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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에 들지 않는 지도자는 쫓아낸다?

윤재석의 지구촌 Q&A <16>

Q) 미국이 대이라크 공격에 대한 수위를 계속 높이는 가운데 최근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축출설과 망명 유도를 꾀하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축출하려는 구상을 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미국 스스로 ‘악의 축’으로 규정해 놓은 후 골머리를 앓고 두 나라의 지도자에 대한 축출, 또는 망명에 관한 얘기가 연이어 나오는 것이 심상치 않습니다. 먼저 김정일 축출론에 대해 알아보죠.

A) 시사주간지 뉴요커의 정보통으로 정평 난 세이모어 허시(Seymour M. Hersh) 기자는 27일자 최신호의 ‘차가운 시험(The Cold Test)’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북핵 문제의 전말을 분석하면서 최근 백악관 회의에 참석했던 한 정보소식통의 말을 빌어 미국 정부수뇌부가 김정일 축출가능성을 주장했습니다. 그는 “부시와 체니는 김정일의 머리가 쟁반 위에 올려지기를 바라고 있다. 협상에 관한 여러 얘기들에 미혹되지 마라. 협상은 있겠지만 그들은 (축출) 계획을 갖고 있으며 이라크 후에는 김정일을 처리할 것이다. 그들에게 김정일은 히틀러와 같다.”는 정보소식통의 주장을 전했습니다.

이 기사가 나오자 워싱턴 당국은 혼비백산해 이를 황급히 부인하는 소동을 벌였습니다.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담당보좌관은 19일(현지시간) 미 NBC 방송에 출연해 “부시 대통령이 북핵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방안을 고려하고 있지만 내가 보기에 이번 일은 외교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라고 말해 허시 기자의 기사를 부인했습니다.

콜린 파월 국무장관도 “나는 허시 기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이 문제(북한사태)가 일어난 이후 대통령과 매번 만나왔다. 또 이 행정부 초기부터 대통령을 접해 왔지만 대통령은 이번 사태를 외교적으로 해결하기를 원한다고 명백히 해왔다”고 강조했습니다.

Q) 하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리 없고 보면 그리 허황한 것만은 아닌 듯 한데요. 더욱이 최근 들어 후세인 축출, 또는 망명에 대한 시나리오가 자주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A) 미국정부내의 대표적 온건파인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19일(현지시간) 한 TV에 출연해 후세인이 하야하도록 압박을 가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라크 고위 지도자들에게 사면을 베풀자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제안에 대해 “후세인이 이런 메시지들을 접하고 있다면 그에 귀를 기울이도록 촉구한다”고 말해 후세인의 망명을 우회적으로 권유했습니다.

이날 대표적 매파인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도 미 ABC TV의 대담 프로그램 ‘디스 위크’에 출연해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는 이라크 지도부와 그들의 가족이 다른 몇 개 국가에서 피난처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하라고 개인적으로 권하고 싶다”면서 “이는 전쟁을 피하기 위한 공정한 거래”라고 말해 후세인의 망명을 돕겠다는 의사를 피력해 대이라크 공격보다는 후세인의 망명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강하게 불러일으켰습니다.

공교롭게도 쿠웨이트 주둔 미군은 현지 렌터카회사에 오는 2월9일까지 7000대의 4륜구동 차량을 주문해, 후세인의 망명과 관련성을 증폭시키기도 했습니다.

Q) 한동안 강제 축출 쪽으로 가닥을 잡는 듯 하더니 또다시 선회한 것 보면 百戰百勝 非善之善者也 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의 전략)이라고 가르친 손자병법의 모공편(謀功篇)을 보는 것 같은데요.

A) 지구상에서 두 개의 전쟁을 치러서 둘 다 이기겠다는 윈윈(win-win)전략이 물 건너가고 겨우 윈플러스(win plus)전략을 유지하고 있는 미국 입장에서 대 이라크 공격을 기정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들어 미국이 초읽기를 시작한 대이라크 공격마저 여러가지 여건 때문에 여의치 않게 됐습니다. 이러한 딜레마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대안의 하나로 볼 수 있죠.

특히 비록 고도의 술수로 대량살상 무기 개발 및 보유사실을 은폐하고 있는 이라크와 달리 미국의 대화 의지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대항의 수위를 높이는 북한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이라크 문제를 먼저 해결해 손을 턴 다음, 다음으로 북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도가 이런 식으로 불거진 것이 아닌가 하는 추정을 해 봅니다.

Q) 그러면 후세인이나 김정일의 축출은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나요.

A) 후세인의 경우도 그가 지닌 카리스마와 그에 대한 이라크 국민들의 절대적지지 때문에 축출이 쉽지 않아, 미국이 결국 망명 권유 쪽으로 방향을 바꾼 것 같은데, 김정일의 경우는 더욱 어려운 문제라고 봅니다.

