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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의 ICC, 그래도 기대하자

윤재석의 지구촌 Q&A <33> 국제형사재판소 창립 1주년

Q1) 세계 최초의 상설 국제형사법정인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오늘로 창설 1주년을 맞았습니다.

<사진> 국제형사재판소(ICC) 로고 프레시안

'반(反)인륜-인권 범죄의 청산'을 기치로 내걸고 야심차게 출범한 ICC, 하지만 미국 등 강대국의 비토와 일방주의로 인해 역풍을 맞고 있다죠.

최근 미군에 대한 기소면제협정 연장과 미국이 암암리에 벌이고 있는 양자 기소면제협정 등으로 인해 ICC가 종이호랑이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관론까지 고개를 들고 있을 정도입니다. 국제형사재판소의 존재의미와 실태 향후 전망 등을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국제형사재판소가 뭐 하는 곳입니까?

A1) 지난해 7월 네덜란드 헤이그에 세워진 ICC(International Criminal Court)는 내란이나 전시중 `인종청소'와 같은 대량학살과 집단강간 및 고문 등과 같은 전쟁범죄, 반(反) 인도주의적인 형사범죄를 저지른 개인에 대해 해당 국가가 처벌할 의지나 능력이 없을 경우 기소와 재판, 처벌을 담당하데 됩니다.

'침략 범죄'에 대해서도 재판할 수 있으나 회원국이 아직 '침략 범죄'의 법적 의미에 대해 합의하지 않은 상태라 향후 정리가 될 것 같습니다.

ICC는 기소 대상자의 출신국이 ICC조약에 가입하지 않았더라도 가입국 영내에서 범죄가 발생한 경우에는 재판관할권을 갖습니다. 하지만 주권침해를 방지하기 위해 기소대상자 출신국이 처벌을 거부하거나 처벌할 수 없을 때에 한해서만 재판을 개시할 수 있습니다.

ICC의 가장 큰 존재 의미는 세계 최초의 상설 국제형사법정이라는 점입니다. 국제적인 형사법정으로는 제2차세계대전 직후 전범재판을 위해 세워진 뉘른베르크법정과 도쿄법정, 그리고 최근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 대통령을 심판하기 위한 옛유고전범법정(ICTY) 등이 있었지만 이는 모두 특정사안에 국한된 한시적 법정에 불과했습니다.

반면에 ICC는 불특정 국제 형사범죄에 대해 기한에 구애받지 않고 광범위한 심판을 할 수 있다는 점도 특색입니다. 기존의 국제사법재판소(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가 주로 국가들간의 분쟁을 취급하기 위한 기구로 개인의 형사책임에 관한 사항에 대해서는 관할권이 없습니다. ICC는 이 틈새를 메워 ''반(反)인륜-인권 범죄를 완전 처단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기구라 하겠습니다.

Q2) 국제형사재판소의 설립은 오래 전부터 기획되었고 또 우여곡절도 많았다던데 그 얘기 좀 해 주시죠.

A2) ICC의 설립은 일찍이 1925년 국제연맹 제23차 총회 때 개인의 국제범죄를 재판하는 형사부를 설치해야 한다는 제안이 있었고 1937년 테러리스트를 처벌하기 위한 ICC 설치에 관한 조약을 프랑스, 소련 등 13개국이 서명하는 등의 움직임이 있었으나, ICC 설립이 구체화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후입니다.

1948년 12월 집단살해죄 방지 및 처벌에 관한 조약을 채택했고 유엔 총회에서 국제법위원회(International Law Commission)에 ICC에 관한 예비 검토를 지시했습니다.

1951년 ILC로부터 재판소 설치가 가능하며, 바람직하다는 보고를 받은 유엔총회는 ICC 관할권위원회를 설치하여 법규 초안을 만들었고 1953년 개정초안까지 만들어 구체화됐지만, 냉전 당사국들과 세계 여러 강국들의 반대에 부닥쳐 결실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기나긴 세월 잠자던 ICC 설립 건은 1998년 6월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UNCP에 세계160여 개국이 참가하여 ICC 설립에 관한 로마 선언을 채택하면서 가속화됐습니다.

그리고 1998년 로마조약의 '60개국 이상이 비준하면 창설한다'는 원칙에 의거해 작년 4월 69개국이 비준을 완료함에 따라 7월 공식 출범했습니다. 지금은 139개국이 로마조약에 서명하고 90개국이 비준을 한 상태입니다.

Q3) 서두에도 잠깐 얘기했습니다만, 대량학살과 전쟁범죄 등 반인륜 범죄 등을 전담해 재판한다는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ICC는 태동부터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다는데 그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A3) 우선 이 기구는 기존의 국제사법재판소처럼 유엔 주도로 설립되었으면서도 강대국 특히 유엔안전보장 이사회 상임이사국들의 푸대접과 견제를 많이 받은 불운의 국제기구입니다. 미국 러시아 중국 등 안보리 상임이사국들 중에서도 메이저급에서 비준을 극구 반대했기 때문이죠. 중동국가들과 이스라엘 역시 비준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Q4) 반대하는 이유가 뭡니까?

