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에 대한 지지가 미국에서 높은 이유**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라크 전쟁에 대한 지지는 미국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수치들은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다분합니다. 미국은 사담 후세인을 비난하면서도 두려워하는 유일한 나라라는 점에 유의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후세인을 죽이지 않으면 내일 그가 미국을 파괴할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정치선전의 홍수 속에 미국인들은 살고 있습니다. 따라서 미국인들의 공포가 증폭돼 전쟁지지 여론이 높을 수밖에 없는 것이죠. 후세인이 가졌다는 대량살상무기의 또 다른 증거는 “버섯구름(핵무기)”일 것입니다. 백악관 안보보좌관 콘돌리자 라이스는 지난해 9월 뉴욕에서 버섯구름이 피어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라크 주변국들은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에 대해 크게 우려하지 않습니다. 후세인의 살인독재에 대해서도 미국인만큼 증오하지는 않습니다. 그간의 경제제재 때문에 “이라크인들의 대다수가 수년간 반(半) 아사(餓死)상태에 놓여 있다”는 세계보건기구(WHO)의 보고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이라크는 이 지역에서 가장 약한 나라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라크의 경제와 군사비 지출은 인구가 이라크의 10%에도 못 미치는 소국(小國) 쿠웨이트보다도 적습니다.
<사진: 이라크 어린이>
그러나 미국은 다릅니다. 의회가 지난해 10월 대통령에게 전쟁 권한을 승인한 이유는 “이라크에 의해 지속적으로 가해지는 위협으로부터 미국의 안보를 방어”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라크의 주변국들이 이라크를 지역공동체에 재편입시키려 하고 있을 때, 미국인들은 사담의 무시무시한 위협 앞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이라크를 지역공동체에 편입시키려는 나라 중에는 이라크에게 공격당했던 나라들도 있습니다. 현재 워싱턴의 권력을 장악하고 이라크전쟁놀음을 벌이려는 자들과 후세인이 친구이자 동맹이었던 때, 그리고 후세인이 지금보다 훨씬 더 위험했고 이미 최악의 범죄를 저지른 후에 말입니다. 당시 미국의 권력자들은 후세인에게 대량살상무기 개발 수단을 비롯해 온갖 지원을 아낌없이 베풀었습니다.
미국인들의 전쟁지지 정도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이 “두려움이라는 요소”를 제거하고 판단해야 합니다. 이것은 미국에만 있는 독특한 현상입니다. 이것만 제외한다면 미국인들의 이라크전쟁 지지율에 대한 보다 현실적인 수치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며 그 수치는 미국외의 다른 나라들과 거의 비슷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미국 주류층에서의 전쟁 반대**
전쟁 반대의 목소리가 주류 계층(establishment) 내에게서도 정당성을 확보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변화입니다. 대외 정책을 다루는 두 개의 주요 저널까지도 반전을 중심 주제로 다루고 있으며 대외정책을 이끄는 인사들의 글을 실었습니다. 권위있는 미국 예술과학아카데미(American Academy of Arts and Sciences)는 전쟁에 관한 장문의 논문을 발행해 부시 행정부가 처한 상황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명과 함께 이를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인용한 가장 권위있는 분석은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선임 연구원의 것으로 그는 미국이 “스스로에게 그리고 인류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되고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이는 전례없이 강한 비판입니다.
