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경제위기 몰린 '貧者의 투사', 메가와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경제위기 몰린 '貧者의 투사', 메가와티

윤재석의 지구촌 Q&A <18>

Q) 요즘 인도네시아의 정국 불안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수도 자카르타에서는 연일 시위가 벌어지고 있고, 이제 군중들은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Megawati Sukarnoputri) 대통령의 조기 하야까지 제기할 정도입니다. 메가와티 정권 최대의 위기로까지 회자되고 있는 최근의 인도네시아 정국 불안은 어디서 비롯된 것입니까?

<사진 1> 인도네시아 시민들이 정부의 유가 인상 등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A) 메가와티 정부는 지난 1월 2일 유류 가격을 20% 올리고 전기료 및 전화비를 각각 24%, 15%씩 올리는 공공요금 인상 조치를 취했습니다. 이렇게 되자 노동자ㆍ학생들이 수도 자카르타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반대시위에 나섰고, 여기에 기업인ㆍ주부들까지 가세해 시위가 전국적인 규모로 확대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전국노동자투쟁전선(FNPBI)을 비롯한 전국 10개 노동단체 회원들과 대학생들이 주축이 된 6일 시위는 자카르타 도심의 대통령궁 주변에서 벌어져 공공요금 인상 철회와 메가와티 대통령의 퇴진까지 요구할 정도로 고조되었고 시위가 1월 한달 내내 계속되면서 인도네시아 정국을 불안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Q) 기업쪽 반발은 구체적으로 어떤가요?

A) 기업인들은 “유가 및 공공요금 인상 조치로 공산품 생산 원가가 크게 늘어났다”면서 납세 거부 경고까지 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인도네시아 노동자 임금이 최근 3년 사이에 100% 오른 상태에서 더 이상 추인 부담을 감당할 수 없다면서 공공요금 인상조치가 업체들의 국제 경쟁력까지 약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고용자협회(Apindo)는 유가 등의 인상은 노동현장의 대규모 감원을 촉발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생산원가가 급등하고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불가피하게 대량 해고를 단행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죠.

Q) 정치권에서도 메가와티 정부의 조치가 너무 과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죠?

A) 정치권에서도 시위대와 비슷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우스만 삽타 국회 부의장을 비롯한 일부 국회의원들은 유가 및 공공요금 인상정책을 주도한 경제조정장관의 해임을 촉구했죠.

Q) 인도네시아 정부로서도 공공요금을 인상하지 않을 수 없는 절박한 이유가 있을 텐데요.

A) 그렇습니다.

인도네시아는 지금까지 공공요금에 대해 정부보조금을 지원해 왔는데 정부 재정적자 축소를 위해 공공요금을 인상하기로 이미 작년에 국제통화기금(IMF)과 합의한 바 있습니다.

더욱이 인도네시아는 최근 차관 공여국 모임인 인도네시아 자문그룹(CGI) 회의에 재정적자와 외채 상환에 쓸 27억달러 규모의 추가 차관을 요청해 놓고 있는데 이를 추인받기 위해 이같은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Q) 하지만 대통령 하야까지 들고 나오는 민심의 이반(離叛)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 것 같군요.

A) 국민적 반발이 거세지자 인도네시아 정부는 긴급 진화에 나서고 있습니다.

우선 경제계 인사들의 노동자 시위 동조를 차단하기 위해 대중교통용 및 공업용 디젤 가격과 백등유의 가격을 환원키로 하고 전화요금 인상은 연기하기로 했습니다.

한편 TV와 휴대전화ㆍ식음료 등 20개 품목의 사치세를 대폭 낮추는 한편 원자재 수입관세 환급 절차를 간소화한다는 등의 조치를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서민들의 피부에 와 닿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Q) 최근 인도네시아의 경제 상황은 어떤 형편인가요?

A) 아직도 IMF의 통제아래 있는 인도네시아 경제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기미를 보이고 있습니다.

CGI는 인도네시아의 거시경제 상황은 상당히 개선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2년전 국내총생산(GDP) 규모와 맞먹었던 공공부문 부채는 최근 30%가까이 줄어들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내외국인 투자는 여전히 부진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 1월 8일 인도네시아 투자조정위원회(BKPM)는 지난해 외국인직접투자가 97억달러로 2001년의 150억6천만달러보다 35% 감소했으며, 내국인 투자는 전년도 58조6200억루피아의 절반이 채 못되는 25조2600억루피아로 집계됐다고 발표했습니다.

법질서 문란과 노사분규 만연, 치안불안, 지방자치단체 횡포 등이 투자분위기 조성에 최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사진 2>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인도네시아 대통령

Q) 특히 인도네시아의 고질적 병폐인 부패가 원인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던데요.

A) 맞습니다.