A4) 이들은 국제형사재판소가 가동될 경우, 아무래도 자국민들(주로 군인이나 외교관, 그리고 첩보 및 정보요원들이 되겠지만)이 피고인으로 법정에 서게 될 확률이 크다는 점을 알고 미리 반대의 포문을 열었던 것입니다.

Q5) 특히 미국의 반대가 상당히 완강했던 것같은데요.

A5) 사실 미국도 빌 클린턴 행정부시절엔 ICC의 출범에 상당한 찬동을 표시해 로마조약에 서명했습니다. 그러나 공화당이 장악한 의회는 클린턴의 서명을 멍청이 짓이라고 비난하면서 비준을 거부해 왔고,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작년 6월 ICC 참여 포기 결정을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에게 공식 통보하고 불참을 선언해버렸습니다.

미국의 이같은 반대는 바로 요즘 미국의 일방주의의 발원지인 극단적인 신보수주의자들의 이념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일례로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있거나 위험한 검사들이 사람들에게 엄청난 곤란함과 불이익을 가져올 수 있다"고 밝혀 ICC 출범전부터 강한 거부감을 보였는데요. 이런 처신을 보다 못해 미국을 규탄하기 위한 `국제형사재판소를 위한 연대'라는 단체까지 결성됐을 정도입니다.

Q6) 미국은 ICC 비준을 거부하면 완전히 전쟁범죄로부터 열외하겠다는 건가요?

A6) 세계경찰을 자임하는 미국 입장에서는 ICC에 비준할 경우 지구촌 곳곳에 군대를 파견해 놓고 있는 입장에서 어떤 형태로든 제소될 위험성이 가장 크거든요.

미국은 자칫 자국민이 상대국의 정치적인 음모 또는 특정 목적에 의해 불이익을 받을 우려가 있고, ICC 검사에 의해서도 불이익을 받은 가능성이 있다면서 로마조약 비준을 파기한 겁니다.

하지만 앞서도 밝혔듯이 ICC법정은 기소 대상자의 출신국이 ICC조약에 가입하지 않았더라도 가입국 영내에서 범죄가 발생한 경우에는 재판관할권을 갖습니다. 따라서 미국은 이 조항을 비껴가기 위해 가능한 한 많은 나라들과 ICC기소면제협정을 맺으려고 서두르는 중입니다.

이미 미국 정부는 ICC출범 이후 군사원조 등을 미끼로 40여개 국가와 기소면제 양자협정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가장 최근의 것이 지난 주에 캄보디아와 맺은 기소면제협정인데요. 캄보디아는 명단 공개가 가능해 공개적으로 기소면제협정을 맺은 39번째 국가이구요. 실제로는 명단 공개를 원치 않는 이집트, 몽골, 니카라과, 튀니지, 세이셸군도 등 5개국을 포함해 모두 44개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은 기소면제 체결대상에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 및 비나토 동맹국들은 제외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비(非)나토 동맹국 중 기소면제협정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들은 한국 일본 호주 요르단 등 10개국에 달하고 있는데, 아시다시피 우리나라와 일본은 미국과 그 불평등한 소파협정을 맺고 있기 때문에 별도로 기소면제협정을 맺을 필요도 없는 거죠.

Q7) 그밖에도 미국은 또 다른 안전장치를 마련해 놓고 있는 것같던데요.

A7) 지난 6월13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유엔평화유지군으로 활동중인 미군에 대한 ICC의 기소면제조치를 1년간 연장키로 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이 역시 ICC의 위상을 크게 흔드는 사건이었는데요. 지난해 ICC 출범 당시 1년 기한으로 미군 기소면제협정을 얻어냈던 미국은 지난 6월말로 마감시한이 다가오자 각종 수단을 동원해 협정연장을 위한 포석을 깔았습니다.

먼저 미국은 가장 큰 걸림돌인 유럽연합(EU)을 향해 양측관계 위기론을 들먹이며 강력한 경고장을 날렸습니다. 미국은 6월 10일 EU회원국들에 비밀문건을 보내 "여러 나라와 양자간 개별 기소면제협정을 추진하는 미국을 EU가 방해하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난하면서 "이라크전을 통해 악화된 미국과 유럽의 관계가 회복돼 가는 시점에서 방해가 계속되면 또다시 매우 해로운 관계로 치달을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던 것입니다.

미국이 국제사회의 질서를 무너뜨린다고 비난하던 EU회원국들은 결국 백기를 들고 지난 12일 유엔안보리에서 미국의 손을 들어주고 말았습니다. 유엔안보리 15개 이사국 중 이라크전으로 미국과 앙숙이 된 프랑스와 독일, 시리아를 제외한 12개국은 연장결의안에 찬성해 미국의 의지를 관철시켰습니다.

