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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의 늪에 빠진 뉴욕타임스의 절망과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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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의 늪에 빠진 뉴욕타임스의 절망과 희망

"27살짜리 기자 사기에 놀아난 152년 전통의 뉴욕타임스"

기만과 표절, 창작 등으로 수십건 이상의 허위기사를 작성해온 제이슨 블레어가 1백52년 전통을 자랑하는 세계적 권위지 뉴욕타임스를 불신과 자괴감의 늪에 빠뜨렸다.

창사 이후 최악의 사태를 맞은 뉴욕타임스(NYT)는 1백70만부를 발행하는 일요판(11일자) 1면에 '사임한 뉴욕타임스 기자가 길다란 기만의 흔적을 남겼다'는 A4용지 15쪽 분량에 달하는 장문의 특별기사를 싣고 "지난해 10월부터 최근까지 블레어가 국내 문제를 담당하면서 보도한 73건의 기사를 조사한 결과 최소한 36건의 기사에서 새로운 문제를 발견했다. 지난해 10월 이전 블레어가 쓴 6백여건의 기사에 대한 정밀 조사에도 들어갔다"며 "독자들 또한 블레어가 쓴 기사의 잘못된 부분에 대해 retrace@nytimes.com으로 제보를 해주기를 당부한다"고 밝혔다.

***NYT "독자와 피해자, 그리고 언론인들에게 사과"**

신문은 이날 '편집진의 편지(Editors' Note)'를 통해 "11일자 관련기사는 지난 1주일간 5명의 NYT 기자들과 연구원들로 구성된 조사팀이 블레어가 쓴 기사에 등장하는 취재원들과 그와 함께 일한 동료들과의 인터뷰, 기사작성 과정 등에 대한 면밀한 조사를 거쳐 작성된 것"이라며 "뉴욕타임스는 잘못된 보도에 대한 적절한 정정이 더 적확한 저널리즘이라는 신념을 갖고 이같은 조사팀을 구성했다"고 전했다.

'편집진의 편지'는 3년반이 넘는 블레어의 재직기간중 지난해 10월 이후 7개월간의 기사들을 중점 조사대상으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 "이 기간동안 블레어는 상대적으로 폭넓은 독립적 활동공간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며 "이전에 블레어가 쓴 기사들은 더 엄격한 감독하에 있었다"고 설명했다.

편지는 "뉴욕타임스는 모든 위조와 표절에 대해 무엇보다 독자들에게, 그리고 부적절하게 인용된 사람들에게 사과한다. 또 블레어에게 자신의 기사를 도둑질당한 기자들과 이번 사건으로 전문인으로서의 신뢰에 상처를 입은 모든 양심적인 언론들에게도 사과한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또 이날 '블레어의 기사에서 발견된 왜곡의 증인들과 기록들'이란 A4용지 15쪽짜리 관련기사에서 지난달 29일 보도된 미국 연쇄살인사건 용의자 관련기사의 허위증언 인용과 이라크 전쟁에서 아들이 실종된 미군가족 취재 기사 등 2000년 3월 13일부터 최근까지 38건의 기사중 왜곡된 부분을 지적하고 정정보도했다.

이에 앞서 블레어는 지난 1일 '샌 안토니오 익스프레스-뉴스'가 뉴욕타임스를 상대로 자사 기사를 무단 도용한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관련조사가 시작되자 사퇴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1일 블레어가 이라크전에서 아들을 잃은 텍사스 여성에 관한 다른 신문의 기사를 무단 도용한 혐의로 퇴사했다고 밝힌 바 있다.

NYT는 이날 하웰 레인스 편집인 명의의 성명에서 '샌 안토니오 익스프레스-뉴스'측이 최근 제기한 기사도용 파문에 대해 독자들에게 공식 사과하고, 유족들이 슬픔을 가누기 어려운 시기에 관련기사를 게재함으로써 그들의 고통을 집중 부각시킨데 대해서도 사과의 뜻을 전달했다.

