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요즘 국내외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지도력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지구반대편 브라질의 루이스 이냐시오 룰라 다 실바(일명 룰라) 신임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해선 칭송이 자자하더군요. 각각 취임 3개월과 5개월밖에 안된 신참 대통령들이긴 하지만, 독특한 인생 역정과 개혁 성향이 짙다는 공통점이 돋보이는 두 나라 대통령에게 주어지는 엇갈린 평가에 대해 한쪽 해당국 국민의 입장에서 속이 상하기도 한데요.
A) 룰라 다 실바 대통령에 대해 찬사가 쏟아지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그가 보여주고 있는 개혁 드라이브에 대한 국제금융시장의 신뢰가 쌓임에 따라 무엇보다 브라질 경제가 급속하게 안정을 찾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구체적인 사례가 지난달 29일 실시한 해외채권 발행인데요. 2002년4월 해외차입이 중단된 이후 1년만에 거행된 이 '이벤트' 에서 브라질 정부가 발행한 채권은 4년만기에 수익률 10.7%짜리였습니다. 이 채권의 수익률이 지난해 10월의 3분의 1에 불과한 수준이었음에도 국제 금융시장의 열화같은 성원에 힘입어 브라질 정부는 이날 당초 예정했던 7억5천만달러를 33%나 초과한 10억달러 어치를 팔았습니다.
Q) 룰라가 처음부터 국제사회의 신뢰를 받았던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A) 사실 지난해 10월 룰라 후보가 당선되었을 때만 해도 세계의 반응은 한마디로 '앞날이 걱정된다'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철강노동자이자 브라질 최대의 금속 노조연맹 위원장 출신의 전형적인 좌파 대통령이 펼칠 경제시책의 향방이 불보듯 뻔한 것이었기 때문이죠.
실제로 룰라는 대선 기간내내 외국자본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담은 광고를 퍼부어 가뜩이나 차가운 국제 금융시장의 시선을 더욱 얼어붙게 했습니다.
특히 새 정부가 2천6백억달러 규모의 외채에 대해 디폴트를 선언할 것이 확실하다는 소문이 뉴욕 월가에 유포되면서 브라질 헤알화와 주가는 사정없이 곤두박질쳤습니다.
하지만 금년 원단, 룰라가 취임한 이후 지구촌의 시각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룰라는 재정 금융정책을 긴축기조로 바꿔 정부 지출을 줄이는 한편, 불합리한 연금제도 및 세제 개혁에 주력하기 시작했습니다.
국내총생산(GDP)의 5.5%를 차지하면서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세계 최고수준(?)의 공무원연금 혜택을 연간 최고 1만9천헤알(약7백50만원)에서 2천4백헤알(약1백만원)으로 대폭 삭감하고 사회보장혜택 지급개시 연령을 7년(남자 53세→60세, 여자 48세→55세)이나 올리는 한편, 브라질 27개주에 11%의 물품세를 부과하는 것 등을 골자로 한 강한 개혁을 추진 중에 있습니다.
Q) 대통령이 자신의 지지기반인 노조와 자신의 통치 철학을 실천할 공무원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시책을 밀어붙이는데 대해 양대 세력이 가만히 있을 리 없을 텐데요.
A) 양대세력의 거센 저항은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하지만 룰라는 단호했습니다. 특히 자신의 지지 세력인 노동자당에 대해 이렇게 외쳤습니다.
"만약 내가 실패하면 그것은 우리 모두의 실패이고 좌파는 향후 50년동안 집권하지 못할 것이다."
적어도 룰라는 남미 경제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내몰았던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만은 채택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확고하게 견지하고 있습니다.
현재 진행중인 룰라의 경제 개혁 법안은 의회의 통과과정과 각 주정부의 채택과정에서도 엄청난 저항을 예고하고 있습니다만 그는 씩씩하게 한발짝 한발짝 개혁을 향해 전진하고 있습니다.
룰라의 시원시원한 개혁 드라이브에 브라질 경제는 금세 상승가도를 타기 시작해, 지난 1분기 브라질의 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27%가 늘었고 올해 무역수지는 160억달러의 흑자가 예상되고 있습니다.
달러화에 대한 헤알화 환율은 꾸준이 강세로 가고 있고 주가도 동반 상승중에 있구요.
한때 디폴트(채무불이행)위기에 몰릴 정도로 엉망이어서 해외투자가들의 외면으로 백척간두에 서 있던 경제가, 최근 국제 금융시장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매력있는 투자 대상으로 반전되어 장밋빛 미래를 꿈꾸게 된 것이죠.
Q) 하지만 브라질 빈곤층으로서는 살림이 나아지고 있다는 것이 몸에 와닿지 않는데 대해 불만이 있을 텐데 이 점에 대해선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A) 1억7천만명의 인구중 3분의 1 가까운 5천3백만명이 빈곤층일 정도로 빈부격차가 심한 브라질 상황에서 빈곤층은 최대의 표밭이었습니다. 룰라는 대선공약에서 임기중 빈부격차 해소와 고용창출에 최대한 노력하겠다는 공약으로 이들로부터 몰표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당장 살림살이가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체감할 수 없는 이들에게 룰라는 개혁에는 시간이 걸리고 고생스럽기도 하다는 점을 상기시켜 '기다림의 미학'을 호소하는 것으로 불만을 잠재웠습니다.
영국의 파인낸셜 타임스는 "오랜 노조지도자 생활에서 터득한 갈등 조정능력도 룰라를 성공으로 이끄는데 한 몫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Q) 이렇듯 아직 완성되지도 않은 룰라의 개혁 드라이브가 벌써부터 성공을 거두고 있는 비결은 어디에 있나요?
