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요즘 독일 관련 뉴스는 어두운 내용 일색이더군요.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이 독일과 프랑스를 싸잡아 ‘늙은 유럽(old Europe)’으로 비아냥거린 거야 對이라크전을 놓고 의견을 달리하고 있는 데 대한 반격이니 그렇다 치고 경제, 교육 등 주요 분야에서도 독일의 저조가 눈에 띄게 두드러지는 것 같은데요.
A) 가장 심각한 것은 역시 ‘교육강국 독일의 신화’가 깨어졌다는 것입니다.
7일자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은 지난해 경제개발협력기구(OECD)가 실시한 청소년 학습능력 평가 결과를 놓고 독일 교육계의 침울한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32개 OECD 회원국 15세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어 읽기, 수학, 과학 학력 평가 결과, 독일 학생들의 학력이 OECD 평균(500점)을 훨씬 밑도는 하위 그룹에 랭크되었습니다.
국제학력평가프로그램(PISA)이라는 이름으로 실시된 이 조사에서 종합점수 543점을 받은 일본과 541점을 받은 한국이 각각 1, 2위를 차지했고, 다음으로 핀란드(540), 캐나다(532점), 뉴질랜드(531점), 호주(529점)의 순이었으며 독일(487점)은 21위에 머물렀습니다.
독일 교육부의 한스-콘라드 코흐(Hans-Konrad Coch) 교육계획관은 “걱정스러운 것은 독일 청소년의 학력 부진이 개개인의 미래에 대한 불안을 암시하는 동시에 독일 사회전체의 암울한 미래를 미리 보여주는 척도라는 점”이라고 침통하게 말했습니다.
Q)교육강국 독일의 추락, 그 원인은 어디 있나요?
A) 교육 결손의 원인은 복잡하지만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한곳으로 모아집니다.
비평가들의 지적에 따르면, 둔감하고 진부한 독일 교육당국의 관료주의가 학생들로 하여금 관심의 초점을 맞추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참고로 OECD조사에서 종합 교육 경쟁력 세계1위를 차지해 독일 교육개혁그룹의 전범이 되고 있는 핀란드의 경우, 어린이 개개인에 좀더 밀착한 교육에 초점을 맞추고 교사가 핀란드 사회에서 자부심을 갖는 직종이 되도록 분위기를 형성해 왔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태생적으로 호기심이 많다. 하지만 독일의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선 그 같은 호기심을 보상하는 전통을 전혀 확립하지 않았다.”
이 말은 놀랍게도 독일 교육부의 한 관리가 고백한 내용입니다.
각주별로 제각각인 교육시스템, 즉 중앙통제 시스템의 부재 역시 독일 교육을 추락시킨 원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Q) 독일 특유의 조기 진로 확정시스템과 도제제도가 교육을 망쳤다고도 하죠?
A) 그렇습니다.
독일 교육은 다른 유럽국가에 비해 오랫동안 융통성 없는 전통에 매달려 왔는데요. 다름 아닌 어린이의 조기 진로 확정제도입니다. 독일 어린이들은 10세인 초등학교 4학년을 마친 뒤 대학 진학을 위한 인문계 중ㆍ고교(김나지움)나 직업학교(레알슐레 또는 하우프트슐레) 중에서 택일을 하게 됩니다. 문제는 불과 열 살에 미래의 능력까지 모두 파악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 제도가 혼란을 유발해 상당수가 자신의 잠재적 능력을 재발하지 못한 채 학업을 마치게 된다는 지적도 있고, 심한 경우 재능있는 소년이 사회성의 부족으로 왕따 당해 장애인학교로 배치되는 엉뚱한 사례가 발생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한편으로 중세의 길드제도에서 발원한 도제제도식의 직업 교육 시스템도 세계화시대에 취약점을 노출시켜 결국은 독일인력의 경쟁력을 끌어내리는 멍에가 되고 있습니다.
“중세의 도제식 길드제도에 뿌리를 둔 독일 직업교육은 19~20세기에는 빛을 발했지만 21세기 지식정보화 사회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볼멘 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Q) 실제로 정보기술(IT) 관련에 대한 우려도 대두되고 있죠?
A) 9일 독일 공영 도이체벨레 방송은, 독일이 미국의 인터넷 관련 기술을 따라잡는 데 30년이 걸릴 것이라는 충격적인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독일 정보통신업협회인 비트콤(BITKOM)의 컴퓨터 보급 및 이용현황에 대한 국제비교 결과를 인용한 이 방송의 보도내용은, 독일의 인터넷 시장 규모가 미국, 일본에 이어 3위인데도 학생 28명중 1명만이 학교에서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어 유럽에서 포르투갈과 그리스를 제외할 경우 꼴찌라는 것입니다.
베른하르트 롤레더 비트콤 회장은 “이같은 상황은 최소한 5~10년 안에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면서 “연간 컴퓨터 신규 설치 대수가 150만 대인 현재 추세가 계속될 경우 독일이 미국을 따라잡는데 30년 걸릴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Q) 인력의 소비자라 할 수 있는 기업에서 대학생들의 자질에 대한 불만이 대단하다죠?
A) OECD 조사가 초ㆍ중등학교쪽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고등교육에 대한 평가는 나오지 않았지만, 기업가들은 이구동성으로 “독일 대학 졸업자들은 기업이 요구하는 인력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불평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도대체 기업에서 실제로 써먹을 수 있는 기술을 대학에서 숙련시켜 내보내지 않고 있다는 얘기죠.