물론 이러한 비판들이 좁은 관점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직시해야 할 것입니다. 이 비판들은 미국과 그 동맹국에 가해질 위협에 대한 것이지, (전쟁이) 이라크 민중들에게 미칠 영향은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수십만을 죽이고 재건을 가로막으면서도 야수적인 이라크 지배자의 독재만 강화시켜 준 10년간의 경제 제재가 이미 가해진 상황에서, 기반시설 파괴를 목표로 하는 끔직한 전쟁이 벌어진다면 수백만의 사람들이 심각한 위험상태에 빠질 수 있다고 유엔과 구호단체들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또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주류층의 전쟁 비판에는 민주화와 해방에 관한 고고한 수사들이 아예 언급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비판자들은 아마도 그 수사들은 지식인이나 언론인들을 위해서나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지식인과 언론인들은 전쟁 캠페인을 주도하는 자들의 전력에 대해서는 아예 모른 척 하면서, 미국의 전쟁 드라이브가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의 극단적 과시라는 점도 애써 못 본 체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 문제들이 유엔에 제기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진: 테러리스트>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류 비판자들이 우려하는 위협은 매우 현실적인 것입니다. 지난 해 10월 이라크와 알 카에다류(類)의 테러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으며, 오히려 이라크를 공격함으로써 서구에 대한 테러 위협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것을 CIA가 미 의회에 보고했을 때, 그들은 분명 놀라지 않았을 것입니다. 미국의 분석가들은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할 경우 복수심에 불타는, 새로운 테러리스트들을 양산할 것이며 또한 이라크로 하여금 이미 준비된 테러공격을 결행하도록 할 것이라는 가능성을 매우 심각하게 제기했습니다. 대외관계협의회(CFR)의 고위 태스크포스팀은 최근 9.11보다 끔찍한 테러 공격이, 예를 들면 미 본토에 대한 대량살상무기 공격 등이 일어날 수 있음을 경고하는 보고서를 내놓았습니다. 이들은 특히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추진함에 따라 이러한 테러의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 보고서는 다양한 사례들을 제시하고 있는데, 어떻게 보면 테러 교본으로 보일 정도입니다. 이러한 종류의 보고서가 처음은 아닙니다. 9.11테러가 발생하기 훨씬 전에도 저명한 전략분석가들에 의해 유사한 보고서가 발표된 적이 있습니다.
또한 이라크 공격은 더 많은 테러를 촉발할 뿐만 아니라 대량살상무기의 확산도 불러올 것이라고 합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미 군사공격의 잠재적 목표로 꼽히고 있는 국가들이 역사상 가장 강력한 나라, 즉 ‘제국주의 야망을 추구하고 있는’ 미국을 막을 방법은 대량살상무기 외에는 없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미 주류층을 대변하는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즈(Foreign Affairs)>에 실린 한 글에서 필자는 이같이 경고하면서 이는 미국 및 세계에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저명한 매파(hawks)들은 미국의 이라크 공격은 “역사상 최악의 대량살상무기 확산”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이들은 이라크가 화학 및 생물학 무기를 갖고 있다 해도 후세인이 이를 매우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을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나아가 미국의 공격에 대항하기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가 아니라면 자신들의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극히 낮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사용은 즉각 미국의 무시무시한 보복공격을 불러올 테니까요. 또한 이라크가 자신의 대량살상무기를 오사마 빈 라덴과 같은 테러리스트들에게 줄 가능성도 거의 없습니다. 그것은 후세인 자신에게 엄청난 위협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일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할 경우 이라크 사회는 붕괴될 것이며 이에 따라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통제도 붕괴될 것입니다. 대량살상무기는 “사유화”될 것이라고 테러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다시 말해 “엄청난 대량살상무기 시장이 형성될 것이며 이 무기를 사려는 사람들은 차고 넘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매파들이 경고했던 “악몽의 시나리오”입니다.
***쿠바 미사일 위기의 교훈**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전쟁의 북소리를 울리기도 전에, 미국의 모험주의는 테러와 대량살상무기를 확산시킬 것이라는 경고가 잇달았습니다. 미국 정부는 바로 지금 세계를 향해 가장 흉측하고 위험한 교훈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미국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려면 북한을 닮으라는 것이죠. 대량살상무기 등으로 미국에 대해 무시할 수 없는 군사적 위협을 가하는 게 좋을 것이라는 내용의 교훈 말입니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미국은 새로운 “거대한 전략”을 추구하는 데 방해가 되는 너희들을 작살내고 말 것이라는 게 미국의 메시지입니다. 이같은 미국의 메시지는 일반 희생자들뿐만 아니라 “낡은 유럽”에 있는 사람들, 나아가 미국 외교정책의 핵심 엘리트들까지도 전율케 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핵심 엘리트들은 “미국이 중대한 국가이익을 위해 군사적 대결을 적극적으로 시도한다면 세계는 더욱 위험해질 것이며 미국의 안보도 더욱 약화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는 미국의 엘리트들이 주로 읽는 주류 저널에 실린 저명인사의 글을 인용한 것입니다.