***NYT "블레어의 작업도구는 휴대폰과 랩탑이 전부"**

NYT는 블레어 사건이 크게 확대된 배경에 대해 그동안 편집국 간부들간에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고 취재원들이 기사와 관련된 문제제기를 거의 하지 않았으며, 블레어가 자신의 행적이나 위치를 교묘한 방식으로 숨겨와 이같은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즉 그동안 기자와 편집국 간부들에게 거의 전적인 자율권을 보장해왔던 뉴욕타임스의 시스템이 진실과 사실전달의 의무를 저버린 블레어로 인해 큰 구멍이 뚫렸다는 것이다.

신문은 "블레어의 작업도구는 그가 어디에서든 자신의 위치를 조작할 수 있었던 휴대폰과 랩탑컴퓨터(휴대용컴퓨터)였다"고 밝혔다.

***제이슨 블레어는 누구**

뉴욕타임스 역사상 가장 큰 파문을 일으킨 제이슨 블레어는 지난 99년 수습기자로 입사했다. 그는 동료들로부터 '다작 기자(기사를 많이 쓰는 기자)'로 인정받았는데 지난 4년간 그의 손을 거쳐 보도된 기사만 모두 6백건 이상이다.

블레어는 그러나 지난해 10월부터 워싱턴을 포함해 주요 국내 뉴스를 담당하기 시작하면서 동료들로부터 그가 쓴 기사의 상당 부분이 사실과 일치하지 않으며 그가 창작했거나 혹은 단순히 남의 기사를 도용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기 시작했다. 그가 때때로 사건 현장에 가지도 않은 채 인터뷰 대상자의 감정을 상상해 기사를 작성하거나 다른 신문의 기사들을 짜깁기해 다시 보도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워싱턴포스트(WP) 미디어전문기자인 하워드 커츠는 블레어 사건과 관련, 11일자 WP에 '뉴욕타임스가 (자사) 기자에 의해 날조된 수십건의 기사들을 폭로했다'는 기사를 통해 "블레어는 2001년 9.11 사태로 자신의 사촌을 잃었다고 말했는데 해당 희생자 가족은 블레어와 관련이 없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며 블레어가 얼마나 많은 사기행각을 벌여왔는지를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하워드 커츠 "블레어 사건의 범위와 기만 정도는 여타 조작사건을 뛰어넘는다"**

커츠는 그동안 ▲워싱턴포스트의 제닛 쿡기자가 지난 1981년 8세짜리 마약중독 소년의 이야기를 꾸며내 퓰리처상을 받았다가 반환한 사례 ▲월 스트리트 저널의 R. 포스터 위넌스 기자가 자신의 칼럼에 나갈 정보를 미리 돈받고 팔아 유죄평결을 받은 사건 ▲NBC 텔레비전이 '데이트라인'에서 트럭 충돌로 인한 화재를 조작한 사건 등 대표적인 기만 사례가 있었으나 블레어 사건은 그 범위나 기만 정도에 있어서 다른 사례를 훨씬 뛰어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커츠는 "27세인 블레어는 버지니아주 북부의 센터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워싱턴포스트 프리랜서와 뉴욕타임스ㆍ보스톤글로브의 인턴생활을 하기도 했다"며 "하지만 뉴욕타임스 동료들 대부분은 그가 메밀린대 대학을 졸업했을 것으로 가정했다(assumed)"고 밝혔다.

커츠에 따르면 블레어는 지난 1일 사직할 때까지 3년반동안 무려 50번의 '정정' 기사를 내보낼 정도로 부정확한 기사작성을 했으며 회사측의 지시에 따라 '기사 정확하게 쓰기'에 관한 강의를 듣기도 했다.

블레어의 미심쩍은 기사작성을 제일 먼저 의심하기 시작한 것은 조나단 랜드먼 메트로폴리탄 부장으로 그는 지난해 4월 편집국 간부들에게 "제이슨이 타임스에서 기사를 쓰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것도 당장"이라는 두 문장으로 구성된 이메일을 보냈다.