실제로 독일 대학졸업자들의 미숙함은 오래전부터 공공연한 비밀로 인식되어 왔는데요.
이 때문에 독일 정부는 외국노동인력 수입에 대한 정서적 반감까지 감수하면서 생물공학분야(BT)와 IT 분야에 적극적으로 외국인력을 수입하고 있습니다.
일반기계공업분야도 예외는 아니어서 독일 기계공업의 상징인 벤츠와 포르셰의 1998년 내국인 엔지니어 인력은 93년의 5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을 정도입니다.
Q) 한때 세계 최강이었던 독일 대학의 경쟁력이 이처럼 약화된 것은 왜일까요?
A) 독일 대학생의 중도탈락율은 30%로 집계돼 영국의 19%의 1.5배 수준이나 됩니다. 독일의 대학 졸업자 비율도 터키나 멕시코 수준인 16%로 영국(35%)이나 미국(33%)의 절반이 채 못되는 비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독일대학생의 평균 졸업연령이 28세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대학생이 학교에서 머무는 기간도 깁니다. 입학에서 졸업까지 평균 6년이상이 소요되는 셈인데, 참고로 미국은 4년, 영국은 3년반이 걸린다고 합니다.
독일 교수들이 제자들을 귀찮을 정도로 못살게 군다는 것도 옛말입니다. 콩나물 강의실에서 강의를 듣는 것 이외에 강의실 밖에서 교수의 개별지도를 받기란 하늘의 별따기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교수대 학생비율이 미국이나 영국의 3~4배나 될 정도로 열악하니까요. 요즘 독일 대학의 예산은 핀란드, 스웨덴, 일본, 미국보다 처집니다.
1세기전 만해도 미국과 일본의 교육관계자들이 와서 견학한 후 이를 모방했을 정도로 인문과학과 자연과학부문에서 모두 앞서갔던 독일의 대학은 이제 존재하지 않습니다.
Q) 이같은 교육경쟁력의 약화는 곧바로 경제에 영향을 끼치는 것 같은데요.
A) 비즈니스위크 최신호(17일자)는 커버스토리로 ‘제2의 일본이 우려되는 독일’을 다뤘습니다. 유럽 경제의 기관차 역할을 해 온 독일의 경기 침체가 10년 이상 계속되면서 나타나는 불길한 조짐을 요약한 것이죠.
사실 최근 독일의 제반 경제지표가 너무 좋지 않습니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1.5%였고 지난달 실업자수는 1998년 게르하르트 슈뢰더 정부 출범 이후 최고치인 4백54만명으로 실업률 11%를 기록했습니다. 99년 이후 곤두박질쳐 온 소비지출성장률은 2002년 마이너스를 기록할 전망입니다.
볼프강 클레멘트(Wolfgang Clement) 경제장관은 올해 독일의 경제성장률 예상을 당초 목표인 1.5%보다 0.5%포인트 낮은 1.0%로 조정했습니다.
이렇듯 경기 침체가 계속되면서 5년만에 최악의 실업률을 기록하는 등의 궁극적 원인은 교육제도 문제라는 지적이 자연스럽게 나오고 있습니다.
Q) 옛 명예를 회복하기엔 다소 시간이 걸리겠지만 교육개혁을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요?
A) 예산부족으로 교육 부문에 대한 공격적인 정밀검사 조차 시행하지 못하는 딱한 처지이지만, 유치원으로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교육개혁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데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에델가르트 불만(Edelgart Bulmahn) 교육장관은 학교 수준을 OECD 베스트 5~6위 수준까지 끌어올리려면 10년은 쪽히 걸릴 것이라고 걱정하면서도 관료들과 밤을 새우며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교육을 총체적으로 개혁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우선, 주별로 다른 교육제도를 전국적으로 통일하고 전국 공통의 시험제도를 두는 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특히 현재 반일(半日)제인 초등학교 수업을 순차적으로 전일(全日)제로 바꿔 공부시간을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독일 교육부는 2월 하순 표준화된 교육시스템의 검정 기준과 검정 기관 선정을 위한 공청회를 열 계획입니다.
무엇보다도 슈뢰더 총리는 “교육이야말로 훌륭한 미래 투자이고 실업 방지책”이라면서 교육 투자 대폭 증액을 추진하고 있어 조만간 가시적인 조치가 나올 것으로 기대됩니다.
Q) 최근 독일 대학도 변신을 꾀하고 있다죠?
A) 지난해부터 채용되는 교수들에게는 기존 교수보다 낮은 급여가 책정되고 대신 성과급제가 적용되는 등 변화가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독일 대학의 재정 압박을 해소하려면 보다 근본적인 변혁이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독일은 OECD국가중 대학교육이 무상인 6개국중 하나인데요. 클라우스 란트프라이드(Klaus Landfreid) 독일대학협회 회장 같은 이는 이제 부분적으로라도 등록금을 징수해야 할 때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독일대학협회는 이밖에도 ▷대학 간 경쟁 활성화 ▷대학의 자율성 강화 ▷미국처럼 대학 서열 매기기 ▷수업료 완전 면제 제도 폐지 ▷대학 발전기금 마련 등의 다양한 개혁 항목을 내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계무역기구(WTO)의 규정에 따라 조만간 교육서비스가 개방이 불가피한데, 이때 독일의 대학들이 과연 미국 등의 대학들과 겨뤄서 살아남을 수 있겠느냐는데 대해서는 회의론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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