정치적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것은 자크 시라크 대통령과 장-피에르 라파랭 총리가 이끄는 중도 우파 정부에 대해 사회당 등 정통 좌파 정당들이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보베와 그의 측근이 위협적인 반정부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견제라도 하듯 프랑스 정부 대변인인 장-프랑수아 코페 장관은 라르작 집회에 대해 “프랑스의 모든 개혁을 저지하거나 사회를 마비시키려는 극좌파의 재도래"라고 강력히 비난했는가 하면, 제1 야당인 사회당은 보베와 그의 추종세력에 대해 “대안없는 반대세력”이라고 비하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정부와 제1야당의 이같은 발언은 보베 세력에 대한 공포심 발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 겁먹은 개가 크게 짖는 것처럼 말입니다.
실제로 사회당은 “대안없는 반대세력”비난 직후 “좌파 재건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는 덕담으로 보베 세력에 화해의 제스처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는 저소득층의 요구를 외면하고 중도 우파에 근접한 시장경제 중시 노선을 걷다가 지난해 대선에서 패배한 쓰라린 경험을 갖고 있는 사회당으로서 또 한차례의 악몽이 우려됐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습니다.
프랑스 정부로서도 막상 보베 세력에 대해 강력한 비난의 화살을 쏘긴 했지만 속으로는 죽을 맛입니다. 바캉스 시작 직전 노동계의 줄기찬 반대에도 불구하고 연금개혁법안을 통과시킨 뒤 전통적인 '파업의 계절'인 9월 후유증을 우려하고 있는 정부에 좌파와 노조를 중심으로 한 보베 세력의 향후 행보가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죠.
현재로서 보베측에 구체적인 정치 세력화 청사진이 마련돼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이같은 군중 동원력과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언제든지 정치 세력화는 가능하다는 전망이 우세합니다.
<사진2>
Q) 보베가 지구촌 무대에 명함을 내민 것은 언제입니까?
A) 이제는 반세계화 진영의 대표 선수로 등재된 지 오래입니다만, 보베가 세인의 주목을 끌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99년 11월말 시애틀에서 벌어진 세계무역기구(WTO) 긱료회담 저지 반세계화시위 때였습니다.
11월 22일 미국의 수도 워싱턴DC에 도착한 보베는 뉴라운드 협상 기간 중 세계 87개국 120 NGO 대표들과 함께 미 주도의 WTO 반대 시위에 참여해 11월 30일 개최 예정이었던 WTO 각료회담을 무산시키면서 일약 세계적인 반세계화 지도자로 떠오르게 됩니다.
Q) 하지만 그는 이미 전부터 과격한 반세계화 운동가였지 않습니까?
A) 긴 八자(字)콧수염에 파이프를 즐겨 피우는 전형적 프랑스 농부, 보베는 그 자신 축산농민이자 프랑스 농민연맹의 대변인으로 원래는 선량한 농민운동가였습니다.
하지만 1999년 8월 동료농민들과 함께 도끼와 톱 등 농기구로 무장하고 트랙터를 몰아 프랑스 남부의 소도시 밀로(Millau)에 신축중이던 패스트푸드 상점인 맥도널드를 부숴버림으로써 행동하는 농민운동가로서의 면모를 보이기 시작합니다.
명분은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화는 반대한다”는 것이었는데, 구체적인 이유는 유럽 국가들이 미국산 호르몬 쇠고기 수입 금지를 결정한 데 대해 미국이 유럽 농산물에 100% 관세를 매김에 따라 특히 프랑스 농민들의 타격이 커지자 양치기 농부였던 보베가 분연히 일어선 것입니다.
맥도널드 햄버거로 상징되는 미국식 세계화에 불만이 많던 여론은 그를 현대판 로빈 후드로 우상화했고 프랑스 전역은 물론 미국에서도 답지한 성금으로 보석금을 내고 3주만에 풀려났습니다.