워싱턴의 전략가들이 진정 중시하는 것이 무엇인가 라는 관점에서 볼 때 테러의 증가와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은 그들에게 별로 중요한 우려사항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왜 그런가는 쉽사리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내용을 들여바 보면 그다지 유쾌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지난 해 10월 쿠바 미사일 위기 40주년을 기념해서 러시아, 미국, 쿠바의 핵심 관련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아바나에서 열린 정상회담은 위험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당시에도 전략가들은 자신들이 세계의 운명을 쥐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바나 정상회담에서 나온 새로운 정보는 정말 깜짝 놀랄 만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핵전쟁으로부터 세계를 구출한 것은 바실리 아르히포프라는 러시아의 한 잠수함함장의 결단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당시 케네디 대통령이 설정한 “정지선(quarantine line)” 부근에서 미국의 구축함들이 러시아의 잠수함들을 공격했을 때, 아르히포프는 핵미사일을 발사하라는 상부의 명령을 거부했습니다. 만일 아르히포프가 그 명령을 따랐다면 미소간의 핵공방이 시작됐을 것이 거의 분명하며, 그랬다면 아이젠하워가 경고했듯 “북반구 전체가 파괴됐을” 것입니다.
당시의 상황과 현재의 상황을 비교해 볼 때, 이처럼 무시무시한 사실이 밝혀진 것은 매우 시의 적절하다고 하겠습니다. 쿠바 미사일 위기의 뿌리는 “정권 교체(regime change)”를 목적으로 하는 국제 테러리즘에 있었고, 이 두 가지 개념, 즉 국제테러와 정권 교체는 요즘 뉴스에 매우 자주 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쿠바에 대한 미국의 '테러' 공격은 카스트로가 권력을 잡은 직후 시작됐으며, 케네디 대통령 이후 더 심해져 로버트 맥나마라 당시 국방장관이 인정했듯 (쿠바)침공이 단행될 것이라는 게 거의 확실해 보였습니다. 케네디는 쿠바 미사일위기가 끝나자마자 (쿠바에 대한) 테러적 전쟁을 재개했습니다. 미국이 주도한 쿠바에 대한 테러적 행동은 1970년대 말 절정에 달했고 그후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당시 미사일 위기에 개입했던 사람들의 행동에 대한 평가는 일단 제쳐둡시다. 중요한 것은 이번에 알려진 이 새로운 사실은 (우리가) “정권 교체”를 목적으로 “훨씬 약한 적”을 공격할 경우, 우리들 자신의 생존 자체를 위협할 수 있는 무시무시하고도 예측불가능한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너무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이라크 민중들의 운명에 관해서는 사실 누구도 자신있게 예측할 수 없습니다. CIA도, 럼즈펠드도, 이라크 전문가라고 자처하는 사람들도, 그 누구도 말입니다. 끔찍한 인간적 참화가 벌어질 것이라는 구호 단체들의 암울한 전망에서, 후세인을 몰아내고 이 지역에 평화와 번영을 가져올 것이라는 미 행정부의 정치홍보 전문가들 및 그 하수인들이 열창하고 있는 장밋빛 미래에 이르기까지 극에서 극을 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결과는 결코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류가 개인적인 관계에서건, 또는 국제적 관계에서 폭력 의 사용에 대해 그다지 심사숙고 하지 않는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바로 이것, 즉 그 결과를 아무도 자신있게 예측할 수 없다는 것도 한몫을 하고 있습니다. 폭력이 사용되기 위해서는 폭력이 사용돼야만 하는 압도적 근거들이 제시돼야 합니다. 그러나 최근 사안(이라크 전쟁)과 관련해서는 그러한 근거 비슷한 것조차 전혀 제시되지 않고 있습니다. 워싱턴과 런던이 추진하고 있는 이번 전쟁계획에 대한 반대가 저토록 크고 강렬한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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