랜드먼은 이에 앞서 2001년 블레어가 정식 기자로 승진하는 것을 반대하기도 했는데 당시 승진심사위원회의 일원인 제럴드 보이드 현 편집국장은 블레어가 "젊고 전도가 유망한 기자"라며 그를 추천했다. 랜드먼 부장은 뉴욕타임스 경영진이 블레어와 같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승진시키는 것이 편집국의 인종다양화에 도움을 준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그같이 결정했다고 말했다. 블레어의 승진을 주장한 보이드 편집국장은 뉴욕타임스에서 최고위직을 맡고 있는 흑인이다.

블레어는 이후 워싱턴 주변에서 발생한 연쇄살인사건과 이라크 전쟁 당시 이라크군에 포로로 잡혔다가 구출된 제시카 린치 일병의 아버지 조지 린치와의 인터뷰 등을 담당하면서도 왜곡과 창작력, 그리고 짜깁기를 동원한 기사쓰기를 지속했다. 하지만 블레어의 기사에 대해 구체적으로 잘못됐다며 불평하거나 항의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피해자들의 무관심도 한몫"**

예를 들어 블레어는 3월 27일자로 이라크군의 포로가 됐다가 구출된 제시카 린치 일병의 스토리를 통해 "제시카의 아버지가 언덕 위의 집 문간에 서서 담배밭과 농장을 바라보며 목이 메었다"고 묘사했는데 그 집은 언덕이 아니라 계곡에 있으며 주변에는 담배밭이나 농장이 아예 없다. 항의를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린치 일병의 자매인 브랜디는 뉴욕타임스에 "결국 일회성으로 지나가고 말 것인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블레어는 또 지난해 10월과 지난 4월까지 6개주의 20개 도시를 돌아다녔다고 회사측에 주장했는데 아직까지 어떤 호텔 영수증이나 비행기 티켓, 렌터카 영수증도 제출하지 않았다.

하지만 블레어의 끊임 없는 사기행각은 점차 꼬리를 드러내기 시작했고, 지난 4월말에는 뉴욕타임스가 '샌 안토니오 익스프레스-뉴스'로부터 기사표절에 대한 문제제기를 받기에 이르렀다.

기사 표절 의혹이 제기된 후 NYT 편집진이 기사에 등장하는 실종된 군인 가족이 살고 있는 집의 주변 환경을 설명해보라고 다그치자, 블레어는 끝까지 실종된 미군 가족의 집주변을 자신이 직접 다녀온 것처럼 묘사했다. 뉴욕타임스는 그러나 블레어가 묘사한 것은 자신이 다녀온 현장이 아니라 해당 현장을 찍은 신문사의 자료사진이라고 설명했다.

블레어 사건에 대해 언론ㆍ공공문제센터(CMPA) 로버트 리히터(Lichter)는 "뉴욕타임스는 그동안 언론인들이 우러러봐야 하는 표준을 제공했었는데 지금은 잊어버려야 하는 신문이 됐다"고 비판했다.

뉴욕타임스 기자를 지내고 현재 조지 워싱턴 대학의 언론학 교수인 스티븐 로버츠는 "저널리즘에는 공식적인 자격과 책임에 대한 기준이 없다. 검토위원회도 없고 자격증 발급 과정도 없다"며 "언론 윤리규정의 첫번째 규칙은 실수를 하면 가능한 한 모든 실수를 찾아본 다음에 가능한 한 빨리 그 실수를 시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블레어가 남긴 피해는 몇주 몇달 몇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을 것"**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블레어 사건에 대해 "블레어는 3백75명 뉴욕타임스 기자중 한 사람에 불과하며 그가 머문 시간도 비교적 짧지만 블레어가 뉴욕타임스와 동료들에게 끼친 피해는 몇주, 몇달, 몇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NYT의 사과문을 인용보도하며 "뉴욕타임스는 이제 내부 시스템을 정비해 다시는 이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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