그는 1년후인 2000년 6월30일 전체 주민(2만여명)보다 더 많은 2만5천여명의 반세계화 운동가들이 전세계에서 모여든 가운데 밀로에서 선고공판이 열렸고 그는 징역 1개월에 집행유에 9개월의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이제 명실공히 반세계화지도자로 입지를 굳히게 됩니다.
Q) 그후 그의 행보는 세계적인 반세계화지도자로서 바쁜 일정을 보내기 시작하죠?
A) 시애틀 WTO각료회담 뿐 아니라 브라질의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2001년 이후 매년 열리는 세계사회포럼(WSF)의 단골 초청자이고 이번 9월엔 멕시코 칸쿤에서 열리는 WTO 회담에도 출동해 반대 시위 투쟁을 벌일 예정입니다.
특히 그는 이번 WTO 회담장 시위에서 다른 나라의 반세계화 운동 단체들과의 연대 투쟁을 강력히 추구할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주 라르작 집회도 칸쿤 WTO 자유무역협상 반대를 위한 사전 바람몰이 격으로 조직된 것이었는데 당초 참가 예상 인원인 5만~10만명을 훨신 상회하는 성황을 이뤄 보베 스스로도 놀랐을 겁니다.
<사진3>
Q) 그는 아주 최근에도 과격 행동으로 구금되었었죠?
A) 지난 6월22일 프랑스 경찰은 보베를 전격 수감해 좌파 정당과 노조, 시민 단체들로부터 거센 반발을 샀습니다.
보베는 1999년 2건의 유전자 변형 농작물 파괴 혐의로 10개월형을 선고 받은 바 있는데 보베가 형을 선고받은 뒤에도 수감을 거부하자 이날 경찰 80여명, 경찰견, 헬리콥터 등을 동원한 기습 작전으로 그의 자택에서 체포한 뒤 헬기까지 동원해 교도소에 수감시켰습니다.
그는 우선 자크 시라크 대통령으로부터 4개월을 감형받은 뒤, 법원에 대해 형 적용 방식을 조정해 달라고 요청해 8월 1일 석방되었습니다.
이 같은 결정은 형량이 1년 이하인 경범죄를 저지른 기결수에 대해 복역을 사회봉사 활동으로 대체할 수 있게 하는 관련 규정에 따른 것이긴 하지만, 좌파와 노조 등 보베 옹호 세력들의 거센 반발도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Q) 보베가 반세계화 운동가가 된 연유가 궁금합니다.
A) 포도주 산지로 유명한 보르도 출신의 보베는 학생 시절 기독교 정당 당원이었고, 병역의 의무를 거부한 반전주의자였습니다. 71년 부인과 함께 이번 대규모 집회를 개최한 라르작으로 이주해 농부가 되었습니다. 76년 시골 마을 몽트르동의 군(軍)야영지 부근에 무단 입주에 농사를 짓기 시작한 그는 1백여 마리의 양을 길러 양젖으로 만든 치즈를 팔면서, 그 스스로 ‘저항의 농경’이라고 부를 만큼 어려운 농촌생활을 영위해 나갔습니다.
진짜 농민으로 자리를 굳힌 그는 농민 권익 보호에 눈을 떴고, 87년 농민연맹 설립을 주도해 지금까지 대변인으로 일해 오고 있습니다.
“인간은 잉여 생산하지 않고도 살 수 있고, 농산물의 품질만 염두에 두면서 인간적 규모에 머물러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노동의 포로가 되지 않는다”는 농업철학을 가진 그는 대중의 영웅이 됐지만, 동료 농민들로부터 소영웅주의자라는 욕을 먹지 않는다는 점에서 연구대상 인물입니다.
Q) 최근 보베 등이 주도하고 있는 반세계화 운동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는 것 같더군요.
A) 우선 용어에서 과격한 이미지를 많이 벗어난 것 같습니다.
프랑스 신문들은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반대하는 시민 단체들의 구호 “또 다른 세계화가 가능하다”는 데 호응해 이들의 활동을 세계화에 대한 무조건적 반대(Anti)가 아닌 대안(Alter) 세력으로 인정해 ‘대안 세계화운동(Altermondialisation)'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