지난 94년 7월8일 김일성이 사망한 이후 그 이름도 희한한 유훈(遺訓)통치로 북한을 다스리고 있는 김정일의 정치적 입지는, 몇 개의 반대세력이 존재하는 후세인보다도 훨씬 공고하며 김정일에게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인 군부마저도 확실히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성이 크지 않습니다.

미국의 입장에서 가능한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brain storming하다가 나온 아이디어인 것같습니다. 물론 미국이 강행을 할 수는 있겠지만요.

Q) 미국에게 있어 ‘문제 국가’의 지도자 축출, 또는 축출 기도가 그리 희귀한 것은 아니죠?

A) 그렇습니다. 미국은 세계 평화를 위협한다고 판단되는 국가나 미국의 마음에 들지 않는 지도자의 제거를 시도해 왔습니다.

지난 1953년 친미 성향의 샤 모하메드 레자 팔레비 꼭두각시 정권을 앉힌 것을 비롯해, 2001년 발생한 9․11 테러 직후 대테러전쟁을 빌미로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을 국출하고 하미드 카르자이 과도정부를 세우기에 이르기까지 수다한 사례가 있습니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지난 1964년 브라질의 정권의 전복입니다. 1961년 당시 J. B. 굴라르 대통령은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의 영향을 받아 농지개혁․외자기업 접수 등을 시도합니다. 미국으로서는 정말 맘에 들지 않는 정권이었죠. 미국은 사회 및 경제의 혼란을 한층 가중시키는 굴라르 정권의 전복에 브라질 군을 이용합니다.

1964년 3월 브라질 육군은 무혈 쿠데타로 굴라르 정권을 무너트리고 브랑쿠 장군을 대통령에 옹립하고 반대파 추방, 인플레이션 억제정책 등을 실시합니다. 문제는 1985년 1월의 선거를 통해 네베스가 당선되어 정권이 민정으로 이양되기까지 무려 21년동안 브라질에 군부독재가 실시되었다는 것입니다.

인도네시아의 경우도 비슷합니다. 1963년 수카르노(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현 인도네시아대통령의 부친)가 군부의 지지하에 종신 대통령에 취임함으로써 독재체제를 수립한 후, 대외적으로 유엔을 탈퇴하고 소련과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하였으며 대내적으로 용공노선을 지지함으로써 군부와 공산당이 대립하게 됩니다.

미국은 1965년 반공 군부세력을 부추겨 경제난과 정치적 혼란이 초래된 인도네시아에 쿠데타를 일으키게 합니다. 이어 출범한 군부출신의 수하르토 정부는 1998년 무너지기까지 30여년동안 인도네시아를 군부독재로 통치하게 됩니다.

1989년 12월 중남미의 소국 파나마에선 더욱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미육군학교를 졸업한 친미파 집권자 마누엘 노리에가 장군이 미국의 말을 잘 듣지 않자 마약밀매와 돈세탁 혐의를 씌워 해병대원 2만명을 파나마로 침투시켜 그를 체포, 미국으로 압송한 것입니다. 마이애미 법정에서 재판을 받은 노리에가는 지금껏 미국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습니다.


***미국의 각국 정부 전복 사례**

▷이란(1953년)=민주 선거로 뽑힌 모하메드 모사데크 총리 축출하고, 친미 성향의 샤 모하메드 레자 팔레비 꼭두각시 정권 수립. 1979년 복압정치에 반발한 반미 이슬람 혁명 정권에 의해 축출.

▷과테말라(1954년)=미 중앙정보국(CIA)까지 개입 좌파 정권 전복 공작 벌여 친미파 카를로스 카스테요 아르마스 정권 수립. 10만~20만명에 이르는 사망․실종자 양산.

▷칠레(1973년)=리처드 닉슨 행정부의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 민선 좌파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 축출.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장군을 권좌에 옹립. 이후 17년간 수천명이 숨지거나 실종. 현재 재판 계류중.

▷니카라과(1974년)=1936년 A 소모사 가르시아가 쿠데타로 정권 잡은 후 장남 루이스와 차남 데바일레에 이르기까지 일족 독재 지속. 장기독재에 대한 비판 고조되자 1972년 5월 차남 데바일레가 대통령직 사임하고 대통령 중임금지 헌법 제정.

1974년의 대통령선거에서 소모사가 재당선되자 FSLN을 중심으로 반정부 유혈폭동 발발. 데바일레를 지지하던 미국 1979년 2월 군사원조 중지. 6월18일 FSLN측 군사평의회 결성 집단지도체제의 임시정부 수립. 데바일레 7월17일 미국으로 망명(80년 파라과이서 피살), 43년간에 걸친 소모사 족벌독재 종료.

▷그레나다(1983년)=친 카스트로 좌파 정권 수립되자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1000명의 미국유학생 안전을 이유로 전격 침공, 친미 정권 수립.

▷아이티(1994년)=미국 주도의 다국적군이 군부 정권 축출 민선의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복권.

▷아프가니스탄(2001년)=9․11 테러 직후 테러 주범인 알 카에다를 방조했던 탈레반 정권을 축출하는 대신 하미드 카르자이 과도정부 수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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