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전쟁 돌입이 초읽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전쟁은 향후 세계사의 진로에 중대한 분기점이 될 것이 분명하다. 단지 미국의 안보에 위협이 될지도 모른다는 이유만으로 약소국 이라크에 대해 대규모 폭력을 행사하려는 미국의 행위는 근대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번 전쟁은 앞으로의 인류사를 판가름하는 중대한 고비가 될 것이다. 삶이냐 죽음이냐, 문명이냐 야만이냐, 전쟁이냐 평화냐, 독재냐 민주주의냐를 가르는 갈림길이 될 것이다.
설령 부시 행정부가 이번 전쟁을 강행한다 해도, 극소수의 지배엘리트가 폭력으로 전 세계를 지배하려는 이들의 계획이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는 말하기 어렵다. 이미 전 세계의 대다수 민중들을 비롯하여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을 비롯한 상당수 국가의 정치지도자들까지 이들의 폭력적 세계지배 야심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라크 다음은 북한이다. 이라크 점령이 완료되고 나면 미국은 북한에 대한 폭력적 대응에 나설 것이 분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라크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이라크전쟁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고, 올바로 대응하는 것은 우리 민족에게 닥칠 재앙을 피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미국의 양심'으로 불리우는 세계적 석학 노암 촘스키 교수(미 MIT)의 이라크전쟁에 대한 최근 강연 전문을 소개한다. '제국과의 대결(Confronting the Empire)' 제하의 이 강연에서 촘스키 교수는 이번 전쟁은 폭력으로 전 세계를 지배하려는 미 제국의 계획이 본격화된 것이며, 이에 대한 전 세계 민중들의 저항도 이미 거세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강연은 지난 2월초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WSF)에서 행해진 것으로 원문은 www.zmag.org에서 볼 수 있다. 4회에 걸쳐 나눠 싣는다. 편집자
***제국과의 대결**
오늘 우리는 여러 측면에서 세계사적으로 독특한 시점에 모였습니다. 불길하지만 동시에 희망이 가득한 시점입니다.
유사 이래 가장 강력한 국가, 미국은 힘으로 세계를 지배하겠다는, 다시 말해 최고권력자로 군림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그리고 소리높여 외치고 있습니다. 강제력을 동원할 때 흔히 쓰는 수법인(따라서 아무 의미도 없는) 고상한 의도의 천명도 생략한 채 미국의 지도자들은 '제국주의적 야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같은 의도는 외교 정책 엘리트들이 많이 보는 주요 외교관련 저널에도 솔직하게 표현되고 있는데 이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이들은 또한 현재도, 그리고 앞으로도 경쟁자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무력 수단이 매우 엄청나기 때문에 어떤 도전자라도 제거해 버릴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라크와의 전쟁은, 제국이 무력을 행사하기로 마음먹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를 전 세계에 가르쳐 주기 위해 준비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실 양쪽의 무력을 비교해봤을 때 '전쟁'이란 말은 적절치 못한 용어입니다.
제국의 독트린은 전혀 새로운 것도, 미국만 유일하게 내놓은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하는 한 역사상 어떤 제국도 지금의 미국처럼 저토록 오만하게 자신의 의도를 선언한 제국은 없었습니다.