하지만 작은 몸부림도 없지 않습니다. 크로아티아의 경우 연장안 가결에도 불구하고 미국민에 대한 ICC 기소면제협정에 서명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거든요. 물론 '달걀로 바위 치기(以卵擊石)' 같은 몸짓입니다만, 그런 몸짓조차도 대견해 보이네요.

Q8) 앞으로도 ICC의 앞길이 그리 탄탄할 것만 같지는 않군요.

A8) 하지만 ICC가 공식 출범한 작년 7월 1일 각국이 `인류정의사에 기록적인 일"로 크게 환영한 것처럼, 이 상설 재판소가 인류의 존엄성을 해치는 어떤 범죄도 예외없이 처벌하는 억제장치로 작용할 것이라는 기대를 한다면, 인류의 역사에 작은 진보가 이뤄진 것 아니냐는 낙관론을 가져 볼 만도 할 것 같습니다. EU 지도자들은 ICC의 출범이 국제법과 인권 이행에 있어 중요한 진일보(進一步)로 강력히 지지한다"는 공동성명까지 발표했을 정도입니다.

Q9) 최근에 수석 검사가 취임해서 그러한 기대를 더해주고 있는 것 같던데, 국제형사재판소 직제와 수석 검사에 대해서 소개해 주시죠.

A9) 직제는 18명의 판사와 수석검사, 부수석 검사로 되어 있습니다. 지난 3월 재판관 18명을 임명하면서 공식 출범했고 올해 말까지 2백명의 고위 책임자들과 전문직 직원들로 진용을 갖출 예정입니다.

지난 4월21일 ICC는 총회를 열고 비공개 투표를 통해 아르헨티나 출신의 루이스 모레노 오캄포(50) 변호사를 9년 단임의 수석검사로 선출했습니다. 투표에 참가한 78개국 대표 전원의 찬성을 얻어 선출된 오캄포는 6월 16일 헤이그 소재 피스 팰리스에서 취임 선서를 마친 뒤 전 세계 모든 사람의 권리를 보호할 수 없다면 생명과 자유 전체를 수호할 수 없다면서 정의와 올바름을 위해 일하겠다는 각오를 다졌습니다.

<사진> 루이스 모레노 오캄포ICC 수석검사 연합뉴스

해박한 법률지식과 정도만을 걸어온 신뢰성으로 그 자리에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오캄포는 지난 80년대 초반 아르헨티나에서 잔혹한 살인과 고문을 일삼았던 이른바 ''더러운 전쟁''의 주범인 군부독재자들을 무려 7백여건의 재판에 회부하면서 일약 정의의 화신으로 떠올랐습니다. 그는 또 독일 나치정권과 칠레 군부독재 희생자 가족들의 대변인으로 활동하면서 수많은 인권소송을 성공리에 대행하기도 했습니다.

오캄포는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ncy International) 회장직을 역임하면서 부패가 만연한 페루와 볼리비아 등 남미국가들을 돌며 부패추방에 앞장섰습니다. 또 세계은행을 비롯한 국제금융기관들의 자문가로도 활동하기도 했는데요. 이처럼 인권전문변호사로 꾸준히 활동해 온 오캄포는 2002년 미국 하버드대와 스탠퍼드대에서 강의활동을 하다 ICC에 합류한 것입니다.

ICC는 지난 16일 오캄포의 취임을 기점으로 지난해 7월부터 접수된 모든 사건에 대한 검토와 수사 준비에 착수함으로써 ICC의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ICC가 다룰 첫 케이스는 콩고민주공화국과 콜롬비아,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서 발생한 전쟁범죄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Q10) 최근에 국제기구에 우리나라 사람들의 진출이 두드러지고 있는데요. 특히 고위직에 말입니다. 국제형사재판소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한국인들이 몇분 계시죠?

A10) 가장 주목을 끄는 분은 서울대 법대 교수인 송상현 변호사를 들 수 있겠습니다.

지난 2월 4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실시된 ICC 초대 재판관 선거에서 송 교수는 85개 당사국 가운데 3분의 2 지지를 얻어야 하는 투표에서 63개국의 압도적 지지를 얻어 당선돼 다른 6명과 함께 재판관이 되었습니다.

서울대 법대 출신인 송 교수는 고등고시 행정과와 사법과에 합격한 뒤 미국 코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미국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다 1972년부터 서울대 교수로 재직해 왔습니다.

송 교수의 피선으로 국제재판소에서 활동하는 우리나라 법률전문가는 96년부터 국제해양법재판소 재판관으로 활동해 온 박춘호 고려대 교수와 2001년부터 옛유고전범법정(ICTY) 상임재판관으로 활동하고 있는 권오곤 대구 고등법원 부장판사, 그리고 지난달 25일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ICTR)' 비상임 재판관으로 피선된 박선기 변호사 등 모두 4명으로 늘어났습니다.

한편 ICC에는 예산재정위원으로 한명재 유엔대표부 참사관이 선출돼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렇듯 국제기구, 특히 인류의 존엄성을 다루는 분야에서 우리나라 분들의 진출이 활발해지는 것은 국익을 떠나서 자랑스럽고 흐뭇한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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