A) 그것은 한마디로 책임정치 대한 그의 강한 의지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대선 4수생이었던 룰라는 지난 4월8일 취임 1백일을 맞아 기업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털어놓았습니다.
"야당이나 재야에 있을 때는 보란 듯이 뻐기고 다닐 수 있었다. 책임질 일이 없으니까. 하지만 지금 우린 권력을 잡았다. 이제는 (책임있게) 행동해야 한다."
Q) 그의 외교 행보에 대한 품평도 나쁘지 않게 나오고 있는 것같더군요.
A) 한 마디로 '줏대 있는 외교'라고 평가할 만합니다.
국익을 위해서 굽힐 땐 굽히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또한 나라의 체면이나 지역적 리더십을 위해선 과감하게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배포를 과시하고 있기 때문이죠.
지난해 12월 룰라는 당선자 신분으로 미국을 방문했습니다. 방문 목적이야 미국 내에서 일고 있는 자신에 대한 회의주의를 불식시키기 위한 것이었죠. 무엇보다 풍전등화와 같은 브라질 경제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선 미국 정부와 월스트리트로부터 신뢰와 지원을 얻어내야 하는 것이 급선무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절박한 상황에서도 조지 W 부시 대통령과의 첫 대면에서 그는 사안에 따라서는 확고하게 아니라고 말하는 과단성을 보였습니다.
특히 미국이 2005년을 목표로 추진중인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설치에 대해선 미국의 독주에 승복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는데요.
알래스카에서 남미 남단 티에라 델 푸에고에 이르는 총 34개국이 참여할 것으로 전망되는 FTAA 발효시 경쟁력이 급격히 약화될 제조업과 미국 농가에 대한 미 연방정부의 보조금지급으로 인해 결정적인 타격을 입을 브라질 농가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미국과 동등한 입장에서 논의되어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그것은 FTAA를 추진하되 미국과 브라질이 각각 북미와 남미를 대표해 주도해 나가겠다는 무언의 시위이기도 했습니다.
아울러 그는 올해안에 남미의 주요한 두 경제블록인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과 안데스공동체(ANCOM)간 통합을 목표로 남미 경제 블록의 파워를 키우겠다는 복안으로 지난 3월부터 남미 각국 정상들과 연쇄 회담을 가지면서 세력 규합에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주도의 FTAA설치 기도에 공격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구체적 실행의 일환이죠.
4월28일 곤살로 산체스 데 로사다 볼리비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자리에서 룰라는 "중남미권 통합은 이제 더 이상 감상적인 수준에 머물지 않을 것"이라며 중남미 경제통합의 중요성을 역설했습니다.
아무튼 그 바람에 룰라는 '남미권경제중심'의 리더 역할까지 확보하는 덤을 얻게 되었습니다.
Q) 국제사회 리더로서의 룰라의 변신은 비단 남미권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 것같습니다.
A) 그렇습니다. 지난 1월 하순 브라질의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WSF)과 스위스 다보스에서 개최된 세계경제포럼(WEF)이라는 상극적인 국제포럼에서 룰라는 단연 세계의 이목을 한 몸에 받으면서 손색 없는 국제 리더로서의 면모를 과시했습니다.
1월24일 개막된 올해 WSF에선 2001년 이 포럼이 창설될 당시 주도적 역할을 한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서 기아 문제 해결과 이라크 전쟁 반대를 역설해 참석자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룰라는 이날 연설에서 "무기 제조와 전쟁에 쏟아붓는 수십억 달러를 사람들의 배고픔을 없애기 위해 빵과 콩, 쌀을 사는데 쓴다면 세상이 얼마나 좋아질 지 전세계에 말하고 싶다"면서 '부(富)가 보다 공정히 분배되는 새로운 세계 질서'를 요구했습니다.
이어 다보스로 날아가 WEF에서도 같은 논조의 연설로 선진국 위주의 세계화 행태에 일침을 가했습니다.
한때 엘리트 경제회의라며 WEF을 비난했던 룰라는 이날 "각국이 무기 경쟁 등 우선 사항이 아닌 곳에 많은 돈을 소비하고 있다"며 "가장 긴급한 관심사항은 기아와 굶주림 해소이며 기아와 싸우는 것은 정부만의 일이 아니며 모든 사회의 의무"라고 강조하면서 서방 국가들과 거대 투자자들에게 전세계의 기아와 굶주림 해소를 위한 국제기금 창설을 촉구했습니다.
올해 WSF와 WEF를 통해 또 한번 떠오르는 스타가 된 것입니다.
Q) 국제 리더로서 룰라의 입지가 확고해짐에 따라서 국제사회에서 브라질의 위상도 더욱 높아지고 있는 것 같죠?
A) 앞서 남미권역에서 룰라의 입지가 강화되고 있는 현상은 짚었습니다만, 이른바 '룰라 효과'는 그 정도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당선자 시절인 지난해 12월 부시와의 대좌에서 미국은 물론, 유럽연합(EU)과의 교류확대도 활발히 추진하겠다고 밝혀 보폭을 넓히겠다는 의지를 천명해 공격적 외교 방침을 천명했구요.
이어 4월말 룰라 대통령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확대 등 유엔의 개혁 필요성까지 주장했는데요. 이것은 오래전부터 염원해 온 브라질의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구체화하기 위한 사전 포석입니다. 또 다른 한편으론 그동안 변방의 설움을 겪어온 남미 대륙의 나라를 대표해서 브라질이 남미의 권익을 대변하겠다는 의지의 발현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일련의 행보를 통해 룰라는 물론, 그가 경영하고 있는 브라질의 국제적 위상도 동반 상승하고 있습니다.
한 나라의 지도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룰라 케이스에서 다시 한번 절감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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