나는 이번 모임에서 제기된 질문, 즉 '제국과 어떻게 대결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답하지는 않겠습니다. 여기 모인 여러분들께서 일상생활과 노동을 통해 나보다도 더 잘 그 답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국과 대결하는" 길은 전혀 다른 세상을 건설하는 것입니다. 폭력과 복종, 증오와 두려움이 없는 그런 세상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여기 모인 이유입니다. 세계사회포럼(WSF)은 그것이 헛된 꿈이 아니라는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나는 어제 MST(브라질 농지개혁 및 토지가 없는 농민들의 운동: 역자) 공동체에서 있었던 'Via Campesina'(토지가 없는 농민, 중소 영농인, 농촌 여성, 자생적 공동체들의 모임. 기업 주도의 세계화 및 신자유주의 모델 확산에 반대해 옴: 역자) 국제회의에서 우리의 목표를 이루려는 매우 고무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 혜택을 누렸습니다. 나는 그 운동이 지구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흥미진진한 대중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MST와 같은 건설적인 지역운동과 Via Campesina와 WSF로 대표되는 국제적 운동이 어우러져 합의와 연대, 상호부조가 생겨나면서 보다 나은 미래에 대한 진정한 희망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콜롬비아와 터키의 폭력**
최근 나는 제국의 폭력이 무제한적으로 사용되면 세상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생생한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지난달 터키 남동부 지역에서 나는 1990년대의 그 섬뜩한 잔학행위가 여전히 계속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바로 몇 시간 전에도 우리는 쿠르드족의 비공식 수도인 디야바키르(Diyarbakir) 부근에서 군대에 의해 그 잔학행위가 재개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쿠르드인 수백만은 90년대 내내 황폐해진 변방으로 쫓겨났고 수십만명이 학살되었으며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들은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디야바키르 외곽의 동굴이나 이스탄불 슬럼가의 폐가와 같이 몸을 숨길 수만 있다면 어디라도 들어갔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한 새 법령은 허울뿐이었습니다. 그들을 탄압하는 데 사용한 무기의 80%는 미국에서 온 것입니다. 클린턴 대통령이 1997년 한 해 동안 터키에 보낸 무기는 냉전 시대 전체를 통틀어 보낸 양보다 더 많았습니다. 그 무기들은 국가테러에 사용됐습니다. 국가테러를 저지른 정부나 그 지지자들은 이를 "대테러작전"이라고 부르죠. 잔학행위가 절정에 이르면서 터키는 미국 무기의 최대 수혜자가 됐습니다. 이스라엘과 이집트는 제외하고 말입니다.
1999년이 되자 미제 무기의 최대 수혜자는 터키에서 콜롬비아로 바뀝니다. 당시 미국이 지원하는 국가테러가 터키에서는 거의 성공을 거두고 있었으나 콜롬비아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콜롬비아는 90년대 서반구에서 최악의 인권 탄압국이자 미국의 무기 및 훈련지원을 가장 많이 받는 나라였습니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콜롬비아는 또 몇 가지 분야에서 세계 최악의 기록을 가지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노동운동가 살해입니다. 지난 10년간 전세계에서 저질러진 노동운동가 살해사건의 절반 이상이 콜롬비아에서 일어났습니다. 작년에는 50만명 남짓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거주지에서 쫓겨나는 신기록을 세웠고 현재까지 쫓겨난 사람들은 2백70만명으로 추산됩니다. 매일 20명이 정치적 이유에 의해 살해당하고 있습니다. 5년전에는 그 숫자가 절반이었습니다.
나는 콜롬비아 남부 코카(Cauca)라는 곳에 간 적이 있는데 이곳은 지난 2001년 최악의 인권기록을 세웠던 곳입니다. 그곳에서 나는 화학무기의 위협을 받고 자신의 땅에서 쫓겨난 농민들의 증언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을 쫓아냈던 "소독"작전은 별다른 효과가 없었습니다. 의도대로 되었더라면 매우 끔찍했을 소독작전은 미국이 주도한 "마약과의 전쟁"을 구실로, 사실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전개된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삶과 땅은 파괴되었고 아이들은 죽어가고 있으며 부상과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농업은 오랫동안 축적된 지식과 경험에서 나오는 풍부한 전통에 기반하는 것으로 세계 어디서건 가족 대대로, 대체로 어머니에서 딸에게로 전해져 내려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농업은 인간의 대단한 성취물이라고 할 수 있지만 단 한 세대만에 영원히 파괴될 수 있을 정도로 연약한 것이기도 합니다. 또한 브라질 인근 지역과 같이 풍부한 생물다양성을 간직하고 있는 지역들이 세계 곳곳에서 파괴되고 있습니다. 이미 수백만이 살고 있는 슬럼가에 앞으로브라질 남부농민들(Campesinos), 원주민들, 아프리카계 콜롬비아인들이 합류할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이 떠나간 토지에는 다국적기업들이 들어가 석탄, 석유 등의 자원을 얻기 위해 산을 깎을 테죠. 그리고 버려진 농지에 유전자를 조작한 씨를 뿌려 단종(單種)의 수출용 농산물을 길러 갖가지 다양한 생물학적 보물과 다양성을 간직하고 있는 환경을 파괴할 것입니다.