수하르토의 32년 정권, 그리고 바로 전의 압두라만 와히드 정권이 모두 부패 때문에 붕괴되었는데 메가와티 정부 들어서서 부패가 개선되기는 커녕 예전보다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주 인도네시아 언론들이 일제히 보도한 바에 따르면, 세계은행 등이 인도네시아에 제공하는 자금의 20%가 매년 부정부패로 녹아 없어진다고 합니다.

1월 20일 비정부기구인 인도네시아부패감시(Indonesian Corruption Watch)는 메가와티 집권 1년6개월동안의 부패 강도가 98년 하야한 수카르노 집권 때보다 더욱 심화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Q) 메가와티는 한때 '빈자(貧者)들의 투사(The champion of the underclass)‘로 불리면서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하지만 최근엔 대중들로부터 냉담한 반응을 받고 있다죠?

A) 메가와티의 56회 생일(1월 23일)을 사흘 앞둔 20일 인도네시아의 유력일간지 콤파스(Kompass)는 메가와티의 지지율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 조사에서 메가와티에 대한 지지율은 30%선으로 지난 2001년10월, 집권 후 3개월 시점에 실시된 지지율 조사때 나타난 70%보다 무려 40%포인트가 낮은 수치입니다.

그녀의 정치적 능력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고 있습니다. 현대 인도네시아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아버지 수카르노의 피를 이어받아 타고난 정치인이라는 평가가 있는 가하면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치인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들어 후자쪽의 평가가 우세를 보이고 있는 형국입니다.

지난해 발생한 발리 테러의 용의자로 잡힌 이슬람 민병대에 대해 이렇다할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든가, 외국의 방문객과 만났을 때 현실적인 대화를 나누는 적이 거의 없다는 등의 폄하 같은 것 말입니다.

Q) 메가와티 대통령은 어떻게 집권하게 되었습니까?

A) 메가와티는 지난 2001년 7월23일 인도네시아의 의회격인 국민협의회(MPR) 특별총회에서 탄핵된 와히드 대통령의 뒤를 이어 제5대 인도네시아 대통령에 취임했습니다.

인도네시아 건국의 아버지인 수카르노 전 대통령의 딸로 당시 부통령이던 메가와티 여사는 이날 실시된 MPR 투표에서 대의원들의 만장일치 찬성으로 대통령에 임명됐으며 곧 이어 취임선서와 함께 대통령직에 정식 취임했습니다.

메가와티의 임기는 2004년 실시 예정인 MPR의 차기대통령 선거때까지입니다.

Q) 메가와티의 정치 이력과 성향은 어떤가요?

A) 과묵한 성격으로 화려한 정치 경력이나 탁월한 리더십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는 아버지의 후광 덕택에 전국에 걸쳐 많은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는 메가와티는, 1947년 1월23일 중부 자바 족자카르타에서 태어나 반둥 소재 파자자란 대학 농업부를 중퇴한 뒤 2차례에 걸쳐 가정을 꾸렸으나 모두 파경으로 끝을 맺습니다.

그녀는 70년 자카르타 소재 국립 인도네시아대학 심리학부에 입학했다가 3년만에 다시 학업을 중단하고 73년 사업가인 타우픽 키에마스와 결혼, 평범한 가정주부로 2남1녀를 키우다가 87년 민주당(PDI) 공천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투신합니다.

92년 재선에 성공하고 이듬해 개최된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메가와티가 총재로 선출되어 세력을 키우자, 위협을 느낀 수하르토 당시 대통령은 97년 어용 세력을 내세워 총재직을 박탈하는 등 박해를 가했으나 그녀는 곧바로 인도네시아민주투쟁당(PDIP)을 창당해 지지기반을 과거보다 훨씬 넓힙니다.

그러나 지지자들이 독재 정권에 굴복하지 않고 강력한 민주화투쟁을 벌인데 반해 정작 메가와티는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해 지도자로서 자질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었습니다.

또 그녀는 하층민들로부터 폭넓은 존경을 받은 데 반해 정계와 이슬람 지도자들의 지지는 거의 전무했습니다.

지난 99년 6월 총선에서 PDIP가 최다 득표해 500개 의석 중 153석을 확보했음에도 불구하고 10월 대선에서 와히드에 패해 분루를 삼켰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골카르당과 이슬람계 정당들이 연대해 국민협의회(MPR) 간접선거 당시 국민여론 조사에서 48%를 획득한 메가와티를 따돌리고 지지율 7%밖에 되지 않던 와히드를 지지, 대통령으로 선출했고 그녀의 세력을 무마하기 위해 부통령으로 발탁했습니다.

프랭크 시내트라의 '마이 웨이'를 애창하는 메가와티. 그녀가 애창곡처럼 꿋꿋이 그의 길을 가게 될지, 아니면 부패와 무능 때문에 MPR의 탄핵을 받아 하야한 와히드의 뒤를 이어 물러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됩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