***김빠진 다보스, 활기찬 포르투 알레그레**
코카 지방과 터키 남동부 지방의 모습은 MST 공동체에 모인 Via Campesina 행사와는 매우 다릅니다. 그러나 터키와 콜롬비아는 다른 의미에서 고무적이고 희망적입니다. 정의와 자유를 파괴하는 제국에 대항해 투쟁하는 사람들의 용기와 헌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힘으로 세계를 다스리려는 거대한 전략에 의해 가속을 얻고 있는 "제국의 야심"이 정상적 행로를 밟아갈 경우 어떠한 운명을 맞게 될지를 보여주는 징후들입니다. 물론 어느 것도 필연적인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내가 언급한 MST, Via Compesina, WSF는 제국의 범죄를 끝장낼 훌륭한 모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 이후의 삶, 그리고 전쟁과 평화**
WSF에서 논의되는 문제들은 광범위하지만 나는 우리가 두 가지 중심 주제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지구적 정의와 자본주의 이후의 삶(Life after Capitalism)에 관한 것으로 한마디로 얘기하자면 '삶'입니다. 왜 '삶'인가, 현존 국가 자본주의적 제도 하에서는 인류라는 생물종이 과연 얼마나 오래 생존할 수 있을까가 불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하나의 주제는 전쟁과 평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미국과 영국 단 둘이 필사적으로 벌이려 하고 있는 이라크 전쟁입니다.
이 두 가지 근본주제에 관해 우선 반가운 소식부터 말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지금 스위스 다보스에서는 세계경제포럼(WEF)이 열리고 있습니다. 여기 포르투 알레그레의 분위기는 희망차고 힘 있고 열정적인 데 반해 다보스는 "어두운 분위기"라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습니다. "세계를 이끌어 가는 사람들(movers and shakers)"에게 WEF는 더 이상 "세계적인 축제"가 아닙니다. 사실 WEF의 창시자 중 한 사람은 패배를 인정했습니다. 그는 "기업의 힘은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긴 것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정의롭고 인간적인 미래의 비전을 이야기하고, 그것을 창조해 나가는 것밖에 없습니다.
물론 우리가 자화자찬에 빠져서는 안 되겠죠. 몇 가지 난제가 아직 우리 앞에 있기 때문입니다.
***땅에 떨어진 기존 지도층의 신뢰도**
WEF의 주제는 "신뢰구축"입니다. 이런 주제가 나올 만한 이유는 충분합니다. 잘 나가던 시절 스스로를 "우주의 지배자"로 불렀던 그들은 자신들이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최근 지도자들에 대한 신뢰가 심각하게 하락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확실하게 과반수의 신뢰를 받은 지도자는 NGO 지도자들뿐이었고, 다음으로는 유엔과 영적/종교적 지도자들, 서유럽의 (정치)지도자들과 경제관리들(economic managers), 기업 경영자 순이었습니다. 맨 아래가 미국의 (정치)지도자들인데 이들에 대한 신뢰도는 약 25%였습니다. 사실상 전혀 신뢰할 수가 없다는 얘기죠. 권력을 가진 지도자들을 신뢰하는지를 물었을 때 사람들은 버릇처럼 "예"라고 답하기 때문입니다.
사태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며칠 전 캐나다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들의 3분의 1이 국제평화의 최대 위협으로 미국을 꼽았습니다. 미국은 이라크와 북한보다 2배가 넘는 득표율을 보였고 알 카에다보다도 높았습니다. 시사주간지 타임의 여론조사에서는 80% 이상의 유럽인들이 미국을 국제평화의 최대 위협으로 꼽았습니다. 반면 이라크와 북한은 각각 10%도 안 됐습니다. 타임의 여론조사는 전문적인 여론조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러한 수치들은 어떤 요소에 의해 왜곡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놀라운 수치입니다.
다보스에서의 진지한 만남을 위해 3만 달러씩 낸 기업 지도자들은 "신뢰구축"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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